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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할매의 속삭임

[사람][스압] 검정고시 학원 다닐때 겪었던 기이한 썰

작성자복대지씨|작성시간21.09.01|조회수9,767 목록 댓글 25

 
출처 : http://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5/read/30565927



나는 고등학교를 2학년 때 그만뒀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거고 또 하나는 좋아하는 여자가 고등학교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를 좋아해서...


각설하고,

독산동 근방의 이모집에서 기생하면서 노량진 검정고시학원을 다녔었다.
오전엔 검정고시학원 가서 공부하고, 오후부터 밤까진 주유소에서 기름 넣고.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어.

나는 어쩌다 보니 조금 늦게 들어가서 학생반도 아니고 성인반도 아닌 뭔가 애매한 반으로 들어가게 됐어.

검정고시가 매년 4월이랑 8월에 있는데, 생각이 없는 건지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꼭 중간에 접수를 하는 인간들이 있어. 나처럼.



내가 들어간 반에는 나랑 비슷한 10대 꼴통들을 비롯해서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가 엄청나게 다양했는데,

그중에 30대 중반의 한 누나가 있었어.

10대들은 그 누나를 대모라고 불렀어. 그냥 그랬어. 누나라고 하긴 뭣하고 이모는 더더욱 뭣하고.
50대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어린애들 간식이나 그런 것들을 평소에 살뜰하게 챙겨주셔서 그분 부터 시작해서 애들이 이사람 저사람 다 대모님, 대모님 했었거든.

여하튼 이 누나는 미용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었어. 검정고시 공부와 병행하고 있었던 거야.
같은 반 모든 학생이 알고 있었어. 쉬는 시간마다, 점심 시간마다 학생들 붙잡고 자기 얘길 했거든.

안경을 썼고, 머리는 긴 편이었는데 항상 하나로 묶고 다녔어.
'미용사 공부를 하는 사람이면 린스도 하고 좀 머리 관리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만큼 머리가 푸석푸석했었던게 기억에 남아.

아무튼 대체적으로 살가운 성격이었어. 모두와 원만히 지냈는데 나는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어.

때때로 학생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눌 때가 있잖아. 밥을 먹을 때나 간식을 먹을 때나.
누나가 이야기에 열중할 때면 눈이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는 때가 종종 있었어.
좌우의 눈이 완전히 따로따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주 얇은 은테 안경 너머에서 양쪽 눈알이 제각각 돌면서 막 목소리를 높일 때는 뭐라고 해야 할까,
일단 무섭진 않았다. 학원이었고 학생들 십수 명이 함께 있는 교실 안이었으니까.

그냥 좀 이상한 사람이구나, 어딘가 부족한 모양이다, 그런 생각은 했어.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검정고시 학원 많이 오기도 해. 학습장애 내지 비슷한 문제들 때문에.
그냥 눈이 좀 안좋은 사람이겠거니 했지.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야.
모의고사는 아니고 아무튼 검정고시 학원에서 그 비슷한 시험을 치는 날이 있었어.
시험치는 날은 일찍 끝나서 점심을 먹으려고 교실을 나오고 있었다.

같이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학원을 다니는 친구도 있었는데 이날은 결석했어.
나는 혼자 밥 먹고 피시방에서 시간 좀 때우다가 주유소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누나가 갑자기 와서 말하는 거야. 자기랑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사준다고.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두 가지 이유로 수락했어.
첫째, 나는 알바를 하고 있었어도 굉장히 돈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둘째, 얼마전에 누나가 요약노트를 보여줘서 그걸 다 베껴서 쉽게 시험을 봤거든.

그래서 알았다고 했지. 꽁밥 먹여준다는데 뭐가 문제야.



학원을 나왔는데 갑자기 택시를 잡고는 나더러 타라는 거야.
난 순간, '어? 왜요?' 했어. 근데 누나가 빨리 타라고 재촉을 하더라. 뒤쪽에서 차들이 크랙션 빵빵 울리는데 안 타고 멀거니 서 있기도 뭣해서 일단 탔어. 그리고 생각했지. 누나가 좀 근방에 어디 식당 가나 보다 하고.



