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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성 요한-영혼의 네 가지 어두운 밤

작성자Frank|작성시간15.01.28|조회수2,478 목록 댓글 0

 

 

                                          십자가의 성 요한

 

사노라 내 안에 아니 살며

 

                                - 번역 / 최민순 신부

 

사노라 내 안에 아니 살며,

애틋이 바라는 마음,

아니 죽어져 죽겠노라.

 

이미 나 안에 아니 사는 나,

님 없이는 살지 못하겠노라;

나없이, 그이 없이 있는 것이라면,

산다는 이것이 무엇이겠느냐:

즈믄의 죽음이나 다름 없나니

실상 내 삶을 바라는 탓이로다,

아니 죽어져 죽겠으면서도.

 

내가 사는 이 삶이란,

차라리 삶을 앗음이어니,

그대와 같이 살기까진,

그러기 끊임없는 죽음입니다;

님이어, 이 말씀 들으옵소서

이런 삶이 싫사오니,

아니 죽어져 죽겠음을.

 

그대 없이 있으면서!

내 어이 살 수 있으리까,

죽음 중에도 큰 죽음을

치르는 것이 아니 오리까!

가여울손 이 내 신세

매양 같은 꼴이로다,

아니 죽어져 죽겠노라.

 

물을 나온 물고기는

죽는 고생 할지라도!

급기야 죽어지니,

차라리 덜하련만:

애달픈 내 살이에,

어느 죽음을 비길련가,

살수록 더 죽겠음을.

 

성체 안의 님을 뵈오며

마음을 달래려 하다가도,

실카장 누릴 수 없음에

서글픔만 더해 오니;

모든 것이 쓰거울 뿐,

원대로 님을 못 뵘이로다,

아니 죽어져 죽으리로다.

그대 뵈올 바람으로;

님하, 이 마음 즐거워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곱으로 아리옵니다.

살면서도 무서워 떨고,

바랄대로 또 바라자니

아니 죽어져 죽겠소이다.

 

저 죽음에서 날 건지시고

님하, 생명을 내게 주소서

억세고 질긴 이 오라에,

묶인 채 나를 두지 마옵소서:

보고지워 못 살겠음을;

너무나 알찬 내 시름이니이다,

아니 죽어져 죽겠사옴을.

 

이제금 죽음을 울으리다

내 죄 때문에,

이렇듯 잡혀있는,

내 삶을 통곡하리까?

아, 내 하느님이어, 언제이리이까,

다시는 아니 죽고 내가 산다고,

진정 말할 수 있을 그 때가.

 

 

십자가의 성 요한-영혼의 네 가지 어두운 밤

영혼의 4 가지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

16세기 스페인의 신비가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저 유명한 “영혼의 네 가지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 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밤(감각의 능동적인 밤): 크리스천이 자신의 죄된 생활을 회개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경건하게 살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찬양+기도+말씀+영적 독서+신앙 수련에 힘씀으로 영적 만족과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시기입니다.

두 번째 밤(감각의 수동적인 밤): 앞에 말한 그러한 신앙 수련에서 더 이상 아무런 느낌을 받을 수 없는 시기이며 오히려 메마름+영적 퇴보에 대한 두려움+기도도 되지 않는 답답한 심적 상태를 특징으로 합니다. 그러나 각자의 능동적 신앙 행동이 희미해짐으로 얼핏 메마르다고 느낄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이 때야말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은총에 의하여 그 영혼이 정화되는 시기입니다.

세 번째 밤(영혼의 능동적인 밤): 마음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영적 기쁨+만족+평화의 충만감 여부와 상관없이(,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이고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찬송가 344)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현존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시기입니다. 이 단계의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현존은 자기의 주관적 느낌이나 이성을 초월한다는 것을 感知(감지)하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 밤(영혼의 어두운 밤): 이 단계에서 에고(거짓 자아=몸 나=반사적 의식)가 소멸하고 보다 깊고 미세한 영혼의 정화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면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함께 각 사람의 내면에 있는 공허--비존재-어두움을 직면하는 시기입니다. 이 네 번째 밤을 지나 크리스천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참된 일치를 경험합니다.


 

 

The way Teresa teaches a person to pray is to tell them to "open themselves to the friendship of Jesus as the most beautiful thing in the world." cf. Maximiliano Herraiz Garcia, ocd
"St. Teresa's essential message in the book of her Life and in the Interior Castle is about relationship. You will find in her writings no exhortation to take on this practice or that, say this prayer or the other. Her whole spirituality consists in the relationship that exists between God and the person, and the expression‎ of this is left to the creativity of the Nuns. Her one exhortation is to be alone with Him alone." cf. Maximilliano Herraiz Garcia, ocd
Between Teresa and John of the Cross, our two founders, there was an ebb and flow in the relationship of teacher and disciple. It is by their charism and example that they light the fire within us to follow Jesus our living Gospel, our "Living Book" in today's world.
Teresa says of Fray Juan: "He is indeed the father of my soul, and one of those to whom it does me most good to converse."
In his being, living, speaking and writing, John displays a luminous and persuasive charism. Coming in contact with him, we do not feel a distance. He is present, he lives here and now; it seems we hear him speak and sing..." i.e. GOD SPEAKS IN THE NIGHT It is somehow through prayer that we hear the call of Jesus to come follow Him...

