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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이야기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민속- 문화통신65

작성자이학주|작성시간25.04.01|조회수103 목록 댓글 0

문화통신 2025 봄호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민속

 

강 같은 인간의 삶

삶은 흐르는 강물이다. 여울에 선 사람은 여울처럼 살고, 너울을 본 사람은 너울처럼 산다. 저녁놀에 빛나는 윤슬을 본 사람은 황홀하게 자신을 빛낸다. 아침나절 강에서 뿜어내는 물안개를 본 사람은 물안개처럼 삶을 생각한다. 강물은 평범하게 호수에 머물기도 하고, 빠르게 협곡도 지나고, 폭포가 되어 떨어지기도 한다. 누구나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우리네 인생은 흘러 바다로 가서 사라지는 강물일 뿐이다. 붙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강물이다.

강물은 영원히 사람과 함께 했다. 하루도 강은 사람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도 강을 하루도 떠날 수 없었다. 우리는 살면서 흘러 강처럼 맑아지기도 하고 탁해지기도 했다. 어떤 이는 청정 도인이 되고, 어떤 이는 혼탁 쓰레기가 된다. 그렇다. 어디에서 어떻게 강물을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 그렇게 우리 인생은 강물을 닮으며 살았다.

오랜 세월 강물은 흘렀다. 강물이 흐르면서 새로운 광경도 만들어내고, 꽃도 피우고, 물고기도 살고, 사람도 살게 했다. 강물이 만들어낸 우리의 삶, 그 속에는 수많은 민초(民草)의 풍속이 깃들어 있다. 권력자들의 다툼으로 얼룩진 전쟁이 아닌, 강물 같은 백성의 삶은 민속(民俗)이 되었다.

 

강물에 띄워 보낸 우리의 액운

해가 바뀌어 설을 지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설은 ‘낯설다’에서 비롯한 용어이다. 새해가 시작되니 낯설어서 ‘설’이라는 용어를 써서 세시풍속을 만들었다.

낯선 한 해의 시작은 폭설에 쌓인 눈 치우기부터 시작했다. 화장실로 난 길을 치우고, 옆집으로 난 길을 치우며 일과를 보냈다. 그길로 동네 어르신들께 세배하러 다녔다. 그렇게 보름이 되자 낯선 한 해의 시작은 이제 낯익음으로 변해 갔다. 들녘마다 연 날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도랑과 강에는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로 붐볐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올해도 물놀이 중 아이들이 다칠까 봐 걱정이었다. 매년 행하는 풍속이지만 올해도 어김이 없었다. 어부식(魚鳧食) 행사이다. 어부식은 고기 어(魚)자에 오리 부(鳧)자에 밥 식(食)자를 쓴다. 물고기와 오리에게 밥을 준다는 말이다. 보통 어르신들은 ‘어부슴’이란 말을 쓴다. 어부슴은 여름날에 하는 행사이다. 정월 14일 저녁달이 뜰 때를 기다려서 도랑 가나 강가에서 행한다.

정월대보름은 여름날(14일)과 가을날(15일)과 귀신날(16일)로 나뉘어 행사가 이뤄진다. 사람들은 미리 한 해의 액운을 예방하고, 풍·흉년을 점치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행위를 날짜를 나누어서 했다. 14일에 더위를 파는 행위도 여름날이기에 행하는 풍속이다. 제웅을 치는 행위는 나쁜 액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15일에 걸립을 하고 달집을 태우고 달떡을 먹는 행위도 가을에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풍속이다. 16일에 머리카락을 태우고 신발을 엎어 놓고 체를 걸어 귀신을 막는 풍속은 액운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좋은 일에는 마(魔)가 낀다는 속담처럼, 풍년이 들면 시기하는 귀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부슴은 여름에 아이들이 물놀이하다가 강물에 빠지지 말라고 미리 예방하는 풍속이다. 한지에 해당 아이의 생년월일시인 사주(四柱)와 주소를 쓴다. 그 한지에 미리 해 놓은 오곡밥이나 조밥을 싼다. 그리고 자신의 귓불을 두 손으로 잡고 달을 향해서 몇 번이고 절을 하면서 아이의 무사고를 빈다. 그렇게 다 빌고 나면 조밥을 싼 한지를 들어 강물에 던진다. 강이 얼었으면 구멍을 내서 넣는다. 일종의 용왕제와 같은 풍속이었다. 강에 사는 고기와 오리에게 미리 먹이를 주어서 아이의 물 빠짐 사고를 예방하고자 했다.

이처럼 어부식은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손자와 자식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 풍속이 되었다. 그 사랑은 홑치마로 맞은 추운 겨울의 저녁 찬바람도 이겨냈다.