차는 계속 달려서 신길동 끄트머리까지 갔어.
신길동은 노량진에서 대방 지나서 가야하는 곳인데, 대충 택시로 10분 조금 넘게 걸렸어.

택시는 한 허름한 빌라 앞에서 멈췄어. 누나가 요금을 내고 나랑 같이 내렸지.
내가 물어봤어. 여기 어디냐고.
누나는 대답했지. 자기 집이라고.

나는 좀 어이가 없었어. 밥 먹자더니 왜 집까지 데려왔냐고 물었지.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더라고. 집에서 밥해먹으면 돈도 안들고 좋지 않냐고.
그리고 자기가 미용사 자격증 공부해서 머리도 잘 자르는데, 네 머리가 좀 지저분하니까 잘라주겠다고.

그러면서 내 팔을 잡아끌고 집으로 데리고 갔어.

누나의 집은 1층이었는데,
문간에 서서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어. 거실 한가운데에 다른 두 명이 앉아 있었거든.

누나의 어머니로 보이는 60대 초중반의 할머니랑,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랑 나란히 소파 앞 바닥에 앉아 있더라고.

'엄마, 나 학원 동생이랑 밥 먹으려고 데려왔어. 너도 인사해. 우리 엄마랑 내 남동생이야.'

남동생이란 사람은 날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어.
그리고 누나의 엄마란 분은 내게 고개를 아주 천천히 두어 번 끄덕여 보이시더니 아들을 따라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더라.

누나가 나한테 말했어. 신발 벗고 들어오라고.
그 말에 따라서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섰어. 누나가 자기 방을 가리키며 들어가 있으라고 하더라고.

거실을 지나치면 벽과 붙은 작은 주방이 있고, 정면에 화장실이 있고 그 오른쪽이 누나의 방이었어. 그리로 향하는 내내 등골에 소름이 확 끼치는 거야.

정말 이상하게 느낀 부분이, 거실엔 텔레비전이 없었어. 근데 누나의 엄마와 남동생이란 사람은 소파앞 바닥에 앉아서 멀거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야.

대체 왜 저러고 있을까.
어쩐지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도 사람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아서 뭔가 이상한 느낌은 있었는데.
나란히 앉아서 대화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멍하니 정면만 보고 있는 거 자체가...

뭔가 기분이 굉장히 불쾌한 상태에서 누나 방에 들어갔어. 누나 방의 첫인상은 그냥 지저분했어.

방문 옆엔 붙박이장이 있고 침대 없이 바닥 위에 깐 이부자리가 있었어. 이부자리에 누웠을 때 발이 가는 쪽, 창문이 있는 쪽으로 책상이 있는데, 책상 위에는 마네킹 머리가 3개 있었어. 미용연습할 때 쓰는 그런 거 있잖아.

3개중 하나는 완전히 대머리였고,
나머지 2개는 미용 문외한인 내가 봐도 못잘랐다 싶을 정도로 들쑥날쑥한 머리를 하고 있었어.

곧 누나가 커피를 가지고 들어왔어.
나보고 커피 한 잔 하라면서 주는데, 컵이 더러웠어. 끝에 고추가루 같은 것도 묻어 있었고.

난 덜 더러운 쪽으로 입을 대고 마시면서,
빨리 이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



밥 먹고 싶은 마음은 진작에 사라졌지만 난 그때 18살이었고 다른 사람 심기를 거스르기가 힘들었어.
위험을 느낀 순간에도 이 누나랑 가족들이 나 때문에 기분나빠질까봐 그게 걱정됐던 거 같아.

나는 방에 멀거니 앉아서 기다리고 있고,
누나는 주방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뭘 만드는데 좀 있다보니 대화소리가 들리는 거야.



"엄마, 밥 없어."
"어, 없어."
"학원 동생 밥 해주기로 했는데."
"없는데..."
"XX야(남동생 이름), 밥이 없는데."
"없더라."
"어떡해?"
"그러게..."
"어쩌지?"
"어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이런 식이었어.

조금 이따 누나가 방에 들어오더니 나한테 말하는 거야. 미안한데 밥이 없다고. 라면이라도 먹으면 안되겠냐고.

