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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문화생활]]가난한 여인의 초상

작성자불에 절인 위스키|작성시간22.01.09|조회수5,147 목록 댓글 16

출처 : 여성시대 불에 절인 위스키

가끔은 내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생각에 빠진다. 내가 가난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많은 언어를 배웠을 것이고, 조금 더 많은 사람을 만났을 것이며, 더 좋은 퀄리티의 교육을 통해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으리라는. 하트 시그널이나 여느 연애 프로그램 같은 곳에 나와 어쩜 이리 완벽한 일반인이 있을 수 있냐는 뒷말을 들었으리라는. 그런 공상에 빠진다.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기에 나는 아까운 인재라고 생각했다. 마치 니키 리가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뉴욕에 작품이 실릴 정도로 엄청난 작가가 됐듯이, 나는 나또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꿈을 키워왔다. 6.25 전쟁에서 적군마저도 동네의 존재를 몰라 찾아오지 못했다는 이 작은 동네에서 나는 유독 특별하고 이상한 존재였다. 얼굴이 예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머리가 비상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백일장을 나갔다 하면 상을 휩쓸어 오고 ,학원을 다니지 않고 전교 1등을 줄곧 유지했다. 엄마에게는 학구열에 불탄 엄마들의 질문과 호기심이 쏟아졌다.

“어떻게 그렇게 애가 학원도 없이 공부를 해요?”
엄마들은 진심으로 그 비법을 궁금해했다. 그건 아이를 가난하게 키운다면 본인이 스스로 간절함에 공부를 하게 되는 일이랍니다. 나는 괘씸함에 그런 엄마들에게 똑같이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마치 본인이 그런 교육 철학을 가진 고급 엄마라도 된 듯 고상하게 답변을 하고는 했다.

“우리 애가 사교육은 본인이랑 맞지 않는다고 해서요. 결국 시험 문제는 선생님이 내는 거 아니냐면서..호호호. 그래서 우리는 학원을 안 보내고 애가 혼자 집에서 복습을 해요.”

사실은 다 거짓말이었다. 매일 학원을 보내달라고 떼썼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학원을 보내주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런 고상한 척은 정말이지 괘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돈 없어서 학원 안 보낸거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잖아.”
그럴 때마다 나는 돈은 없는데 고상해보이고 싶어하는 엄마가 너무나 미웠다. 학원 보내줄 돈도 없으면서 애를 왜 낳아? 멍청해. 어린 나이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학원비만 100만원이 넘게 들어간다는 친구들과 달리 우리 집은 전혀 학원 같은 걸 보내줄 형편이 되지 않았다.

“학원을 왜 가? 너 혼자서도 잘하잖아.”
학원을 보내달라는 나의 말에 엄마가 줄곧 해온 말은 바로 이런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은 분명 인간과 인간의 네트워크를 통한 어떠한 안정감, 내가 잘 나아가고 있다는 스승의 복돋움과 나 혼자로는 배울 수 없는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내게도 숙제가 있었으면, 학교가 끝나고 갈 공간이 있었으면. 내가 원했던 것은 그저 그런 것일 뿐이었다. 자연스레 학원을 가지 않는 아이들은 가난한 아이들이 전부였다. 가난한 집에 놀러가서 히피처럼 온 동네를 쏘다니며 노는 것을 본 엄마는 그제서야 날 학원에 보냈다. “네가 학원을 안 보내니 저런 애들이랑 노는구나.”
그렇게 내 목소리는 어떠한 상황을 직접 보여주어야만 통한다는 것을, 그때부터 깨달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한복을 입고 그 지역 대표로 미인 대회를 나가기도 했다. 그 동네 엄마들이 본인의 아들 신붓감으로 노리고 있던 사람은 나였다고 확신한다.

“은아는 얼굴도 예쁜데 똑똑하기까지 하네. 나중에 우리 아들한테 시집오면 되겠다.”

하하 호호 웃으면서 아줌마 어쩜 그런 소릴해요, 아들님이 더욱 잘났죠 하며 비위를 맞춰주었지만 집에 와서는 구역질을 내뱉었다. 그렇게 모자라고 못생긴 니네 집 아들한테 내가 왜 시집을 가서 인생을 망쳐요? 분수를 좀 알지. 라는 말을 휙 던져주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내 삶은 그렇게 연기하는 삶이었다. 정말이지 독특하다는 말로는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나였다. 자세히 들여다본 모나리자 그림 속에 알고보니 점이 하나 콕 박혀있었더라는, 그런 말이 어울리는 존재. 들여다보면 나는 그렇게 튀고 이상한 존재였다.
*
“은아는 어떤 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하고 있니?”