 

강물 따라 흘러갔다 돌아온 떼돈

삼월이 되면 강원도의 강물은 눈물[雪水]로 불어났다. 푸른색 눈물이 강을 휩싸고 돌았다. 눈물의 양은 아주 많았다. 강물은 철철 넘쳐 겨울철 메마른 날에 드러났던 돌은 물속에 묻혔다. 이 정도 물이면 뗏목을 띄울 만하다. 비가 와서 강물이 더 불어나면 좋다.

강원도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 일원에서 모두 뗏목을 서울 마포나루로 보냈다. 남한강에서는 정선군과 영월군의 뗏목이 유명했고, 북한강에서는 인제군과 화천군과 춘천시의 뗏목이 유명했다. 지금도 불리는 뗏목아리랑은 그 당시 떼꾼의 애환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한양 궁궐은 왜 자꾸 정선 소나무로 짓나요/ 부역으로 나무 베고 떼를 띄우다 죽겠네.”(정선 뗏목 아리랑)

“우수나 경칩에 물 풀리니/ 합강정 뗏목이 떠내려간다.”(인제 뗏목 아리랑)

“뗏사공 아재들아 어서 내려오게/ 동동주 해장국이 오골박짝 끓는다.”(정선 뗏목 아리랑)

<정선 뗏목 아리랑>은 정선아라리조로 부르고, <인제 뗏목 아리랑>은 강원도아리랑조로 부른다. 강 한복판에 띄운 뗏목 위에서 부르는 아리랑은 참 처량했을 것이다. 길 가던 아낙네도 듣고, 덕두원 썩쟁이도 듣고, 정선의 주막집 전산옥 주모도 들었다. 떼꾼이 가장 무서워하던 여울도 아리랑 가락에 지나쳤다.

강원도는 황장목(黃腸木)으로 유명하다. 황장목은 임금의 관(棺)을 만들던 나무이다. 서울의 고관대작들은 모두 황장목을 얻고자 했다. 경복궁이 지어질 때도 강원도의 황장목이 쓰였다. 얼마나 많은 나무를 요구했으면, 뗏목 아리랑에 경복궁 얘기가 나올까. 한양 궁궐은 그렇게 뗏목으로 흘러간 강원도의 나무로 지어졌다. 어디 궁궐뿐일까. 좀 산다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황장목을 요구했다. 연암 박지원이 양양부사로 가 있을 때 한양의 관리들이 너도나도 황장목을 부탁했던 사실을 그의 아들 박종채가 『나의 아버지 박지원』이란 책에 고스란히 기록했다.

뗏목이 마포나루에 도착하면 떼꾼은 떼돈을 벌었다. 농사꾼이나 벌목꾼이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그러나 떼돈은 고스란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주막집 외상값도 갚아야 하고, 여비도 충당해야 하였다. 그래서 떼돈을 받아도 떼꾼은 부자가 되지 못했다. 어쩌면 사람 사는 세상사에서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다.

이제는 뗏목이 한강을 따라 흐르지 못한다. 한강에 여러 개의 댐이 들어서면서 뗏목은 한강을 따라 흐르지 못했다. 뗏목 길인 수로가 막힌 것이다. 그래서 민속놀이로 그 당시 뗏목의 흐름을 재연하고, 뗏목 아리랑으로 전승하고 있다. 2024년에는 강원도 민속예술축제에서 인제의 <뗏목 아리랑>이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흘러간 생산 민속이 된 뗏목은 오늘도 뗏목 아리랑이 되어 정선에서 인제에서 영월에서 춘천에서 불러질 따름이다. 뗏목은 멋진 강 풍속으로 우리 곁에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강은 봄꽃도 반긴다

강가는 사람들의 놀이터로 유명하다. 산과 들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은 사람들의 유희(遊戲)도 반긴다. 강가에서 노는 풍속은 옛일만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다. 아마도 강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강원도에서는 3월 말이나 4월이 되어야 진달래가 핀다. 봄꽃 가운데 가장 화사한 꽃은 진달래와 철쭉이다. 진달래와 철쭉은 한 달여 차이를 두고 만발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가장 반기는 봄꽃은 진달래이다. 진달래가 온 산과 들과 강가에 필 때는 아직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이다. 물론 부지런한 농부들은 밭에 거름을 펴면서 농사 준비를 한다.

그렇게 진달래가 만발하면 따뜻한 봄날이 된다. 그러면 여성들은 산의 계곡이나 강가에 활짝 핀 진달래를 찾아 화전놀이를 한다. 진달래는 꽃전[花煎]으로 일품이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동그랗게 만들고, 그 사이에 진달래 꽃잎을 놓아 부친다. 상큼한 그 맛은 입안 가득 오랫동안 꽃향기를 드리운다. 물론 술이며 다른 먹거리도 풍족하게 가져간다. 장고도 빠질 수 없다. 겨우내 삼 삶고 일하며 지친 몸을 활짝 펴는 날이다. 그동안 숨겨두었던 소리 실력도 뽐낸다. 물론 적삼 자락 높이 들어 어깨춤도 춘다.

