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 20
시원한 여름을 난 정선사람들의 물놀이
<물과 강이 발달한 정선>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이 구절은 정선아라리를 대표하는 가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얼핏 보면 앞뒤 내용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사입니다. 강 건너는 사실과 올동박이 떨어짐은 별개이잖아요. 그러나 올동박을 따서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임 만나야 하는 사정이 상징으로 잘 담겨 있습니다. 강과 사랑이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강이 갈라놓은 연인의 인연을 잇는 매체가 물을 건너는 배입니다.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곱게 단장하고 임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알 수 있지요.
“조양강물은 돌고 돌아서 한강수로 가는데, 이내 몸은 돌고 돌아서 어데로 가나.”
이 구절도 인생 굽이를 강에 빗대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유수(流水)와 같다는 말처럼 자기의 인생을 흐르는 물에 견주어 표현해 봤습니다. 한강수는 여기서 큰 도시인 대처가 되겠지요. 조양강은 그렇게 대처로 나가 꿈을 이루는데, 자신은 돌고 돌아서 정선 고을에 그대로 있는 신세타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정선아라리에는 강이 자주 등장합니다. 정선이 살기 좋은 고장인 이유가 강과 산이 잘 발달해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최고의 집터를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합니다. 산을 등지고 물을 앞세운 집터가 양택풍수(陽宅風水, 집터)로는 최고이지요. 정선의 강은 조양강, 동강, 골지천, 임계천, 오대천, 송천, 지장천, 어천 등이 남한강의 최상류를 이루고 있지요. 이런 강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정선지역 어디로 가도 항상 집 가까이 위치합니다. 강을 노래하고 그 강에 사연을 담아낸 이유입니다.
정선의 강에는 사계절 참 많은 추억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추억은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지낸 추억이 으뜸일 겁니다.
<밤 목욕에 얽힌 사연>
신윤복의 풍속화에 보면 단옷날 여인들이 개울가에서 상의를 드러낸 채 목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을 숨어서 훔쳐보는 두 남자가 있고요. 한 여인은 그네를 타지요. 이 그림을 <단오풍정(端午風情)>이라 합니다. 단오풍정은 단옷날 풍치가 있는 정회라는 뜻인데요. 풍속화로 그려질 정도니, 이런 상황은 일상처럼 있었다고 봅니다.
<단오풍정>과는 다르지만, 여름이면 정선의 이곳저곳에서는 성인 여인들이 밤에 목욕하러 강물로 갔습니다. 마을마다 목욕하는 장소가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는 또 하나의 풍속이었습니다. 사실 성인 여성들이 알몸을 드러내고 한낮에 목욕할 수는 없잖아요. 물론 남성도 마찬가지지만, 여성들에게 제약이 더 있었잖아요. 지금처럼 가정마다 샤워 시설이 있다면 좋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낮에는 논밭에서 일하고 땀이 온몸을 적셨고요. 정말 씻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마당에서 모깃불을 피우고 감자며 옥수수며 호박으로 저녁을 먹은 후 여성들은 강물로 갑니다. 깜깜한 밤입니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보름이 되면 달빛도 밝지요. 그러나 여성들이 목욕하는 장소는 신성 구역처럼 인식하였습니다. 물론 누구도 그렇게 신성 구역이라 정하지는 않았지요. 그러나 남성들이 절대로 침범할 수 없는 구역으로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금남(禁男)의 구역 정도로 생각해서 보호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여성들은 물장구도 치고, 수영도 하고, 때도 밀고, 수다도 떨었습니다.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선녀들의 밤 목욕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된 일과 구속을 벗어난 자유로운 시공이 형성됩니다. 뜨거운 여름 낮에 논밭에서 일하며 흘린 땀을 모두 씻어냈지요. 생각만 해도 낙원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가끔 호기심 많고 엉뚱한 개구쟁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나무꾼과 선녀> 동화에서 선녀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나무꾼이 훔쳐보듯 훔쳐보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여성들의 옷을 들어 장소를 옮겨 놓기도 했지요. 물론 수영을 잘하는 아이만 가능했습니다. 저는 겁이 많아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흐르는 강을 따라 잠수해서 소리 없이 여성들이 목욕하는 장소로 갔고, 갑자기 나타나 놀랍니다. 그러면 여성들은 순간 놀랐다가 곧바로 아이를 잡아 혼내주지요.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난 아이는 또래들이 있는 장소로 와서 무용담을 얘기합니다. 이제는 모두 사라진 정선 강의 밤 풍경 중 하나였지요. 그렇게 옛이야기로만 남았습니다.
<널찍한 바위에 몸을 말리고>
“야, 3단에서 뛰어 봐!”
아이는 뼝대로 기어 올라가서 그들이 정해놓은 다이빙대에서 몸을 날립니다. 하늘을 가르며 공중으로 날아오른 아이는 곧바로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을 연출합니다. 가끔 잘하는 아이는 몸을 돌려 몇 번 회전도 하고, 거꾸로 잠수하기도 하지요. 올림픽 수영 선수들이 하는 다이빙보다 더 아찔합니다. 물이 잔잔히 흐르고 5m이상 되는 소(沼)이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아이들은 손뼉을 치면서 잘한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면 다이빙 한 아이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우쭐했지요. 아이들은 번갈아 가면서 뼝대에 만들어진 자연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렸습니다. 힘이 다 빠지면 그만뒀습니다.
