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9. 레지오 훈화- 주바라기 (주님을 바라보기)
찬미예수님!
이번 주에는 ‘주바라기’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인은 누구나 영적 침체를 경험하고 슬럼프에 빠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을 사람이라고 해도 늘 기쁘고 감사한 것만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했던 사건과 상황 앞에서 낙심하고 실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때로는 자신감을 잃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입으로는 하느님을 찬미하지만 마음은 즐겁지 않습니다.
기도하려고 머리를 숙이지만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말씀은 듣지만 온갖 잡념이 나의 생각을 어지럽힙니다.
이런 영적 침체현상이 잠시 왔다가 곧 회복된다면 다행이지만 이 슬럼프가 오래 계속된다면 이는 신앙의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게 이런 경우의 증상은 낙심과 불안입니다.
시편 42편 5절을 보면 시편 작가인 시인 역시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낙심하는가? 어찌하여 이토록 불안해하는가?”하면서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불안과 낙심, 신앙의 슬럼프가 오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바로 하느님과의 교제가 단절될 때 옵니다.
예루살렘 예배 공동체에 속해있던 시인은 날마다 성전에 들어가 하느님을 찬양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즐겨 예배를 드렸던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하느님을 찬양했던 즐거움을 지금은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 슬럼프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또 한편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 옵니다.
시편 42편 3절을 보면 “네 하느님이 어찌 되었느냐?”하며 시인을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은 하느님의 존재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의 뜻은 “네 하느님이 너를 버리신 것이 아니냐?” “하느님이 진정 너를 사랑하신다면 너를 이 고통 가운데 그냥 방치해 두시겠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영적 침체와 슬럼프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께 소망을 가지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그것은 시인이 먼저 열심히 하느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느님, 이 몸은 애타게 당신을 찾습니다.”는 고백처럼, 시인은 위기 속에서도 하느님을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애타게 목말라 하며 하느님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만날 수 없는 처지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사모하며 찾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심정을 목마른 사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더욱더 사슴에게 새끼들이 딸려 있다면 비틀거리며 목말라 애태우는 새끼들을 바라보는 어미 사슴의 목마름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목마른 사슴처럼 하느님을 간절히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하느님의 사랑을 회복할 것이고 영적 침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