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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합리주의건축

작성자공간의 미학|작성시간10.03.26|조회수1,718 목록 댓글 0

신합리주의건축


합리주의는 이론과 실제 활동에서 로시와 그라시에 의해 형식화 된 것이며. 이들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원리를 거부하고 건축 질서의 상대적 가치를 주장한다.

이태리의 신합리주의, 탄덴자(tandenza)는 소비주의가 만연한 거대도시로부터 도시와 건축을 구출하자는 것이다. 한계를 벗어난 건축과 도시를 원상태로 복귀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두 권의 단행본 알도 로시(Aldo Rossi)의 '도시의 건축(L'architettura della Citta, 1966)'과 지오르지오 그라시(Giorgio Grassi)의 '건축의 구조논리(La Construzione logica dell'architettura, 1967)'에서 유래한다. 합리주의는 이론과 실제 활동에서 로시(Rossi)와 그라시(Grassi)에 의해 형식화 된 것이며, 이들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원리를 거부하고 건축가치의 상대적 질서를 주장한다. 로시는 18세기 후반 피라네시(Piranesi), 르두(Ledux)와 부레(Boull e), 르거(Leguer)등에 의해 가정된 순수한 형태와 계몽운동의 독단적인 패러다임의 이성을 연상시키며, 또한 그런 것을 능가하는 역사적 건물요소에 그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60년대 말 알도 로시와 지오르지오 그라시는 밀란라노 郊外에 세워진 주택지 로카(La Roca)案을 합작으로 설계했다. 콜라주(Collage)의 우측 윗부분에는 로카지역이 보이며, 격자로 구성되었고 절반씩 나누어져 있는 주택 안은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평면 위에 콜라주가 중첩되어 있으므로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 

다시 이것은 또 다른 격자의 도시案 위 부분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콜라주의 관점을 합리주의자의 입장에서 이념을 표명하는 것이며, 합리주의자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정의를 공식화 시킨다. 먼저 그들은 현대건축운동의 테뷰러-레이자(Tabula rasa)식의 접근방법을 체계적으로 반대한다. 도시는 결코 단일案에 따라 제한된 시간 내에 단한번의 역사로서 건설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며, 콜라주의 관점은 이러한 원리를 묘사하는 것이다. 좌우 양측 하단에 로시의 또 다른 두 설계안이 보이는데, 공공건물과 당원을 위한 기념물이다.

기념물 건축에 대한 로시의 원근법은 르네상스에서 그러했듯이 중요성을 가지며, 특히 그에게 있어 記念 建築物의 連續性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예로 팔라죠(Palazzo)類型은 미술관에서부터 대저택, 공공병원, 공공건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려 한다. 건축물 형태의 연속성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용도의 다양성은 사회의 문화적 안정성을 마련하고 꼴라쥬 된 도시조직(Urban fabric)에서 일종의 고전된 도시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都市의 記念物과 그 중요성의 개념을 특정 짓는다.

모네스티로리(Monestiroli)와 콘티(Conti)의 협력으로 그라시(Grassi)가 설계한 이태리 키에티의 학생기숙사에서는, 그 자체를 都市의 記念物로 주장하려는 합리주의 건축물에 보다 더 명백한 관념을 갖게 한다. 여기 실제의 주거구조물 연속된 3층의 아케이드로 결합되어 있다. 학생주거 부분의 외부면에 아케이드가 위치하고 있으며, 이는 도로를 중심으로 하여 대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원근도가 묘사하는 것은 아마도 외관에서 고전건축의 가치와 풍토적인 가치 사이의 명백하고도 비타협적인 마찰을 극복하려는 건축 관념인 것이다. 특히 그라시는 주거건축군의 중심축을 이루는 아케이드가 있는 도로가, 르네쌍스의 아케이드와 수도원의 화랑에 이르는 視空間을 가로지르는 指示(reference)를 이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럽 합리주의운동의 다른 중요한 이론가로 룩셈부르크 건축가 레온 크리어(Leon Krier)를 들 수 있다. 그는 롭 크리어(Rob Krier)와 함께 바람직한 미래의 도시개발에 대해 이태리 합리주의자와 유사한 입장을 공식화하며 反테뷰러레이자의 태도를 취한다.

레온 크이어가 룩셈부르크에 있는 엑터나흐(Echternach)라는 소규모 도시를 위한 도시설계案은 연속된 아케이드 상가도로를 오래된 도시의 중심부에 도입하려는 이론적 제안이다. Leon Krier는 도시환경에서 산업화와 상업생산과 소비에 의해 기인한 유린에 대한 공격에서 비평가이며, 건축이론가로서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룩셈부르크의 유네스코 캠퍼스 개발 분석에서 설득력 있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중세의 도시 중심부와 교외의 유네스코 캠퍼스가 대비되고 있으며, 이 案에서 과거 중세도시의 도로조직과 중세도시의 윤곽 속에 공공기관들이 보인다.

