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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강론

[복음묵상]주님 수난 성지 주일: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작성자sakicoon|작성시간17.04.11|조회수95 목록 댓글 0

(2017. 4. 9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예루살렘 입성과 백성들의 환호, 정치·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와 고발, 제자들의 배신과 도망,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는 이제 종국으로 치닫습니다. 기적의 예수님 곁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십자가의 예수님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로지 침묵 속에 하느님 한 분만 계실 뿐입니다.

 

사람들을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두고 참 할 말이 많지만 정작 수난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예수님은 거의 말씀이 없으십니다. 오늘 깨나 긴 복음을 읽었지만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대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또 사람들의 감정은 그 기복이 심하지만 예수님의 감정은 한결 같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가 실망하고, 기대했다가 분노했지만 예수님은 늘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측은하게 바라보십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수난 전에 남기신 주요 말씀을 추려 보겠습니다.

너희는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여기까지가 포박 당하시기 전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수난이 시작된 다음부터는 극도로 말씀이 적어지십니다. 왜 자신의 무고함을 해명하시지 않았을까요? 이제 때가 된 것입니다. 주님은 예언된 구세주로서 구원을 말이 아니라 몸으로 완성시키려 하셨습니다. 또 숨지시기 전 하느님께 원망이 아니라 희망을 두고 크게 외친 한 마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시편 22편의 첫 절입니다. 끝까지 읽어 보시면 찬양 시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임종 전 고작 시편 한 대목을 인용하신 말씀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말이 많아지는 순간 인간의 죄는 더 짙어 갔고, 반면 그분의 말씀이 줄어드는 순간 그분의 사랑은 더 커져 갔습니다.

 

철저하게 고뇌하는 인간으로 수난에 임하신 예수님! 끝내 당신의 사랑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시고 죽음을 이기신 그분은 이방 출신의 백인대장으로부터 신앙 고백을 듣습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구나.” 긴 말 필요 없고 이 짧은 신앙 고백 안에 모든 진리가 다 담겨져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이 말씀을 향하여 모든 드라마가 지금까지 전개된 것입니다. 수난 복음의 테마는 십자가의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하느님의 아드님, 즉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목숨을 바꿔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사랑은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조건 없이 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귀한 생명을 주셨듯이 말입니다. 이제 십자가 나무는 구원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우리는 악의에 찬 군중이고 교활한 가야파이며 비겁한 베드로이자 무자비한 본시도 빌라도입니다. 이제 성주간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이 거룩한 연극에서 우리는 어떠한 배역을 맡을까요? 조명은 어둠 속에서 더 밝게 빛나며, 주인공은 고통 속에서 더 열연합니다. 주님과 함께 이제 죽으러 갑시다. 구원의 빛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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