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원소술사간호사
생각을 해 보면 나는 연애 중이든 연애가 끝난 뒤든 항상 상대방을 미워했다 성격 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 했는데 이런 성격 때문인지 더 많이 좋아하는 입장에 줄곧 놓였고 자주 상대에게 화를 내곤 했었다 불같이 화낼 때도 있었고 삭힌다고 삭힌 게 꼭 다른 쪽으로 표출되어 꼭 감정을 상하는 일을 벌일 때도 있었다
을의 입장이었던 나는 상대가 너무 좋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속의 침착함, 냉정함, 평정은 이미 그 앞에서 사라져 버린지 오래였다 나는 가장 무방비한 상태가 되어 그에게 내 감정을 속속무책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감정에게 끌려다니곤 했다 감정선은 그의 손에 달려 있었기에 나는 자주 불안했다 내 감정선까지 쥔 그는 침착했고 여유 넘쳤다 전애인은 사람 자체가 여유가 넘쳤고 의도치 않게 내 감정까지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그를 나는 참 미워했다 그의 연락 앞에서 설렘과 놀람과 반가움과 걱정이 교차했고 연락 한 통에 사춘기 소녀처럼 떨려 하는 내가 짜증 났다 헤어지고 나서도 그는 별거 아닌 시덥잖은 일로 연락 해오곤 했다 그에게 나는 딱 그 정도 친구 사이였기 때문이다 연락 한 통에도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는데 그에겐 이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마침내 깨달았을 때의 기분은 형용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결국 또 나는 악역을 자처했고 다신 내게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또 미안하다고 했다 그 선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더 싫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는 또 미안하다고 하겠지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관심은 없지만 그 여름 합정역에서 만났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게 그는 항상 벅찬 사람이었다 여러모로 그랬다 그때 생각에 골몰하면 꼭 술이 마시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에게 전화하고 싶어진다
사랑에 관한 글을 읽을 때면 그에 대한 감정들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그 감정들은 아직도 나를 무력화시킨다 침대에 누운 채로 스크롤만 내리고 그러다 또 술 마시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가 스크롤만 내린다 글 쓰거나 술 마시거나 뭐든 해서 생각을 떨쳐내고 싶다고 곱씹으며 사랑은 나를 무력화시킨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하지 않는 게 합리적이긴 한데 사랑 없는 삶은 또 무슨 재미인가 싶고 술을 마시니까 역시 견딜 수 없게 쓸쓸하고 그가 보고 싶다
/ 제 비공개 블로그에 올린 글인데 술 마시니까 왠지 쓸쓸하고 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올리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