중학교 2학년, 내게 주어진 선택지란 그저 동네의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교무실에 갈 때마다 내게 쏟아지는 선생님들의 관심은 내게 다른 고등학교도 생각해 볼 꿈을 키우게 했다.

“은아는 외고를 가면 참 잘할 것 같은데.” 줄곧 국어와 영어 만점을 받아온 내게 선생님들은 외고를 진학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이대로만 하면 충분히 합격을 하고도 남을 것 같다고, 그러니 외고 진학을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집에 가서 쪼르르 엄마에게 외고에 진학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때 돌아온 엄마의 답변은 거지같은 답변이었다.

“우리가 돈이 어딨다고? 무슨 외고야.” 직장에서 돌아오면 TV를 보는 것이 전부였던 엄마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그 말을 내뱉었다. 차분하게 대화를 해보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내 이야기를 잘라버리는 것이 엄마의 취미라면 취미였다.

“작년에도 나 빼고 다들 뉴질랜드 갔는데. 그때도 100만원 없다고 뉴질랜드 안 보내줬잖아. 근데 지금도 돈 없다고 안 보내준다고? 엄마. 도대체 이럴거면 날 왜낳은거야? 뉴질랜드 보내줄 100만원이 도대체 왜 없어? 사람이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했으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결정적인 상황에 아이를 서포트 해줄 돈도 없으면서 도대체 왜 애를 낳은건데?”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성인이었으면 정말 몸을 팔아서라도 그 돈을 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슬픈 건 몸을 팔아서 얻고 싶은 것이 다른 것도 아니고 학력이었다는 것이다. 분명 돈이 있었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었다. 너무나 슬프지 않은가.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아 몸을 팔아서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다른 것도 아니고, 공부를. 차라리 멍청했다면 몰라도 가난한 집에서 똑똑하게 태어났다는 것은 정말이지 더욱 끔찍한 일이었다. 마치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지만 머리는 차가운 냉 바람 속에 내놓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부조화 된 채로 점점 조용히 미쳐가기 시작했다. *

춥고 어두운 우리 집에서는 그 어떠한 사고도 할 수 없이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기분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밤인지도 낮인지도 모를 어두운 방. 중학교 시절 사회 시간에 사람에게는 햇빛을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을 정도로 우리집은 항상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집이었구나.
‘이게 권리였구나..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이 건물에 가려지지 않는 높은 곳에 사는 거구나.’

어린 날의 나는 그렇게 다시금 우리집의 가난을 깨달았다. 잠에서 깨면 온기가 통하지 않는 방 속에서 밤새도록 차갑게 목을 적신 공기들이 마치 구멍 안에서 얼음이 되어버린 듯 내 목을 조르는 듯 했다.

“아- 아.”

아직 내 목이 쓸 만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얇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내 하루의 시작 루틴이었다. 내게 집은 감옥이자 한없이 내 목을 조르는 올가미. 마치 그런 것과도 같았다. 집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안정감이 피어오르는 집은 도대체 어느 가정인 것인가. 그런 집은 대체 어떤 인테리어가 있고 어떤 가족이 있는 것일까. 전혀 가부장적이지 않은 아빠와 매일 가계부를 적으며 돈에 쪼들리지 않는 엄마가 있는 걸까. 거실에 놓여있는 TV 한 대를 가지고 내 만화를 보겠다고 대들었다는 이유로 머리 한 대를 세게 때리는 아빠 따위는 없는 집인 것일까, 하는 생각에 빠지며 공연히 어떠한 상상 속에 젖어 들고는 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을 숨기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온 삶이었다. 돈이 없는 채로 부잣집 아이들과 똑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공부가 전부였다. 물론 그마저도 사교육으로 인해 미친듯이 격차를 따라가야 했지만, 적어도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던 삶이 바로 나의 삶이었다. 같은 돈을 주고 보세 새 옷을 살 돈으로 나는 감쪽같은 빈티지 명품을 사서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녔다. 어울렸던 친구들이 죄다 부잣집 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 아이들이 당연하게 매고 다니는 브랜드 가방을 나는 돈을 모으고 휴일에 식당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함으로써 얻어냈다.

