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3. 레지오 훈화- 선교의 필요성
찬미예수님!
이번 주에 우리는 전교 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선교에 대한 부분, 선교의 필요성에 대해 한번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선교가 필요한가에 대해 먼저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
바오로는 당시의 종교 사회의 다신 숭배에 저항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유성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즉, 한 분이신 하느님과 그분에게서 파견된 한 분이신 주님께 대한 신앙을 강조하였습니다(1고린 8,5-6 참조).
요한 복음서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성은 그분의 은총과 진리와 계시의 파견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된 빛이다”(요한 1,9). 그뿐 아니라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아버지 품안에 계신 외아들이 친히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요한,18;마태11,27 참조).
하느님의 계시는 독생 성자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충만히 이루어졌습니다(히브1,1-2;요한14,6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시의 결정적 말씀을 통하여 충만하게 당신을 보여 주셨고 당신이 누구이신지 인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확실히 결정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이 계시로 인하여 교회는 본성적으로 선교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교 활동의 필요성은 그리스도께서 가져 오시고 그 제자들이 살아온 생명의 근본적 새로움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이 새로운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합당하도록 그들의 사명을 완수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 전체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교회 안에 사는 신자들의 새로운 생명을 노래하는 찬미가입니다. 교회가 증거하고 선포하는 그리스도 안의 구원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주시는 친교입니다.
왜 선교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경험에 의하여 참된 해방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선교는 신앙의 문제요 그리스도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에 대한 우리 신앙의 확실한 표지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유혹은 그리스도교를 순전한 인간적 지혜 내지 일종의 유쾌한 처세술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완전한 구원, 즉 인간 전체와 모든 인간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는 구원을 가져다주려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교 사명은 주님의 명시적 명령에 의해서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생명의 깊은 요청에서도 오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청준 F.사베리오 신부의 “선교 활동의 필요성” 참조)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