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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반

탈출기 제4강의: 해방하시는 하느님

작성자sakicoon|작성시간16.09.16|조회수849 목록 댓글 0

4 강의 : 재앙의 의미, 이집트 탈출의 목적, 광야생활의 의미 - 해방하시는 하느님

 

1. 이집트에 내려진 재앙 (1~9번째 재앙)

 

모세가 소명을 받고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떠날 것을 요구하자 파라오는 반대한다. 야훼가 누군데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보내겠느냐?”(5,2)라는 파라오의 말을 통해 지배자의 상징인 파라오는 피지배자 즉 종들의 신인 하느님과 정면충돌을 하게 되는데 파라오는 야훼가 누구인지를 몰랐다는 사실이 크게 부각된다. 이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주제이다. 고대 근동의 종교문헌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는 파라오와 왕실 학자들로서는 야훼의 존재가 그리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신의 이름들 속에는 야훼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라오가 야훼를 몰랐다는 사실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종교제의를 초월하는 분으로서 야훼의 존재가 부각됨으로써 참다운 신, 야훼 하느님으로써 초월적인 분임을 고백하는 계기가 된다. (사도 17,22-31 읽기)

 

참다운 신으로서 야훼 하느님은 약자를 억압하는 지배계급인 파라오와 충돌을 일으키시는데 이스라엘은 그러한 하느님의 모습에서 억압받는 소외 계층인 히브리인의 하느님을 볼 수 있게 된다.

 

지배자인 파라오는 피지배자들의 신인 야훼를 모르고 있었고, 또한 자신의 권위를 헤치는 일들에 대해 더욱 큰 억압을 가하게 된다. 파라오의 고집을 꺾기 위해 이집트에는 재앙이 오게 되는데 그 재앙들은 모두 자연적인 재앙으로 표현되고 있다.

 

물이 피가 되다. 개구리 소동 모기 소동 등에 소동 가축병(흑사병)

종기 우박 메뚜기 소동 어둠

 

탈출기에 나오는 재앙의 대부분은 당시 이집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자연 현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재앙 이야기의 원래 의도는 야훼 하느님의 위대한 권능을 찬양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즉 야훼 하느님과 파라오와의 긴장된 대립 관계에서 파라오의 패배를 알리려는 것 보다는 야훼께 대한 인식을 바로 해 주려는 목적이다. 내가 이집트 위에 내 손을 뻗어 그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 내면, 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7,5)라는 표현을 통해 재앙의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재앙 사건 이야기는 역사의 주권을 놓고 야훼와 파라오, 즉 야훼와 이집트 태양신 사이에 벌어진 대결을 그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이집트 태양신의 아들인 파라오는 야훼의 수중에 있으며, 그의 마음까지도 야훼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파라오의 완고함과 그로 인해 재앙이 계속되는 이야기의 중심 의도는 야훼만이 오직 한 분의 신이시며, 역사의 유일한 주인이시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려는데 있다.

 

 

7,3에 보면 나는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라는 표현이 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보면 이집트 땅에서 벌어질 모세와 파라오의 대결은 이미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것이고, 파라오가 기적을 보고도 이스라엘을 내보내지 않은 것도 파라오가 본성이 악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루실 어떤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사실은 9가지 재앙 중에서 1,2,3,6,7번째 재앙에 대한 내용에서 보면 파라오는 마음이 완강해져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다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셔놓고, 왜 그런 재앙을 내리시는가? 혹은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는 등의 의심을 품을 필요는 없다. 이러한 표현을 하고 있는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파라오 조차도 전적으로 야훼 하느님의 손안에서 움직일 뿐 아니라 이집트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현상도 모두 야훼 하느님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강력히 증언하는 것이다. 즉 파라오 위에 군림하시는 역사와 세상의 유일한 주인으로서의 하느님을 선포하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1-9번째 재앙의 목적은 하느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세상에 알리시고자 하는 것이다.

 

2. 열 번째 재앙 : 파스카

 

하느님께서 이집트 땅에 내리신 마지막 재앙은 그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과 짐승의 맏배를 죽이는 것이었다. 이 재앙의 궁극적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었기에, 하느님께서는 이집트 땅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과월절 파스카 예식을 거행하라고 명령하신다(12,21-28).

 

그런데 원래 과월절 예식은 유목문화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유목민들이 여름 목축을 하러 떠나기 전, 봄철의 첫 보름에 유목민 축제를 지냈는데, 새끼 양이나 어미 양을 잡아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사막의 나물들을 곁들여 먹었다. 이 축제를 거행한 원래의 목적은 양이나 염소가 새끼를 낳으면 잘 자라고 번성하기를 빌고, 집과 가축을 위협하는 악령이 도망가기를 빌려는 것이었다. 사람과 동물을 헤하는 악령을 막기 위해 희생제물의 피를 받아 천막의 말뚝이나 포장에 뿌리든지, 문설주나 문지방에 발랐다. 또 그들의 신이 새로운 유목 여정을 돌보셔서 가축과 소출을 지켜주시기를 기원하며, 가족 또는 부족민끼리 공동식사를 나눔으로써 일치와 화합을 도모한 것이었다.