중세도시 내부에 유네스코 캠퍼스의 공공기관과 도시윤곽, 그리고 공공건물 배치 등이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중세의 도시와 중세의 도시와 중세기관들은 극히 경제적이었다. 이案에서 과거 Leon Krier는 현대의 도시계획이 독립된 건축물을 강조하는데 반해, 그 다섯 그림들은 도로로서 명백한 enclosure의 관념이 예견된다고 주장한다.

티치노(Tichino)출신의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보타(Mario Botta)는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젊은 유럽건축가이며, 그라시(Grassi)와 로시(Rossi)에 의해 지지된 것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1978년 루이지 스노치(Luigi Snozzi)와 합작하여 츄리히 철도역 확장설계 현상안을 출품했으며, 조감도에서는 츄리히 중심부 전망과 새로이 설계된 건축물에 접해 있는 철로가 보인다. 이 案에서 중요한 관점은 오래된 역의 유용성과 경제성을 강조하기 위한 제안이라는 점이다. 일종의 육교와 흡사한 구조체가 마련되어, 새로운 역사의 시설, 소화물 취급소, 상점, 카페테리아, 과거의 오래된 구조체는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시설물이 마련된 것이다.

마리오 보타는 합리주의 접근방법을 전원과 교외로 확장하고 있다. 리바 산 비탈레(Riva San Vitale)에 있는 4층의 콘크리트 주택은 산을 배경으로 루카노(Lugano)호수를 굽어보며, 철재교량이 구조체의 입구인 최상층과 연결되는데, 여기서 보타의 섬세한 문맥의 전략(Contextual Strategy)이 보인다. 보타는 근대적 의미로서 전통적 유형을 재해석하는 반면, 일종의 벨베데레(belvedere) 즉, 이런 장관의 지형을 굽어보는 전망대를 마련한다. Frampton은 근자에 보타의 작품을 티치노 리져널리즘(Tichino Regionalism)으로 해석한다. 또 다른 많은 유럽건축가들이 합리주의운동에 개입되고 있는데, 텐데자(tendenza)에 중요한 기여를 한 다른 이태리 안으로는 비토리오 그레고티(Vittorio Gregotti)와 엔조 본판티(Enzo Bonfanti)가 있다.

마드리드학파에는 합리적인 이점이 있다. 즉, 세 단계, 합리적인 계획의 논리, 입면의 처리와 구조적 선험주의를 한꺼번에 엮는데 있어, 삼위 상호관계는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 라몬 베스코스(Ramon Bescos) 등으로 여러 세대를 거쳐 계승되어 왔다. 독일에서 신합리주의는 마티아스 웅어스(Mathias Ungers)의 유형학적 작품에서 그 원리의 표명이 보인다. 독일에서 발전의 중요성은 도시 형태로 부터 수정된 신합리주의 접근방법을 추구하는 웅어스의 채용이라 하겠다.

미국에서는 텐덴자(Tendenza)의 주된 명제인 記念物의 連續性은 도시의 문맥(contex)이 불완전한 사회이므로 신뢰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戰後의 유럽 아방가르드에 의해 달성되었던 것과 같이 활기차고 이념적 근거가 전개되었으며, 이러한 토론은 뉴욕 파이브(New York V)의 작품에서 야기되었다. 그들은 지우세페-르 꼬르뷔지에를 그들의 출발점으로 하는 신순수주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독일표현주의

 

1차 대전 후 허무주의에 빠져 있을 때 대안으로서 표현주의가 탄생

 

20세기 최초의 10년을 지배하는 아르누보의 열광이 끝난 뒤, 계속하여 바로 등장한 디자인을 정확히 지적하기는 어렵다. 독일에서는 표현파(독일표현주의), 빈에서는 아돌프 로스의 선구적인 디자인, 체코슬로바키아에는 체코큐비즘이 시작된다. 또한 월터 그로피우스는 '파구스 구두공장', 르꼬르뷔제는 '도미노 시스템'을 발표하고 안토니오 생텔리아가 '신도시'를 디자인하며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가 유리의 고층 빌딩을 세우고 러시아 구성주의(러시아 아방가드르)도 나타나는 등 그 후의 모던 디자인을 방향 짓는 여러 조형, 운동, 작가가 이 10년 사이에 함께 모습을 보인다. 결국 아르누보의 뒤를 이어 독일 표현주의와 체코 큐비즘이라는 2가지 디자인의 흐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어느 쪽이 먼저였을까 ?