 

물철쭉이 반기는 강원도 강

강원도 사월은 강물이 만들어 낸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물철쭉 이야기이다. 강원도의 강은 봄이면 꽃을 품는다. 아직 강물은 차다. 찬 강물이 흐르는 강가에는 신라 때 수로부인도 반했다는 철쭉꽃이 만발한다. 산에 군락을 이뤄 피는 철쭉도 멋진 광경이지만, 물철쭉을 본 사람은 감탄을 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그렇게 예쁜 모습을 간직했을까. 여름, 가을, 겨울 동안은 어디를 갔다가 봄에 나타난 것일까.

이맘때면 강원도 시골 곳곳에는 겨우내 삼을 삼아서 만든 삼타래를 잿물에 삶는다. 뜨끈한 삼타래를 지게에 지고 강으로 간다. 이제 씻어서 하얀색을 내야 한다. 집집이 강으로 가서 차가운 강물에 삼타래를 넣어 씻는다. 강물에 씻긴 삼타래는 점점 색을 내며 속살을 드러낸다. 손발이 찬 강물에 닿아 벌겋게 변한다. 너무 추워 많이 아리다. 그러면 강가에 불을 피우고 잠시 나와서 손발을 불에 덮이고, 또 강에 들어가 삼타래를 흔들어서 씻었다. 강물은 사람들의 힘듦을 아는지 검은색을 가져가고 하얀 속살을 내준다. 또 하나의 강 풍속이며 풍경이다.

하얀색으로 변한 삼타래를 돌 위에 올려놓으면 물이 빠진다. 그 모습은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아랍 사람들의 두건처럼 보인다. 봉긋봉긋 몇 개의 삼타래가 물철쭉과 어울려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어느 정도 물기가 빠지면 다시 지게에 삼타래를 올려 각자 집으로 가져간다. 빨랫줄에 삼타래를 걸고 바지랑대를 걸쳐 말린다.

 

강물이 주는 풍요 고기잡이

강가에서 밤낚시를 해 본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고기가 물릴 때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짜릿함은 그야말로 온몸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어찌 그 순간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밤낚시는 오로지 손끝으로 고기 물림을 감지했다. 요즘처럼 야광찌가 있어 눈으로 고기 물림을 보고 잡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긴 장대에 노끈을 드리우고, 몇 개의 바늘 낚시를 중간에 매단다. 그리고 끝에는 작은 돌을 매달아서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고정한다. 장대는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만들었다. 적당한 굵기와 길이로 잘라서 장대로 썼다. 장대가 밤낚시를 하는 낚싯대이다. 미끼는 주로 지렁이를 캐서 썼다. 물 끼가 있는 땅을 파면 지렁이는 짧은 시간에 낚시할 만큼 잡았다. 지렁이를 잘라 바늘 낚시에 끼워 낚싯대를 강물에 던지면 고기의 입질이 금방 왔다. 메기, 빠가사리, 탱수, 모래무지 등 정말 온갖 고기가 물렸다. 가끔 운이 좋으면 뱀장어도 한 마리씩 잡았다. 그날은 횡재한 날이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그렇게 다래끼에 채워진 물고기는 온 가족의 한 끼 식사로 충분했다. 물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고 고깃국을 끓여 한 그릇씩 나눠 먹었다. 온 가족이 즐겨 먹는 그 모습을 보면, 누군들 고기잡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밤에 물고기를 잡는 방식은 밤낚시만 있는 게 아니다. ‘고기쏜다’고 해서 관솔불을 밝혀서 밤에 잠자고 있는 고기를 잡기도 했다. 이 방법은 두세 명이 힘을 합쳐야 가능했다. 주낙 또는 만낭이라 해서 줄에다 여러 개의 바늘 낚시를 달아서 저녁에 강물에 담갔다가 아침에 건져 올리는 방식도 있었다. 싸리나무로 통발을 만들어서 물에 담가 잡기도 했다.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기도 했다. 정말 물고기를 잡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썼다.

낚시도 우리 조상들이 해왔던 생산 민속 중 하나이다. 강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방법이다. 이제는 전통적인 물고기잡이는 민속축제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옛것이 되었다.

