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통신2025. 가을호
신나고 풍요로운 가을걷이와 놀이문화
<가을 마당질 현장>
“에 호~ 에 호~ 에 해 태치기야.”
“에 호~ 에 호~ 에 해 마댕이야.”
이 소리는 평창군 봉평면 봉평도리깨질소리보존회에서 이영돈(70세, 2023년) 씨가 <도리깨질소리>를 할 때 불렀던 후렴구입니다. 메밀단을 밧줄에 감아서 탯돌에 내리치면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도리깨로 메밀 이삭을 내리치면서 불렀지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인해 아주 잘 알려진 마을의 소리이지요.
“에허어라 당쇠, 에루허라 당쇠.”
이 소리는 인제군 인제읍 하추리에서 김군호(59세, 2016년) 씨가 <도리깨질소리>할 때 불렀던 후렴구입니다. 이 소리도 그 유래와 역사가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추리의 도리깨질 소리도 봉평 못지않게 오래된 소리입니다.
어느 지역이 더 낫고 못하다고는 말할 수 없이 분명하게 특징이 있고, 두 지역 모두 잘 부릅니다. 다만, 지역에 따라 위에서 보듯 후렴이 다릅니다. 봉평에서는 주로 메밀을 털 때 소리를 했고요. 인제읍 하추리에서는 메밀을 포함해서 온갖 잡곡을 털 때 도리깨질소리를 했습니다. 이처럼 같은 도리깨질 소리인데도 두 지역은 소리의 사설도 곡조도 모두 다릅니다.
어찌 되었든 1960~80년대에 강원도 농촌에서는 참 많이 보던 타작 장면입니다. 농사꾼에게 있어서는 마댕이[탈곡] 현장이 가장 신나는 날입니다. 마당질할 때는 하다못해 삽살개까지 덩달아 신이 나서 마당 가에서 뛰놀았지요. 몸에 까끄라기가 닿아 껄끄러운 일 정도는 정말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마당질이 끝나고 옷을 벗어 털고 냇가에서 목욕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온 식구가 매달려서 마댕이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마당가에 쌓여있는 메밀, 콩 등의 단을 나르고요. 어른들은 태질하고, 도리깨질도 했지요. 아이들도 어른들 따라 서툰 도리깨질을 하다가 장치를 잡은 손등을 도리깨 치마가 후려쳐서 눈물을 찔끔 짜내기도 했습니다. 마댕이가 끝나면 푹신한 짚북데기에 몸을 눕혀 노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었지요. 정말 푹신하고 좋았습니다.
마댕이가 있는 날이면, 음식도 훌륭합니다. 양푼이에 한가득 보리밥과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버무린 비빔밥이 나오는데요. 고소한 들기름이 듬뿍 뿌려졌습니다. 물론 화롯불에 놀놀하게 구운 간고등어 한 손은 당연히 올랐지요. 새참으로는 금방 눌린 막국수가 사발에 가득 담겼고요. 지금 생각해도 밥맛 좋았습니다. 그 음식에는 배불리 먹고 고된 일을 잘하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탈곡이라는 풍요로운 사실에 큰 의미를 두었다고 봅니다. 어른들은 중간에 수염이 젖도록 입을 대고 마시는 옥수수 막걸리 한 잔은 거르지 않았습니다. 손등으로 수염을 닦고 열무김치 한 조각을 손으로 집어 안주를 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 마댕이 현장은 정말 넉넉한 하루였습니다. 봄 여름을 잘 나고 가을에 맞이하는 풍요의 장면이었습니다. 당연히 웃음꽃이 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당 가득 널린 탈곡한 곡식으로 식구들 겨울을 배부르게 날 생각에 흡족했지요. 그래서일까요. 도리깨를 내리치는 어깨에는 더 힘이 들어갔습니다.
<놀이문화로 승화>
“아휴. 제가 어렸을 때도 기억나는데요. 뭐 그 집에서 농사일 다 끝나고, 일찍 끝나면 거기서 술판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춤추고 노시고요.”