빈의 오토 와그너가 아끼는 제자 중 한 사람인 얀 코체라는 프라하로 아르누보를 들여와 체코에 정착시켰다. 한편 코체라에게 직접 배워 새로운 디자인에 눈뜬 고차르, 호호르, 노보트니(O.Novotny), 포예르슈타인 등의 프라하 청년 건축가들은 스승의 아르 누보를 초월하고자 새로운 양식을 만드는데, 그것이 큐비즘이다. 계보 적으로는 아르 누보의 직접적인 대를 잇고 있다.

커트 글라스의 입체 기하학적 디자인은 1920년대 아르데코의 광물 결정과 같은 장식 디자인과 본질적으로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식물적인 아르 누보와 수학적인 국제양식 사이의 디자인 본질을 광물 결정적인 아르 데코 경향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러한 경향의 예가 체코 큐비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큐비즘은 현대 고층건물을 형성시키는데 모티브가 되었다. 즉 식물적인 아르누보 뒤에 이어 등장한 양식이 광물적인 체코 큐비즘이었다.

독일 표현파는 베렌스의 가스 제조 공장이나 타우트의 유리 파빌리온을 초기의 예로 하여 시작되었는데, 커다란 반응 없이 1910년대에 페르치히의 '베를린 대극장(1919)'이 지어진 시점에서 끝난다. 전성기는 다음의 1920년대에 들어서부터이고 이 10년 동안에 대부분의 걸작이 탄생하고 있다. 즉 1910년대의 독일 표현주의가 등장을 선언한 점에 의미를 두는데, 그 선언은 타우트의 유리 파빌리온과 페르치오의 베를린 대극장에 나타나듯이 자신들이 말하고 싶은 점을 모두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 표현주의의 선언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흐름으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파가 있다.

이상이 1910년대의 개관으로 여러 가지 흐름이 등장한 혼돈의 시기가 틀림이 없지만 조형에서 공통적인 성격을 찾으면 전체 구성 또는 부분 의장에 보이는 '기하학적 경향'일 것이다. 표현주의와 같이 기하학적으로부터 먼 표현에서도 그 곡선에 비하면 확실히 기하학 화하므로 표현주의의 세부의장에 기하학적 문양을 찾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다.

표현주의는 회화, 문학, 연극, 음악, 조형미술, 건축 등 모든 예술분야에 걸친 20세기 초 독일어권 예술운동이다. 표현주의(Expression‎ism)라는 말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Impressionism)에 대치되는 사조개념으로 독일에서는 1911년 베를린의 시세션전 출품 작품에 대하여 W.보링거가 처음 사용하였다.

1914년 이전까지 전위는 유켄트 스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10년 동안의 역사는 표현주의와 겹친다. 당시는 여전히 절충주의적인 빌헬름 양식이 있고 A. 메셀의 '빌헬름 백화점(1869)', 피터 베렌스의 베를린 'AEG 터빈 공장(1909-10)', 테오도르 피셔의 울름 '병영 부속 교회당(1911)', 월터 그로피우스와 아돌프 마이어의 '파구스 구두 공장(1911)', 파울 보나츠의 '슈투트가르트 중앙역(1913-17)'과 같은 내셔널 로맨티시즘적인 작품으로부터 표현주의는 시작되었다. 유켄트 스틸에서 표현주의로 이어지는 역할은 앙리 반 드 벨드, 요제프 마리아 울브리히, 베렌스가 맡았다. 헤르만 무테지우스나 브리츠 슈마허와 함께 독일 공작 연맹을 설립하는 한편, 반 드 벨드는 1906년에 바이마르 공예 학교를 세웠는데, 1919년 바우하우스(Bauhous)의 전신이 되었다. 그리고 베렌스로 부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 로에, 르 꼬르뷔제와 같은 1920년대의 중심적인 건축가들이 독립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전부터 활약한 표현주의 건축가는 드문 편으로 M.베르크의 '세기의 홀(1913)',한스 페르치히의 '포젠의 급수탑(1911)', '루반의 화학공장(1911-12)'이 알려진 정도였다.

세계대전을 거쳐 1918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태어나자, 봇물 테지듯이 예술 노동 평의회, 11월 그룹이 만들어지고 표현주의 건축가들이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크게 3가지 그룹으로 분류되는데, 우선 첫째 그룹은 부르노 카우트 중심의 이상사회를 이야기한 건축가들이다. 타우트는 1919년 무명 건축가전에 참가한 건축가를 중심으로 '유리의 열쇠'그룹을 만들어 환상적 스케치를 다수 남겼다.

