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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문화생활]]페이보릿 북 (1)

작성자오십 미터|작성시간16.01.28|조회수1,987 목록 댓글 3




출처: 여성시대, 오십 미터




bgm, 선셋 그로우의 이 밤은 날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참고문/ 

2014 제 59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허연,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




때늦게 내리는 물기 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눈송이들의 거사를 바라보면서 내가 앉아있는 이 의자도 언젠가는 눈 쌓인 겨울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추억은 그렇게 아주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형식으로 영혼이 되는 것이라는 괜한 생각을 했다 당신이 북회귀선 아래 어디쯤 열대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보냈을 소포가 이제야 도착을 했고 모든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눈물이라고 난 소포를 뜯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소포엔 재난처럼 가버린 추억이 적혀 있었다


하얀 망각이 당신을 덮칠 때도 난 시퍼런 독약이 담긴 작은 병을 들고 기다리고 서 있을 거야. 날 잊지 못하도록, 내가 잊지 못했던 것처럼.


떨리며 떨리며 하얀 눈송이들이 추억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허연/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전두엽은 너를 복원해낸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 무슨 수로 그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이지만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가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허연/오십 미터






새의 발자국 같은 사랑을 새겼더란다.


변하지 않는다는 미망도, 줄지어 늘어선 서약도, 한번 자국이 나면 천 년을 간다는 상처도 새의 발자국처럼 동풍에 밀려 어디론가 때를 지어 사라졌더란다.


진흙에 갇힌 사랑

춘분과 추분을 잘못 계산해 늙지 않는 벌을 받은 사랑. 죽어도 죽지 않는 쐐기문자로 남은 것. 섭씨 천 도쯤에서 구워진 것. 끔찍한 세월을 지나온 노래.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곳에서 감히 사랑에 빠진 자들은 끔찍하게 일만 년을 살았더란다. 마르고 말라서 수메르의 노래가 됐더란다.


내가 사랑을 알기 전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사랑을 알기 전 수억 번의 일요일이 오기 전 그들은 사랑을 새겼더란다 새의 발자국 같은 사랑을 대홍수를 견딘 사랑 제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일만 년 동안 말라붙은 사랑



허연/점토판






맹세보다 가혹한 일기를 쓴다


그 여름 내 인생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당신을 쓸려갔고 다시 오지 않았다)


그 여름 내 슬픔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적막을 주었고 어떤 생이 남았다)


강은 멀리서 소리를 낸다

쓸려가서 오지 않는 건 뇌우로 남는다

강의 끝에서 벌어지는 저 까마득한 낙차


연옥을 지나온 강물에게 누가 근원을 묻는가

(도시에서 당신은 길을 잃었다)


비는 일단 밤에 내리는 게 맞다



허연/장마5








카메라 대신 벽돌입니다 상자를 여니 벽돌 반 장이 나왔어요 믿을 수 없지만 깨끗한 벽돌입니다 왜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아니라 벽돌인지 물어보려고 해도 연락두절이네요 인터넷 중고시장을 통해 연결된 그 사람은 필름 10팩까지 끼워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카메라를 반값에 팔겠다고 했죠


힘주어 벽돌을 꼭 쥐어봅니다 벽돌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섭니다 경찰서로 갈지 택배송장에 적힌 주소지로 가야 할지 아직 모르겠어요


희미하게 어둠이 퍼져갑니다 보통 저녁입니다 골백번의 골백번 더 살아본 날입니다 어이없고 참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지만 똑같은 사기 사건도 수십만 번쨉니다 사소한 사기가 삶이었지요 예전엔 나귀 가죽하고 밀가루를 교환하다 시비가 붙어 칼에 찔려 죽을 뻔했습니다 금화 몇 닢 받은 후 양피지를 보내지 않은 적도 있고요


저 교회 벽돌도 내가 붙인 것 같습니다 나는 오래전 애굽에서 벽돌을 구워내던 노예였을지 모릅니다 무너진 벽돌 더미에 깔려 죽었겠지요 사기 치다가 걸려 톱니바퀴에서 고문당하던 상인이었을지도 언덕 꼭대기 대성장에서 목탄으로 모작을 그리던 인부였거나 들판에서 나뭇잎으로 성기만 가리고 누워 행인을 기다리던 창녀였을지도 모릅니다


