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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이야기 16> IBM PC와 INTEL CPU

작성자봄돌아빠|작성시간14.01.04|조회수524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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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알아본 파워서플라이가 '컴퓨터의 심장'이라고 한다면, '컴퓨터의 두뇌'는 무엇일까요?

네~. 바로 지금부터 알아볼 CPU(Central Processing Unit) - 중앙처리장치가 되겠습니다.

 

컴퓨터의 발달 역사에서 보았듯이  초기의 컴퓨터는 수십톤에 이르는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장치들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작동에도 많은 시간과 준비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컴퓨터가 요즘 우리가 보듯이 책상위에 올라갈 정도로 크기가 줄고 심지어는 들고 다니면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처음 컴퓨터가 만들어진 때보다 그 처리속도와 능력은 엄청난 차이로 발전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전자공학의 발전으로 탄생한 반도체 소자, 이름하여 MPU(microprocessing unit) 덕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Personal Computer)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는 논쟁거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애플사의 '애플 I'이라는 애플매니아들의 주장에 맞서 MITS에서 1975년에 출시한 '알테어 8800'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그렇게 따진다면 워즈니악이 혼자 취미로 만들었던 '크림 소다'나 1971년 켄백(Kenbak)사에서 만들어 40대를 팔았던 '켄벡-1', 알테어 컴퓨터의 근간이 된 톰스위프트 단말기와 그것을 개량해서 만든 '솔'컴퓨터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Altair 8800.

1975년 4월에 MITS 사에서 만든, 최초의 Personal Computer로서의 개념을 갖춘 시스템입니다.

물론 이 시스템은 실은 완제품도 아니고 조립이 필요한 키트 형식으로 판매가 되었고 중앙처리 장치 및 기억장치를 갖추고 있을 뿐이며 입력은 전면부의 스위치로 하고 출력은 LED의 점멸로 표시되는, 디지털 논리 회로 기초 수업에서나 쓰일 법한 모양을 갖고 있었습니다. CPU로는 Intel 8080(8bit, 2MHz)을 탑재하고 있으며 메모리는 기본 1kB에 불과했습니다.(혹시나 해서 첨언하자면, 애플I도 키트 형식으로 판매되었습니다)

빌 게이츠, 폴 엘런이 이 기계에서 돌아가는 알테어 BASIC을 만들어 납품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웠습니다.

단순하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기계였는데, 혹자는 이 기계가 특정 라디오 주파수와 공명하여 음을 만들어 낸다는 것에 착안하여 알테어를 이용한 컴퓨터 음악을 만들어 내었답니다.

안타깝게도 이 기계는 MITS사가 무리한 영업 정책으로 판매점들로부터 소외를 받게 되고, 결국 얼마 가지 못하고 Pertec Computer에 넘어가면서 1980년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애플 I(Apple I)

애플 I 또는 애플-1은 1976년 4월 11일에 애플 컴퓨터 컴퍼니(지금의 애플)가 출시한 개인용 컴퓨터입니다.

본래 애플 컴퓨터(Apple Computer)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스티브 워즈니악이 설계하고 수공으로 만든 컴퓨터입니다. 애플 I은 애플 최초의 제품이었습니다. 1976년 4월에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의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시연하였습니다.

CPU로 MOS 6502(8bit, 1MHz)를 사용하였고 RAM 4KB를 탑재하였습니다.

이 애플 I 컴퓨터는 요즘처럼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본체만 완성되었으며 화면 출력을 위해서 별도 구입한 모니터나 RF변환 단자를 통해 TV를 연결해야 했습니다.

애플 I은 1976년 바이트샵에서 처음 판매를 시작했으며, 대당 가격은 666.66달러였습니다.

이 컴퓨터의 오리지날 모델은 2012년 독일에서 열린 경매에서 49만1868유로(한화 약 6억9200만원, 미화 약 64만4700달러)에 낙찰되었답니다.  @_@!