 

십자가의 성 요한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사랑에 빠졌던 사람, 한평생 줄곧

성령이신 사랑의 불로 불붙어 끊임없이 타오르는 통나무처럼 살았던 사람,

하느님 안에서 삼라만상을 사랑한 사람." 요한은 1542년 스페인의 폰티베로스에서

유력한 가문 출신의 출신의 부친 곤잘로 예페스와 직조공으로 신앙심 깊은

유태계 출신의 고아 카타리나 알바레즈 사이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 폰티베로스의 현재의 모습 >

 

그들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기에 극도로 빈궁한 처지에서 자녀들을 양육해야 했으므로 요한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몫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그의 마음 안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랑들이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일하고 있던 '라 부바 병원'의 원목이라는 안정된 직책을 제안 받았으나 자시의 자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요한은 1563년 가르멜(O.C)에 입회하여 4년 후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때 요한은 깊은 관상에 대한 갈망으로 수도회를 바꾸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가르멜 여자 수도회를 개혁한 예수의 데레사 성녀를 만나게 되었다.

성녀는 요한 수사를 즉시 꿰뚫어보고 당신 개혁 사업의 협력자로 택하여 그 이듬
1568년 11월 28일 두루엘로에 개혁 가르멜 남자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데레사 성녀가 영혼을 지도하기 위해 천부적 직관으로 쓴 책들을 성 요한은
견고한 신학으로 뒷받침하고 종합하여 가르멜 영성을 체계화하였다.
 
Todo Nada
십자가의 성 요한 영성을 한마디로 하자면 '아름다우신 하느님(Todo)을 얻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온갖 피조물에서 이탈하는 (Nada)것' 이것이다. 모든 것이신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해 모든 것에서 이탈해야 한다는 단호한 비타협성을 우리는 흔히 오해하기 쉽다. 빛에 이르기 위해 영혼은 어둔밤을 거쳐야 하는데,이 어둔 밤은 가장 활동적인 밤으로 온갖 욕망에서 우리 영혼을 정화해주고 우리의 영적 생명을 원천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아름다우신 하느님(Todo)을 얻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온갖 피조물에 이탈하는 (Nada) 것 '
 
 

 

<십자가 성 요한의 필체>


 

데레사 성녀와 성 요한의 만남

하느님과 일치하기를 갈망하는 이런 영혼의 상태를 성인은 '스페인 서정시인의 주보성인'다운 아름다운 필치로 그려내었다십자가의 성 요한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령을 힘입어 성령 안에서 도달하게 된 거룩함과 완전함의 본보기이다. 또한 성인은 온전히 인간다운 자세로 이 세상에서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았다.

사랑에 근거한 온유함과 동정심이 깃든 그의 성품은 이웃에 대해서는 예민하고 섬세하며 자상한 반면,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한 이탈과 극기 고행으로 대했다. 이런 것이 성인에게 '무의 박사'라는 별명을 갖게 했으나 사실은 오롯한 사랑과, 모든 것에 이르는 절대 조건을 강조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성인은 진실로 '사랑의 박사'이며 그의 삶의 인격을 합당하게 평가하는 데 사랑보다 더 특정적인 것은 없다.

사실상 개혁 가르멜의 영적 지도자였던 요한 성인은 개혁 이전의 가르멜과 개혁파 수도자들 사이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개혁이전의 가르멜 수도자들에 의해 감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고통들은 요한 성인의 영혼 안에 더할 나위 없는 하느님 체험의 진수를 직조하는 기간이 되기도 했다. "이 생명의 저녁, 우리는 사랑으로 심판받으리라." 하고 말한
사랑의 박사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장상이 아닌 위치 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고통 받으며 죽기를" 원했는데, 바로 그가 원하던 대로 이 모든 조건이 채워진 우베다 수도원에서 1591년 12월 13일 49세로 이승에서의 밤을 마쳤다.
  
  
<첫 개혁 가르멜 두루엘로>                                   <두루엘로 전경>  
 
   십자가의 성 요한은
1675년 1월 25일 교황 클레멘스 10세에 의해 시복.
1726년 12월 27일 교황 베네딕도 13세에 의해 시성
1926년 8월 24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고
1952년 3월 21일 스페인 서정시인들의 주보로 선포 되었다.

 
 
모든 것을 맛보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맛보려 하지 말라.   
 
모든 것을 얻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얻으려 하지 말라.
 
모든 것이 되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되려고 하지 말라.
 
모든 것을 알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말라.  
 
맛보지 못한 것에 다다르려면,
맛없는 거기를 거쳐서 가라.
 
모르는 것에 다다르려면,
모르는 거기를 거쳐서 가라.
 
너 있지 않은 것에 다다르려면,
너 있지 않는 데를 거쳐서 가라.
 
아직 다다르지 않은 것에 다다르려면,
도중 아무 것에도 발을 멈추지 말라.
 
               - 십자가의 성 요한 -
 
 
십자가의 성요한 '하느님 사랑의 열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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