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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할매의 속삭임

[사람]데드 자살사건

작성자최욤|작성시간23.01.21|조회수15,286 목록 댓글 10

 

출처 : https://namu.wiki/w/Mayhem

왼쪽부터 네크로버처(베이스), 유로니무스(기타), 데드(보컬), 헬해머(드럼)

1. 개요

노르웨이의 블랙 메탈 밴드 보컬.

블랙 메탈계에서는 가히 레전드로 받들어지고 있는 밴드이며, 어둠과 오컬트적인 색채를 가장 잘 표현한 밴드라고 알려져 있다.

1985년 4월 20일, 유로니무스가 살던 동네 Ski에서 진행된 축제 겸 밴드경연이었던 Norwegian Championships of Rock에 출연한 메이헴

2. 밴드의 결성

1984년 오슬로에서 베놈과 켈틱 프로스트의 곡들을 카피하는 스쿨밴드로 처음 결성되었으며 1986년 데모 <Pure Fucking Amageddon>를 100장, 1987년 EP <Deathcrush> 를 1000장 한정으로 발매하면서 데뷔하였다.

결성 당시 멤버는 메시아(보컬), 유로니무스(기타), 네크로버처(베이스), 맨하임(드럼).

보컬인 메시아는 메이헴이 활동하던 동네인 랑휴스(Langhus)와는 멀리 떨어진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Pure Fucking Amageddon> 은 네크로버처가 보컬을 맡았다.

이후 메시아의 가족은 더 먼 릴레함메르(Lillehammer)로 이사를 갔고 메시아는 메이헴을 탈퇴했다.

그래서 <Deathcrush> 녹음시에는 매니악이라는 새 보컬리스트를 고용하였다.

<Deathcrush> 앨범의 녹음이 완료된 후, 음악을 업으로 삼고 싶지 않던 매니악과 밴드 생활에 지친 맨하임이 밴드를 나갔고 네크로버처와 유로니무스는 새 멤버들을 모집한다.

그 결과 스웨덴에서 Morbid(모비드)라는 데스 메탈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을 맡고있던 데드와 노르웨이 여러 지역의 메탈 밴드에서 세션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던 드러머 헬해머가 밴드에 가입하고 메이헴은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리허설과 작곡을 시작한다.

데드 생전의 모습

3. 밴드의 본격적인 활동과 보컬리스트 데드의 자살사건

본명이 페르 윙베 올린(Per Yngve Ohlin)인 데드는 어린 시절에 부모가 이혼한데다가 학교에 입학해서는 또래들과 잘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단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참다못한 데드가 평소 그를 괴롭히던 일진들에게 반항을 시도했다가 보복으로 린치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내장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은 데드는 가까스로 집에 도착했고 간호사인 새어머니의 응급처치 후 급히 병원에 이송되어 의료진의 노력으로 구사일생하였다.

의식 불명 상태에서 깨어난 페르는 이후 자신이 사후세계에 다녀왔다고 믿으면서 그 경험에 몰입하여 공포 영화, 헤비 메탈에 깊게 빠져들었다.

페르의 사후 그의 동생 앤더스의 인터뷰에 의하면 페르는 키스(KISS),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AC/DC, 베놈(Venom), 소돔(Sodom), 바쏘리(Bathory) 등 여러 록그룹들을 좋아했으며 특히, Bathory에 깊게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Bathory의 리더인 쿼손이 레코드점 Heavy Sound에 사인을 하러 왔을 때 페르는 그의 사인을 받으러 갔다가 쿼손이 마치 슈퍼 스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는 "변절자" 라며 비난한 뒤 이후 그들의 음악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데드가 출연한 스웨덴의 둠 메탈 밴드 Candlemess의 Bewitched 뮤직비디오. 비디오 중간에 여럿이 모인 젊은이들 중 맨앞에서 혼자 입을 벌리고 좀비 흉내를 내며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금발 청년이 데드다.

그 결과 페르는 1986년 전학간 학교와 레코드 가게 Heavy Sound 등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Morbid(모비드)라는 이름의 데스 메탈 밴드를 결성하여 보컬리스트로 데뷔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 닉네임과 기믹을 하나씩 설정한다는 모비드의 활동 지침에 따라 페르는 '데드' 라는 닉네임을 쓰기 시작했다.

데드(시체)라는 스테이지 네임은 페르의 죽음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준다.

모비드 활동 당시 데드는 특히, 흡혈귀에 매료되어 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모비드의 리더였던 데드는 모비드의 노랫말과 앨범 자켓 디자인을 비롯하여 라이브 공연시의 무대 효과까지 직접 신경쓰는 등 밴드의 중추적인 역할을 도맡아했지만 1987년 12월, EP <December Moon> 을 마지막으로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데드와 함께 모비드를 결성한 멤버였던 John Hagström 이 부모님에 의해 반강제로 밴드에서 탈퇴하자 모비드를 해체하고 1988년 메탈 팬진에 멤버 구인 광고를 실은 메이헴에 가입하기 위해 노르웨이로 떠난다.

