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이야기18
산치성에 담긴 정선인의 소망
<산치성에 담긴 할아버지의 정성>
“해동조선국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문래리 고을에 사는 백성 이○○이옵니다. 영산님네는 두루 보살피어 가족들이 모두 ~~~.”
개울가 커다란 바위 아래에서 노구메를 놓고 뚜껑을 연 채 비손짓을 하는 할아버지의 축원입니다. 노구메는 산천의 신령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놋쇠로 만든 작은 솥에 지은 메밥입니다. 아직 어둠이 다 걷히지 않은 터라 주위는 고요했습니다. 범바위산 아래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어둠을 더욱 짙게 하였습니다. 물안개는 날이 밝음을 막는 듯 비손짓 하는 할아버지 몸을 감싸고 돌았습니다. 한기가 온몸으로 느껴지지요. 조금 후 축원이 끝나자, 노구메에서 밥을 떠 고수래를 했습니다.
산치성이 끝났습니다. 날이 훤히 밝았고, 여기저기서 산새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립니다. 아침이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이지요. 할아버지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주루막에 밥이 담긴 노구메를 넣습니다. 그리고 사발로 된 물그릇도 비워 주루막에 담습니다. 물을 떠서 불씨를 깨끗이 끕니다.
치성은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치성 지내기 며칠 전부터 철저하게 금기를 합니다. 비린내 나는 음식이나 부정한 일은 모두 멀리합니다. 그리고 치성드릴 때 메밥을 짓는 데 쓰는 노구솥도 정결한 장소에 보관하고요. 메밥을 짓는 쌀은 가장 먼저 떠 놓은 깨끗한 쌀을 사용합니다. 물론 몸을 정갈하게 함은 당연하고요.
이런 상황은 특별히 산이 많은 정선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입니다. 지금도 꽤 많은 분이 산치성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보면 치성드린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돌을 쌓아 놓았거나 예단을 걸쳐 놓은 장면입니다. 예단은 보통 한지로 합니다. 예단은 산신령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깨끗한 종이로 마음을 표현하는 예물이라 보면 됩니다. 믿음은 마음의 표현이라 산에 살면 산신령을 따르게 되지요.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면 산신령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산멕이라는 풍속이 있습니다. 산멕이는 매년 가정마다 특정한 날을 정하고 특정한 나무나 바위를 가려 조상신을 모시는 의식입니다. 일종의 조상들을 제사하는 치성 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상을 먹이는 풍속이지요. 마을에서 지내는 산신제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무서운 기억 호식총과 함정>
정선지역에는 호환에 간 이야기가 많습니다. 깊은 산중이라 호랑이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산치성을 드리는 이유 중 하나가 호환을 면하고자 함이었지요. 임계면 문래리 하동 범바위산에는 호환에 간 사람을 묻었던 호식총(虎食塚)이 있고, 호랑이를 잡으려고 파놓은 함정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그때는 하루에 몇 번씩 나뭇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렸습니다. 유일하게 땔감이 나무였고, 소꼴을 베야 했거든요. 산에 가면 소가 잘 먹는 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산 저산 가까운 산은 모두 갔습니다. 그런데 범바위산 위 능선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풀이 듬성듬성 난 아래에 시루가 있고, 그 아래 돌무더기가 보였습니다. 갑자기 호기심이 나서 자세히 보고자 지게 작대기로 가리고 있는 풀을 헤쳤습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된 듯 녹이 슨 가락(쇠 꼬챙이)이 시루 구멍에 꽂혀 있고, 색이 약간 바랜 시루가 거꾸로 덮여 있고, 그 아래는 허리께 정도 올 높이의 돌무더기가 있었습니다. 순간 몸에 전율이 흘렀고, 더 파헤치지 않고 작대기를 당겼습니다. 그리고 급히 그 장소를 벗어났지요. 나무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그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나뭇지게를 지고 능선을 따라 걷지 않고 빨리 집으로 오고자 산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워낙 나무를 많이 하던 시절이라 어지간한 산에는 나뭇지게를 지고 큰 나무를 피하며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산을 어느 정도 다 내려왔다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웬 움푹 파인 웅덩이가 보였습니다. 또 호기심이 발동했지요. 그래서 나뭇지게를 내려놓고 주변을 살폈습니다. 웅덩이 둘레는 돌로 잘 쌓았고, 주변은 약간 평평하며, 웅덩이 안에는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낙엽이 있는데도 깊이는 약 2m가 넘어 보였지요. 아까처럼 뭔가 또 전율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얼른 나뭇지게를 지고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집에 와서 할아버지에게 그날 본 사실을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는 의연하게 말씀했습니다.
“다시는 거기 가지 말아라.”
그러시고는 호랑이 잡으려고 파놓은 함정이며,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은 사람을 장사한 호식총임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그 함정에서 호랑이를 잡았는지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범바위산 잔등에 있는 호식총 얘기는 했습니다. 호랑이가 먹다가 남긴 호식자의 머리를 화장하여 놓고, 돌을 쌓고, 시루를 엎어 얹고, 가락을 꽂는 이유는 창귀(倀鬼)라는 귀신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양법[양밥]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으면 창귀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호랑이가 잡아먹게 이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고, 머리는 혓바닥으로 빗어서 세워 놓는답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몸이 오싹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범바위산 아래 계곡에서 주로 치성을 올렸습니다. 호랑이는 산신령을 태우고 다니는 신령한 동물로 인식했거든요. 그래서 산신령이 그곳에 좌정해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산과 도랑이 갖는 생생력>
정선사람들은 산치성을 드릴 때 주로 바위 앞 물이 있는 장소에서 합니다. 샘가나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서 치성을 올린다고 해서 이를 달리 독치성(瀆致誠)이라고도 하지요. 잘 알려지지 않은 용어입니다. 개울 독(瀆)자를 쓰는데요. 산 계곡에서 물이 모여 흐르는 개울가 바위 밑이 치성 장소로는 최고이지요. 치성에 꼭 필요한 정화수를 떠 놓고, 노구메를 지어 올리기 좋기 때문입니다. 대개는 산치성이란 말을 씁니다.
우리 조상들은 최고의 집터를 일러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했습니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있는 장소이지요. 이는 산과 물에 온갖 생활의 터전이 있어서입니다. 산과 물에는 사람을 살리는 바탕이 주어집니다. 이를 달리 활인산수(活人山水) 또는 생생력(生生力)이라는 용어로 씁니다. 생생력은 좀 어려운 용어 같지만, 쉽게 말해 생명을 살리는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은 정화(淨化) 기능을 갖습니다. 온갖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합니다. 어떤 더러움도 물에 씻으면 깨끗해지니까요. 이런 물의 기능을 우리 정선인들은 익히 알고 있었지요.
그렇게 활인산수와 생생력과 정화기능을 가진 물가에서 산신께 치성을 올리면서 가정의 화목과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절절하게 염원을 했지요. 치성을 드릴 때 옆에 있으면 저절로 동화가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치성자의 마음이 전달됩니다. 왜, 정선사람들이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개울가에서 산치성을 드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