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월 꾸리아 훈화- 내어 맡김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여러분! 3월이 왔습니다. 3월에 우리는 사순시기를 보냅니다. 사순시기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게 합니다. 왜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의 길로 가셨을까요? 그분이 십자가의 길로 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 그분은 철저히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였고, 내어 맡겼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주님께 내어맡기는 3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어맡김의 영성을 볼 수 있는 인물은 마태오 사도입니다. 그는 세리였습니다. 당시 세리라고 하면 부정축제와 불의를 일삼는 무리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직업이었습니다. 집권세력인 로마에 빌붙어 부정한 방법으로 세금을 올려 받으며 차액을 챙긴, 가난한 동족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고혈을 짜던 비열한 무리에 들어간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여러 번 세리는 곧 죄인이라는 등식으로 등장하곤 합니다. 하여튼 세리는 대체로 부유했고 마태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시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다면 그만큼 돈에 대한 애착도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부르시니 바로 따라나섭니다. 한순간 그동안 모은 재물과 함께 그의 삶 전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마태오는 어떤 미련도 갖지 않습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부르시는 그분께 앞으로의 삶 모두를 내어 맡깁니다. 내어 맡김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당신을 따르면 내가 무엇을 얻게 되느냐?’는 물음도 ‘언제부터 당신을 따르면 되느냐?’는 질문도 ‘무엇을 가지고 나서야 하느냐, 당신을 따르려면 무엇이 필요하냐?’는 물음도 던지지 않습니다. ‘내어맡김’에는 오직 그분께 대한 온전한 신뢰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눈빛하나로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셨고, 자신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눈빛에서 마태오는 바로 새로운 삶, ‘구원’을 본 것입니다.
제 방에는 사제서품 때 받았던 ‘성직자의 모습’이라는 이름이 적힌 예수님 얼굴상이 있습니다.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의 얼굴상인데 자주 그것을 바라봅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왠지 평화와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매번 내 삶을 다시 그분께 봉헌하고 내어 맡기며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아마 세리 마태오도 그분의 모습에 그분의 눈빛에 새로운 힘과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득 카라바조의 “부르심을 받은 성 마태오”라는 그림이 생각납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이 마태오를 부르시는 모습도 있지만, 마태오 옆에는 다른 이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머리를 탁자에 박고 열심히 돈을 세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도 있고, 그 옆에는 그가 돈을 잘 세고 있는지 안경 너머로 지켜보고 있는 노인도 있는데, 유독 이 두 사람만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가가 무슨 생각으로 이들을 이리 묘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세상일에 너무 바빠 예수님을 바라볼 시간이 없는, 말하자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볼 틈이 없는 젊은이와 노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철없는 젊은이야 철이 들 내일을 희망할 수 있다지만 노인이 되어서도 그렇다면 정말 안 되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순시기를 맞이하여 특별히 자신을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철저히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고 내어 맡겼듯이, 세리 마태오가 예수님께 자신을 몽땅 내어 맡겼듯이 우리 자신도 한번 그분께 내어 맡겨보는 3월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성체 조배도 해보고, 십자가나 그분의 얼굴을 자주 바라보며 삶의 위안과 평화,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어 맡김에는 전적인 신뢰가 있습니다.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도 분명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활의 문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