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21- 고기잡이
고기잡이에 녹아 있는 정선사람들의 삶과 예술적 재능
<천렵, 이웃 공동체와 함께하는 삶의 휴식>
정선사람들은 아침에 눈 뜨면 산이 보이고, 마당을 나서면 강이 보입니다. 비탈밭에 올라도 도랑을 건너야 갈 수 있고, 삼굿을 해도 강에서 삼 껍질을 벗겨야 했습니다. 정선사람들은 하루도 강을 보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강가에 집을 짓지 않아도 강은 늘 가까이 있지요. 물긷고, 빨래하고, 목욕하는 장면은 일상입니다. 그중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강을 대했던 일은 고기잡이였습니다.
집에서 멀리 강을 내려다보면 언제나 고기 잡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쁜 농사일 중에도 그랬고, 한겨울에도 고기 잡는 사람들이 보였지요. 정말 틈만 나면 정선사람들은 강으로 나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어쩌면 유일한 단백질 보충 근원이 물고기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물론 토끼, 개구리도 많이 잡았지만, 물고기가 가장 보편적인 육식이었다고 봅니다. 그래도 강냉이 보리밥에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일 수 있다면 행복했지요.
“천렵 많이 댕겼지. 여기는 여 서댕골이라는데 있어. 거개 가 고기 잡아 가지고. 거 인제 반두 가지고. 거기서 술 먹고 매운탕 끓여 먹고. 많이 그랬지.”
사북읍 직전리에 사시는 고석윤(남, 1947년생) 씨가 2017년 7월 12일에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정선 세시풍속에 실렸습니다. 매운탕도 끓였지만, 주로 어죽 또는 원반죽이라는 음식을 해서 나눠 먹었습니다. 원반죽은 냄비나 솥에다가 장을 풀어 간을 맞추고, 물고기는 밀가루를 묻혀 넣고, 쌀을 조금 넣어서 끓인 음식입니다. 한 그릇씩 먹고 나면 정말 배부르고 좋았지요. 맛도 일품입니다. 물고기에 밀가루를 묻혀 끓이면 물고기 뼈가 부드러워졌어요.
천렵은 정선사람들에게는 일상이었습니다. 호미씻이 할 때도 천렵해서 놀았고요. 복날에도 천렵해서 더위를 식혔지요. 친구들 몇 명 뜻 맞으면 천렵을 했습니다. 이렇게 천렵을 자주 했던 이유는 강에 가면 언제나 원하는 만큼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에 가면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거든요.
옛 신선들의 그림이나 한가하게 노는 모습의 그림에는 언제나 천렵이 있잖아요. 정선사람들도 강에서 물고기 잡아먹으면서 노는 천렵이 가장 많았는데요. 그만큼 물고기도 많지만, 휴식이라는 상징이 강의 이미지와 맞았기 때문입니다. 천렵을 통해 이웃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삶의 휴식은 참 좋았습니다.
<가정에 행복을 가져주는 고기잡이>
어렸을 때 가끔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강에 다녀왔는지 무척 큰 물고기 두어 마리를 주루막에 담아 가져왔습니다. 어떻게 물고기를 잡았는지는 모르는데, 그런 말씀을 하셨지요.
“큰 물고기가 물었는데, 남생이가 줄을 끊어갔어.”
그러면서 아쉬워하였습니다. 얘기를 들으니, 아마도 만낭(땅주낙)을 놓았음이 틀림없습니다. 정선에서는 땅주낙을 만낭이라 했지요. 긴 줄에다가 여러 개의 낚시를 달고 중간중간에 돌을 매달거나 눌러 강바닥에 놓았다가 아침에 건져 고기를 잡는 방법이지요. 그곳에 물고기가 물면 그 물고기를 잡아먹는 남생이나 자라가 가끔 낚싯줄을 끊어 놓았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참 많이 만낭을 놓았습니다. 미끼는 지렁이나 참지르미(참종개)를 썼습니다. 참종개를 침지르미라 했어요. 지렁이를 쓰면 작은 물고기가 많이 물리지만, 참종개를 잡아 미끼로 쓰면 메기, 뱀장어처럼 큰 물고기가 잘 물렸습니다. 저녁에 어둑해지면 쳇바퀴에 돌아가면서 감아놓은 만낭줄을 꺼내고 미끼를 낚시에 꿰어 강가로 가서 펼쳐 놓습니다. 그리고 어디 놓았는지 돌을 꺼내 바위 위에 올려 표시를 합니다. 그러고 깜깜해지기 전에 얼른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날 밤잠을 자면서 기대가 큽니다. 내일 아침에는 어떤 고기가 물렸을까. 아주 커다란 메기나 뱀장어가 물렸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 밤을 지나고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빨리 물고기를 건져 손질 후 가져와야 어머니가 국을 끓여 주거든요. 그런 희망과 달리 대개 빠가사리, 텡수, 메기, 모래무지 등 잔 물고기 약 20마리 정도가 전부이지요. 그런데 가끔은 정말 그렇게 바라던 뱀장어도 물립니다. 뱀장어는 온통 만낭줄을 감고 휘돌아 빼기가 힘들지요. 그날은 정말 신이 납니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는 강가에서 손질하고 버드나무 뀅기[꿰미]에 끼워 부리나케 집으로 달립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잡은 고기를 아침밥을 준비하시는 어머니께 드리지요. 고깃국이 아침 밥상에 오릅니다. 가족들이 내가 잡은 물고기로 밥을 먹는다는 사실에 마음 뿌듯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삼촌도 고기잡이의 달인이었습니다. 긴 대낚시 하나 들고 쳇바퀴 하나 허리에 차면 준비는 끝입니다. 물이 무릎쯤 잠기는 여울에 서서 대낚시를 놓았다 들기를 하면, 잠깐 사이에 개리[갈겨니]가 쳇바퀴에 가득했습니다. 물론 이 고기는 술안주로 고추장에 찍어 회로 먹거나, 가족들의 밥상에 올려졌습니다. 가끔 저녁에 그물을 쳤다가 아침에 건져오기도 했고요. 이처럼 정선에서는 가족공동체 유지에 물고기잡이가 한몫하였습니다.