 

이런 저런 논쟁의 와중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전반에 걸쳐 개인용 컴퓨터 붐을 이끈 주역으로 '애플 II'(1977)를 꼽고 있으며, 본격적인 PC의 시대를 연 컴퓨터는 'IBM PC 5150'(1981)이라는것에 모두 동의를 할 것입니다.

 

                         <Apple-II>                                                                      <IBM PC 5150>

 

애플 컴퓨터의 초기 컴퓨터 모델들(애플-I, 애플-II)은 모두 'MOS 6502'를 MPU로 탑재하고 있습니다.

MOS 6502는 'MOS 테크놀로지'사의 8비트 MPU입니다. 모토로라의 6800계열의 CPU로 분류되며 명칭 또한 인텔 계열이 CPU(중앙 처리 장치)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 반해, 모토로라 계열은 MPU(Main Processing Unit)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프로세서 레지스터 개수가 인텔 계열의 CPU에 비해 적으나, 제로 페이지라는 메모리 에리어 중 특수한 영역을 임시 기억공간으로 활용하여 프로세서 레지스터 부족분을 메웠습니다. 입출력을 위한 주소 공간이 별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메인 메모리의 일정 부분을 입출력으로 사용하는 메모리 맵 입출력 방식으로 동작하였습니다.

 

1981년 8월 12일, IBM이 'IBM PC 5150'을 출시하면서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면서 PC의 역사는 크게 요동을 쳤습니다.

IBM은 당시 애플에서 선도하던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대한 주도권을 잡기위하여 애플 컴퓨터보다 더 성능을 개선한 'IBM 5150'모델의 PC를 1,565달러의 가격으로 판매하였습니다.

IBM의 PC 출시 소식을 접하였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선두 주자로서의 자신감을 보여주며 '월스트리트저널'에 "Welcome, IBM. Seriously."라는 문구로 광고를 내고 IBM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으로의 진입을 장난스럽게 환영(?)하였습니다.

  

 

'IBM PC 5150'은 Intel의 16bit CPU인 '8088'(동작 클럭 4.77 MHz)을 탑재하였으며 16KB의 메모리에  카세트 레코드를 지원하며 5.25인치 플로피디스크를 2개까지 달 수 있었습니다. 운영체제(OS)로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도스(DOS)를 탑재했습니다.

MS사의 '빌 게이츠'는 IBM PC의 제작에 개입하여 16bit CPU를 채용하도록 조언하였다고 하는데, 운영체제인 DOS를 납품하면서 이에 대한 소유권과 독자적 판매권을 요구하여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IBM PC에 탑재된 DOS를 'PC-DOS', MS에서 독자적으로 판매한 DOS는 'MS-DOS'로 불렀습니다.

소위 말하는 '백만불짜리 잭팟'을 터트리는 빌게이츠의 사기술(?)

 

실리콘 밸리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다룬 영화 : Pirates of Silicon Valley - 실리콘밸리의 신화(1999) 참조!

이영화에 대한 간단한 리뷰 : http://v.daum.net/link/2300896

   

 

이 PC는 출시 4개월 만에 5만대가 팔려나가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1982년에는 매년 '올해의 인물(Man of The Year) '을 선정해오던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이례적으로 사람 대신에 이 컴퓨터를 선정했을 정도였습니다.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애플의 돌풍을 잠재우기 위하여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실행하였습니다.

당시 쉽게 구할 수 있는 컴퓨터 부품을 사용하여 컴퓨터를 구성하고 이러한 하드웨어 회로도와 기본 프로그램 소스코드 등의 컴퓨터 구조-아키텍쳐(architecture)를 완전히 공개해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개방형 설계 구조 덕분에 이후 컴팩, 델, HP를 비롯한 많은 회사들이 IBM PC의 복제품(clone)을 만들어 내게 되었으며, 심지어 개인 사용자도 직접 컴퓨터를 조립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IMB PC의 복제품을 'IMB PC 호환기종(IBM PC compatible)'이라고 불렀습니다.