 

휴식, 일하는 참에 함께한 강물

누군가는 치열하게 고기잡이를 해서 생계를 꾸리기도 한다. 어부들의 이야기이다. 어부는 강과 바다와 호수가 생산의 터전이다. 어로민속(漁撈民俗)은 어부들의 고기잡이 방식에서 비롯했다. 바다에서 행하는 어로방식이 거세다면 강과 호수에서 행하는 어로방식은 잔잔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왜 옛 신선 그림에 강가에서 또는 작은 배를 타고 낚시를 강물에 드리우고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나오는지 알 수 있다. 강과 바다는 환경이 달라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강은 휴식의 공간이기에 신선들의 놀이공간이면서 삶의 터전으로 생각했다. 물론 신선은 산을 배경으로 산다. 그런데 이렇게 강으로 내려와 노는 행위는 강물이 주는 맑음과 풍요와 여유 때문이다. 깨끗이 씻어준다는 정화(淨化), 강물의 흐름을 따른 유유자적(悠悠自適), 강물이 주는 먹거리 등이 있다.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때 강을 찾는 이유이다.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하늘의 별을 감상할 수도 있고, 친구들이나 마을 사람들과 천렵을 할 수도 있다.

우리 농부들 풍속에 호미씻이가 있다. 김매기가 다 끝났으니 호미를 강에 씻어 둔다는 풍속이다. 옛날에 농부들은 김을 세 번 맸다. 아이 김, 두 벌 김, 세 벌 김을 맨다. 풀은 정말 끈덕져서 한 번만 김을 매지 않으면 금방 자라 곡식을 뒤덮는다.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생긴 배경이다. 세 벌 김을 맬 때쯤이면 말복(末伏)이 지나 이제 더 풀이 기승을 부리지 못하는 시기이다. 그러면 농부들은 날을 잡아 강가에 모인다.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술도 담가 마신다. 물고기도 잡아 매운탕을 끓여 안주로 삼는다. 힘든 김매기가 끝났으니 강가에서 신나게 노는 날이다. 소리하고 춤추는 일이 빠질 수 없다. 이렇게 힘들었던 그간의 고통을 물밑으로 씻어내면서 호미를 씻어 둔다. 이제 올해의 김매기는 끝났으니, 오월 농부 팔월 신선이 되었다.

 

강물이 얼어 만든 겨울의 민속, 변화의 진실

강은 변화가 심하다. 변화(變化)를 알면 성인(聖人)이 된다고 했다. 강을 유심히 관찰하면 나도 성인들처럼 세상의 변화를 깨우칠 수 있을까. 강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 변화만 있지 않다. 강은 매일 다르고 시간별로 다르다. 왜 강물은 그렇게 다양하게 변화할까. 어쩌면 강물의 변화 때문에 사람들은 강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매일 그 모습 그대로라면 아마도 강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나는 ‘변화는 미덕(美德)이다.’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강물은 그런 미덕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우리도 매일, 매시간 강물의 변화처럼 새로움을 찾아 나서야 한다. 강물이 고여 있지 않고 흐르는 원인이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 깨끗함을 유지하고, 수많은 생명체를 살려내는 강물은 흐른다.

천변만화하는 강물은 누천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감상하게 했다. 천만 편의 시가 나오고, 수필이 나오고, 소설이 나와도 또 쓴다. 천만 편의 미술 작품이 나와도 또 그린다. 천만 편의 사진이 있어도 또 찍는다. 매일 강가를 거닐어도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강물의 변화처럼 물의 흐름과 사유(思惟)는 등식을 이뤄야 한다. 최소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생각의 변화를 사랑한다.

강물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행위를 요구한다. 물놀이, 고기잡이, 얼음 썰매, 농사, 공업 등등을 강물은 제공한다. 하다못해 동토(凍土)의 계절인 한겨울에도 강물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중에 강원도에서 행하던 민속놀이 가운데 얼음 위에서 하는 농목장치기가 있다. 장치기에서 장(杖)은 막대이다. 이 놀이는 얼음 위에서 하기도 하고, 운동장에서도 한다. 강원도 화천이나 양구 등지에서는 얼음 위에서 하는 농목장치기가 있었다. 막대는 서양의 하키 스틱을 닮았는데, 구부러진 나뭇가지로 막대를 만든다. 운동장에서는 공을 사용하지만, 얼음 위에서는 나무토막 등을 사용한다. 농목장치기도 강물이 얼음으로 변해서 할 수 있었던 놀이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강물의 변화처럼 놀이문화도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강(江)자는 물이 흐르는 소리에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사람들은 흐르는 강물을 좋아했고, 또 닮고자 했다. 그래서 강과 관련된 각종 기구, 철학, 문학 등을 만들었고, 또 생활 속에서 민속을 만들었다. 강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라 할 수 있다. 오늘도 난 강물의 흐름을 지켜보며, 또 다른 멋진 내 삶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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