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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강론

[복음묵상]좁은 문

작성자sakicoon|작성시간19.08.26|조회수95 목록 댓글 0

(2019. 8. 25 연중 제21주일)

 

좁은 문

 

한국은 대학 입시 경쟁률도 높지만 졸업 후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랍니다. 올 해 경북 경산시 시청 환경 미화원 공채 경쟁률은 301이었습니다. 8명 채용에 239명 지원, 대졸자 142명으로 역대 최다랍니다. 공채 과정 중에 인상적인 것은 체력 시험입니다. 남자 20kg, 여자 15kg 모래 가마니를 손으로 들거나, 어깨에 메고 50m 달리기로 승부를 가랍니다. 청소부 뽑는데 학력은 물론 체력은 필수 평가항목입니다. 그러나 자존심이고 주변 시선이고 뭐고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으니 시험에 응하는 모든 사람이 진지하고 최선을 다해 달립니다. 취업난이라는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오늘 복음 말씀은 좁은 문 이야기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좁은 문으로 통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신앙인은 대학 입시와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보다 치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중에는 그냥 큰 죄 안 짓고 성당만 안 빠지고 다니면 구원 받는 데 크게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 자비하시니 천국의 문을 넓고 크다고 안일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그러한 우리의 생각을 뒤집으십니다. 그 문은 닫칠 것이고, 우리가 아무리 밖에서 문을 두드려도 외면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문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호소한다고 합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 주인은 불의를 일삼는 자들이라고 호통 치며 쫓아냅니다.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비록 주님과 가까이 지냈지만 주님께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과 친교 식사를 나누고 그분의 가르침을 듣기는 했지만 결정적으로 구원의 자격을 얻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본당신부와 가까이 지내는 교우가 있습니다. 같이 골프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술도 마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좋은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 성화되지 않습니다. 미안한 소리지만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천국 갈 때 제가 힘써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복음 실천에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실천하지 못한다면, 아니 그 말씀을 반대로 살아간다면 어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좁은 문이라는 것은 그만큼 통과가 어렵다는 말이겠지요. 반드시 그 문을 통과할 때는 많은 희생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십자가지지 않는 신앙생활이 어찌 구원을 보장하겠습니까? 애덕이 없는 기도 생활이 어찌 우리를 성화시키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문이 좁으면 뚱뚱한 사람이 통과 하는 데는 애를 먹습니다. 또 좁은 문을 많은 사람이 동시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몸끼리 부딪혀 오도 가도 못하게 문에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몸을 날씬하게 만들어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날렵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평소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항상 밀리게 되고 뒤쳐지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앙생활은 훈련의 연속입니다. 마음만 먹었다고 단 번에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게 아닙니다. 평소 꾸준하게 훈련하고 다듬어야 합니다. 영적인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시련이 닥쳐도 낙심하지 않고 견디어 내고 희망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 인생에 십자가가 없다면 얼마나 쉽고 편하게 신앙 생활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고 무병장수를 꿈꾸는 세인들처럼 얼마나 인생이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구원의 길은 만사형통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무병장수가 아니라 병고 속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히브리서는 우리의 시련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훈육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고 합니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온실 안의 화초는 온실 밖으로 나가면 죽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당장은 가슴이 아프지만 매를 들 때는 들어야 하고, 아이가 먹기 싫다고 떼를 써도 약이 된다면 먹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훈련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를 차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물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연옥에 가지 않고 바로 천국갈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죽은 자의 영혼은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현세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들의 영혼은 복음의 실천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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