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에곤쉴레
가늘고 부드러운 당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다보면
이상하게 입술이 간질거렸답니다.
왜 손가락이 아니라 입술이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꾸만 저의 깊은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져서 였던가 싶습니다.
머리카락을 만지면 감기던 눈꺼풀도 예쁘고 짙은 까만 눈썹도 예쁘고 적당히 따뜻한 이마도 바람에 찹찹해진 볼도 그냥 자꾸 좋아서 손가락보다 입이 먼저 닿았으면 싶어서 그랬던가 싶습니다.
어떻게 한번 잘 참아볼까 손바닥에 땀이 슬쩍 난 일도 잦았는데 차마 부끄럽고 민망해 당신에게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글로 쓰는 지금도, 볼펜을 잡은 손이 자꾸 미끄러지는 것을, 밤을 지새어 고민하다 고백합니다.
매일 저는 꿈에서 당신을 껴안고 귓속말로 사랑한다고 속삭이다 깨어 일렁이는 마음을 진정 시킨다는 걸 당신에게 고백해볼까 합니다. 부끄러운 마음보다 큰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저는 오늘 밤 용기를 내어볼까 합니다. 당신을 만날때 두근거림은 부끄러움보다 설레임에 훨씬 가깝다는걸 그대에게 꼭 알려 주려 합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모두 담을 넉넉하고 깊은 마음으로 늘 귀하게 사랑하고 있으니 부디 나의 마음에서 편히 아름답게 살아주세요.
아름답다는 말이 참으로 흔한데 이렇게나 당신과 나에게 특별한 말이 될 수 있다는걸 덕분에 알게 되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도 나는 당신에게 고백할것 같으니 그대도 부디 꿈속에서 나의 고백을 듣길 바라봅니다.
1990 연애편지_진우
지쳤다고 말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울고싶다고 꺼내본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만두자고 소리쳐본지가 언제였는지 까마득 했다.
입밖으로 내면 사실이 되는 마법이 무서워서 였기도, 그 사실이 나무처럼 내 머릿속에서 커질까 염려해서 였기도 했다.
별이 많은 밤도, 셀 수 없는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날도
나는 지쳤었고
울고 싶은 날은 손에 꼽을 수도 없이 많았다.
그만 두자고 매시간 매순간 주기도문처럼 떠올렸더랬다.
사실이 되는 게 무서워서 그만두지 않았을 뿐
꼴이 보기 싫어 울지 않았을 뿐
쑤그러든 내 등짝이 안타까워 지치지 않았을 뿐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매시간 매초 나는 지쳤고 울었고 그만 두고 싶었다.
기절과 같은 지침_진우
새벽 –
고생 끝에 두시간 정도 잠을 잤을까 선명한 내 목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눈을 감으면 다시 악몽을 꿀 것 같아 눈을 감지 못했다.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잠이 들어보려 하다 글이나 쓸까 해서 나는 이내 몸을 일으켰다.
불을 켜고 커피를 마실까 하고 원두를 꺼내 들었다가 도로 넣고 차를 꺼냈다.
왜인지 커피를 마시면 아플 것 같았다.
담배는 다 태우고 없어 고민도 했다.
이것을 이유 삼아 밖에서 새벽 바람이라도 쐬면 이 기분이 정돈되지 않을까 싶었다.
난 이내 포기 하고 다시 침대에 기대어 앉아 노트북을 연다.
물 끓는 소리가 현실인 듯 해 조금 안심이 된다.
겨우 눈을 뜨고 나는 지난달부터 고장 난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구수한 둥굴레차 향을 맡으며 글을 쓴다.
이제 조금 더 마음도 정신도 현실로 돌아왔다.
침대 옆 거울 속 내 얼굴이 까칠하다, 몇일 째 햇빛을 받지 못한 탓도 있겠지
문득 나는 지난 날 이 시간을 유령처럼 배회하던 것이 생각난다.
숨소리와 타자 치는 소리만 날뿐
이 새벽을 반은 꿈에서 반은 새벽에서 보내고 있었더랬다.
괴로웠고 두려웠다.
대부분의 이들이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을 눈을 뜨고 앉아
한 일도 없이 아픈 등허리를 매만지며 잠 못 드는 나를 타박했다.
숨을 쉬는 것이 아마 그때 한 일중에 가장 고단한 일이었을 텐데
뭐가 그리 바빠야 한다고 타박했는지
마치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난 것만 같아 조금 애달팠다.
현실로 돌아온 내가 마주 할 일 없는 그때의 나를 만난 걸 보니
아직 나는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나 싶다.
새벽 _진우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통장에 남은 돈은 3천만원 남짓
사야하는 것들을 입안에서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았다.
폐차 직전의 낡디 낡은 작은 소형차
기름 조금
사진 찍기전 꾸밈비용
그리고 남은 돈이면 충분히 장례를 치를 수있을 것이다.
우선 아까워 입지 못했던 비싼 옷을 입었다.
연예인들이 간다는 샵에 들렀다. 딩동 하는 경쾌함과 맞게 내 발걸음도 가볍다.