난 이 집에 들어온 뒤부터 계속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고 빨리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덮어놓고 상관없다고 했어. 아니 오히려 라면을 좋아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갑자기 누나가 엄청 어색한 웃음을 빼물고는 말하는 거야.

"라면 사게 돈 좀..."

그 순간 돈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기분이 좆같아졌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너무 이상하고 기분나빠서 가끔 꿈에도 저 누나 얼굴이 나와.

아무튼 주머니 뒤적여보니까 3000원인가 있었어. 그거 누나 다 줬지. 누나는 자기가 가지 않고 자기 동생을 시키더라. 라면 사오라고.

남동생이 3000원 받아가지고 라면 사러 나가고 나는 또다시 멀거니 앉아 있었어. 그러다 지금 그냥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난 진짜 어리고 깡도 없었다. 들어오지도 말았으면 될 걸 가지고.


근데.




싹둑.


이런 병신 같은 의성어로 표현한 걸 이해해줘.
진짜 내 귀에 저런 소리가 들렸단 말이야.
한참 생각에 빠져 있는데, 이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말이야.

식겁해서 뒤를 돌아보니까, 누나가 왼손에 커다란 막대 자, 오른손에 가위를 들고 웃고 있더라.
가위 끝에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걸려 있었어. 당연히 그건 내 머리카락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벌컥 화를 냈어.

지금 뭐하시는 거냐고. 갑자기 뒷머리를 왜 자르냐고.

진짜로 화가 나기도 했지만 사실은 무서워서 그랬던 것 같다. 소리라도 버럭 지르지 않으면 뭔가 당할 거 같은 그런 본능적인 위협을 느꼈던 건지.


근데 누나가 그 즉시 눈알이 따로따로 돌기 시작하는 거야. 위에서 학원에서 학생들이랑 대화할 때 이야기에 열중하면 종종 눈이 돌아간다고 했잖아.

누나가 침을 튀겨가며 '그렇게까지 화를 내면 이 누나가 뭐가 돼! 너 생각해서 머리 좀 잘라주려고 하는 건데 왜 그렇게 화를 내!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걸로 화를 내고 그래!'

이런 식이었어... 더 이상 다른 논리는 없었다.
막무가내로 내 머리를 자른 데에 대한 사과는 하나도 없이(이것도 이후 내가 회상하면서 깨달은 거고 그 당시엔 정신이 없었지만),

내가 뭐라고 했을까.
죄송하다고 했다.
진짜 그냥... 죄송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의 어깨 너머로 반쯤 열린 누나 방 문 밖을 보는데 방문 바로 앞에 라면을 사러 갔던 남동생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더라고.

내가 처음 눈 마주친 다음엔 눈을 피했어. 근데 계속 보는 시선이 느껴지니까 다시 쳐다봤거든.

그러니까 남동생이 손에 든 검정 봉지를 들어보였어. 라면 사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내가 누나한테 말했지.

"누나, 저기, 라면 사오신 거 같아요.'

남동생을 뭐라고 호칭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그렇게만 말했어.
누나가 남동생을 돌아보더니 씨익 웃었어.
왜 웃었을까? 난 지금도 모르겠다...

누나가 라면을 다 끓였는지 나보고 나오라고 했어. 주방으로 나갔는데. 나가면서 난 가방을 이미 어깨에 맸어. 나갈 생각이 간절했거든.

남동생이란 사람이 현관 앞에 신발장에 서 있는 거야. 서서 나를 보고 있는 거야.
그와중에 누나란 인간은 나보고 라면을 먹으래.

개씨발... 먹었어. 먹었다. 그 좁은 주방 2인용 식탁에 앉아서.

존맛 라면 https://tfmedia.co.kr/mobile/article.html?no=51914



내가 앉은 방향에서 좁은 거실과 현관문이 다 보이는데 등만 보이는 어머니란 사람은 텔레비전도 없는 거실 보면서 계속 앉아 있고 남동생은 현관을 지키듯이 서서 나만 쳐다보고 있고.
나는 누나랑 마주앉아서 라면만 먹었다.

