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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이야기

이학주의 정선이야기16-봄나물

작성자이학주|작성시간25.04.08|조회수55 목록 댓글 0

이학주의 정선이야기16

 

향긋한 봄나물에 마음 설레는 정선

 

언 땅을 밀고 나온 봄의 전령

정선의 봄나물은 4월이 되어야 잎을 내밉니다. 아직 얼음이 다 녹지 않았지만 양지바른 언덕에는 어느새 파릇파릇 새싹을 내미는 나물이 있지요. 그곳에 잠시 앉아 있으면 나도 따스한 햇빛에 노근해 집니다. 나물이 햇살을 받아 땅을 뚫고 나오는 광경은 그야말로 놀랍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예쁜 모습일까요.

어른들은 봄풀은 모두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독풀까지 먹을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겠지요. 봄풀은 아직 독성이 없다는 말일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무 풀이나 먹지 않습니다. 먹는 나물도 어른들로부터 전승이 되니, 먹을 수 있는 나물은 어느 정도 다들 알고 있습니다. 밥상에 올려진 나물반찬을 보면서 익히고, 어른들을 따라 나물 바구니를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나물을 익힙니다. 비슷해 보이는 나물이 많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낭패일 수도 있기에 더욱 조심합니다.

정선에서 언땅을 밀고 나온 나물은 아무래도 달래 냉이 씀바귀입니다. 참 일찍 나옵니다. 얼마나 일찍 나오면 봄나물 노래에도 나올까요. <봄맞이 가자>라는 노래입니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달이도 높이떠 노래 부르네”

정말 정겹습니다. 봄맞이하는 풍경에 봄나물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이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의 눈에 가장 먼저 띈 풍경이었을 겁니다. 아이들이 맞는 봄인데 나물 바구니를 들고 나물 캐러 가고 있습니다. 거기다 종달새도 높이 떠 노래 부르는 봄입니다. 정선의 봄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으니, 여기 저기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물을 뜯고 캤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캐 온 봄나물은 온 식구들이 먹는 밥상에서 향긋한 냄새로 봄소식을 나눴습니다.

 

아라리 제재로 떠오른 봄나물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숭년에도 봄 살아 나지”

정선 사람들은 모두 시인입니다. 이 노랫말을 듣는 순간 정선 사람들이 최고의 시인이란 생각이 듭니다. 보릿고개를 지나면서 먹을 게 없어 힘든 시기였지요. 배고픔에 아이들은 울고 주린배를 참고 견뎌야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 순간 어쩌면 임 생각을 하고 사랑 타령을 할 수 있을까요. 계절과 봄나물과 사랑과 보릿고개의 사연이 한 줄에 어울려 모두 나타났습니다. 정선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순간에도 감성과 감정과 사유가 살아납니다. 아무리 삶이 쪼달려도 정선 사람들이 가꾸는 마음의 밭은 참 풍요롭습니다. 봄나물이 가득한 마음의 밭입니다. 인정이 있고, 사랑이 있어 더욱 향기롭습니다.

곤드레나물과 딱주기나물은 정선의 대표적인 나물입니다. 곤드레나물밥은 정선의 상징적인 음식입니다. 전국 어디 누구에게 물어봐도 곤드레나물밥 하면 정선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딱주기나물은 곤드레나물처럼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딱주기나물은 산에서 그냥 꺾어 고추장에 찍어 먹을 수 있으니, 나물 뜯으며 도시락 먹는 재미가 더합니다.

『정선아리랑 가사사전』에는 나물 아라리가 꽤 많습니다. 그만큼 정선 사람들 삶에 나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는 얘기이지요.

“나물 광주리 옆에 끼고서 강가로 갈거니 낚숫대를 질질 끌고서 내 뒤만 졸졸 따르라”

“나물 캐러 간다고 요 핑계 조 핑계 대더니 잔솔밭 중허리에서 총각 배그넬 타네”

“나물을 먹고 싶어 산으로 가나 총각 낭군 바라서 산으로 가지”

