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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주의 정선이야기17-몰운대

작성자이학주|작성시간25.05.11|조회수57 목록 댓글 0

 

이학주의 정선이야기17

 

몰운대에 서린 정선의 비경

 

비경(祕境) 몰운대에 얽힌 시인의 노래

정선군 화암면 몰운리 몰운대(沒雲臺)를 본 사람은 다들 비경에 감탄해서 탄성(歎聲)을 냅니다. 그리고 많은 시인이 노래했습니다. 어쩌면 몰운대를 본 수많은 시인의 감탄이 사라지지 않아 아직도 노래하지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생각보다 더 멋진 경치를 접하면 시인은 처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시간이 좀 지나면 “아~”하고 탄성하고, 또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노래한다고 했지요. 시는 노래입니다. 그러니 몰운대를 찾아 노래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람은 모두 처음 본 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겁니다.

황동규 시인은 <몰운대행(沒雲臺行)>에서 화암약수터 호텔 여주인의 말을 옮깁니다. “몰운대 저녁노을이나 보시고… 나가시죠.” 몰운대 저녁노을은 호텔 여주인의 맘속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였겠지요. 시인은 그 여주인의 말을 따라 몰운대로 향합니다. 시인은 몰운대로 가는 길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신선하고 기이한 뼝대/ 저녁 빛을 받아 얼굴들이 환했다./ 그 위에 환한 구름이 펼쳐진 길/ 그 끝을 향해.”

몰운대 뼝대(벼랑)가 먼저 신선하고 기이하게 시인을 반겨주었습니다. 저녁 빛을 받아 환하였으니, 뼝대마저 시인을 반갑게 웃으며 맞았네요. 손님을 반갑게 맞는 정선 사람들을 뼝대도 닮았나 봅니다. 그렇게 몰운대에 오른 시인은 순간 화석(化石)이 되었습니다.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습니다./ 새가 하나 날다가 고개 돌려 수상타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모기들이 이따금씩 쿡쿡 침을 놓았습니다./ (날것이니 침을 놓지!)/ 온몸이 젖어 앉아 있었습니다./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

화석이 된 영혼을 일깨우는 듯 모기가 침을 놓았네요. 너무나 황홀한 경치에 놀라 온몸이 젖어있었고, 신선들이 같이 있는 듯 혼자가 아니었네요. ‘꽃가루 하나가 강물에 떨어지는 절벽’은 신비 그 자체였지요.

1888년 5월 10일 정선군수 오횡묵(吳宖默)은 몰운대를 찾아 바위에 이름을 새깁니다. 그 이름이 아직도 바위에 선명합니다. “지군(知郡) 오횡묵(吳宖默)”이라 했는데요. 지군은 지군사(知郡事)의 준말로 군의 행정을 맡아보는 으뜸 벼슬인 군수라는 뜻입니다. 같이 몰운대에 올랐던 집강(執綱) 유종택(劉宗澤)에게 이름을 새기게 했다네요. 그리고 다음과 같은 율시를 짓습니다.

 

沒雲高臺出半天 몰운의 높은 대가 중천에 솟았는데

飛筇一上絶風煙 지팡이 날려 한 번에 오르니 흐릿한 안개 사라지고

盤陀俯瞰臨流歇 깎아지른 낭떠러지 내려다보니 흐르는 강에 닿았구나

危角回瞻倚斗懸 위태로운 몰운대는 북두칠성에 매달려 있는 듯 보이고

此地居人眞脫俗 이 땅에 사는 사람 세속을 벗어난 진인이니

今來太守似成仙 이번에 온 태수도 신선 같이 되려나

留名欲倩劉郞手 이름을 남기고자 유랑의 솜씨를 청하니

若此龜趺較似賢 이 어찌 비석에 새긴 어진 이에 견줄까(󰡔정선총쇄록󰡕)

 

몰운대를 북두(北斗) 선경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몰운에 사는 사람은 세속을 벗어난 신선으로 생각합니다. 워낙 경치가 뛰어난지라 몰운대와 마을을 신선이 사는 선경으로 봤습니다. 그러면서 오횡묵 군수도 신선의 일원이 되고자 이름을 바위에 새겨 남깁니다. 비록 선대의 성인처럼 되지는 못할지라도 그런 포부는 버릴 수 없었겠지요.