“어머, 너도 이번에 가방 하나 샀구나. 정말 예쁘다.”

성적과 외모는 어느 정도 부와 연관이 되어있는 것일까. 그 아이들에 맞춰 성적과 외모가 다른 이들보다 뛰어났던 나는 자연스레 그 아이들에게 속한 집단으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과시는 결핍이라는 말. 어떤 상황에서는 적용되고 어떤 상황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적어도 그때 내 모습은 과시가 결핍이었다는 말이 분명히 맞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삶이 너무 초라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가난한 티가 나는 것이 죽도록 싫었고 그래서 더욱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어떻게든 티내지 않기 위해. 더욱, 필사적으로. 그렇게 나는 내 결핍을 숨기는 것에는 달인이 되어있었다.

*
온 힘을 다해 가난을 회피하려고 한 나의 삶은 남성을 고르는 기준에도 적용이 되었다. 나에게 관심을 보여오는 남자 중 조금이라도 가난한 낌새를 보이는 남자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관계의 선을 그어버렸다. 돈이 없다고? 그럼 내가 너를 왜 만나? 내게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가난한 남자를 만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남자에게 함부로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있었다. 웃기고 하찮았던 모습은 내 이런 매정한 모습에 그들이 더욱 매달리고 애타하는 모습이었다. 매력이 있다나. 그런 가난한 사랑들은 받아봤자 별 의미없는 사랑에 불과했다.

한번은 대학 시절 남자친구가 생긴 적이 있었다. 클래식 음악 동아리에서 만난 재민은 미국의 아이비리그 중 한 곳을 다닌다고 했다. 지금은 잠깐 부모님의 사업을 배우기 위해 들어온 것이며, 너무 일상이 무료한 차에 친구의 소개를 통해 클래식 음악 동아리를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재민과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졌다. 우리 둘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가장 좋아했으니 자연스레 모차르트의 음악을 담은 오케스트라를 보러가게 된 짝꿍이 되었다. 오케스트라를 본 뒤 와인을 마시며, 그 날 나는 재민에게 고백을 받았다. 미국에 가는 일 때문에 고민했던 고백이지만 진심으로 너를 좋아한다고. 우리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나는 너를 너무 좋아한다고.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재민은 항상 내가 커다란 사업체의 회장 딸이라도 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있지, 넌 너무 세련됐어. 또래 여자애들보다 훨씬. 네 목소리는 마치.. 포브스 잡지에 나올 것 같다니까. 쓰는 향수도 말린 장미향이 진하게 나는 니치 향수잖아. 마릴린 먼로가 한국인으로 환생했다면 너같은 사람일거야. 진짜로. 그런데 부모님 뭐하신다고?”

그는 내게 완전히 매료된 목소리로 그런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 한 쪽이 쿡쿡 쑤시는 기분이었다. 사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반반한 얼굴과 독서나 영화, 전시를 좋아하는 취향. 뭐 그런 것 밖에 없는데 말이야. 네 눈엔 내가 그렇게 세련된 모습으로 보이구나. 어쩌면 내가 제일 바라는 모습은 재민의 삶이었다. 훔칠 수 있다면 온 힘을 다해 재민의 삶을 훔치고 싶었다, 가끔은 나조차도 무서워지는 나의 모습에 재민이를 보고 돌아가는 날이면 참을 수 없는 좌절과 절망을 느꼈다. 나에게 재민이는 그만큼 동경의 존재이자 애정의 존재.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런 것을 결코 티를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모님은 그냥 사업하셔. 큰 사업은 아니고, 모니터 파는 회사. 공장이 파주에 위치해있어. ”

친척 언니의 남자친구는 모니터 회사의 사장이었다. 사업은 점차 확장되는 중이었으며 둘의 관계는 말하자면, 스폰서와도 같은 관계였다. 하지만 스폰서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진실되고 오래된 관계였고, 그건 무언가 함부로 말하기 힘든 기이한 관계가 맞았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스폰서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관계. 말 그대로 스폰서와도 ‘같은’ 관계. 아마도 언니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고지식하고 애 딸린 이혼남의 여자친구가 될 일은, 결코 없었을 일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언니에게 집을 사주고 차를 사줬다. 언니는 그렇게 단숨에 부잣집 사모님같이 엄청난 명품백 컬렉션을 가진, 세련된 여성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왔다. 내가 재민이에게 한 거짓말은 사실 친척 언니의 삶을 가져다가 몰래 팔아 넘긴 거짓말이었다. 20살 차이가 나는 언니는 내게 항상 ‘가끔 너무 힘들 때면 내가 너의 엄마라고 생각을 하렴.’이라는 말을 하며 용돈을 주고는 했는데,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언니를 내 엄마인 것처럼 만들겠다고. 세련되고 돈 많은 언니의 모습이 우리 엄마의 모습이었으면 했고 나는 내 스스로에게 그렇게 최면을 걸었다. 이게 우리 엄마야. 우리 엄마라고.


