<실패 뒤에도 출발한 사람: 담덕(談德)>
선정 대상과 선정 이유
내가 선정한 인물은 '담덕(談德)'으로, 우리에게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할 것이다.
'만주 벌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이 단어를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맞닥뜨릴 모든 거대하고 두려운 것들로 받아들였다. 적이 득실거리고, 주변에서는 다들 말리며, 잘못하면 전부 잃을 수도 있는 땅. 광개토대왕은 바로 그런 어려운 땅을 정복한 사람이었다.
그가 왕위에 오를 무렵의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남쪽에서는 백제가 치고 올라오고 북방과 서방으로는 강대국들이 국경을 짓누르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몸을 낮춰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는 즉위하자마자 '영락(永樂)'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선포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연호란 오직 천자(天子)만이 쓸 수 있는 것이었으니, 담덕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고구려가 중국과 동등한 제국이라고 외쳐버린 셈이었다. 나는 그 배짱과 시원함에 반해서 광개토대왕을 이번 과제의 인물로 선정하였다.
인물의 성공사례
그를 조사하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그가 언제나 이기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영락 10년(400년),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5만 대군을 한반도 남부로 보낸 그해, 후연(後燕)은 북방 방어가 얇아진 틈을 타 기습을 감행했다. 고구려의 핵심 요충지인 신성과 남소성이 단숨에 무너졌고, 700여 리의 영토를 빼앗겼다. 그뿐만 아니라 그 땅에 살던 고구려 백성 5,000호(戶)가 강제로 적국에 끌려가, 수만 명이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했다. 어떤 왕이라도 이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고, 두려움과 자책,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은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았다. 남방 전선이 안정되고 주력군이 돌아오자마자, 영락 12년(402년) 그는 곧바로 보복 전쟁을 개시해 신성과 남소성을 탈환했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요하(遼河)를 건너 후연의 본거지까지 밀고 들어가 후연 전체를 존폐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결국 후연군은 궤멸당했고, 광개토대왕은 빼앗긴 700리의 땅을 되찾는 것을 넘어 랴오둥 반도와 만주 남부에 이르는 대제국의 경계를 확정 지었다. 실패가 오히려 더 넓은 것을 쟁취하는 발판이 된 셈이다.
나의 의견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정확히는 오지도 않은 미래를 혼자 머릿속에 그려놓고 미리 무서워하는 편이다. 만일 내가 광개토대왕이었다면, 후연이 쳐들어왔을 때 더 나빠질 상황만 계속 굴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담덕은 달랐다. 그 역시 두려움이 없었을 리 없고, 수만 명의 백성을 잃은 왕이 아무렇지 않았을 리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군대가 돌아오자마자 머뭇거리지 않고 출발했고, 되찾은 것에 만족하지 않은 채 더 멀리 나아갔다.
누구에게나 정복하고 싶은 만주 벌판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벌판이 있다. 주변에는 말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잘못하면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나는 달려보기로 했다. 겁은 뒤에 실어두고, 더 넓은 벌판을 향해서 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