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뚜벅이에서 진화한 1종 보통 운전자
숙소 : 혼자 여행으로 준수한 게스트하우스 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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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게스트하우스 소풍
5만원, 주차하기 편하며 황룡사터 근처,
사장님이 매우 친절, 조식 코로나로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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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바다소리 게스트하우스
8만원, 해돋이를 볼 수 있으나
외풍이 매우매우 심함, 조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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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목화여관
4만원, 바닥이 들끓을 정도로 따뜻하고
사회적 조합운영으로 지역 할머님들이 일하셔서 갔으나.. 위생이 좀.. 네.. 조식은 집밥이라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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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트: 3박 4일 운전거리 1,026km
수원-경주-감포-포항-영덕-울진-삼척-태백-제천
정월대보름 액운 날리기 기념으로 7번 국도 여행 완😎
시작은 경주역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본 것이었다.
내 기억 경주역은
아직도 할매 할배들이 보따리를 이고 걸어가며
전국의 여행자들이 신라의 달밤에 매료되어 이내 도착할 수 밖에 없는 곳🌙
처음 경주역에 내렸던 때를 떠올리며
경주에 도착했다.
첫 번째 도착지는
선덕여왕릉.
선덕여왕은 이상하게도
허구의 인물인 것처럼 느껴진다.
미디어의 각인은 너무나 강렬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경주를 많이 왔음에도
이곳을 처음 걷고 있었다.
좁은 길로 스님이 스타렉스를 몰며 지나가셨다.🚍
이정표는 이것 하나.
정말 여기에 있다고?하며 걸어갈 때 쯤
삼릉숲보다는 조금 더 작은 소나무숲이 나왔다.
대한민국의 관광지는 계단이 많아서
무릎이 성하기 전에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
소나무와 문화재를 해치지 않고 경사로를 만들어
모두의 통행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나가는 한 가족들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함께 온 아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발 뒷꿈치를 통통 튀기며 내려갔다.
그 모습이 소나무 아래 부엽토에서 피어나는
고사리의 꼬부라짐처럼 연하고 귀했다.🌱
진덕왕의 장녀였던 선덕여왕
소담하고 아기 뒤통수처럼 볼록한 능선
거대하지만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것이 조금 기이했다.
다시 한 차례 계절이 우수수 떨어질 무렵이었다.🍂
9인승 차를 운전하며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차가 커서 그런지 길막하는 차들도 없고🔥
여긴 게스트하우스 소풍.
있을 것만 있고
주차장이 넓다. 사장님이 친절하셨고
화장실과 청소상태, 침구가 깨끗했다.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경주에 오면 집밥 먹듯 가는
대릉원 근처 태국식당에 왔다.
처음 이 식당이 경주에 생겼을 때는
여기가 제일 낯설게 보이는 곳이었는데 ㅎㅎ
지금은
그 근방 거리가 이곳을 제외하고
모든 게 변한 것 같았다.
먹었으면 운동을 해서
소화를 촉진해야하는 나이가 되었고🤣
열심히 두 다리를 굴려
자전거를 타고서 첨성대에 왔다.
첨성대 앞 벤치에 앉아
정월대보름 첨성대에 올라가
달을 보는 상상을 했다.
경주에 사는 강석경 작가의 책 제목처럼
나는 신라, 서라벌이 품고 있는 ‘이 고도를 사랑한다’.
감상도 잠시,
해가 지기 전 가야할 곳이 있다.
지난 봄 경주 황룡사터엘 꼭 가보고 싶어
거길 갔었습니다
종달샌지 공중으로 떠오르다가 가라앉고
떠오르다가 가라앉고
주춧돌들 나란히 나란히 무릎 꼭 오그리고 제자리 앉았는 자리마다
하늘도 그 주춧돌의 하늘로서 하나씩 서 있었습니다
주춧돌 하나하나마다 앉아서 한 시간쯤씩
아니 하루쯤씩 앉아 있어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허공을 오르락거리는 새들은
한평생씩 앉았다 가라는 것 같았지만
그만 내 가진 목숨이란 게 그걸 못하게 하고는 재촉하는 바람에 그냥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어느 생에서는 꼭 그 주춧돌 위에
자정 넘긴 하루씩은 세워보고 싶은데
어디에 무슨 숨으로 기원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이승은 다 갈 것 같습니다
귀에 맴도는 종달새들 소리만 몇 남겨서
저승까지 굴러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경주 황룡사터 생각, 장석남
한 아이가 신나게 황룡사터
주춧돌 위를 뛰어 다녔다.