'공예, 조각, 회화의 한계는 사라질 것이며, 하나 즉 건축이 될 것이다. 건축은 정신적 제가치의 직접적인 매개물이며 오늘은 잠자고 있느나 내일 깨어날 일반대중의 감각력은 실체화하는 것이다. 다만 정신적인 영역에서의 총체적인 혁명만이 이러한 건축을 창조할 수 있다.'라고 타우트는 밝히고 있다. 총체적이고 집합적인 예술작품의 관념을 전개시켜 '민중을 위한 예술'을 요구하며 건축은 그것을 설계하고 축조하는 자들 간의 지역사회감정을 창조할 수 있다는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 표현주의와 상상의 건축은 Arbeitsrat의 무명 건축가전에서 최소한 도면에 있어서는 그 최고점에 달했다.

코로포토킨이나 E.하워드의 사상을 배경으로 '도시의 모자(1919)', '알프스 건축(1919)', '도시의 해체(1920)'와 같은 유토피아 건축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또한 건축 시인 P.셀버트의 '유리 건축(1914)'은 독일 공작연맹에 출품한 타우트의 '유리 파빌리온(1914)'으로 결실을 보았다. 특히 원통형 계단실을 유리블록으로 감싼 신선한 감각의 공간 디자인이나 프리즘 유리를 통한 무지갯빛과 색채의 디자인은 미래 건축 공간의 매력을 실험적으로 보이는 일에 성공하고 새로운 건축 재료가 가져올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었다. 나중에 타우트는 이 작품을 기초로 이상적인 건축구상을 전개하게 된다.

제2그룹에는 보수적인 건축가들이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전쟁 전부터 활약하고 있던 페르치히는 '베를린 대극장(Grosses Schauspiehaus)(1919)'으로 주목되었다. 새로운 사회와, 그 사회의 정신과 음성의 가장 당당한 표현으로서 대중극장이 시도되었다. 예술과 민중과의 장벽을 깨뜨리는 것 즉 'coup de thtre'였다.

 또한 지방 도시 함부르크에서는 츠리츠 헤거가 '칠레 하우스(1924)'를 설계하여 그 하늘을 찌르는 파사드로 베를린 건축가들에게 다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한편, 이러한 건축가들과는 달리 단독으로 유기적인 건축을 겨냥한 제3그룹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후고 헤링은 '가르카우 농장(1923)'을 설계하여 '기관 역활의 건축'을 제안하고, 또한 H.핀스테를린은 환상적인 생물 스케치를 다수 남겼다. 표현주의의 금자탑이라고 부르는 에리히 멘델존의 '아인슈타인 탑(1920-24)'도 조소적인 건축이지만, 이후 그의 디자인은 수평선을 강조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Einstein Tower에서 나타난 에리히의 건축의 세 가지 잠재력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 '창조적 소생(creative resurgence)'의 연속 간주, 탑에서 이들 잠재력이 탐구 되었다. 그는 그 자체의 법칙에서 건축은 그 활동적인 mass를 지배하는 세 가지 조건을 마련한다. 그 윤곽으로 선의 요소를 나타내는 역동적 조건-공간의 운동, 표면의 돌출로서 mass의 상호관계를 나타내는 율동적 조건, 평면과 단면에 의한 운동의 평형일정적 조건이라고 한다.

'쇼캔 백화점(1929)', '우니페르슴 영화관(1926-29)'등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렇지만 바이마르 공화국도 안정을 찾게 되자, 이상을 이야기하던 건축가들도 이어서 지드룽과 같은 공공 건축에 참여하게 된다. 즉 타우트의 '브리츠 지드룽(1925-31)', '지멘스슈타트 지드룽(1930)'등이 연달아 건설되었던 것이다. 1919년 설립된 바우하우스는 당초 표현주의적 경향이 강하였지만, 192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구성주의-신즉물주의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 또한 1927년 독일 공작 연맹이 슈투트가르트에서 개최한 '바이센호프 주택전'에서는 '하얀' 합리주의적인 건축이 세워지고 이미 표현주의는 과거로 불리워진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이미 이야기가 되는 일이 적어지고 1933년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바우하우스나 독일 공작 연맹도 쇠퇴하면서 주요 건축가들은 해외로 계속 망명하는 등 표현주의는 파국을 맞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에 이미 그 근거를 잃은 스타일


20세기 建築言說空間은 그림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즉, 2개의 좌표축과 그에 의해 생성되는 4개의 상한으로 나타낼 수 있다.