정선의 강가에는 너럭바위가 아니더라도 커다란 바위가 많습니다. 수영하던 아이들은 몸이 추워지면 물속에서 나와 바위에 배를 깔고 엎드립니다. 햇볕에 달궈진 바위에 배를 대고, 등은 따뜻한 햇볕이 내리쪼여 아이들의 몸을 말리지요. 물속에 오래 있어 입술까지 파랗게 변해 추위에 떨던 아이들은 조금 후 온기를 찾습니다. 그러면 또 물속으로 들어가고 몸 말리기를 반복합니다.
놀거리가 마땅하지 않던 시절 강가에서 하루 내내 보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남자아이들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고요. 여자아이들은 팬티만 입었지요. 물 밖으로 나올 때는 손으로 중요한 부분만 가렸습니다. 그 당시는 아이들이 알몸으로 수영하며 노는 사실이 부끄럼이 아니었거든요.
그렇게 물속에서 놀다 보면, 금방 배가 고픕니다. 육지에서 활동할 때보다 더 빨리 배고픔을 느끼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오거나 서리한 감자를 구워 먹습니다. 어떻게 굽냐고요. 삼굿하는 방식으로 감자를 익힙니다. 어른들이 삼베를 할 때 삼을 익히던 장면을 눈여겨본 터라 삼굿 정도는 일도 아닙니다. 강가 모래밭에 자갈을 쌓아 올리고 나무를 주워 불을 땝니다. 돌이 빨갛게 달아오르면 맨 위에 돌을 꼬챙이로 떨어뜨리고, 그 안에 감자를 넣지요. 그리고 얼른 손으로 모래를 퍼서 돌을 덮습니다. 그리고 고무신으로 물을 떠 옵니다. 위에 구멍을 살짝 뚫고, 그 구멍 속으로 떠온 물을 얼른 붓습니다. 그러면 뜨거운 김이 위로 솟구치는데, 재빨리 그 구멍을 모래로 덮습니다. 그러고 한참 물속에서 놀다 보면, 감자가 김을 모락모락 내며 익습니다. 아이들은 검정을 얼굴에 묻혀가며 분이 나는 감자를 먹지요. 비록 배부르지는 않아도 배고픔은 잊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사실 더위를 피하려고 강으로 달려오기도 하지만, 강가에는 아이들이 몰고 온 소가 장바에 매인 채 풀을 뜯습니다. 소를 먹인다는 구실로 물놀이를 종일 하였습니다. 굳이 얘기한다면, 목동(牧童)의 물놀이라 할까요. 물놀이가 끝나고 저녁이 되면 쇠꼴 한 짐씩 베어 지게에 지고, 소고삐를 잡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강에서 놀던 그 시절이 이젠 꿈만 같습니다. 정말 이상향이 따로 없는 광경입니다.
<홍수진 강을 건넌 위험한 행동>
“야, 내기하자. 저 강을 누가 덜 떠내려가고 건너가는 내기야.”
아주 위험한 물놀이였습니다. 여름이면 매일 물에서 수영하고 놀았던 아이들이라 겁이 없었습니다. 절대 따라 하면 안 되는 놀이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요즘 아이들은 누구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정선에서는 매년 두 번 정도 홍수가 났습니다. 장마철과 태풍철이었지요. 그러면 많은 비에 강이 범람해서 인근의 논밭까지 삼키는 일이 다반사였지요. 가끔 돼지가 물에 떠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비가 많이 오면, 어른들은 우비를 쓰고 논에 가서 물꼬를 막고 옵니다. 그리고 가끔 반두를 가지고 강가에서 고기를 뜨기도 하고요. 반두에 고기를 뜰 수 있게 막대를 대어서 삼각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세찬 물줄기를 피해 얕은 강가로 나온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여름에 유일한 단백질 보충 원이었기에 틈만 나면 고기잡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학생 정도 된 아이들이 모험을 가끔 했습니다. 누렇게 물줄기가 강 전체를 휘감고 도는 물 건너기 내기였습니다. 정말 아찔한 모험이었지요. 물의 흐름을 잘 알고 힘도 좋았기에 가능한 물놀이였습니다. 나름 범람한 강을 건너는 데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절대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 말아야 하고, 강의 흐름을 몸으로 타야 하고, 힘을 조절해서 빨리 지치지 않게 하며, 큰 바위나 나무 같은 장애물이 있으면 주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등의 방법이었지요. 그렇게 강을 건너면 약 1~2km정도 떠내려가 반대편 언덕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맨발로 다시 떠내려온 만큼 걸어가서 출발한 장소까지 수영해서 물을 건너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합니다. 그래도 참 대단한 일은 어린 나이에 물을 타는 방법을 강구했다는 사실입니다.
정선에서 여름은 물놀이와 함께 보냈습니다. 참깨(오얏)를 물에 던져 건져 올리는 놀이도 했고요. 물 바닥에 하얀 돌을 던지고 먼저 찾는 놀이 등 참 많은 물놀이가 있었습니다. 2025년 여름은 무척 덥습니다. 모두 지혜롭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