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강의 : 혼돈의 시대에 장자를 읽다〉중 제 1편 1장 소요유를 읽고
저자-전호근 지음
나는 책을 읽을 때 스스로 만든 습관이 하나 있는데, 책의 내용을 볼 때 무조건 질문을 한 번 이상 던지면서 보는 것이다.
이때 질문은 던지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답이 적힌 내용과 주석을 찾으러 글을 다시 분석하는 과정을 가지는 게 습관의 마무리였다.
이번 장자의 소요유는 비유와 시적 표현이 많아 해석이 다양하게 될 수 있었으며, 이에 질문 또한 자연스레 해석만큼 많아지게 되었다.
이후 질문들을 풀며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이야기의 교훈은 내가 해내고 있는 길에서 최선을 다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첫 질문은 교수님이 강의 첫날 붕새의 이야기를 들려준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곤은 붕새가 될 때, 어떤 식으로 변하였길래 붕새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소요유의 첫 문단에서 곤이 붕이 되는 과정을 보면, 변한다는 말만 있을 뿐 곤이 붕으로 변하는 모습은 하나도 설명되지 않는다.
어째서 이야기 내내 다양한 시선들로 바라보게 될 붕의 변신을 세세하게 나타내지 않았는가.
나는 이 답을 곤과 붕의 설명을 보며 생각하였다.
곤과 붕은 몇 천 리를 가벼이 넘는 몸을 가진다고 나온다. 이때 곤과 붕을 수식하는 한문은 한 글자 변한 것 없이 동일하다( 不知其幾千里也 ).
물고기는 대부분 물에서 헤엄치지만, 밀어내어 앞으로 나아가는 지느러미와 부드러운 흐름을 가르는 머리는
날치가 보여주듯 공기로 찬 하늘을 헤엄치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곤이 붕으로 됨은 육신의 새로운 변화보단, 이전까지 쌓아온 것을 기회가 오자 풀어내는 상황의 변화로서 곤이 붕으로 인식이 변하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그 커다란 붕은 스스로 날아가는 것 대신 회오리를 타는 것을 선택했을까?
붕의 구름 같은 날개는 한 번 휘저어도 삼천 리의 물을 튀기는 힘을 보여주는데, 스스로 날갯짓해 날아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는 팽조가 짧게 산다는 관점으로 보니 답이 나왔다.
붕은 분명히 거대한 존재지만, 그런 붕이 몸을 던질 정도의 바람이 쌓인 구만리의 상공은
오히려 붕에게 필요한 만큼 붕에게도 아득한 높이라 생각할 수 있다.
700년을 산 팽조라도 대춘 앞에서 점균 같은 수명을 살다 가는 건데, 붕이라고 다를까! 구만리의 상공은 붕을 매미로 만드는 거대함이다.
그래서 붕은 회오리를 탄다. 나무를 건너는 매미처럼 자신의 힘만을 다해 날아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힘들고 성공도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매미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건, 제 힘이 되는 거리라 해도 바람을 타지 않고 날아가서 그런 건 아닐까.
매미와 붕의 차이는 크기가 아니라,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걸 찾는 눈이었고
이를 보여주는 장치가 회오리이다.
이제 글을 한번 다 읽고 전문으로 눈을 돌려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소요유는 내게 무엇을 알리는가?
붕이 구만리를 날아올라 남쪽 바다를 향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소요유의 마지막 문단에는 자유에 대해 말한다.
장자가 이 글에서 내게 보이고자 하는 말은 자유로운 것이 무엇인지 말하려 하며,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다른 것에 기대지 아니하고, 마음속에서 바라는 게 없으며, 세상에 몸을 완벽히 던질 수 있는 사람이다.
이때 나는 성인이 마치 메추리와 매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람에 날개를 던져 움직이는 붕과 다를 게 없다 생각했다.
만일 장자가 독자들에게 붕이 자신이 그린 성인과 가까운 모습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라면 장자는 우리가 붕을 본받기를 바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소요유는 붕을 보여줌으로써 장자가 스스로 원하는 인물상의 모습을 엿보여 주는 글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붕처럼 되는 것은 어떤 행동을 의미할까?
이는 처음으로 돌아가 교수님이 강의 첫날 붕새의 이야기를 들려준 순간부터 결론지었다.
붕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모습이다.
붕과 다름없는 곤은 곤이(鯤鮧), 즉 물고기 알로 유래된 단어라 추측된다. 어느 물고기가 알을 건너뛰고 시작할 수 있을까?
곤이라 하여도 작은 알과 알 안에 몸이 들어가고도 공간이 남는 치어부터 시작할 것은 당연하다.
그런 곤이 몇 천 리의 몸을 가지려면, 당연히 춘추를 몇 번이고 거쳐 가며 먹어야 몸이 그리 불어날 것이다.
또한 곤은 몸을 불리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자신이 시간을 들여 불린 몸임에도 날아갈 때가 오자
망설임 없이 기회를 잡아 텅 빈 하늘에 몸을 던지고 붕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붕의 고단함과 꾸준함, 그리고 기회가 오면 모든 수단을 이용하는 지혜야말로 장자에서 붕보다 큰 것을 찾기 어려운 이유이다.
우리가 붕을 닮으려 할 때 명심해야 하는 건 붕의 전신은 붕이 살아온 세월을 가득 채운 노력이다.
나 또한 앞으로 닥쳐올 삶에서, 후회가 없도록 모든 부분에 노력을 넣을 것이다.
늘 하던 것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기회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붕이 날아가며 몸소 가르친 일을 잊지 않고 행할 수 있도록 글에 적어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