재민이 나를 데려다 줄 때는 필사적으로 우리 집을 감추었다. 재민이와 즐기는 고급진 시간들을 결코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고, 우리 집이 어디인지를 들키는 순간 그것은 곧 재민과의 관계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재민은 우리집 같이 가난한 집은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을 강남에서부터만 자라 왔다는 네가 뭘 알겠어. 재민이 방학 때마다 해외로 나가 온 나라의 박물관을 다닐 때 내가 가는 곳은 동네 조그만 도서관이 전부였다. 재민이 캐나다로 떠났다는 열다섯 시절의 나는 돈이 없어서 영어 학원과 수학 학원을 번갈아 다니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정말로 집구석이 싫었고 하루하루 생을 마감하고 싶은 기분을, 매일 같이 느꼈다.

“너희 아파트에도 골프치는 공간이 있네?”


재민이 나를 데려다 준 날, 재민은 내 가짜 아파트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버지도 골프치시지? 언제 한번 우리 부모님이랑 같이 골프치러 가면 참 좋겠다. ”

마치 자신이 보고 자라온 환경은 당연히 골프를 치는 가정이니 우리 가정도 그럴 것이라는 말. 재민의 확신은 너무도 당연해서 아무런 말도 뱉을 수 없었다. 너무나 부유하게 자라온 재민이 뱉는 말들은 내게 여러모로 충격을 주는 말들이었다. 왜 유학을 가지 않았느냐는 말, 나중에 정착을 하게 된다면 어느 나라에 살고 싶냐는 말. 그런 말들에 나는 천역덕스럽고 세련되게 대처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

“있지,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서 유학을 가는 건..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어. 아직 자아가 덜 성립된 나이이기도 하잖아. 혹시나 잘못된 생각을 한다면, 그건 슬프잖아. 그래서 나는 유학을 안 갔어.”


“어떤 나라? 모르겠어. 우선 나는 대학원을 외국으로 진학하고 싶거든. 그래서.. 고민이야. 대학원이 결정된다면 자연스레 나라도 결정되지 않겠어?”

내게는 유학을 갈 돈도, 대학원을 갈 돈도 없었다. 안 간게 아니라 못 간거면서. 나는 그렇게 그가 고정시켜둔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로 세련되게 답했다. 사실 마음 속에는 어떻게든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나 같은 사람은 아무도 모르고 그동안 내가 해온 거짓말들이 전부 치부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남몰래 품어오고 있었다. 난 그런 것은 일절 티내지 않고 그저 고맙다는 조용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은, 이미 충분히 그 동네를 살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부자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했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가 좀 별로지? 그래도 우리 아파트는 괜찮아. 럭셔리한 편이지. “

그때의 나는 이미 천역덕스럽게 뱀같은 거짓말을 내뱉는 것에는 달인이 되어있었다.
*
재민이 미국으로 떠나고 난 뒤 만나게 된 포토 그래퍼는 돈이 많았다. 기이할 정도로 그 나이에 맞는 깊이가 없는 천진난만함은 그의 부유한 집안으로부터 비롯된 성격이었다. 너무도 천진난만하게 고급 브랜드 아파트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는 그는 명확한 직업도 없이 본인을 ‘언젠가는 포토그래퍼가 될 사람’이라 칭하며 예술을 했다. 그가 입는 옷과 끄는 차도 모두 비싼 것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겉장식들이 그의 가벼움을 가려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없이 비싸고 가격표는 무거운 옷들을 입는 그였지만 그가 틀리는 맞춤법과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듯한 본능적인 말들은 그를 한없이, 한없이 가볍게 만들고는 했다. 가끔은 그와 재민이를 비교하며 놀라기도 했다. 어떻게 이러지? 둘 다 똑같이 부유한 집인데 왜 한 쪽은 이렇게 철이 없고 한 쪽은 철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훗날 내가 더욱이 학문을 깊이 배우게 된다면 진지하게 탐구하고 싶은 주제와도 같았다. 도대체 어떤 가정 환경과 교육이 아이를 철있는 모습으로 성장 시키고 철없는 모습으로 성장 시키는지. 미안한 말이지만 내게 있어 남자들은 그런 실험 도구나 신기한 탐구 대상에 더욱 가깝게 느껴졌고, 그게 사랑이었는지는,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

그가 나를 좋아했던 이유는 역시나 본인에게 없는 깊이와 어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깊이가 있어요? 정말 사연있는 사람 마냥...”