내 영혼은 중고품입니다 수거함에서 꺼낸 붉은 스웨터처럼 팔꿈치가 닳고 닳은 영혼입니다 누군가 미처 봉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기억입니다 불현듯 바다에서 솟아올랐거나 화산에서 흘러내린 먼지입니다


때때로 나는 처음으로 근사한 말을 떠올리지만 그 문장은 이미 내가 사막에서 벽돌을 굽다 지루해서 돌 위에 새겼던 말입니다 어딘가 처음 가보아도 언젠가 꼭 와서 살았던 곳 같습니다 내게 처음은 없지만 매 순간 처음처럼 화들짝 놀랍니다


당신이 왜 떠났는지 압니다 비애와 슬픔의 차이도 알고 저 모퉁이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왜 나한테 눈을 흘기고 가는지도 압니다 똑같은 일을 수십만 번 겪었으니까요 벽돌이 내게 온 이 상황에 대해서도 분개할 만한 일종의 흥미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건망증에 미달하는 기억력 때문에 나는 자신이 없습니다 카메라를 받기도 전에 선입금했고 또다시 사람을 믿었습니다 다행히 내 기억은 내 영혼의 약을 쳐야 기어 나오는 벌레 같아서 마치 없는 것처럼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것입니다



김이듬/빈티지 소울







서너 달이나 되어 전화한 내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할 때 나는 밥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 밥 앞에서 보란 듯이 밥에게 밀린 인간이 된다 그래서 정말 밥이나 먹자고 만났을 때 우리는 난생처음 밖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처럼 무얼 먹을 것인가 숭고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결국에는 보리밥 같은 것이나 앞에 두고 정말 밥 먹으러 나온 사람들처럼 묵묵히 입속으로 밥을 밀어 넣을 때 나는 자꾸 밥이 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밥을 혀 속에 숨기고 웃어 보이는 것인데 그건 죽어도 밥에게 밀리기 싫어서기 때문 우리 앞에 휴전선처럼 놓인 밥상을 치우면 어떨까 우연히 밥을 먹고 만난 우리는 먼산바라기로 자꾸만 헛기침하고 왜 우리는 밥상이 가로놓여야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너와 나 사이 더운밥 냄새가 후광처럼 드리워져야 왜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가 으깨지고 바숴진 음식 냄새가 공중에서 섞여야 그제서야 후끈 달아오르는가 왜 단도직입이 없고 워밍업이 필요한가 오늘은 내가 밥공기를 박박 긁으며 네게 말한다 언제 한번 또 밥이나 먹자고




문성해/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겨울이 새의 둥지를 허무는 것을 보았다 고요해서, 아프지 않았다 고요해서 아름다운, 멸망ㅡ잊기 전에 잊힐 것 같았다

겨울이 내 손에서 낯선 계절을 읽었다, 겨울의 토요일

나는 손금의 길 하나를 알려주었다, 겨울의 적령기

새의 울음은 깨문 자국처럼 떠다녔다

아프지 않냐고? 물으면, 상처처럼 벌어져 있는 게 시간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눈보라, 겨울의 드레스 축포처럼 태양

새들이 날아올랐다 그때, 나무가 겨울의 신부라는 것을 알았다 겨울 앞에서만 옷을 벗는 울음이라는 난파선, 검은 상처

나무의 둥지는 어디입니까? 눈이 내렸다 나무는 오직 발자국 하나를 직으며 서 있지만, 그 발자국 끝내 메우며 죽는다는 것ㅡ눈보라


잊어라, 멸망하듯

그때 이렇게 말했다,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뻗어나간 겨울의 해안선을 보았다

오직 겨울의 모래 알갱이로 눈을 씻는, 허공에 부서진 벌집의 고요함으로


허물어지고 있었다

아프지 않았다



신용목/드레스






가도 가도 눈이었다. 당신은 나를 영원히 바라보았다. 나는 언덕을 오르다 돌을 줍기도 했다. 주운 돌을 주머니에 넣고 가도 가도 눈이었다.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기도 했다. 숲 속에서 검은 잎을 줍고 가도 가도 눈이었다. 강에 나가 오리를 셌다. 노랑턱멧새를 만나기도 했다. 당신은 참 좋다고 했다. 당신은 미안하다고 했다. 가도 가도 눈이었다. 가도 가도 눈이었다.


