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11년 12월 30일, 낮 12시쯤 포천시 이동면 장암리 여우고개 6부 능선 부근 계곡을 지나던 등산객이 백골 사체 2구와 심하게 파손된 대우 누비라 승용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번호판 추적을 통해 차량의 소유주가 10개월 전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동반자살을 암시하는 유서를 남기고 가족과 함께 실종된 이진호(당시 45세)임이 밝혀졌고, 백골 사체는 그의 두 딸의 것으로 드러났다.
2. 의문점
형사들은 수사가 진행되자마자 곧바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가족이 동반자살을 했다면 4구의 시신이 나와야 하는데 발견된 것은 2구의 유골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촬영을 위해 현장을 분석한 전문가는 차가 주행 중에 낭떠러지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절벽 가까운 곳에서부터 저속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발견된 차량이 여기저기 긁힌 것으로 보아 절벽 위에서부터 천천히 굴러 떨어졌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시신은 튕겨져 나와 발견 위치로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었다.
3. 이진호와 아내의 행방은?
그렇다면 이진호와 아내 정 씨(당시 36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현장에서 발견된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유서에는 부부가 근처 산정호수에서 죽을 거란 이야기가 적혀있었지만 부부의 흔적은 호수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유서를 쓴 2주 뒤 뜻밖에도 의정부의 한 병원에서 부부가 같이 동상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고, 이에 경찰은 이진호와 아내를 살인 및 사체 유기 혐의로 공개 수배했다.
4. 범인 이진호 부부의 검거
백골 사체 발견 2년 뒤인 2013년 4월 10일에 거동이 수상한 남녀가 있다는 주민의 신고로 부산의 한 과수원에서 이진호와 아내가 경찰에 검거됐다.
그리고 동년 9월에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살인죄를 인정 받아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5. 사건의 진상
이진호의 아내 정 씨는 학습지 판매원으로 일했는데, 팀장이 되기 위해 빚을 내가며 무리하게 학습지 판매를 강행했다.
그러던 2010년 9월, 이런 방식을 회사에 들켜 징계를 받게 된다.
결국 1억 3천이나 되는 빚을 견디다 못 한 아내는 이진호에게 동반자살을 권유하고 이진호는 이를 받아들인다.
설상가상으로 이진호의 가족이 얹혀살던 이진호의 누나가 살던 집 또한 월세가 밀려 어려운 처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2011년 2월 14일에 가족여행을 명목으로 딸들을 데리고 나와 포천의 민박집에서 숙박한 이진호와 아내 정 씨는 자녀가 잠들자 번개탄을 피워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여기에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진호의 가족은 집을 나선 후 오후 5시쯤에 포천시 이동면 백운계곡에 위치한 어떤 민박집의 3호실에 투숙하게 되는데, 두 딸을 일찍 재우고 난 뒤에 이진호는 밤새도록 아내를 설득했으나, 아내는 자살 의지가 확고했으며, 설득에 실패한 이진호는 차라리 아내를 따라 죽겠다며 체념한다.
다음날 오후 1시 20분쯤 이진호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21만원을 입금받았고, 근처 편의점에서 유서를 쓰려고 편지지와 편지봉투와 볼펜 한 자루를 사서 민박집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두 딸은 영문도 모른 채 방 안에서 놀고 있었는데,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 안에서 이진호와 아내는 유서를 써내려갔다.
아내 정 씨의 유서는 다음과 같았다.
잠시 후 저희 손으로 아이들 목을 졸라야 합니다.
이런 부모가 또 있을까요?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모든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진호가 매형에게 쓴 유서는 다음과 같았다.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남아서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저희가 데려갑니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죽을 각오로 잘 살아보려 했는데 현실은 너무 무섭습니다.
어제도 결정을 해서 행동으로 옮기려 했으나 아이들의 눈이 밟혀 못했습니다.
오후 5시 즈음에 이진호는 이동우체국에서 우표를 사서 두 장의 유서를 우체통에 넣고는 밤 11시쯤에 다시 투숙하였고, 이진호는 자던 도중에 살며시 일어나서 주방 가스레인지와 연결이 되어있는 LPG 가스의 호스를 칼로 반쯤 자른 뒤에 밖으로 나가 고기를 구워 먹겠다는 구실로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받은 번개탄 2장에 불을 붙이고 주방 안에 있던 냄비에 넣었다.
이때 정 씨가 말 없이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막내딸이 화장실에 가던 도중에 번개탄이 들어있는 냄비를 밟고 넘어지자, 우당탕 하는 소리에 이를 눈치챈 이진호는 환기를 시킨답시고 창문을 열고는 번개탄을 창 밖으로 던졌다.
그 다음날 오전 11시에 민박집을 나온 이진호의 가족은 일동면 화대리 부근 제일유황온천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아점을 먹고는, 주차장으로 나온 정 씨는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죽기로 했으니 너희들은 보육원에 보내주겠다” 며 처음으로 죽음을 암시했다.
큰딸은 울면서 따라 죽겠다고 했고, 작은 딸은 울기만 했다.
오후 6시쯤에 이진호는 지인에게 빌린 돈 15만원을 근처 농협에서 찾아 산정호숫가에 있는 한 숙박업소로 이동했다.
길가에 있는 마트에서 막걸리와 소주를 각각 2병 사고, 번개탄을 3장 구입했다.
새벽 2시쯤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까스로 다독여 차에 태우고 호숫가 공터에 차를 세운 후 불붙은 번개탄 3장을 냄비에 담아 차에 같이 타고 있던 정 씨의 다리 밑에 놓았는데, 잠을 청한지 2시간쯤 지난 새벽 4시에 두 딸이 괴로워 하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하자, 이진호는 딸들이 있는 뒷자리로 넘어가 작은딸부터 목을 조르고, 정 씨는 발버둥치는 아이들 다리를 잡았다.
결국 두 딸은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다.
이진호와 아내는 깨어난 두 딸을 목 졸라 숨지게 한 후, 자신들도 죽을 마음으로 차를 몰아 여우고개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그 충격으로 자매의 시신이 차 밖으로 튕겨 나가고 만다.
그러나 이진호와 아내는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맨 채 절벽 아래로 차량을 몰았고, 절벽 20미터 지점에서 차량이 나무에 걸려 충격이 완화되어 세 번째 자살시도도 실패했다.
이렇게까지 일이 꼬이자 이진호는 돌로 아내의 머리와 자신의 머리를 순차적으로 내려쳤지만 죽는데는 실패했다.
그러자 이진호와 아내는 영하의 날씨에 저체온증으로 동사하기 위해 옷을 벗기까지 했으나 역시 죽진 않았고 지나가던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 기절 후 깨어나게 된다.
다섯 번에 걸친 자살시도가 전부 무위에 그치자 이진호와 아내는 그때서야 생존을 선택했다.
이진호와 아내는 지인에게 약간의 돈을 빌려 동상과 머리의 상처를 치료한 후 검거 전까지 2년 동안 진천, 강릉, 밀양, 부산 등에서 일용직 근로 생활을 하며 숨어지내는 삶을 살다가 부산 기장에서 검거되었다.
그리하여,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이진호는 2023년 9월 2일에 만기출소 예정이다.
6. 미디어에서
2012년 3월 24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사랑하니까 죽였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2013년 5월 26일 KNN 현장추적 싸이렌에서 '가족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