-남자친구 결혼식에 가요 최대한 예쁘게 해주세요
-네 요즘 인터넷에 그 얘기가 퍼져서 그런지 그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직원은 짧게 웃으며 내 머리를 매만졌다.
속눈썹이란 것도 붙여보고 화장대의 조명 탓인지 나도 꽤나 예뻤다. 서비스로 네일도 해주셨다.
나는 예쁘고 단아한 한 사람이 되어 스튜디오로 향했다.
마음이 가벼웠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요즘 유행하는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은데 얼굴 중심으로요. 너무 포토샵은 안하고 싶고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어요.
사진은 일사천리로 찍었다.
미소가 예쁘세요 조금만 더 웃어볼까요 라는 말에 나는 지난 내 삶과 끝을 생각했다. 편안했다.
사진을 받아들고 나는 택시를 타고 낡은 주차장으로 갔다. 차는 미리 구입해 두었고 가는 길까지 충분할만큼 기름을 넣어두었다. 돌아올것은 뺐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 싶어서였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면 나중에 기가 막힐 누군가들을 생각해서 난 서점에서 지도를 사고 아주 조용하고 조용해서
느지막히 찾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혹 마음이 바뀌어도 돌아가지 못할 곳으로.
차를 세웠다. 수풀 깊은 그저 누군가 산책을 하다보면 찾을까 말까 할만한 곳이다. 가방에서 약을 꺼냈다.
두달정도 처방받은 약은 먹지 않았다. 수면제도 항우울제도 발작을 멈춰주는 약들도 모두 먹지 않았다.
가볍게 몇번을 나누어 털었다. 얼굴엔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가득 뿌린 손수건을 덮고 의자는 뒤로 저쳐져 누운 모양이 되었다.
조수석엔 내 주민등록증과 작은 USB만 있다. 그 작은 USB엔 내 장례를 가장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모든것을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남은 향수를 열어 조수석에 두었다.
마지막까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무지한 내가 할 수 있는 배려 였다.
괜챃지 않았다. 이렇게 살고 있는것이 단 하루도 편한 적이 없었다. 다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편해진다지만
단 하루도 괜찮은 날이 없었다.
내 머릿 속에서는 괜찮지 않다고 약도 먹어야 하고 고장이 나고 있다고 하루하루 외침을 묵인했다.
괜찮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그것이 어떤 기분인지 잊은지 오래였다.
그래서 그냥 살았다. 나를 외면한 체 내 주변에 집중했다. 난 좋은 사람이지만 나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나를 방치하고 썩어가는 모습을 흉보다 고인물을 두꺼운 유리병에 모두 다 담아 버렸다.
나는 없었다. 언젠가 이제 그만 살아도 괜찮을 것같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정말이었다. 이젠 그 유리병을 깨고 바닷물과 섞이거나 혹은 흙에 다 스며들어 없어져 버렸음 했다.
그렇게 조금씩 준비하다보니 힘이 났다.
마지막 원하는 바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에 힘이났다.
나는 마지막을 타인 혹은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한체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는 이렇게 이번 생은 내 마음대로 충만히 끝날것이다.
단지 걱정 되는것은 무섭다. 나만을 위한 나의 끝을 나 스스로 정했다는것
무제 _ 진우
나랑 다르게 바짝 올라간 속눈썹이 떨렸어요.이상하지 않아요 고작 속눈썹이 뭐라고 그렇게 떨렸을까. 평소 거울 속 내 속눈썹은 보지도 않는데 당신 속눈썹은 한올한올 돋보기로 보듯 자세히 보였어요. 그냥 그 한가닥에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렸답니다. 다른건 아니고 그냥 난 처음 본 그순간부터 다 좋았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얇은 입술도 주근깨도 올라붙은 속눈썹도 통통한 눈두덩이도 단정하게 깎은 손톱도 내 볼을 쓰다듬는 따뜻한 체온도 모든 순간이 영화가 되었어요. 우습지 않아요 나처럼 현실적인 사람이 영화라니, 바람에 날린 벚꽃잎이 내 속눈썹 위에 앉았을때 행운이 올거라 믿은 평생 잊지 못할 봄처럼, 35살의 첫 날 로맨틱하게 나에게로 당신이 다가왔다는걸, 난 그깟 속눈썹 한올에 당신에게 반했답니다. 아름답게 다가와줘서 감사합니다 내 사랑.
코끝이 간지러운 이유 _ 진우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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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에곤쉴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3.25 그건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뒀어 다를 수도 이어질 수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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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악마는브라자를입는ㄷr 작성시간 21.03.25 고마워 정말 잘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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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폴로11 작성시간 21.03.28 여시야 잘읽었어 나도 책인줄 알고 구글링 열심히 했는데 여시가 직접 쓴 글이였구나 너무 멋진 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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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내사랑하리보 작성시간 21.05.12 여시야! 글에 너무 감명받았오요 나중에 모아서 책서 두고두고 곱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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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보리쌀강쥐 작성시간 21.08.10 글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