겁도 없이, 천진하게.
그 순간 나는 삶과 죽음의 한 가운데에 서있었다.
두 다리를 굴려
바퀴를 움직이고 경주로 간다.
황남동이 아닌 경주를 보고 싶어졌다.
주민들이 하천을 따라 운동을 하고
퇴근 시간에 맞추어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동네처럼.
나는 왜 지금껏 여길 와 볼 생각을 못했을까?
해가 지기 시작하니
바람이 탈룰라급으로 추워지기 시작했다.
잠깐 커피 마시며 몸을 녹일 곳을 찾다가
금관총 근처 타로집에 들어왔다.
타로 카드 한 장을 뒤집었을 때
무표정한 점술사는 내게
슬픔의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와 같다고
영원히 나의 바위를 향해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계절이
동쪽에서 왔다가 서쪽으로 가고
새들이 남쪽과 북쪽으로 집을 옮겨 다녀도
바위는 나의 운명보다 강할 거라고,
그때 나는
별조차 아무런 이유 없이 떨어지는 곳
내가 불시착한 이 생에서
슬픔의 대문자로 이름을 썼다
슬픔은 마음에서만큼이나 가슴에서
몸에서만큼이나 삶에서
나를 베는 연장이 되어
구르는 바위와 나 사이
무엇을 세워도 슬픔을 이기는 튼튼한 벽이 되지 않았다
웃고 그리워하고 싶은 보잘것없는 저녁과
내가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있는 줄 몰랐던 하루를
내게서 영원히 가져간 건 누구인지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바위에게로
돌아가고 돌아가고 또 돌아가게 하는 건 무엇인지
눈물 하나하나가 바위처럼 굴러떨어지는 밤
신의 유머 같은 내 운명의 타로 카드에
나는 슬픔을 섞지 않은 빛깔로 몇 번이고 덧칠을 했다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 이운진
타로 해석은 순조로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을 밀고 나아가는 힘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불안을 덜었다.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며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영화 경주 속 신민아와 박해일이
저 위 능선에 앉아 있을 것 같았다.
아~ 신라의 달밤이이여
숙소 근처 카페에 와서
다정한 시집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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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진짜 좋은 시집이니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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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여성학과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선생님이
미셸 슬라이더를 소개하는 칼럼을 쓰신 걸 보았는데
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754491.html?_fr=tw#cb
거기서 이 문장을 본 순간
혼자임이 두렵지 않아졌다.
“혼자인 것과 함께 혼자여야 한다
alone with the alone..”
“현대인에게 외로움은 큰 숙제다. “외로움=혼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지만 사람들은 타인을 찾는다. 대개는 더 외로워진다. 자아는 작아지고 외부에 의존하게 된다. 후회스러운 경우가 많다(“괜히 만났다”). 외로움은 타인과 나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나의 관계다. 자신이 몰두하는 대상이 몸이 부끄러울 만큼 아름다울 때 인간은 외롭지 않다(“미천한 저의 사랑을 받아주세요”). 예술, 공부, 사회운동, 정치, 자연이 그런 대상이 아닐까.”
4시간 30분의 운전과
8km의 자전거 타기 후 뜨거운 물 샤워는 극락..
거의 뭐 매타몽이 되어 뜨개질을 하다 잠에 들었다.
중간에 깼는데
단단이가 헛소리를 해서 너무 힘들었음
면역력을 위해 가져온 배즙도 먹어주고
오은영 박사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귀엽고 앙칼진 시고르자브종 🐶
저 학교에 있는 아동청소년은
경주에서 살게 될까
아니면, 서울로 가게 될까
나는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떤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아침
숙소 근처 일찍 여는 중식집에 왔다.
자장면이 엄청 저렴했다.
한 술 뜨려는데
할배가 들어와서 정월대보름인데
나물을 못먹었다며 나물밥없냐고
진상짓이..ㅎ
다 먹었다 싹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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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곳의 튀김은 얇고 바스라지는 식감이고
튀김끼리 뭉쳐서 고기인 척 하긴 하는데
기름이 깨끗해서 괜찮았다.
하루 종일 운전만 할 것이기 때문에
무.족.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했다😋
솔거 미술관에 도착
포스터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아쉬웠던.
자유로움
솔거 미술관에서 메인으로 걸어 둔 전시
압도적이었다
딴말 이지만, 정말 추운 겨울에 영월 산자락을 보면
왜 수묵화로 경치를 그렸는지 알 수 있다.
기암절벽과 수묵화는 최고야..
