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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문화생활]]넌 내게 동경이자 사랑이었어

작성자불에 절인 위스키|작성시간22.03.21|조회수2,881 목록 댓글 6

출처 : 여성시대 불에 절인 위스키

그러니까 A. 너는 스스로를 너무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지. 자존감이 낮아서 사실은 매일 나를 보러 오는 길이 고통스러웠다고. 혹시나 너의 낮은 자존감이 나를 해치지는 않을까, 내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작아지는 네 모습이 싫었다고. 하지만 내가 말했잖아. 뭐가 됐든 내가 너에게 사랑에 빠진 이유는, 변하지 않는 부동의 것들 때문이었다고. 난 너의 순수함이 좋았어. 내 눈을 보고 떨려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던 그 모습이. 고개가 다 꺾여도 모자랄 만큼 높은 아파트를 보고 언젠가 저기 맨 꼭대기층에 너랑 살 수 있게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모습이.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전공을 택했으면서 나를 위해서라면 다시 전공을 바꿀 수도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모습이. 그 모든 모습들이 참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슬펐어. 왜냐면 너는 곧 떠나니까. 그리고 우리는 헤어지게 될테니까. 이별을 예감하면서도 그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했던 우리의 모습이 참 애틋해. 너는 캐나다로 갔지만 아직도 나는 가끔 그때를 떠올리고는 해.

내 편지를 받은 날. 네가 펑펑 울며 다시는 이런거 쓰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나? 내가 편지를 써줄때마다 우느라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잖아. 그 말을 듣고 어쩜 이런 웃기는 애가 있나, 싶으면서도 사랑스러웠고. 할 수 있다면 매일 편지를 써서 울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왜냐면 네 미래는 중요하니까. 그리고 네 미래를 함부로 망칠 수도 없었으니까. 네가 잘 사는 게 내 행복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널 사랑했거든. 나를 떠나더라도 잘 살았으면, 아프지 않았으면. 그게 내 마지막 인사이자 너에 대한 최선의 마음이었어.

A. 잘 지내고 있니? 어느덧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어. 나는 종종 너를 생각해.뭐가 됐든 내가 말해주고 싶었던 건 이거 하나야. 오히려 너는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어. 언젠가 네가 해맑게 썰매를 타는 영상을 올린 적이 있고 난 그걸 보고 펑펑 울었어. 그때 외롭고 외로운 싸움 속 네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견뎌냈을지 알아서. 영리하고 똑똑했던 너지만 그곳에서는 모든게 낯설고 힘들었잖아. 언젠가 네가 처음으로 캐나다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너의 모습을 상상했어. 지금보다 더 작았을 너의 모습을. 그 때 너는 이름도 모르는 음악가를 안다고 해맑게 웃으면서 친구를 만들었잖니. 사실은 몰랐는데. 모든 게 무섭고 두려웠을 작은 네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조금은 애틋해. 지금 너는 테임 임팔라의 음악을 듣는 멋진 사람이 되었잖니. 사실은 아직도, 나는 종종 너의 플레이 리스트를 들여다봐. 아직도 연동되어 있는 우리 플레이스트 속에서. 언젠가 네가 많은 사람들이 듣는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만들거라 말했고 난 그럴 수 있을거라는 응원을 했잖니. 푸른 빛 칵테일이 통, 하고 터지는 그 압구정 바에서 너는 내게 이상형을 물었고 나는 울면서. 결핍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를 했지. 그때 네가 그 대화에 영감을 얻어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사실은 자주 들었어. 우리가 같이 만들었던 플레이리스트가 그대로 남아있는 걸 보고 한참을 울기도 했어.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멀어졌지? 그냥 죽은 사람 처럼 연락 하나 보낼 수가 없어. 왜냐면. 그래야 하니까.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나는 네가 듣는 음악들을 참 좋아했어. 나만 아는 책방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이 수화기 너머 너의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걸 알았을 때. 내 마음 속에서는 작게 불꽃 놀이가 펼쳐졌어. 어떻게 얘는 이 노래를 알았지? 이건 나만 아는건데. 운명이라는 생각. 앞으로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위험하면서도 이상한 감정이었어.

아직도 우리 집 창문 옆에는 네가 사준 그림이 고스란히 있어. 함께 들었던 음악도, 네가 사준 영양제도. A. 난 너를 알게 되고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어. 누군가의 단점까지도 사랑할 수 있겠다 느낀 건 처음인 감정이었어. 네가 손이 다쳤다고 했을 때, 나는 네가 영원토록 손이 다쳐도 대신 손이 되어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그정도로 나는, 나는. 네가 좋았어. 물론 이제는 그렇게 함부로 감정을 표현할 수도 없이 멀어졌지만 A, 너는 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야. 그냥 그걸 말해주고 싶었어. 물론 이 편지는 전해지지 않겠지만. 혹여나 다음에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다시는 널 못난 사람이라 생각하지마. 알았지? 넌 내게 동경이자 사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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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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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구영 | 작성시간 22.03.21 좋다...너무 좋은 글이다..
  • 작성자방안에 시계시계 | 작성시간 22.03.22 직접 쓴 글이야? 너무 좋다 ㅠㅠ
  • 답댓글 작성자불에 절인 위스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3.22 웅 ! 고마워잉 🤍
  • 작성자SMILEY | 작성시간 22.03.23 여시 글 너무 좋다
  • 작성자팜트리 | 작성시간 22.04.12 여시야 잘 읽었어 마음이 물렁물렁 촉촉해진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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