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체페슈의 공포가든
정두영 (鄭斗英)은 1968년 12월 31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에겐 형 1명과 누나 1명이 있었으며 그는 세 남매중 막내였다.
정두영이 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삼촌과 함께 살았다.
그 후에는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냈다.
1986년 5월 부산의 어느 초등학교에 돈을 훔치러 들어간 정두영은 교사와 마주치자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1달 뒤에는 자신을 검문하던 방범대원을 칼로 찔러 살해하였는데 이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8세 밖에 되지 않았다.
그 후 재판에서 징역 11년을 선고았다.
교도소에서 나온 정두영은 절도로 체포되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1999년 6월 2일 부산의 부유층이 거주하는 집으로 간 정두영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던 가정부 이영자의 얼굴을 무참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차례 찔러 살해하였다.
9월 15일 정두영은 부산 서구에 있는 고급 빌라에서 돈을 훔치던중 그 집의 가정부를 잔인하게 폭행하여 살해하였다.
10월 21일 울산의 고급 주택에서 53세 여성과 그녀의 24세 아들이 살해당했다.
이 사건의 경우 강도 목적이었던 다른 사건에서는 볼 수 없는 범인의 overdrive (폭주 상태)에 주목이 됐으며 이제까지 부산에서 발생한 사건과의 관련성은 이 사건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
2000년 3월 11일 부산 서구의 고급 주택지에서 여성 2인조가 방망이를 든 남성에게 습격을 당한다.
한 명은 살해당했으나 다른 한 명은 아이가 있다고 살려달라 호소하여 범인이 부상만 입히고 살려주었다.
경찰은 생존자의 진술에 따라 범인을 키가 큰 20~30대 남성으로 보고 정보를 전국에 있는 경찰에게 전파하였다.
4월 8일 정두영은 부산 동구에서 정진태 (76세 남성)와 가정부를 칼로 살해하고 정씨의 아내도 구타하였다.
그리고 2430만원 상당의 수표를 훔치고 달아난다.
그 후에 천안에서 체포됐다.
체포된 정두영은 이제까지의 범행을 고백했다.
(살해당한 사람들은 부산, 울산등 경남에서 총 9명)
7월 21일 부산 지방법원은 정두영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또한 장물 취득 혐의로 기소된 정두영의 형 정부영과 김종준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두 사람의 경우 도둑질했던 것만 알았지 강도 살인인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기 때문)
이들은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지만 정두영은 결국 사형이 확정되어 대전교도소에 복역하게된다.
2016년 정두영은 대전교도소에서 작업하다가 몰래 만들던 사다리를 이용해 탈옥을 시도했다.
교도소의 벽은 총 3개가 있었는데 이 중 2개를 넘고 마지막 하나를 넘지못해서 그대로 잡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