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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작문 퇴고본

6월 1주차 작문 퇴고_박연주

작성자연주|작성시간26.06.05|조회수29 목록 댓글 0

5월 4주차 작문 퇴고본

 

<내일은 이삿날이었다>

 

"우리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알바가 막 끝나고 들어간 탈의실에서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고, 그렇게 우리의 1년은 끝났다.

 

우리는 사랑했지만, 서로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한번은 영화 〈버닝〉을 보고 느낀 것들을 써서 그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내가 발견한 것들, 이해한 것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전부 적었고, 돌아온 대답은 "멋지다, 기특하다"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냥 그 주제를 두고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는 의미보단 재미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적은 절대 없다. 그가 던진 농담 한마디가 나를 짓누르던 거대한 바위를 순식간에 자갈로 만들어버린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는 내게 삶을 조금 덜 심각하게, 조금 더 유쾌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해줬다. 그러나, 나는 그런 대화 속에서 나는 자꾸 허기가 졌고, 그도 이런 나의 허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이별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언젠가는 헤어질 거라고, 헤어져야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말을 들으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그가 너무 좋았다.

 

'서로 잘 맞춰가면 괜찮을 거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울면서 토해내도 그의 음성은 단호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마지막 희망이 떠올랐다.

내일은 이삿날이었다.

 

"그럼 나 내일 이사하는 건 어떡해? 오빠가 도와주기로 했잖아."

 

그렇게 우리는 그날 밤, 헤어진 채로 이삿짐을 함께 정리했다. 어지러운 짐 무더기 속에는 우리의 추억이 가득했다. 사진, 함께 뽑은 인형들, 그가 선물해 준 책과 신발이 흩어져 있었고, 냉장고 속에는 그가 좋아하는 닥터페퍼가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티 내지 않았다. 티 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갈 것 같았다.

 

"오빠, 저 카피바라 인형 생각나지. 저거 내가 계속 오빠 닮았다고 놀리다가 우리 싸웠잖아. 그 새벽에."

"오빠, 나 박스 테이프 세로로 붙이고 가로로도 붙였어. 튼튼하게! 어때? 잘했어?"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헤어지지 않은 것처럼 말하다 보면 그도 돌아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감정을 꾹 누르고 있는 표정으로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박스 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배 안 고파? 오빠가 좋아하는 매플 파스타 시켜 먹을까?"

"그러지 마."

그가 울었다. 그의 눈에서 분명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도 눈물이 흘렀다.

 

그는 나를 토닥여준다. 연인만큼 가깝지는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 등을 토닥인다. 그가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묻는다.

 

"내일 트럭은 몇 시에 와?"

"아침 일찍, 9시. 짐 싣는 거 혼자 못해. 자고가. 오빠 집까지 1시간 반이잖아."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헤어졌다. 헤어진 사람 집에서 어떻게 자고 가냐.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 그렇게 그가 나갔다. 집은 택배 박스들로 어지러웠다. 이불, 베개도 다 넣어버렸기에 아무것도 깔리지 않은 침대에 혼자 누웠다. 천장만 바라보다 새벽 3시가 넘었다. 눈물은 계속 흘렀다. 내 몸속에 이렇게나 많은 눈물이 있었던가.

 

내일 다시 그가 온다. 짐을 내려두고, 그가 간다. 그러면 정말 끝인 걸까.

 

그렇게 아침이 왔고, 그가 왔다. 나는 그의 손부터 봤다. 반지가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박스들을 1층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먼저 옮기고, 큰 박스가 3개 쌓이면 내려가는 방식이다.

 

뉴진스 하니를 좋아하던 그에게 항상 하던 질문이 있다.

‘내가 좋아, 하니가 좋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그 질문을 왜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오빠. 내가 좋아, 하니가 좋아?”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하니."

"어떻게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갑자기 바뀔 수가 있어? 그저께는 내가 좋다며."

"우리 이제 헤어졌으니깐, 너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거야. 마음이 바뀐 게 아니야."

 

그리곤 한참을 같이 울었다. 그때 알았다. 그는 이별을 선언한 것이었다. 사랑이 끝나서가 아니라, 끝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트럭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트럭은 정확히 9시에 도착했다. 짐을 모두 싣고 나는 중간 자리, 그는 조수석에 앉았다. 이제 트럭이 출발한다. 새 집으로 가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트럭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익숙한 골목이 흘러갔다. 그의 손에는 반지가 없었다.

 

이별은 사랑이 끝나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어떤 사랑은 이별 이후에야 비로소 끝난다. 그래서 누군가 먼저 선언해야 한다. ‘우리의 사랑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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