차가 없어서 못오던 시절의 한을 풀고 갔다.
뚜벅이 시절 버스를 타고 1시간 넘게 걸렸던
감은사지에 여유로운 도착.
버스를 타고 오면
할매와 할배들의 알아 들을 수 없는
경상도 사투리를 듣는 재미가 있었는데
역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나보다.
난 감은사지터의 군더더기 없이
훤칠한 이 두 탑을 좋아한다.
“문무왕은 해변에 절을 세워 불력으로 왜구를 격퇴시키려 하였으나, 절을 완공하기 전에 위독하게 되었다. 문무왕은 승려 지의(智義)에게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킬 것”을 유언하고 죽자 이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안장하였으며,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감은사라 하였다.
그 때 금당(金堂) 아래에 용혈을 파서 화룡(化龍)한 문무왕이 해류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682년신문왕은 동해의 호국룡이 된 문무왕과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아들로 태어난 김유신(金庾信)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보물인 신비스러운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었다.”
가족은 뭘까…,,,,
https://m.cafe.daum.net/subdued20club/Lp0T/146343331?svc=cafeapp
감은사지 앞이 모두 바다였던 이야기! 윗글 참고😉
감은사지를 나와
본격적으로 해변 국도를 향해 달렸다.
멈추고 싶은 순간이 생기면
멈추고 쉬어 가기도 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해가 지면 위험할 수도 있고
숙소에 가서 쉬고도 싶고
내가 멈출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싶고.
결국 차를 멈추고 바다 앞에 서있으니
곧 다른 차들도 이따금 멈추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차에서 내려왔을 때는
와 바다다 멋있네~ 등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아, 조금은 힘을 풀고
천천히 가도 되겠구나 그런 여행이 되겠구나.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잠깐 멈추는 거지.
동해안을 따라서 종일 운전을 해보니
정말 비어있는 장소가 많았다.
그 공간에 고등학교 졸업 후 또는
학교 밖 청소년 중 갭이어를 가지는 청소년이나
대학교 휴학을 한 청년들이 와서 쉬고
상담도 받고 운동도 하고 지역 봉사도 하는
그런 센터를 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에는 이제 목이 좋은 자리를 보았을 때
대형 카페가 아닌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
해안도로 근처에 주차 후
상생의 손으로 걸어 갔다.
그러자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가 흘러 나왔다.
야상을 휘날리며.. 엄청 아련해졌지 뭐야..
2022년은 임인년이라해서
한반도 호랑이 꼬리 지점인 포항도 들렸다.
영덕에 도착하니
온갖 대게조형물이 널려있었고
숙소 근처에서
2000년대 감성이 약간 남아 있는
카페를 발견했다.
난 정말.. 2006~2009년대 감수성이 좋다..
낭만화 된 것이기도 한데,,,
리처드 막스 같은 어쿠스틱이나
클래지 콰이, 이소라, 컨트리 음악..
하트 모양의 라떼 아트,,, 등,,,
절절한하고 잔잔한 보이스와 가사까지,,☺️
그덕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정월 대보름, 동해 달빛이 바다의 살결 하나하나에 스며든다. 나는 아스팔트 바닥을 밟고 서있었지만, 아가미로 숨쉬는 듯이 호흡이 다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숨길 수도 참을 수도 없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압도적인 자연의 숭고함이었다. 그럴 때마다 짜라가 되어 좋다. 삶이여, 그렇다면 다시 한 번!을 외치게 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는 순간 인간성은 희미해 진다. 사는 거 별거 없다. 그저 다시 한 번.. 또 다시 한 번의 의지로 이 생을 재차 밀며 나아가는 것이다.
-2/24일 일기
숙소에 돌아와서 씻은 뒤
미리 신청해 두었던 페미니즘 북토크를 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여성주의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을 영덕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외풍이 심한 숙소였는데
바로 바다가 보였고
해돋이에 욕심을 내지 않는 편이지만
어쩐 일인지 눈이 절로 뜨였다.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sam smith 들으며 누워있었는데
영원이라는 순간이 도착한 것 같았다.
숙소 카페 앞 대게 조형물
간단한 아침 산책 후 다시 짐을 꾸려 나왔다.
천게라면을 먹으러 왔다. 천개는 대게와 홍게 사이 사이즈의 게라고 했던가 그랬다.
아침 치고 거대하긴 했지만 쑥쑥 들어갔다. 라면은 신라면인 듯 했다.
