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소요유」를 읽고
현대가 고도의 정보화 사회로 변화하면서 우리는 방대한 데이터에 접근하고 주체적인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나 역시도 과거에 비하면 더 자유롭고 원하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네트워크와 다양한 SNS 매체들은 수많은 타인의 성공사례들을 실시간으로 쏟아내며,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게 만든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나 역시 이러한 비교 속에서 학점과 스펙이라는 목표를 맹목적으로 쫓고 있었고, 내가 원하는 것과 진로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였다. 이러한 비교와 시스템적인 구속 속에서 장자의 「소요유」를 선정한 이유는 내가 삶의 진정한 주체성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선정하게 되었다. 이 감상문에서는 어떠한 외적 조건이나 입력값에 의존하지 않는 절대적인 자유의 상태인 '무대'를 핵심 관점어로 작품을 분석하고자 한다.
「소요유」의 도입부는 북쪽 바다의 거대한 물고기 '곤'이 날개 길이만 수천 리에 달하는 새 '붕'으로 변화하여 구만리 상공을 날아오르는 우화로 시작된다. 붕새가 바다 기운을 타고 남쪽 바다로 향할 때, 지상의 매미와 비둘기 같은 작은 새들은 자신들이 겨우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기준을 근거로 붕새의 거대한 비상을 비웃는다. 장자는 이 일화를 확장하며, 좁은 공간에 갇혀 바다를 보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나, 제한된 시간에 묶여 겨울의 얼음과 추위를 모르는 여름 벌레처럼 인간 역시 저마다의 시공간과 고정관념에 갇힌 한계적 존재임을 지적한다. 또 친구 혜시가 거대한 박을 두고 "무겁고 넓기만 하여 물을 담거나 바가지로 쓰기에 쓸모가 없다"며 깨부순 일화를 제시한다. 장자는 이에 대해 박을 쪼갤 생각만 하지 말고, 통째로 가슴에 묶어 거대한 강호에 띄워 둔 채 유유자적하게 떠다니는 배로 삼으라는 '쓸모없음의 쓸모'의 논리를 역설한다.
붕새가 대자연의 흐름을 타고 나아가는 웅장한 시공간적 스케일은 정형화된 일상과, 작은 동네에 머물러 있던 나의 시야에 새로운 강렬한 시점을 제공해주며 해방감을 주었다. 반면, 작은 새들의 냉소는 SNS의 화려한 모습들이나 취업률 같은 단일화된 평가지표로 서로를 끊임없이 재단하고, 정해진 성공 루트를 벗어난 이들을 향해 현실 감각이 없다며 비난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과 정확히 일치하여 안타까움과 유대감을 자아낸다. 장자가 던지는 우물 안 개구리의 경고는 나 역시 안정과 성공이라는 루트를 바라보며 그것이 나의 목표라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본질적인 성찰을 유도하고, 혜시의 박 일화 또한 오늘날 모든 가치를 실용성과 눈앞의 성능으로만 서열화하는 현대의 시스템을 지적하고 있다. 존재의 진정한 가치는 규격에 맞는 쓸모가 아니라, 조건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에 있음을 장자는 증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거센 태풍이 몰아치는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도, 어떠한 저항 없이 바람의 결을 역학적으로 이용하며 유유히 유영하는 거대한 새의 날개'라는 이미지가 인상에 남았다. 그이유는 외적 조건에 제어당하지 않고, 내면의 단단한 중심으로 자유를 유지하는 '무대'의 상태를 시각화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결과적으로 장자가 이러한 우화를 통해 세상이 정해놓은 시스템과 규격에 나라는 존재를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고 온전히 삶의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결론을 전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나 또한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나만의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