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없는 행복, 행복이 없는 자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고
나는 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작품 속 사람들은 소마를 통해 불행을 느끼지 않지만, 그 대가로 자유를 잃고 살아간다. 나는 이 작품을 행복과 자유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읽었으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작품 속 사회가 생각보다 이상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은 불행을 느끼지 않는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학업, 진로, 인간관계, 경제적 문제 등 수많은 고민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불행 없이 살아가는 사회는 분명 매력적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하고, 돈을 벌고, 누군가를 사랑한다. 그렇다면 이미 불행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그것도 하나의 완성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작품을 읽을수록 쉽게 그렇게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작품 속 사람들은 불행을 느끼지 않는 대신 낭만적인 사랑도,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벅찬 성취감도, 친구들과 이유 없이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순간도 경험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이런 부분이 너무 삭막하게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는 행복한 순간들은 대부분 힘든 과정 끝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시험을 끝내고 느꼈던 해방감,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 친구들과 정신없이 웃었던 기억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만약 그런 과정과 감정이 사라진다면 행복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어느 쪽이 더 옳은지 확신할 수 없다. 다리가 없거나 평생 병과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차라리 멋진 신세계처럼 모든 고통이 사라진 세상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그런 상황이라면 쉽게 버티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인간다운 삶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멋진 신세계를 읽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고통 없는 행복’과 ‘고통이 있어도 인간다운 행복’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멋진 신세계를 읽기 전까지 나는 인간은 행복만 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행이 없고 모두가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작품 속 사회가 이상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를 사랑했기에 느끼는 슬픔, 열심히 노력했기에 겪게 되는 좌절,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얻는 기쁨과 성취가 오히려 우리의 삶을 더 알록달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뇌는 반복되는 일상보다 특별한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어제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는 금방 잊어버려도, 친구들과 크게 웃었던 순간이나 가슴 뛰었던 경험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는다. 어쩌면 행복은 단순히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다양한 감정과 경험이 어우러진 삶 속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멋진 신세계가 보여 주는 삶이 완전히 틀렸다고도, 완전히 옳다고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지만, 어쩌면 행복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불안하고 부족하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경험하며 살아가려는 마음,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도 다채롭고 용감하게 현재를 살아가며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쌓여 언젠가 나만의 행복의 정의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