그런데 양산에서 온 아재 여섯 명의 자아가 너무 비대해서 불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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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라면집 사장님은 정말 내 바로 앞에서
가위로 요길 자르고 저길 자르고 계속 내가 먹는 모습을 보면서 알려주신다..
약간,,, 사장님이 눈 앞에서 싹 다 알려드립니다! 체험 느낌이다🤣
영덕을 떠나기 전 다시 들린 카페.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바다를 봄, 내 마음의 봄…
요 말줄임표가 포인트다…💙
울진 삼척 방향으로 가는 중
해녀마을도 지나고,
언덕으로 올라오니 보이는 특이한 등대
누가 봐도 영덕에 있는 등대다.
7번 국도의 다른 이름은
아시안 하이웨이(Asian Highway)이다.
부산→(동해안 7번 국도 등)→강릉→
원산→러시아(하산)→중국→카자흐스탄
→러시아까지 이어지는 아시아의 실크로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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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달리면서 바닷가에 인접한 거대한 원전들,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을 낮고 작은 집,
분명 아이들이 서성였을 작은 개천,
재생 에너지에는 관심도 없는
선거철 대선 후보의 기름진 현수막,
돈은 서울로 가고! 폐기물은 지방이냐!
꾹꾹 눌러 담은 궁서체의 글씨들,
영덕에서 퍼지는 산불 냄새와
사지 경련으로 보이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야생 동물의 사체를 보았다.
운전 중엔 눈을 질끈 감을 수가 없다.
모든 걸 다 봐야만 한다.
이 나라의 사회적 습성, 그 모든 것을.
운전 실력은 많이 늘어서 기름 덜 먹이고 잘 달렸는데
그 여정은 괴로웠다. -2/16일 일기
이 길이 정말 실크로드가 되면
자주적인 독립적인 국가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삼척 맹방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여성주의가 남녀의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고 사랑을 반대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은 틀렸다. 나는 여성주의야말로 사랑을 향한 투쟁이며, 사랑을 죽이는 가부장제의 해독제라고 생각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굴종을 요구하고 오만 가지 방법으로 인간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방식으로는 어떤 인간도 해방될 수 없다. 다른 인간에게 굴종을 요구하는 인간마저도 말이다.”
- 당신의 평화, 최은영 작가노트 中
페미니즘은 조개줍기가 아니라 거대한 파도다.
거스를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밥은 카페에서 사다 둔 크루아상으로 때우며
영덕 울진을 지나 삼척에서 내륙 방향으로
500km정도 운전하고 나니 강원도 태백이었고
더이상 바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곧 한국에서 제일 높은 기차역에 도착했다.
사실 화장실에 가기 위함이었던 것도 있는데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커피 한 잔 내어드렸을 텐데요.
죄송합니다. 사진 많이 찍으시고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역무원님께서 너무 친절하셨잖아..
땅이고 산이고 바다고 알고 나면
너무 다 애잔하다. 다 사람들이 머물던 곳. 살기 위해.
마지막 도착지인 제천에 도착했다.
태백에서 약 1시간 조금 넘었던 것 같다.
평화와 안보, 전쟁 연구에 관심이 생겨서
비행장에 와 보았다.
현재 이곳은 제천 시민들의 산책로이기도 하고
보이그룹의 뮤직비디오 촬영지이기도 했다.
노래를 찾아보았는데 개인적으로
꿈, 희망, 전진, 전진 이라는 가사를 좋아한다.
그런데.. 제베리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제천은 고지가 높아서 미친듯이 추웠다.
따뜻한 탄수화물로 몸을 채우고 싶어
화덕피자집으로 거의 울며 달려갔다.
비행장이라 바람막이 건물도 없어서
순식간에 동태 되는 줄,,
오늘의 스프 음~ 베리굿
버섯 스프였다.
스테이크 피자 반 먹고 반 포장! 맛있었다.
일단 빵이 제대로 된 거 같음.
밀가루 먹으면 위산이 역류해야 하는데 안 하더라..
어느새 섭취 후 몸 상태로
맛집 평가하는 나이가 되었넴..🤣
배를 두드리며
도착한 숙소 창문 밖
지글지글 바닥이 들끓어서
먹고 바로 눕기 딱이었다..
면역을 위해 또 섭취 ㅋ
광고 아님다 ㅋ
뒹굴뒹굴 추전역에서 찍어 온 스탬프를 노려보다가
역무원 선생님이 생각나 적어 본 be kind.
이방인을 대하는 친절한 태도가
태백을 떠올리면 항상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혼자서 나흘을 운전만 하니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내가 델마와 루이스가 된 것 같고 그랬다.