IBM PC와 그 호환기종들은 엄청난 기세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휩쓸게 되었으며, 이후 개인용 컴퓨터(PC)는 'IBM PC'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IBM PC의 출시를 호기롭게 환영하였던 애플은 위기감을 느끼고 '애플 III'(1980) 출시 이후에 '애플 Lisa'(1983), '매킨토시'(Macintosh, 1984) 등 새로운 운영체제(GUI)와 감각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개발, 판매에 나섰으나 이미 주도권을 빼앗긴 시장의 흐름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애플 III>                                <애플 Lisa>                              <매킨토시>

 

경영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리게 된 '스티브 잡스'는 팹시콜라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를 18개월 넘게 끈질기게 설득하였고, ‘설탕물을 팔며 인생을 보내기 보단 우리와 함께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자’는 잡스의 언변에 감탄한 스컬리는 결국 1983년, 애플의 CEO직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정통파 경영인이었던 스컬리는 고집과 개성이 강하고 돌출 행동을 종종 일으키는 잡스를 점차 못마땅하게 보게 되었고 둘은 사사건건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984년에 경영상의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회사의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의 해임을 투표로 결정하게 됩니다.

 

애플에서 밀려난 스티브잡스는 넥스트(NeXT)라는 회사를 창립하여 워크스테이션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사업을 펼쳤으며, 루카스필름의 컴퓨터그래픽 사업 부문을 1,000만달러에 인수하기도 하였습니다(1986년).

 

 

이 회사가 바로 <토이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와 같은 유수의 컴퓨터 에니메이션을 만들어 낸 '픽사 에니메이션 스튜디오(Pixar Animation Studio)'입니다.

'픽사'는 이후 2006년에 디즈니와 합병을 하여 디즈니의 자회사가 됩니다. 픽사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이 합병결과로  디즈니의 최대 개인 주주가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떠나버린 '애플'은 그 이후로도 경영상의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1996년 애플이 넥스트사를 인수하면서 스티브잡스는 다시 애플의 최고경영자로 복귀하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의 복귀는 애플의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복귀 후 그는 1997년 10억 달러의 적자를 한 해만에 4억 달러의 흑자로 전환하는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그가 내놓은 제품은 연달아 성공했고 애플은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우뚝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적인 성공과 더불어 병마가 찾아왔습니다. 잡스는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대수술을 했습니다. 2009년에는 간이식 수술도 받았습니다. 점차 건강이 악화되자 2011년 결국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고, 같은 해 10월 5일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55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혼모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폴 잡스 부부에 입양되어 비틀즈에 심취하며 자란 스티브 잡스, 대학을 중퇴하면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 사업으로 IT의 역사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 병마와 싸우면서도 의연한 모습으로 디지털에 디자인의 중요함을 보여준 그의 업적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리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 - "Stay Hungry. Stay Foolish">

http://youtu.be/UF8uR6Z6KLc

 

(애플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참조글 : 애플(Apple Inc.) - 네이버 캐스트 / 스티브 잡스에 대한 참조글 : 스티브 잡스 - 위키백과)

 

 

'IBM PC 5150'의 성공으로 고무된 IBM은 이후 1983년 3월에 PC-XT(eXtended Technology)를, 연속해서 1984년 8월에 PC-AT(Advanced Technology)를 출시하였습니다.

 

IBM PC/XT(model 5160)

IBM PC 5150 모델의 업그레이드판으로 한국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16비트 컴퓨터는 이 XT가 시작이었습니다.

XT는 'eXtended Technology'의 약자로, 기본 구조와 CPU는 5150 모델과 동일하지만 램을 늘리고 하드디스크를 달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CPU는 전작과 동일한 클럭 4.77MHz의 인텔 8088 프로세서를 사용했고, 여기에 보조 연산장치인 8087 코프로세서를 추가로 달 수 있는 슬롯이 있었습니다.