 

이 축제 예식이 이집트 탈출 사건과 연결되면서 재해석되어 그 의미가 바뀌게 된 것이다. 이제 과월절 파스카 축제는 이집트의 맏아들을 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 구원의 밤에 일어나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된 것이다. 야훼 하느님께서 베푸신 해방 업적을 기억하고 현재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미래에 그분이 주실 자유와 생명으로 나아가는 야훼 하느님의 축제일이 된 것이다. (지금은 미사를 통해서 이를 기억하고 있다)

 

 

 

 

구약의 파스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고, 오늘날 미사를 통해 기억된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째 재앙이 일어나던 날 저녁 어스름에 재앙을 피하기 위해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그 ()를 문설주에 바르고 서둘러 나오기 위해 누룩없는 ()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이집트에서 나오게 되었고,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파스카)예식을 행합니다. 탈출 12,1-28

 

2.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 불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저녁 때가 되자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며 ()을 들어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라고 하시고, 포도주 잔을 들어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린 내 ().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3. 오늘날 우리는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몸과 피)로 맺은 계약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억합니다.

 

4. 초대교회 공동체의 특성.

말씀만이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그 자리에 예수님의 현존이 체험되는 것이다. 유대교와 구별되는 것이다.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되는 은총의 자리가 미사이다.

 

빠스카 축제는 해방하시는 하느님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지만, 미사는 기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현재화이다.

 

그렇기에 참다운 죄로부터의 빠스카, 해방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아 용서와 화해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모범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는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거행하는 미사 중의 영성체를 통해 만나게 되고, 그분의 삶을 기억하고, 그분과 함께 살고자 결심하는 것이며, 영성체를 통해 그러한 삶을 살도록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파스카(과월절) 예식을 통해 이스라엘은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집트인들에게 억지로 떠밀려 나가듯 그 땅을 떠났다.(12,29-42)고 성경저자는 전하고 있다.

 

성경 저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충실한 분이시며, 그 약속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집트인에게는 재앙이었지만, 이스라엘에게는 그 재앙을 넘어 구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한 가지 사건이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오게 된 마지막 재앙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이집트인들을 구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구별은 편파적인 애정의 표현이 아니다.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을 유일한 구원자로 맞이했지만,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하는 백성들은 그분을 심판자로 맞이하였다는 것이다. 곧 하느님은 만민의 유일하신 주님이시고 세상구원이라는 한 가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시는 분이시지만 어떤 모습으로 그분을 맞이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한 결과는 하느님께서 이중적 모습이나 이중적 잣대를 지닌 분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인간 개개인이 각각 다른 선택과 실천을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재앙을 체험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보살피심을 체험하게 되고 해방자 하느님에 대한 원체험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파스카 체험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신앙체험이 되는 것이고, 그들이 하느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빠스카 체험은 단순히 한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빠스카 사건은 3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첫째는 맏배들의 죽음에서 구해주시는 사건으로서의 빠스카

둘째는 갈대바다를 갈라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직접적으로 해방시키는 빠스카

셋째는 해방자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며 죄를 벗어나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가는 빠스카로 이해할 수 있겠다. (~로부터의 탈출만이 아니라 ~를 향한 탈출이어야 한다)

내가 벗어나고 싶은 상황은 무엇이고, 하느님께서 나의 탈출을 통해 바라시는 것은?

 

3. 갈대 바다의 기적

 

갈대바다를 예전에는 홍해라고 부르기도 했다.

홍해 바다는 히브리어로 얌 쑤프인데 이를 그리스어로 옮길 때 붉은 바다로 번역을 했기 때문에 홍해로 표기했다. 그러나 바다를 뜻하고, ‘쑤프갈대를 뜻하기에 갈대바다라고 새번역에서 표기하고 있음을 기억하도록 하자.

 

야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결정적으로 해방시키신 것은 갈대바다에서 이룬 위대한 업적을 통해서이다. 우리가 영상을 통해서도 이미 보았듯이 갈대 바다의 기적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은 오늘날까지도 구원하시는 분의 현존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로 기념되고 있다. 이집트 추격군을 뒤로 하고, 빵이 부풀어 오를 시간적 여유도 없이 갈대바다를 건넜다는 사실은 파스카 밤과 마찬가지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 뛰어 새 백성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잠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구절이 있다. 13,19에 보면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다는 표현이 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성조사와 이집트 탈출 이야기를 연결시켜 주는 하나의 고리이다. 요셉의 유언을 보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 오실 것입니다. 그 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창세 50,25)라는 서약을 시켰고, 여호수아 24,32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가지고 올라온 요셉의 유골을 스켐에.... 묻었다는 구절을 통해 성조사와 더불어 가나안 정착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연관성이 드러나고 있다.