운전을 통해 도착한 낯선 환경과
그곳에 반응하는 나의 감각들, 매 순간의 선택들, 선택의 책임들.
그 모든 것을 감당해내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변화와 선택에 대한 나의 감각을 수용해냄으로써
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탈피하는 갑각류처럼, 변화는 나의 몫이다.
제천에 오면 꼭 사고 싶었던
명인 선생님의 빗자루.
일본에서 이 빗자루를 가져다가 팔려고
엄청 노력했다는데
한사코 거절하셨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본 적 있다.
명인의 뒤를 이을 수제자도 계셨지만,
그 맥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선물할 빗자루 몇 개를 구매했다.
잘 쓸어내고 닦아내자
우리네 인생!
참새들이 쪼아 먹던 열매
꽁꽁 얼어버린 의림지
용마랜드 운영 버전 같았던 의림지 파크랜드
너네도 춥지
의림지 파크랜드 앞 포토존에서 한 컷
조식을 배불리 먹은 후
의림지 다음 코스로 도착한
티카페 차센.
책 읽기에 좋았다.
닭강정이 먹고 싶어서
유명하다고 하는 닭강정집에 갔는데
위생이 저세상이었다.,,❌❌
맛은 있음,,,,
열심히 달려
여행의 끝이라는 느낌도 없이
도착한 덕평휴게소 상행선.
집에 도착하기 전 근처 호수를 보러 왔다.
앞으로도 삶은 계속 될 거라는 생각을
충분히 톺아보기 위해서.
-
"마음은 침실이 두 칸 있는 집입니다. 한 쪽 방에는 근심이 살고 한 쪽 방에는 기쁨이 삽니다.
인간은 그렇게 큰 소리로 웃어서는 안 됩니다. 큰 소리로 웃으면 옆 방에 있는 근심을 깨우게 됩니다."
-
"그러면 기쁨은? 소리가 큰 근심이 기쁨을 깨웁니까?"
"아닙니다. 기쁨은 귀가 먹었습니다. 기쁨은 옆 방의 근심을 듣지 못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
"옳은 말이에요. 그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마치 기쁜 것처럼 행복하죠.
사람들은 만족의 밀랍으로 귀를 막아요. 예를 들면 나처럼 말이에요.
나는 즐거움 뒤에서 사라지기 위해서 즐거운 척하죠. 내 웃음은 콘크리트 벽이에요."
-
"누구에게 대항하는 벽인가요?"
"물론 나 자신이죠."
"그렇지만 그 벽은 외부 세계를 향한 것이겠죠."라고 나는 말했다.
"그 벽은 외부에 대한 방어죠."
그런데 그는 이 견해에 단호하게 맞섰다.
-
"바로 그거예요! 실제로 방어란 퇴각하는 것, 숨는 것이죠. 따라서 세계를 붙잡는 것은 언제나 내부를 붙잡는 것이죠. 왜냐하면 내부와 외부는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죠. 내부와 외부가 서로 떨어지면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하나의 비밀에 대한 두가지 견해가 남게 되죠. 그런데 우리는 이 비밀을 감수할 뿐, 결코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없어요."
프란츠 카프카
대학 시절, 7번 국도를 생각하면
청춘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청춘에서 약간 기울어진 나이가 되어
7번 국도에 왔을 때
무엇이 청춘인가, 나는 청춘인가?
이분법적인 청춘의 구분보다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보였다.
경주역의 운행은 중단되었지만
신라의 시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고
그 시간 속을 타인과 내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더이상 기차가 지나지 않는 길목에서
이제는 내가 소속될 수 없음을 말하는
사회의 호명으로부터
“새로운 입구를 발견하고 전형적인 삶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은 여전히 꽤 괜찮은 일이고 생각만큼 두려운 일이 아니다." - 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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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 속에서
나와 나의 관계 속에서
살면서 한 번쯤,
7번 국도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단자아 작성시간 23.02.05 와 정말 물 흐르듯이 깔끔하게 읽혀진다. 멋있다 여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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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수플레팬케잌먹고싶다 작성시간 23.02.26 여샤ㅑ 여행에세이 해도 되겠다... 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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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밥싸줘 작성시간 23.05.29 혼자 여행 검색하다가 홀려들어와서 정독했어 글 너무 좋다 잘봤어 여시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항상 행복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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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행복해Libon 작성시간 23.12.05 태백 연어 하다가 왔는데 여시 글이 너무 좋아서 끝까지 읽었다..좋은글 고마워 여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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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퇴사하고싶다구요 작성시간 24.04.11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