참 가사가 재미있습니다. 노랫말 모두 처녀들이 능동적인 화자(話者)입니다. 총각은 처녀들의 노래를 듣고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청자(聽者)일 따름입니다. 한창 사랑에 눈을 뜨는 처녀총각이니 얼마나 그립고 마음 설레었을까요. 그래서 노랫말이 더 재미있습니다. 얌전한 처녀가 총각을 먼저 유혹하는 반어적인 기법이지요. 마치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르는 격입니다. 차마 어른들 눈에 띄면 안 되니 나물 뜯는 핑계로 강가며 산으로 가서 사랑을 나누는 노랫말입니다. 꼭 그렇다는 말보다도 그렇게 하고 싶은 심정이 가득한 노랫말입니다. 사랑 타령은 은유나 직유도 맛스럽지만 직설적일 때도 웃음을 유발하는 맛이 좋습니다. 일종의 해학(諧謔)이라 할 수 있지요. 정선 사람들은 이런 문학적인 기법을 적절하게 노랫말에 담을 줄 알았습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요만하면 족하지”

“나물 뭉티길 달달 삶아서 간난이 아버질 드리고 간난이하고 나하고는 저녁 굶어 자자”

참 슬픈 노랫말입니다. 1970년대까지도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일제 강점과 전쟁이 빚은 참혹함이지요. 비료마저 보급이 되지 않던 시절이라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삼시세끼 배불리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봄 나면 제일 먼저 찾는 먹거리가 봄나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정선 사람들은 아라리 가사로 만들어 부르면서 배고픔을 달랬습니다.

“나물 바구니 옆에 끼고서 동산 넘에를 갔더니 동지섣달 쌓였던 심회가 저절로 풀리네”

그렇게 가난하고 배고파도 한겨울 추위에 집안에 갇혀 있다가 나물 뜯으러 훨훨 나서니 울적한 심회가 풀립니다. 따스한 봄날이 주는 행복이지요.

 

나물은 가족 사랑이 깃든 반찬

나물 뜯는 시기가 되면 산에는 온통 정선아라리 소리가 메아리칩니다. 묵나물을 만들기 위해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남녀 어른들은 모두 망태며 주루막이며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갑니다. 정말 새벽조반을 먹고 산을 오릅니다. 매년 이맘때면 해오던 계절노동이라 익숙합니다. 그렇게 산에 올라가면 이쪽저쪽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리며 나물을 찾습니다. 행여 나물 밭을 쉽게 찾으면 그날은 노동이 쉽습니다. 대체로 어디 어느 골에 어떤 나물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매년 해오던 일이라 머릿속에 이미 저장이 되어 있습니다. 나물이 한곳에 몰려있는 장소를 찾으면 그때는 저절로 아라리 한가락이 나옵니다. 누군가 한가락 부르면 맞은편 산자락에서 또 한가락 합니다. 배부른 소리라 흥겹기 짝이 없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나물을 뜯다가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됩니다. 찬밥에 고추장이 전부지만 갓 뜯은 나물을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은 어디 비유할 수 없습니다. 임금님의 수라상이면 이 맛만 같을까요.

나물 뜯는 노동은 다른 농사처럼 대를 이어 전승되는데요.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나물을 새색시는 눈에 익혀 나물 뜯는 노동을 이어가고요. 그 색시가 어른이 되면 또 새색시한테 가르쳐주는 구조이지요.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들한테 전승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물 뜯는 일은 끊이질 않고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나물을 밭에 재배하는 시절이 되었지만, 그 옛날 풍경을 생각하면 저절로 가슴 아려옵니다.

하루 내내 산에 가서 나물을 뜯어 망태와 주루막에 담아서 지게 가득 지고 머리에 이고 각자 집으로 옵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뜯어온 나물을 흩어 놓습니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요. 드디어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지요. 그러고도 쉬지 못하고 곧바로 가마솥에 물을 끓여서 나물을 삶아 엽니다. 묵나물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하루 이틀 봄볕에 삶은 나물을 말리면 아주 훌륭한 묵나물이 되어 처마 곳곳에 매달아 놓습니다. 이 묵나물이 겨울 양식이 됩니다. 나물 뜯기는 아들딸 배 골리지 않고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려고 했던 정선 사람들의 계절노동이었습니다.

나물의 고장 정선 살이는 힘들고 고되지만, 사랑과 낭만과 행복도 있었지요. 정선의 4월과 5월은 나물의 계절입니다. 우리 모두 향긋한 나물밥을 먹으며 가족의 행복을 느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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