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 24
화주일춘: 스스로 부처가 된 정선 사람들
<설화는 정선 고을 최고의 자원>
민속학자는 설화가 많으면 최고로 풍요로운 고장이라고 합니다. 설화는 이야기잖아요. 이야기가 많음은 그만큼 사람 살아가는 맛이 있음을 뜻합니다. 정선 고을에는 어느 동네보다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이야기 가운데 이번에는 의상대사가 정암사와 같은 시대에 창건했다는 관음사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설화는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옮기기도 하지만, 상징과 비유를 넣어서 골계미, 숭고미, 비장미, 우아미 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설화는 작가가 바라는 대로 꾸미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교훈도 주고, 재미도 줍니다.
“어르신께서 옛이야기를 잘하신다고요?”
“허, 조금 알고 있기는 하지.”
여름 더위가 한창일 때였습니다. 봉양리에는 몇몇 노인들이 더위를 피해 조양강가 그늘에 앉아 있었지요. 여기서 정선 토박이 전 씨 노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조양강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나요?”
“옛날 저기 봉양6리 관음동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아, 그곳이 어디인가요?”
“지금은 없어졌는데, 옛날 그곳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어. 화주일춘(化主一春)이라고. 거 관음동 관음벼루 있는데. 길 닦으면서 글씨가 떨어져 나갔어. 지금은 정선군에서 관음대와 화주일춘 안내문을 돌에 새겨 놓았더라고.”
노인은 정확히 관음사(觀音寺)에 관한 위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관음사는 비봉산 구릉의 소금강 뒤에 있었지요. 이 절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도 기록돼 있고, 『정선총쇄록』(1897)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선총쇄록』에는 “의상대사의 홍패는 아주 옛날에 있었던 일이고 1백 길의 절벽에 깎아 세운 듯 하늘과 가지런하며 그 위에는 유지(遺址)가 있는데, 세속에서 절터라고 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때는 벌써 관음사가 폐사되었지요.
그런데 1940년에 출간된 『강원도지』에는 다음처럼 그 사연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정선면 비봉산(飛鳳山)에 있다. 신라의 중 의상(義相)이 살던 곳이다. 절 앞에는 강을 끼고 도는 돌길이 개 어금니처럼 엇갈려서 사람이 통행할 수 없었는데, 고을 사람들이 돌을 쌓아서 길을 만들어 겨우 사람과 말이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급한 일이 있더라도 고삐를 놓고 가지 못한다. 이름하여 관음천(觀音遷)이라고 한다.”
아마도 다시 절을 지어 누가 살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절보다는 가파른 길을 주민들이 뚫은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주제가 절에서 주민들 이야기로 바뀌었지요. 그래서일까요. 기록에서는 관음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관음천은 관음(觀音)과 천(遷)의 합성어인데요. 관음은 관음보살의 준말이고, 천은 옮길 천(遷)자가 되지요. 이에 얽힌 뜻은 여럿 있을 수 있는데요. 그 가운데 ‘관음보살의 가피로 길을 옮겼다.’라는 뜻이 저는 맞게 느껴집니다.