RAM은 128KB로 올라갔고, 640KB까지 확장이 가능 했습니다. "램은 640KB면 충분하다" 라는 빌 게이츠의 드립이 여기서 시작된 것.

모니터는 PC 시절에 쓰던 모델을 계속 사용하였으며, 그래픽 카드는 기존의 MDA, CGA였지만, 1984년에 EGA가 나오면서 이것까지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보조기억장치는 기존의 5.25' 플로피 디스크 뿐만 아니라, 10MB짜리 하드디스크를 달 수 있었습니다. 이 하드디스크의 제조사는 다름아닌 시게이트. 나중에 이 하드디스크는 20MB까지 확장이 가능했습니다. 대신 카세트 테이프는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운영체제는 PC-DOS 2.0~3.2가 메인이었지만, 유닉스도 사용 가능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XT에서 쓸 수 있는 Xenix 운영체제를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보다는 PC-DOS나 MS-DOS를 더 많이 사용했지만.

 

IBM PC/AT(model 5170)

1984년 IBM PC jr과 같이 내놓은 모델로, AT는 'Advanced Technology'의 약자입니다.

CPU를 기존 8086/8088 CPU보다 월등히 좋아진 80286을 채택했습니다. 

램 최고 용량도 올라가서 최대 16MB까지 증설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MS-DOS의 기본 메모리가 640KB로 제한되어버리는 바람에 UMB, EMS, XMS 등등의 각종 확장 메모리 관리기법이 튀어나오는 계기도 되었지요. 보조연산장치로는 80287을 장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부터가 진정한 16비트 PC의 세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80286 CPU는 8088 CPU와 달리 내/외부 동작이 모두 16비트로 이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XT까지는 CPU는 16비트로 동작하지만 외부 버스는 8비트로 동작했는데, AT부터는 외부 버스도 16비트로 동작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16비트를 지원하는 AT 버스가 등장하게 됩니다.

키보드도 바뀌었는데, 84키 짜리 키보드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키보드는 나중에 101키 키보드로 발전하면서 현재 쓰는 키보드와 비슷한 레이아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도 발전하여, 360KB를 1.2MB 용량으로 확장한 고밀도(HD) 플로피 디스크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XT에서 쓰던 플로피 디스크를 AT에서 저밀도 옵션을 주지 않고 그냥 포맷했다가 배드 섹터로 도배가 되어 버리는 일도 종종 생겼습니다.

하드 디스크 용량도 2배로 늘여, 20MB가 달려 나왔습니다. DOS 버전도 3.0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래저래 많은 개선과 변화를 보여준 기종이었습니다.

이 AT의 디자인은 이후 IBM PC 호환기종의 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메인보드의 디자인은 AT 폼 펙터라는 이름하에, 펜티엄 2에서 ATX가 나올 때까지 10년 넘게 쓰이게 되고, AT 버스도 ISA라는 이름하에 PCI가 나올 때까지 주구장창 쓰이게 됩니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기위한 IBM의 고육지책이었던 '개방형 아키텍쳐' 전략은 부메랑이 되어 오히려 IBM을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수많은 컴퓨터 제조회사들이 'IBM PC 호환기종'의 컴퓨터를 만들어 내었고, 전체적으로 보면 IBM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득을 보는 곳은 CPU를 만드는 'Intel'과 운영체제(DOS)를 공급하는 MS(Microsoft)였습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속담과 같은 상황이 되어 있었지요.

 

286PC가 최고의 제품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무렵인 1985년 10월 인텔은 80386DX마이크로 프로세서를 발표하여 PC시장의 변화를 예고합니다.

80386DX는 32비트 데이타 버스를 제공하는 최초의 프로세서로 80286의 보호모드 이외에 가상 86모드라는 별도의 동작 모드를 가지고 있었고 이 모드는 안정적인 멀티태스킹 환경을 제공하며 640KB아래에서 수행되는 여러 응용 프로그램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칩을 IBM PC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질 않았고 결국은 인텔의 발표 다음해인 1986년 미국의 컴팩사가 전격채택하여 386PC인 '데스크프로 386'을 발표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PC는 세계 컴퓨터업계의 거성으로 자처해온 IBM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컴팩은 세계적인 PC업체로 급성장할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컴팩이 386PC를 발표한 1986년은 PC사에 큰 변혁의 해로 남고 있습니다.