모더니즘은 제4상한에서 출발했다. 즉, 그들은 출발점에서 대내적인으로는 바나큘러이고 또한 대외적으로는 보편적인 건축을 지향한 것이다. 그 시점, 즉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두의 시점에서는 제3상한에 Art & Craft가 있고, 제 2상한에 주로 북구의 건축을 주도하고 있던 내셔날 로맨티시즘이 있고, 제1상한에 는 은밀히 이행하며, 그 轉向에 의해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적인, 그리고 체제적인 건축 스타일로 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轉機는 재차 1960년대 말에 찾아온, 즉 '新左翼', 이른바 '舊左翼'의 營爲는 제1상한에서 제4상한으로의 이행(즉, 인터내셔널 한 혁명)을 관념적으로는 지향하면서 실제에 있어서는 냉전적 구도라는 새로운 고유성의 장벽에 둘러싸인(혹은 지켜진) 제4상한 체제의 확립에 불과하였다. 

한편, '신좌익'은 제 1상한에서 제4상한으로의 다이어고널한 이행을 지향했다. 즉, 고유성에 시초한 아나키즘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신좌익은 1960년대 말의 세계각지의 각 분야를 뒤덮은 동시다발 현상이 되었다. 즉, 고유의 틀을 크게 벗어나 同時代性, 汎領域性을 획득하였다. 여기에 '구좌익'과 '신좌익'의 패러독스가 존재한다. 즉, '구좌익'은 의도에 반하여 고유성의 틀에 빠지고, '신좌익'은 의도에 반해 고유성을 일탈하고 있다.

건축의 세계에 있어서 '신좌익'적 언설은 로버트 벤츄리의 '건축에 있어서의 多樣性과 對立性(1968)'이다. 양자는 모두 '역사의 부활'이란 형태로 '고유성' 부활의 길을 열어 '다양성'과 대립성'의 稱揚이란 형태로 초월적인 것을 물리치고 있다. 이 2개의 선도적인 저작에 의해 건축의 세계에서, 광의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좌표축의 우측, 제1상한과 4상한에 걸치고, 광의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좌표축의 좌측, 제2상한과 제3상한에 해당한다. 

협의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제2상한, 즉 고유성에 기초한 초월성의 추구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제국주의적 단계라고도 바꿔 말할 수 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로의 전환이란 여기서 말하는 광의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협의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전환, 즉 포스트모더니즘의 무정부주의적인 단계에서 제국주의적 단계로의 이행이다.

미국에 있어서의 모더니즘이란 외부에서 미국의 고유성을 배제하는 형태로 칩입해온 '보편성'이었다. 그때 미국의 고유성이란, 즉 표현주적인 클레시시즘이며(그것은 극단적인 형태로서의 '디즈니랜드'로 상징된다.) 미국에 있어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와 같은 표층적인 클레시시즘의 부활이란 형태로 미국의 고유성의 재확립을 지향한 무브먼트였다.(예를 들면, 로버트 번츄리의 '어머니의 집(1963)' 단, 일단의 고유성의 영역(제2상한, 제3상한)으로 흔들린 바늘은 그 영역의 내부에서 초월성의 방향으로 불가피적으로 이끌려 가는 것이다. 이리하여 1980년을 경계로 미국건축은 제3상한에서 제2상한으로 shift(우익화)해 갔다.

필립존슨의 'AT & T 빌딩(1978)'은 이 쉬프트를 상징하는 탑이다. 존슨은 여기서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미국에의 도입자로서의 과거의 자신을 배신했다. 라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다. 다만 실제에 있어서 1978년의 AT & T 빌딩은 존슨의 프로듀스로 뉴욕근대미술관에서 개최한 모던 아키텍쳐展의 再演에 불과하다. 즉, 아나키즘 또는 아방가르드로서 출발한 무브먼트가 '초월성' 혹은 '美'란 규범에 이끌려서 체제적 양식으로 수탈되어 갈 때의 힌지 역할을 존슨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한 것이다.

이리하여 1980년대에 이르러 건축은 드디어 제국주의적 단계를 맞이했다. 존슨, 그레이브스, 콘 패터슨 앤드 폭스로 대표되는 유럽의 하이테크도 또한 고도의 기술이라고 하는 어떤 종류의 고유성과 배타성에 기초한 초월성의 표현 이였다. 1910년대, 20년대에 있어서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한 트루, 또는 보편성 자체의 상징이었던 '기술'이 1980년대에는 선진공업국의 고유성의 상징으로 反轉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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