<스스로 부처임을 깨닫게 하다>
일춘대사(一春大師)는 어떤 사람인지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선에서 채록한 설화에는 <화주일춘>, <관음대와 일춘대사>처럼 『정선군지』와 『정선의 구비문학』 등에 전합니다. 이야기는 큰 흐름은 같으나 약간씩 다릅니다. 그러나 설화에서는 모두가 주인공 일춘대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선군지』에 실린 이야기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옛날에 관음사에 일춘대사가 살았습니다. 그는 관음사 앞 강물이 넘쳐 주민들이 불편을 겪자 시주를 받아서 다리를 놓고자 했습니다. 뜻이 참 좋았지요. 그런데 갑자기 한 아리따운 여인이 나타났고, 순간 참지 못하고 그 여인과 정을 통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리 놓을 비용을 모두 탕진했지요. 그때였어요. 하늘에서 날벼락이 치면서 일춘대사는 큰 이무기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무기로 변한 일춘대사는 자신의 마음을 말하려고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무기를 본 사람들은 길을 피해 갔습니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 네 명이 이곳 주막에서 잠을 청했지요. 그 가운데 한 선비의 꿈에 일춘대사가 나타나서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화주일춘’ 넉 자를 새겨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일춘대사도 불문의 죄를 면하고, 선비는 과거에 급제한다고 했지요. 잠을 깬 선비는 꿈 이야기를 했고, 네 명의 선비는 각자 한 글자씩 벼랑에 새겼습니다. 정말 더 이무기는 나타나지 않았고, 네 명의 선비는 모두 과거급제 했다고 했습니다. 그 후 관음사 앞에는 이무기가 사라지고 길이 트여 주민들은 다닐 수 있었다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이야기 재미있지요. 그러나 뭔가 궁금한 점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선의 구비문학』에서는 일춘대사가 물욕에 눈이 멀어 시주받은 돈을 탕진했으며, 이무기가 아닌 구렁이로 변했다고 했습니다. 구렁이든 이무기든 비슷하지만, 과연 도를 통한 대사가 가까이한 여인(女人)은 누구였으며, 왜 일춘은 자신이 화주임을 사람들에게 말하려 그렇게 애썼을까요. 그리고 유학자인 선비들이 일춘의 한을 풀었으며, 모두 과거에 급제했을까요. 이야기는 정말 궁금투성입니다. 이래서 옛이야기는 신비롭고 더 재미있는지 모르지요.
이야기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단어는 화주(化主)입니다. 화주는 통상 부처 자체를 나타내기도 하고, 시주를 많이 바치는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일춘대사는 도통한 부처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그럼 여인은 누구일까요. 정말 일춘대사를 파계하려고 나타난 세속의 여인일까요. 아니면 관음보살의 화신일까요. 문제는 어디든 일춘대사가 다리 놓으려고 받은 시주를 모두 썼다는 사실입니다.
이 의문은 앞서 본 『강원도지』에서 언급한 사실로 연결됩니다. 곧 마을 사람들이 돌을 놓아서 절 앞의 길을 뚫어 사람과 말이 다닐 수 있게 하였고, 그곳 지명을 관음천으로 했다고 했어요. 여기서 관음천은 ‘관음보살의 가피로 길을 옮기다.’라는 뜻으로 봤습니다. 불교에서는 세상의 물상 모두 부처 아닌 게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설화에서 등장한 여인의 실체가 풀립니다. 여인은 곧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지요. ‘관음천’이란 말이 나옵니다. 관음보살은 여인으로 변해 일춘대사가 시주를 걷어 직접 다리 놓는 일을 막았습니다. 관음보살은 주민 스스로 자기의 일을 해결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보기에는 관음보살이 여인으로 보였고, 일춘대사가 여인과 눈이 맞아 시주한 다리 건설 비용을 탕진했다고 봤습니다. 그런 현장을 본 주민들은 일춘대사를 구렁이 또는 이무기처럼 보았을 겁니다. 한번 잘 못 본 일춘대사의 일탈로 인해 주민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요.
일춘대사는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나타났으나 모두 일춘대사를 피해 다녔습니다. 일춘대사는 간절하게 자신의 억울한 누명을 벗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 꿈에 나타났고, 선비들이 화주 곧 부처라고 인정하면서 일춘대사의 억울함도 풀리고, 또 선비들도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방탕한 스님은 못 믿어도 참신한 선비들이 “일춘은 부처다.”라고 한 말은 믿었습니다. 이미 부처인 일춘대사는 자신을 도와준 선비들에게 과거급제로 보답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설화가 가진 상징체계가 참 복잡하게 느껴지지요. 그러나 알고 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정선 사람 모두 깨우침을 얻어 도인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