상식적으로 이상한 분위기인 건 알지만, 그걸 입밖으로 냈다간 나한테 정말 나쁜 일이 일어날 거 같아서 꾸역꾸역 라면만 먹었어.



다 먹고 나니까 누나가 머리 마저 잘라준다고 방으로 오래.
이쯤에선 나도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말했어. 나 주유소 일하러 가야 한다고.
누나 두 눈이 또 따로따로 돌아가려고 그래.


그보다 앞서서 그냥 나왔어.

남동생은 여전히 현관에 서 있었어.

온몸에 닭살 돋은 상태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최대한 얼굴 굳히고 신발 신었어. 끈 운동화였는데 끈 묶지도 못했어.

신발에 발 꿰는 내내 남동생이 바로 옆에서 나를 내려다보는데 정말 돌아버릴 거 같았다.



신발 다 신고 문을 열자마자,

계속 정면을 보면서 앉아 있던 누나의 엄마란 분이 목청이 째지도록 웃기 시작했다.
택시 내렸던 집 밖에 나왔는데도 계속 들렸다.

난 일단 미친듯이 뛰었다.
뒤도 안 돌아봤다. 당시 신길에서 대방까지 버스로 10분인데 그걸 달려서 20분만에 주파했다. 진짜로.

노량진 미용실 가서 머리 자르고,
바로 주유소 가서 일하고 그날 같이 주유소 일하고 학원도 다닌다는 친구한테 다 얘기했다.
(참고로 이 친구는 지금도 연락하고 만나 있다. 좋은 친구고 입이 무겁다.)



다음날 학원에 갔는데 누나가 나를 불렀어.
난 계속 쌩까고 있었는데 점심시간 되니까 할 말이 있으니 잠깐만 와달라고 해서, 학생들 담배 피우는 비상계단 쪽으로 갔어.

나한테 귀엣말을 했어.

'ㅁ관이(내 친구이름)한테 얘기했어?'
'뭘요?'
'했잖아?'
'그니까 뭘요?'
'했으면서.'
'뭐가요. 누나네 집 간 얘기요?'
'......'
'그게 뭐요? 무슨 할 얘깃거리라고 그런 말을 하는데요?'
'안했어?'
'안했는데요.'
'정말?'
'안했다고요. 그리고 할 얘기가 뭐가 있냐고요. 누나집 간 게.'
'ㅁ관이는 너한테 들었다고 하던데?'



내 친구가 절대로 말을 할 리가 없거든?
근데 저렇게 날 살짝 떠보는 걸 보고 정말로 가까이 붙어 지내다간 언제 칼 맞겠다 싶어서, 그냥 씹고 돌아나왔어.

나 그리고 학원 그만뒀다.

수원으로 이사오면서 도저히 그 누나를 볼 수가 없어서 학원 때려치우고 혼자 공부해서 8월에 땄다.


나중에 친구한테 소식을 들었는데 그 누나가 정신병력으로 고등학교를 졸업 못했던 사람이더라.
친구는 어떻게 알았냐면 학원 사회선생님이랑 술자리에서 들은 거.
약혼자를 칼로 찔러서 구속된 적도 있다고 하대.


쓸데없이 긴 얘기를 읽어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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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나를 울리려고 이럴려고~~~ | 작성시간 21.09.06 봐도봐도 진짜 숨막힘
  • 작성자쀼이쀼쀼이 | 작성시간 21.09.07 나 저렇게 눈알 따로 도는 사람 본 적 있는데;; 홍대 피어싱 집에서......손님들 엄청 많다가 어느 순간 싹 빠지고 나랑 직원들만 남았는데 멀쩡하다가 갈등순간 오니까 눈알이 따로 놀더라고
  • 작성자일본은안변해 | 작성시간 21.09.08 이글 읽을때마다 너무 몰입돼ㅜㅜㅜ
  • 작성자레몬빵좋아 | 작성시간 21.09.10 가족들이 다 정신병 있는 집안인가 했는데 진짜 빙의인게 더 그럴듯하다...
  • 작성자십악참회 | 작성시간 21.10.15 와 무서워 소름돋아.....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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