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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리포트

생명과학과 202613821 정하은

작성자하은|작성시간26.06.15|조회수20 목록 댓글 0

<텅 빈 마음이 가장 단단하다: 장자(莊子)의「양생주(養生主)」를 읽고>

서론

  처음 양생주를 펼쳤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의 삶은 끝이 있지만 지식은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써 끝이 없는 것을 따라가려 함은 위험하다."는 구절을 보고는, 지식 자체가 나쁘다는 뜻인가 싶어 의아했고, 선행도 악행도 하지 말라는 소리인가 싶어 당황스러웠으며, 중허의 도라는 말은 더더욱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해석을 듣고 나니 비로소 이해가 됐다. 장자가 경계한 것은 지식 자체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었고, 옳고 그름이라는 기준 자체가 아니라 그 기준을 남에게 보이기 위한 도구로 쓰는 마음이었다. 결국 핵심은 마음을 텅 비운 채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기라는 것이었다.

이 글은 양생주가 말하는 '중허'를 관점어로 삼아, 무언가를 끝없이 채우려 했던 욕심과 행동의 기준을 늘 타인에게 두고 살아온 내 모습을 되돌아보는 글이다.

 

본론

  양생주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해 타고난 수명을 온전히 누리는 것을 양생(養生)이라 부르며, 그 첫 번째 조건으로 마음을 비우는 것을 든다. 억지로 양생을 추구하기보다 자연스러운 변화에 맡겨야 하며, 마음이야말로 모든 인위(人爲)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지식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 분야도, 저 분야도, 이 사람의 말도 저 책의 내용도 다 알고 싶었고, 그래야만 안심이 됐다. 그러나 마음만 앞서갈 뿐 실제로 그것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건 아니었다. 담기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밀어 넣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정작 지친 건 몸과 마음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알 수 없는 피로감에 시달렸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끝이 있는 그릇에 끝이 없는 것을 쏟아부으려 했으니, 위험하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타인의 시선에 관한 부분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양생주는 선행을 하더라도 명성이 나도록 해서는 안 되고, 악행을 하더라도 형벌을 받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곱씹어보니 핵심은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을 움직이는 마음에 있었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옳은가보다 그것이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었다. 행동의 기준이 내 안이 아니라 주변의 반응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살면 행동 하나하나에 늘 다른 사람의 눈치가 붙어 있게 되고, 결국 그 무게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장자가 말한 인위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행동 자체가 좋고 나쁜 게 아니라, 그 행동을 이끄는 마음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느냐가 문제였다. 마음이 타인의 시선으로 가득 차 있으면 어떤 행동을 하든 결국 나를 위한 것이 아니게 되고, 그런 삶은 몸도 마음도 서서히 닳게 만든다.

그러니 중허의 도란 결국, 마음의 한가운데를 텅 비워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욕심도, 강박도, 타인의 눈빛도 가득 채워 넣지 않고, 그 빈 중심을 축으로 삼아 어떤 변화가 와도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서 있는 것. 채워서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서 단단해지는, 일종의 역설이다.

 

결론

  양생주를 읽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알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신경으로. 그렇게 꽉꽉 눌러 담은 채로 오래 버텨온 셈이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마음을 어떻게 비워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이것저것 다 알고 싶고, 내 것이 되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접해보고 싶은 욕심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욕심이 힘들면서도 동시에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는 것도 안다. 장자의 말이 무조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고, 지식을 대하는 방식도,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으니까.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은, 양생주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그것을 하나의 질문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수천 년 전 사람이 던진 '텅 빈 마음'이라는 화두를, 지금의 나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당장 답을 내리지는 못하더라도, 이 질문을 계속 곁에 두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내 나름의 중허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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