박정대 시인은 <몰운대에 눈 내릴 때>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사랑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오른 시인은 그곳에서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언제나 우리가 말하던 절망은 하나의 허위였음을/ 눈 내리는 날 몰운대에 와서 알았네…세상의 끝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었네.”

몰운대는 이렇게 사람을 살리고 새 삶을 살게 해주는 장소입니다. 박정대 시인처럼 이인평 시인도 몰운대에서 삶의 끝과 시작을 보았습니다.

“이 깎아지른 벼랑 끝에 이르러/ 내 삶은 끝인가 시작인가…현기증 도는 세상에서 오금이 저린 나는 어느새/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자란/ 옹골진 소나무의 허리를 붙들고 있다… 해거름에 고요의 여운을 쓸어오는 물소리가/ 내 오랜 갈증의 혀를 적신다”

이 시는 이인평 시인의 <몰운대(沒雲臺)에서> 중 일부입니다. 현기증 나는 세상살이를 하다가 몰운대에 오른 시인은 어느덧 벼랑 앞에서 소나무 허리를 붙잡고 멋진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멋지게 살고픈 마음이 다시 솟아난 것이지요.

 

동천(洞天)으로 만든 몰운리 사람들

몰운대가 이처럼 아름다운 이유는 몰운리 사람들이 가꾼 덕분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를 지녀도 사람이 가꾸지 않으면 이름을 드날리지 못합니다. 몰운대라는 이름도 마을 사람들이 ‘구름도 쉬어 넘는 돈대’로 보고 불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산이 우뚝 튀어나와 물에 다다라 큰 돌벼랑을 이루는데, 그 벼랑의 돌이 마치 책을 쌓아 놓은 듯 켜켜이 포개진 모양입니다. 그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면서 마치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올라 머문 듯합니다. 이런 모양을 보고 한자로 빠질 몰(沒)자에 구름 운(雲)자에 돈대 대(臺)자를 써서 몰운대라 불렀습니다.

마을에서는 몰운대로 가는 길에 표석을 세우고, 장승을 세우고, 기와집 누각을 세워 사람들 눈에 띄게 합니다. 누가 봐도 잠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안내도를 세워 궁금증을 해소하게 합니다. 화암 8경의 하나, 백여 명이 있을 수 있는 커다란 반석, 수령 500년이 넘는 소나무 등이 있음을 안내합니다. 게다가 천상(天上)의 선인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다 갔다는 전설까지 곁들이니, 누구든 둘러보지 않고는 못 배기지요.

그리고 몰운대로 향하는 길목에는 오횡묵 시비, 박정대 시비, 이인평 시비를 세웠고, 몰운정을 세워 운치를 더했습니다. 커다란 소나무가 죽어 후계목을 심은 내력을 밝힙니다. 그야말로 비경에 내력까지 갖췄으니 금상첨화이지요.

화암면 몰운리 사람들의 마음이 곳곳에 절절합니다.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신선이 산다는 선경인 동천(洞天)으로 가꾸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은 원래 존재와 가치의 근원이며, 인간은 현실적 모순과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늘을 닮으려 자신이 사는 동네를 동천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공자와 주자를 비롯한 수많은 중국의 유학자와 조선조의 선비들이 그렇게 자기 수양을 해왔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불가에서도 도가에서도 모두 동천을 꿈꾸며, 부처가 되고 도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물론 진정한 비경도 동천도 낙원도 모두 사람의 마음에 있고, 스스로 가꾸기 나름이지요. 몰운리 사람들은 그렇게 마을을 낙원으로 꾸미며 살아왔습니다. 꽃피고 신록이 무성한 오월 멋진 비경의 고장 몰운리 몰운대에 한 번 가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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