 

당시까지 PC기술과 시장을 주도해온 IBM이 286PC보다 뛰어난 성능을 갖는 386PC를 컴팩에게 넘긴 것은 기술적인 면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세계 PC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IBM의 시장쉐어가 호환PC군에 의해 역전됨으로서 퇴조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한 해였습니다.

이에 따라 IBM의 매출은 약간 증가했지만, 순익은 오히려 감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구나 'x86 아키텍쳐'를 기반으로 '80386 CPU'를 채택한 386PC를 호환PC업체였던 '컴팩'이 '데스크프로 386'이라는 이름으로 IBM보다 먼저 출시를 해버리자 IBM의 위기감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IBM은 MCA(Micro Channel Architecture)라는 신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3,5' FDD와 멀티테스크용의 새로운 운영체제인 OS/2를 탑재한 'PS/2' 시리즈를 발매, PC시장 탈환 시도를 하였습니다(1987년).

PS/2는 오픈 아키텍처였던 예전의 IBM PC와 달리 클로즈드 아키텍처를 표방했지만 이미 PC시장의 주도권은 CPU의 인텔과 OS의 마이크로소프트 진영과 그것을 사용한 호환기종을 만드는 다른 PC 제조회사들로 완전히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이 PS/2는 비싼 가격과 호환성의 문제로 결과적으로 실패하였습니다.

PS/2 아키텍처의 흔적이 지금도 PC에 남아있는데 그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하는 PS/2 포트와 VGA 그래픽 모듈입니다.

 

실질적으로 80386 시대에 이미 IBM은 이 'x86 아키텍쳐'의 선도능력을 잃어버렸고,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아키텍쳐 설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80386DX에 이어서 1988년 6월 인텔은 '80386SX'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발표합니다.
386SX는 내부적으로는 16MHz 32비트 80386칩과 똑같이 32비트로 운용되나 외부적으로는 80286과 같은 16비트 데이터 버스와 24비트 어드레스를 갖는 가격대비 성능이 우수한 제품이었습니다.
PC업계의 강자로 부상한 컴팩은 재빨리 386SX PC인 '데스크프로 386S'를 발표, PC기술을 선도하며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굳히게 됩니다.

              

 

PS/2의 실패로 IBM의 PC 사업은 한동안 침체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IBM은 CPU 시장을 장악한 인텔에 맞서고자 1991년부터 애플, 모토롤라와 손을 잡고 3사가 함께 'POWER PC'(Performance Optimization With Enhanced RISC – Performance Computing)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파워 피씨는 RISC 개념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슈퍼 스칼라 방식으로 명령을 실행하였습니다.

첫 번째 모델인 'PowerPC 601'은 1993년에 제품화 되었으며 저가격의 머신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이외에 에너지 절약형의 603, 604, 이것의 개량형인 603e, 604e, 고성능형의 G3 칩...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파워PC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되었고, IBM은 1994년부터는 PC/AT 아키텍처에 기반한 PC를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영 악화와 생산성 하락으로 1990년대 초반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던 IBM은 1993년 '루이스 거스너'가 CEO가 되면서 기업 개선에 착수하였고, 주력 사업군을 제품 생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기존의 하드웨어 사업 비중을 크게 낮추고, 기업 전략수립 컨설팅과 업무 프로세스 개선, IT 솔루션 개발 및 구축 등으로 주력 사업을 전환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IT 서비스 사업에 회사의 주력을 옮기며 2005년에 중국 최대의 컴퓨터 기업인 레노보(Lenovo, 聯想)에 17억 5,000만달러에 PC 사업부를 매각하면서 IBM은 PC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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