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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문화생활]]시험공부하기 싫어서 올리는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기억나는 구절들 -1

작성자파리크라상|작성시간16.11.30|조회수1,770 목록 댓글 5













출처: 여성시대 파리크라상



작년에 책 엄청 많이 읽는 오빠의 추천으로 읽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2011년 맨부커상 수상작 사실 맨부커상 이때 첨들어봄..

근데 이책이 너무 재밌어서 다른 수상작도 읽어보려고 했는데 지루해서 때려침..

사실 이책도 처음엔 꽤 지루한데

중반 넘어가고 사건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진짜 추리소설만큼 흡인력있었어

마지막엔 진짜 숨못쉬고 있었을 정도.. .과장 ㅈㅅ..숨은 쉼..


소설 원제는 The Sense of and Ending인데 책을 읽으면 반어적 표현이라는 걸 알수있고

번역된 제목이 훨 좋은거같아!!

작년에 읽은거라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아무튼 엄청 재밌었고, 공감되는 말이 많아서 적어놨는데

역시 또 이렇게 시험기간에 글을 올리게 되네..ㅎㅎㅎ

암튼 셤공부하는 여시들, 회사다니느라 힘든 여시들, 취준하는 여시들

자기 전에 책 구절 읽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길 바라...♥(구구절절 ㅈㅅ..)

(적어놓은게 좀 많아서 두번에 걸쳐서 올릴게!)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p.12







그렇다. 당연히 우리는 허세덩어리였다. 달리 청춘이겠는가. 우리는 '벨탄샤웅'이니 '슈투름 운트 트랑'이니 하는 용어를 즐겨 썼고, '그건 철학적으로 자명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상상력의 첫 번째 의무는 위반하는 것이라고 서로에게 다짐하듯 확언했다. p.23

*벨샨타옹(Weltanschauung)은 '세계관'을 뜻하는 독일 철학용어이며, 슈투름 운트 트랑(Sturm und Drang)은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뜻의 독일 낭만주의 문학운동이다.







"언뜻 생각하기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역사란 무엇인가, 라고 말이지. 뭐 생각나는 것 있나, 웹스터?"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 내 대답은 좀 빠르다 싶게 튀어나왔다.

"그래, 안 그래도 자네가 그렇게 말할까봐 걱정을 좀 했는데. 그게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는 것 기억하고 있나, 심슨?"

콜린은 나보다 더 잘 준비된 답변을 했다. "역사는 생 양파 샌드위치입니다. 선생님."

"어떤 이유로?"

"죽자고 반복하니까요, 선생님. 우리는 이제껏 역사가 트림하는 것을 보고 또 보았고, 올해에도 또 보고 있습니다. 폭정과 폭동, 전쟁과 평화, 번영과 빈곤 사이를 오가는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와 천편일률적인 동요뿐이죠."

"그걸 샌드위치 속에 다 넣기엔 좀 많지 않은가 싶은데?"

우리는 학년 말 특유의 신경증에 의존해 과하게 웃어댔다.

"핀?"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p.33







우리 대부분에게 첫사랑의 경험은, 비록 좋게 끝나지 않는다 해도-어쩌면 그럴 때 더더욱-삶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삶의 권리를 지지하는 실체가 이곳에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그후 세월이 흐르면서 그 생각도 변할지 모르는 일이고, 우리 중 누군가는 급기야 아예 단념해 버린다 해도, 사랑과 맞닥뜨린 그 첫 순간과 같은 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동의하는가? p.94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p.101







생이 저물어가는 무렵이 되면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안 그런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랬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덕을 쌓은 만큼 상을 주는게 인생의 소관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다. p.105







앞을 내다보고, 그러고 나서 그 미래로부터 과거를 돌아보는 자신을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감정을 익히는 것. 예를 들면, 우리의 삶을 지켜봐온 사람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인간됨과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명해줄 것도 줄어들고, 결국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듦을 깨닫게 되는 것. p. 105







그러나 현저히 기계적으로 변한 내 기억력은 확실한 사실로 여겨지는 데이터를 약간의 변형과 함께 무한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과거를 직시했다. 기다렸다. 기억의 경로를 다른 쪽으로 돌려보려고 했다. 소용없었다. p.115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유순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잘 살았다고 상을 주는 게 인생이란 것의 소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생이 저물어갈 때 우리에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할 의무도 없는 것 아닌가. 생의 진화론적 목적 중에 향수라는 감정이 종사할 만한 부분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p.144







배우면 배울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학문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실질적으로 이해한다는 맥락에서 '배우는' 것이다. p.145







5.4 축적의 문제. 만약 삶이 판돈이라면, 그런 내기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경마장을 예로 들면, 축적이란 한 마리의 말이 거둔 상금을 다음번 경마에 거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p.149







이따금씩 나는 자살에 이르는 절망이 무언지 상상해보려 했었고, 죽음만이 한 줄기 빛처럼 여겨지는 암흑의 수렁과 늪, 즉 삶의 정상적인 상태와 정반대인 상황을 구상해보려고 했다.p.151







어느새 나는 내 인생과 에이드리언의 인생을 비교하고 있었다. 윤리적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에 대해, 자살을 감행한 정신적, 육체적 용기에 대해. 한 구절로 표현하자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삶을 책임졌고, 그것을 지휘했으며, 온전히 포착했다. 그리고 놓아주었다. 우리-살아남은 우리-중에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p.153






사춘기가 끝나갈 무렵, 모험이라는 것에 대책없이 취했던 게 기억난다. 성인이 된 나 자신에 대해 이런저런 걸 상상했다. 어디를 갈 것이고, 이런 걸 하고, 저런 걸 발견하고, 그녀를 사랑하고, 또 다른 그녀, 또 다른 그녀, 또 다른 그녀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소설 속 인물들처럼 살 것이라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고. 어떤 소설처럼 살았는지는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오직 열정과 위험, 황홀경과 절망(이 있으나 그후에 더 크게 찾아오는 황홀경)뿐일 거라고. 그러나......'예술이 과장하는 삶의 보잘것없음'에 대해 이야기한 게 누구였나. 이십대 막바지의 어느 순간, 나는 나의 모험심이 졸아들어버린 지 오래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소년기에 꿈꾼 것 중 단 하나라도 실행에 옮길 날은 오지 않을 거였다. p. 161






마지막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



나의 삶엔 늘어남이 있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더하기만 있었을까.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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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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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잘나가는언니 | 작성시간 16.11.30 이거 초반엔 좀 지겨운데 끝으로 갈 수록 진짜 몰입도 대박이야
  • 작성자잘나가는언니 | 작성시간 16.11.30 이 책 읽은 후에는 역사는 승리자의 거짓말이다 이 말 들을때마다 혼자 멈칫해
  • 작성자헬로츄 | 작성시간 16.12.01 헐 책 꼭 읽어바야겠다ㅠㅠ고마워 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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