나는 당신의 계단을 오른다.



이준규/계단






갑판에 쓰러져 누워 검붉은 닻이 내게 말했네,

진흙에 안겨 몸부림쳤으나 그의 심장 소리 참 아름다웠다, 고



강은교/닻







《 제 5 9 회 현 대 문 학 상 수 상 소 감 : 허연 : 너와 함께 있겠다 》



의사가 내린 처방은 얼마간의 입원과 장기적인 약물치료 그리고 ‘시를 잠시 쉴 것’이었다. 담당의사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내 시 몇 편을 읽은 게 화근이었다. 의학박사 눈에는 내 시가 사람을 병들게 하는 원인 물진쯤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진료실 복도를 걸어 나오며 나는 많이 웃었다. 더 흥미로운 건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의 반응이었다. “당분간 입원해야 하고 오랫동안 약 먹으면 좋아질 거래. 그리고 시는 쓰지 말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족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불행 중 다행’이라는 의사표시를 했다. 그중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 그 역할을 대신해온 누님의 반응이 압권이었다. “그래 시 같은 거 쓰지 마라. 그까짓 것 뭐라고…….” 누님은 국문학 전공자였다. 신부님이 되었어야 할 나를 시의 늪에 빠뜨린 조력자이기도 했다. 나는 누님의 책장에 꽂혀 있던 고대문명의 입석들 같은 책을 꺼내 읽으며 문하에 전염되었다. 누님은 내가 최초로 만난 문우이자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런 누님의 입에서 시는 ‘그까짓 것’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병원에 실려 온 동생을 보고 얼마나 놀랐으면 그랬을까. 어쨌든 얼떨결에 시가 원흉이 되어버린 상황이 벌어졌고, 이 해프닝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실소가 나오는 기묘한 알레고리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렇다. 나는 ‘그까짓 것’에 긴 시간을 파묻었다. 예외없이 시를 얻음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를 치렀다. 잃어야 할 것을 잃었고,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했으며, 저주받아야 할 만큼 저주받았다. 하지만 ‘그까짓 것’으로부터 말하는 법, 미워하는 법,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시로 인해 넘어졌고, 시로 일어났다. 그리고 더 슬픈 건 이제 도망치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수상작에 포함된 작품들 중 대부분이 의사로부터 시를 쓰지 말라고 어이없고 애정 어린 처방을 받은 다음에 쓴 것들이다. 그 무렵 물기 많은 눈이 자주 내렸다. 창밖 나무에는 직박구리가 아침마다 와서 울었고, 기쁨과 슬픔은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멀리서 무개화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신생아처럼 누워 매일매일 아주 긴 음악을 들었다. 시가 무슨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은 적은 없었다. 시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시인이라는 호칭이 자랑스럽기보다는 민망한 적이 더 많았다. 그저 살면서 나는 시를 만났고, 시는 나를 만났다. 우리가 언제까지 밀월을 이어갈지 아니면 체머리를 흔들며 헤어질지, 나도 시도 결말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나는 시를 쓰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숙주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불행하고 가끔 행복하다.


오랜 시간 내 괴팍함에 눈을 감아준 가족과 직장 선후배, 친구 들에게 고맙다. 자주 표현은 못하지만 늘 미안해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더불어 내 시를 찾아 읽어준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현대문학』에 가슴 뭉클한 감사를 드린다.

상을 받는다는 게 또 다른 업보가 될 걸 안다. 도망치지 않겠다.









1월말, 오십 미터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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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오혜린 | 작성시간 16.01.28 우와 뭔가 새로운 느낌이야 배경음악도 좋고... 고마워!
  • 답댓글 작성자오십 미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1.28 고마워 고마워 ♡
  • 작성자나는 괜찮아질거야 | 작성시간 16.09.18 너무 좋아 ㅠㅠㅠㅠㅠ쓸 수 있는 짧은 글들은 옮겨젔었어 여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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