으응. 그건 정말 내가 진짜 사연이 있기 때문이란다, 라는 말을 이제 막 호감을 가지고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기는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골프를 치고 해외 여행을 하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동안 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일밖에 할 수 없었거든. 언젠가 한 건축가가 가난한 집일수록 집안에 처박혀 비생산적인 활동을 한다고 하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그 말을 보고 정말 박수를 치며 동의했다. 가난하지 않다면 밖에 나가서 돈을 마구 쓸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기분을 나아지게 만든다. 처음으로 새로 산 내 니치 향수가 하루종일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듯이. 그나마 세련된 카페에라도 앉아있으면 내가 정말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으니까.



“카페 값이 아깝지도 않니?” 학기 중 아르바이트로 부지런히 모아둔 돈을 가지고 매일 같이 책을 들고 카페로 출근하는 나에게 엄마는 매일같이 카페가는 돈이 아깝지도 않냐는 말을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도대체 카페 값이 얼마나 한다고 그 돈을 아까워 하는 엄마의 50년 삶이 안쓰러워지고, 내가 나가고 싶어서 집을 나가겠냐고, 햇빛도 온기도 없는 집에서 내가 왜 소중한 하루를 보내야 겠냐는 말이 마구마구 튀어나왔지만 결국 고르고 골라 가장 단순하고도 모난 말이 튀어 나왔다.

“엄마 같으면 이런 집에 하루종일 있고 싶겠어?”

그렇게 나는 매일 같이 집을 나와 다시금 내 삶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저건 분명 정신병이 맞다는 말을 하며 혀를 쯧쯧찼다. 하지만 어떠한가. 정신병이 걸려도 나혼자 행복하다면야 그것도 괜찮은 삶이 아니겠는가. 내가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고 그저 당당히 내 하루를 보낼 공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오히려 무언가를 진짜로 가진 사람들은 별 티를 내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바보라는 말은 내가 진짜로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별 타격이 없다. 하지만 돈이 없다거나 가난하다는 말을 사실이기에 커다란 상처가 된다. 돈 많은 사람들은 별 상처받을 일이 없다. 누군가 거지라고 놀려도 집으로 돌아가면 부를 증명하는 세련되고 럭셔리한 삶이 있으니 그런 말에는 그저 가볍게 웃으며 넘길 뿐이다. 어느 날은 이런 거짓말과 모든 연기가 너무 힘들어 모든 관계를 모두 다 그만두어 버리고 싶었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내 세련된 모습과 지적인 모습들은 사실은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이루어낸 것이라고. 어쩌면 우리 집이 돈이 많은 집이었다면 난 매일 골프나 치고 해외 여행이나 다니며 철부지로 자랐을지도 모른다고. 돈이 없었기에 어떻게든 깨어있는 시간을 달래기 위해 집요하게 책을 읽었고, 영화를 보았고, 무료인 전시를 보았던 것은 내 스스로의 가난한 삶을 잊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고.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좋아했던 내 세련된 모습이 결국은 가난해서 만들어진 모습이라는 것이, 나를 너무나 슬프게 했다. 정말 슬픈 일이었다. 어느 친구를 만나도 우리 집이 제일 가난했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했고 그래서 더 비참했다. 수없이 연기해온 나의 삶. 있지 우리 집은 가난해. 그래서 매일같이 돈 때문에 싸우고 커피 값으로 하루 기분이 좌지우지 되는 삶을 살아. 집에 가면 엄마가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다는 말을 달고 살고 아빠는 술 취해서 욕만 퍼붓는 집에 살아. 이런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어 난 사이코처럼 연기하는 삶을 살았다. 내 삶 자체가 비참한 흑백 영화인 것이 분명했다. 그랬다. 어쩌면 모든 행복은 돈으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몰라. 어렸을 때 내가 깨달은 명확한 진실 하나는 바로 그것이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불행하다는 진부한 말은 분명 명확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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