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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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잘 안 돼.
항상 사랑은 어려웠다.
머리가 굵어지고 부모님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면서 더욱.
어쩌면 오래 앓았던 우울로 내가 아닌 타인에게 몰두하는 법을 잊었을 수도 있겠다.
나와 완전히 다른 타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리가 없어.
백번 양보해서, 누군가의 일부를 사랑함으로써 다른 결점을 흐리게 만든다는 것도 잘 와닿지 않았다.
오래 만난 연인에게 마침내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었을 때조차, 내 입에서 나온 단어와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의 무게를 비교하게 되는 못된 마음.
사랑에 대한 기대치와 환상이 너무 큰건지.
그럼에도 사랑 가득히 살기로 한다.
나른한 주말 오후 고양이와 함께 하는 낮잠, 아끼는 사람과의 저녁식사, 어제보다 선선해진 가을 바람, 나의 웃음에 같이 웃어주는 손님들.
별사탕처럼 아주 작고 조금 달콤한 일상의 조각들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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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두가지 수단, 말과 글.
인간에게는 하기 어려운 말을 고양이에게 매일 몰래 연습중. 사랑해, 사랑해 내 고양이야.
대답없이 듣기만 하는 사랑스러운 생명체는 가장 완벽한 연습 상대.
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편지를 했겠지요.
낭만이 부족한 요즘 시대에는 망설임 없이 소리내 고백하기를 바람.
언어의 발화는 주문과도 같아서, 감정을 입으로 뱉는 순간 모양을 가지게 되어버리고.
머릿속 생각보다야 튀어나온 단어들의 무게가 훨씬 무거운 것은 당연한 사실.
글은 남고 말은 증발하겠지만 증발 뒤 남은 결정을 들여다보며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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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정신을 차리면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을 때가 많다.
깊은 물에 잠수한 듯, 꼬르륵.
나는 전생에 아마 물고기였을까.
바다가 없는 도시에 사는 건 어쩐지 외로워서, 사람 가득한 서울살이도 울적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었지.
결국 다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물천지임에도 어딜 가나 다른 모습을 보이는 그, 예쁘기도, 신비롭기도, 포악하기도, 허무하기도 한 바다.
그럴때면 저 넓은 것과 주제 넘는 동질감이 생겨버리곤 했다.
한숨을 깊게 들이켜 쪼그라든 허파를 부풀리면 아름답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파도가 내 가슴께에서 찰랑거리고.
명치에 손을 대면 심장 뛰는 소리가 아닌 우우웅 바다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소라껍데기에 귀를 댄 듯, 가만히.
그러나 일상은 또 구름과 같이 흘러가기에 넓은 바다를 좁은 가슴에 묻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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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힘껏 웃을 때면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눈꼬리는 아래로.
퉁명스럽게 주문하던 손님도 감사합니다, 웃으며 나가고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던 분은 언젠가부터 매번 간식거리를 사오신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손님은 내가 없을 때 사장님께 그 직원이 참 친절하더라 칭찬하셨고 번역기로 번거로운 대화를 나눴던 이름모를 나라의 외국인 손님은 나를 유일하게 아가씨가 아닌 훌륭한 바리스타라고 불러주었다.
그저 웃어주었을 뿐인데, 이런 작은 기적들을 받을 수 있다는게 거짓말 같잖아.
세상살이가 이렇게나 단순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게 억울하잖아.
정말 모를 배신감과 허무함.
그럼에도 가슴 중간이 따끈따끈해진다.
너무 뜨겁지 않은 그 온도에 코 끝이 시큰하지만 또 입꼬리는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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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거나 죽이고 싶었던 날들이 지났다.
존재자체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었던.
죽고 싶었던게 아니라 이렇게 살기 싫었던 거였을까?
평범한 하루 보내길, 누군가 건넨 작별인사를 곱씹어 꿀꺽 삼킨다.
부쩍 사랑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된 요즘.
사랑의 또다른 이름은 ‘그럼에도’ 가 아닐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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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무명객 작성시간 24.09.28 헐 무슨책인가 하고 출처봤는데 여시가 쓴거였네..?? 너무 좋다 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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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쏘햅삐잇우드비순 작성시간 24.09.28 고마워 위로가 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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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illooooo 작성시간 24.09.29 고마워 잘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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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마루는으르르릉 작성시간 24.09.29 고마워 잘읽었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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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웃자우읏자 작성시간 24.10.07 와 너무좋다 특히 별사탕처럼 달콤한 일상의 조각들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구절이 제일 눈에 들어왔어 어떻게 이런생각을 할수있는지!! 너무좋다 잘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