<고기잡이 방법에 담긴 현장 적응력>
여울에서 두 손을 모아 강 복판을 향해 물을 열심히 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나 마나 보쌈을 놓았을 겁니다. 보쌈은 요즘 어항이나 통발처럼 고기를 잡는 방식인데요. 국그릇에다 보자기를 씌워 구멍을 뚫고 물속에 담가놓는 방식입니다. 그 속에는 된장이나 송장 꼬네기[미끼]를 잡아 찍어 넣습니다. 송장꼬네기는 잠자리 유충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두었다가 건지면 보쌈 속에는 쉬리가 가득 들었지요.
바위 낚시도 재밌습니다. 정선은 대나무가 흔하지 않아 귀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긴 대를 가져와 파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대나무는 낚싯대로 많이 쓰였지요. 그러나 대나무를 사 오기가 번거롭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은 강 주변에 있는 나무를 꺾어서 낚싯대로 만듭니다. 약 1m나 조금 더 긴 길이로 합니다. 그 끝에다가 낚시 하나를 달고 미끼를 끼워 바위 앞에다 대든가, 바위 아래에 난 구멍에 찔러 넣습니다. 그러면 그 바위 속에 있던 물고기가 물지요.
보쌈이나 낚시가 혼자 고기를 잡는 방법이라면 셋 이상이 모여야 고기를 잡는 방법도 있습니다. 밤고기 뜨기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이를 ‘밤고기 쏜다’라고도 했는데요. 밤이면 고기의 활동이 느릿합니다. 고기도 잠을 자는가 봅니다. 그러면 관솔로 횃불을 만들어 들고 물속을 비추면 고기를 발견할 수 있지요. 그러면 반두나 작살로 고기를 잡습니다. 어렸을 때 물에서 첨벙이고 넘어지면서 어른들을 따라다녔던 추억이 뚜렷합니다.
아무래도 가장 많이 한 고기잡이는 반두질이었습니다. 반두질은 혼자도 할 수 있고, 세 명이면 더 좋지요. 혼자 할 때는 허리에 다래끼를 차고 작은 바위를 흔들어서 잡았고요. 세 명 이상이면 지렛대를 사용합니다. 그러면 큰 바위를 흔들어서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샵 놓기[살쿠 놓기], 그물 놓기, 약 풀기, 꽝 터트리기, 얼음 꽝 놓기 등 참 많은 고기잡이 방법이 있었습니다.
<물고기에 빗댄 최고의 예술작품>
정선사람들은 감성과 감정과 사유의 힘을 진정 노랫말로 잘 풀어냅니다. 정선의 물이 좋아 그럴까요. 아니면 정선의 자연과 어울릴 줄 아는 마음씨 때문일까요. 산이든 물이든 나물이든 인생살이와 버무려 내는 데는 도가 텄지요. 일상으로 고기를 잡는 현상을 사랑으로 치환하는데도 선수였습니다.
“고기 잘 무는 납닥 꼬네기는 납닥돌 밑에 살고, 처녀 잘 무는 꼬네기는 내게도 있네”
“강바닥에 물고기는 꼬리를 툭툭 치는데, 장광에 큰애기는 바가지장단만 친다네”
정선아리랑 가사 사전에 전하는 사연입니다. 고기 잡는 낚시 미끼에 빗대어 처녀와 총각의 만남을 나타냈고요. 애정 표현을 아무리 해도 꼼짝하지 않는 큰애기[처녀]를 물고기가 꼬리 치는 장면과 바가지장단을 대조해서 표현했습니다. 어쩌면 참 단순한 표현 같지만, 그 표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꼬네기[미끼]를 ‘꼬드긴다’라는 유사언어로 바꾸어 노랫말로 나타내 자기의 마음을 표현했고요. 물고기 꼬리 치기를 바가지장단 치는 장면으로 재치 있게 바꾸어 나타냈습니다. 아무리 다가가도 못 본 척, 안 그런 척하는 처녀의 심정을 정말 잘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총각이 가진 심정과 행동도 아주 적확하게 드러냈습니다.
이 표현을 보면, 정선사람들은 모두 시인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두 줄에 담아낸 정선사람들의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훌륭하고 멋진 표현이 나온 배경은 정선사람들이 자연과 얼마나 잘 동화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정선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고기잡이 관련 상황도 잘 녹아 있습니다. 정선아라리에 고기잡이 상황을 담아 최고의 예술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