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쓸데없는생각
사진출처 김강희 작가님
항상 해가 지고 나서야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계기는 있었지만 그는 아마 나중에서야 눈치 챘을 것이다. 내가 어둠에 감추고 싶었던 게 뭐였는지. 그날도 불을 켜선 안 됐지. 잠결에 무심코 스위치를 눌렀고 내 곁에는 아직 잠들지 않은 그가 있었다. 그리고 빛이 밝았음에도 여전히 내 손목에 남아있는 그림자. 붉은 흉터들을 보고 그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가만히 손을 들어 내 손목을 쓸어내리다 내가 손목을 쑥 빼버리자 빈 손으로 다시 등을 토닥여줬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몇 번의 숨이 왔다, 갔다. 그는 내 눈을 들여다보고 말했다. 너에겐 슬픈 나이테가 남았구나. 이유도 과정도 묻지 않고 드러난 손목을 덮어주듯 조심스러운 말이 왜 그렇게 못 견디게 좋았을까. 이젠 잘 울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그는 눈물을 닦아주는 대신 내 흉터를 세아리듯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내리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 순간 만큼은 그의 침묵이 사랑스러웠다. 내가 남긴 징그러운 나이테가 사랑스러웠다. 무덤덤한 그의 손길이 사랑스러웠다. 모두 지난 시간이지만 난 아직도 내 흉터에 그 날의 기억을 덧바르고 살아가. 모두가 가진 나이테가 나에겐 조금 다른 방법으로 남겨진 것 뿐이라는 그 말을 단물이 다 빠지도록 곱씹으며 살아가. 그래, 나 당신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
/나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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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민트초콜렛블랜디드 작성시간 21.05.18 와 이런 글 또 보고싶다 너무 좋은 글이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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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dwuquq 작성시간 21.05.19 제목보고 홀려서 들어왔네 글 너무 좋다 고마워 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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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리하고살자 작성시간 21.05.19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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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enry Nobley 작성시간 21.05.23 여시 글 보다가 가슴이 턱 막혀서 댓글을 안 쓸 수가 없었어..ㅠㅠ 어휘력이 딸려서 좋다는 말 말고는 해줄 수 있는 더한 표현이 없어서 슬프다..여시 글 진짜 좋아 앞으로도 많이 써 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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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쓸데없는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5.23 ㄱㅆ 으아 정말 고마워 여샤.. 취미로 쓰는 글일 뿐이지만 더 용기가 난다 좋은하루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