 

 

 

하느님의 결정적 개입이며, 성조들의 역사에서부터 약속되어진 이집트에서의 탈출이 이루어졌다. 이집트 탈출의 결정적 사건인 갈대바다의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은 새로운 백성으로 거듭 나게 되는데 이 체험이 민족을 형성하는 근거가 되는 원체험이 되었다. 이 놀라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하느님 야훼야 말로 살아계신 분임을 깨닫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사건이, 장정만 육십만 명 가량(탈출 12,37)이 빠져나간 이 엄청난 사건이 역사의 기록에 언급되지 않고 있음이 이상하다. 이집트 왕조의 기록에도 없고, 이스라엘의 중요한 역사를 기록한 역대기의 기록에도 이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탈출기에서만 장엄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왜 그런가?

 

이집트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숫자에 대해 민수기에서도 1,46에서 보면 병적조사를 통해 조사된 레위인을 제외하고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분명 엄청난 과정임에 틀림없다. 이 숫자에 대한 표현은 고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강조하는 과장법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이집트의 전체 인구가 400-500만 정도로 보고 있는데, 아이들과 여인을 합하면 200만 가량 되는 숫자 엄청난 비율일 뿐만 아니라, 이집트를 빠져 나오는데 하루 걸린 것으로 표현한다. ‘430년이 끝나는 그날, 주님의 모든 부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12,41에서 전하고 있는데,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200만명이 한 줄로 서면 적어도 이집트와 시나이 왕복길을 채울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제반 사항들을 고려해 볼 때 이집트를 탈출한 인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몇백명?)

그럼에도 분명히 그러한 숫자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고, 기록일까?

 

우리는 이미 오경이 여러 시대에 걸쳐 구성된 이야기들의 집합이요, 재해석을 통해 발전된 문헌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집트 탈출 사건 자체도 성경에 제시된 그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할 수만은 없다. 성경은 역사를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에 대한 고백이며, 신앙 고백을 통해 하느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탈출기에서 전하고 있는 웅장한 사건 자체는 없었다 하더라도, 조금씩 무리를 지어 이집트를 빠져나왔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있어서는 그 탈출이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신 것이며, 하느님의 능력으로 인도해 주셨음을 그들의 고백으로 기록한 것이기에 이스라엘 민족 형성의 원체험이 될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체험을 후대에 재해석하면서 드라마틱한 소재를 접목시켜 기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그 역사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역사기록에는 남아있지 않다하더라도 야훼 하느님은 구약성경 안에서 언제나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분으로 표현되며, 예언서에서도 이집트 탈출 사건과 광야의 여정은 강조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역사성을 논하기 보다도 그러한 체험이 얼마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강렬한 것이었던가에 초점을 맞추고 그 체험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으로 형성되었음에 신앙의 눈높이를 맞추도록 해야 하겠다.

다시한번 정리해 본다면 재앙의 목적은 단순히 이집트를 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의 주인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며 동시에 마지막 재앙을 통해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우선적인 선택을 하시어 새로운 빠스카를 통해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놀라운 일이 이집트에게는 재앙이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느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4. 광야의 의미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두 번째 창조인 이스라엘 민족의 창조를 위한 또 다른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광야생활이다.

 

광야란 무엇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산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숱한 고난과 더불어 여러 가지 불평불만으로 표현되는 불안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광야에서 누리는 자유가 이집트에서의 종살이보다 나을바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갈대바다의 큰 체험을 했으면서도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17,7)하며 투덜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 하느님 야훼께 대한 믿음이 결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분명 이스라엘이 보낸 40년의 광야생활은 힘겨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불평불만과 불신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약속의 땅을 향한 힘겨운 여정임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통해 해방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여정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 전에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틀을 갖추어 가는 준비 단계였다. 이 여정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리스도인에게 당신 백성과 함께 하시며 보살피고 이끄시는 하느님을 알게 해 주었으며, 해방으로 부르시는 하느님께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체험이었다.

 

창세기는 야훼를 이스라엘 조상들의 하느님으로 소개하고, 탈출기는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으로 이끄신 전능하신 분, 시나이 계약의 주인으로 소개하고, 민수기는 약속의 땅을 향한 당신 백성의 여정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으로 소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광야생활 중에 백성 진영 한가운데 자리 잡은 만남의 천막과 그곳을 뒤덮고 있는 구름은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하고, 당신 백성과 함께 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느끼게 하는 가시적인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참고. 9,19-22; 10,11-12,34)

 

광야 시기는 구약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 하느님께 함께 한 축복의 시간이며,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 새롭게 태어난 시기로 볼 수 있다.

 

(참고) 광야의 의미, 홀로 있는 곳. 하느님께만 의지해야 하는 곳....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을 단식하며 기도하셨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새로운 시작을 위한 단련의 시기....우리에게도 필요....

 

그렇기에 광야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지하며,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으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는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의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분명히 광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하느님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철저히 외롭고 힘든 곳. 그곳만이 광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가 광야를 체험하고 싶다고 해서 사하라 사막에 홀로 갈 수는 없지 않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께 순종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살아갔다면, 오늘의 광야를 사는 우리들은 다가오는 순간순간에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어려움을 하느님께 맡기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힘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해 주고 계심을, 그것도 좋은 것만을 마련해 주고 계심을 매일매일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광야를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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