봉평면에서 소리를 하는 김학철 씨(83세)의 딸 김영숙 씨(61세)의 증언입니다. 2023년 6월 21일에 채록한 내용입니다. 김학철 씨는 원래도 소리를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지만 일에도 참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일이 끝나면 그렇게 술판을 벌이면서 소리하고 춤추며 고된 농사일의 뒤풀이를 했지요. 고됨을 바로 풀어버리는 참 지혜로운 분이었습니다. 메밀 풍속을 채록하는 과정에서도 김학철 씨는 흥이 넘쳤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소리와 춤으로 흥을 풀어냈기에 12남매를 모두 잘 키워냈는지 모릅니다. 일 끝내고 벌어진 술판이야, 산골에서는 어둠이 짙어지니까 금방 끝나고요. 모두 일찍 집으로 돌아가지요. 이런 놀이는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잠시 피곤함을 푸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장구 두드리며 노는 문화는 봉평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놀이를 좋아하는 한민족이라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문화였습니다.
봉평에서는 이 전통이 이어져서 매년 9월 효석문화제가 열리는 때면 시장 옆에 있는 공연장에서 힘차게 공연하고요. 강원도민속예술축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전국대회에도 나갔습니다. 구성원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현재 봉평의 대표 민속놀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에루화라 당쇠, 우리 실컷 놀고 갑시다. … 여보시오. 박 당쇠님, 소리로 놀아 봅시다.”
이 소리는 필자가 2016년 김군호(59세) 씨로부터 하추리 축제장에서 채록한 사설입니다. 김군호 소리꾼은 그 유래까지 구술했는데요. 하추리 사람들에 있는 기록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조선조 때 인제군 하추리에 박 씨 부부가 살았습니다. 그의 아들이 석이버섯을 따다가 절벽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 후 노쇠한 박 씨 부부의 농사일을 도와 동네 청년들이 매년 추수 때가 되면 곡식을 져 날라주었습니다. 이를 울력이라 하지요. 짐을 져와서는 도리깨로 탈곡까지 해 주었습니다. 그때 동네에서 소리를 잘하는 청년도 끼어 있었는데요. 청년은 도리깨로 콩을 털면서 사설을 넣었습니다.
“이 마당은 콩마당이요. 에루화라 당쇠. 콩마당을 때려가지고 에루화라 당쇠~~.”
울력이 끝나면 동네 아낙들은 미리 음식을 준비해 두었다가 청년들에게 주었습니다. 참 따뜻한 풍속인데요. 이후 하추리에는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도와주는 울력의 전통이 이어졌고요. 이때 부른 소리인 <도리깨질소리>가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매년 가을이면 하추리의 축제 때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도리깨질 소리> 공연을 이어갑니다. 가끔 자매결연을 한 서울까지 가서 공연하기도 하고요. 강원도민속경연대회에도 출품했습니다.
<신께 감사함을 축제로 승화>
“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주야로 술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니, 이를 무천(舞天)이라 한다.”(후한서 <예(濊)>)
옛 예(濊)나라에서 추수가 끝난 후 추수 감사 축제를 열면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던 풍속인 무천 내용입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내용인데요.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가을걷이가 끝나면 먼저 하늘이나 서낭신 또는 조상신께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해 처음 강냉이를 쪄도 제일 먼저 마을 제당에 올리고, 가신(家神)인 성주신이나 조왕신께 올렸다가 내려서 먹었습니다. 농사가 풍년이 드는 원인을 신의 은총으로 알았던 참 멋진 마음입니다. 자신이 잘해서 풍년이 들었다는 자만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즐겁게 하려고 난장(亂場)을 벌였지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 사연입니다. 그런 축제의 현장을 기록한 내용이 역사로 전하고 있습니다.
평창군 봉평면과 인제군 하추리에서 전승하는 <도리깨질 소리>도 어쩌면 옛날 우리 조상들이 추수 후에 하늘에 제사하고, 놀던 유습이라 생각합니다. 모두 가을걷이에 하는 놀이이고요. 하추리에서는 매년 가을 마을 축제를 열고요. 봉평에서는 효석문화제의 일정으로 공연을 합니다.
전통이 서린 우리의 가을걷이 축제는 마을마다 행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