메이헴의 리허설 모습이 찍힌 유일한 영상

참고로 영상은 1988년에 찍혔으며 처음에 비친 금발의 청년이 바로 데드이고 밴드 연주 시 오른쪽에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이 유로니무스이다.

촬영은 Lasse John Henry Olstad라는 사람이 했다고 한다.

당시 멤버로는 데드(보컬), 유로니무스(기타), 네크로버처(베이스), 헬해머(드럼).

하지만 메이헴은 활동 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얼마 못가서 활동을 중단하고 말았고 데드는 1989년 스웨덴으로 귀국했다.

그런 그에게 모비드에서 같이 활동한 동료들은 스톡홀름씬의 여러 메탈 밴드들이 연합하여 Entombed라는 이름의 새 밴드를 조직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가입 여부를 물었지만 그는 "[메탈 히어로] 가 되고 싶은 밴드에는 가입할 생각이 없다." 며 제안을 거절했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예술대학 입시를 준비 중이었던 데드는 유로니무스가 "부모님의 지원으로 자신이 직접 레코드 회사 Posercorpse Music을 설립했으며 이를 발판으로 메이헴의 활동을 다시 시작할 것" 이라는 편지를 보내오자 밴드에 재가입하기 위해 노르웨이로 향한다.

유로니무스, 데드, 네크로버처

메이헴의 첫 공연인 Live in Jessheim (1990.2.3) 당시 멤버로는 데드(보컬), 유로니무스(기타), 네크로버처(베이스), 헬해머(드럼).

다시 모인 밴드는 리허설을 거듭한 끝에 1990년 2월 3일 노르웨이의 Jessheim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유로니무스는 공연 직전 Nella라는 매니악의 절친한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무대에 꽂아놓을 돼지 머리를 샀다는 것과 그날 콥스페인팅을 할 것, 그리고 데드가 자해를 묘사하는 퍼포먼스를 할 것임을 미리 알려주었다.

첫 공연에서 데드는 '폼만 잡는 가짜 관객들' 을 공연장에서 쫓아내기 위해 공연 중간에 미리 준바한 돼지 머리 등의 소품을 관객들에게 던졌고 공연 막바지에는 Chainsaw Gutsfuck을 부르면서 나이프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깨진 콜라병으로 자신의 오른쪽 팔을 그었다.

결국, 상처가 너무 깊어서 데드는 공연 직후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한다.

나머지 멤버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데드가 자신들에게 공연 중 날이 무뎌진 나이프로 팔을 긋는 모습을 연출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대에 올랐다가 데드가 공연 중 실제로 자해를 하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후 데드가 Mike라는 팬이 보낸 팬레터 답장에 쓰기를 '예상했던 것보다 깊게 그어져 버렸다, 관중들은 내가 피를 흘리는 광경을 보고 즐기는 것 같았다' 고 했다.

데드의 부상이 어느정도 나아진 1990년 2월 28일 밴드는 노르웨이의 Sarpsborg에서 두번째 공연을 펼쳤다.

이들은 해당 공연에서 '죽음의 느낌을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하여 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싶다' 며 무대를 암전 상태로 만들고 연습실 근처 숲에서 모아온 썩은내가 나는 까마귀의 시체들을 비닐봉지에 담아 무대에 올려놓았다.

Jessheim과 Sarpsborg에서의 공연 후 노르웨이의 라이브 클럽들이 밴드를 보이콧하여 노르웨이에서 공연을 진행할 수 없게되자 밴드는 대신 오스트리아의 글라이스도르프(Gleisdorf)에서 공연을 하려 했지만 이 공연 또한 밴드가 오스트리아로 떠나기 직전에 모종의 이유로 취소되었다.

이 즈음 유로니무스는 자신이 소유한 레코드사 이름을 Posercorpse Music에서 D.S.P.(Deathlike Silence Productions)로 변경한 후 본격적으로 레이블 경영을 하기 시작했고 밴드는 1990년 4월, The Freezing Moon과 Carnage를 녹음했다.

이후 네크로버처를 제외한 밴드 멤버들은 아예 새로 마련한 연습실에서 생활하면서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전개하였다.

완벽주의자였던 데드와 유로니무스는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음악이 만들어질 때까지 리프나 가사를 바꾸었다고 하며 이때 만들어진 곡들은 훗날 De Mysteriis Dom Sathanas 앨범에 수록되었다.

앨범 제목도 생전에 데드가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헬해머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밴드는 그리 원만하게 굴러가지 못했다고 한다.

밴드의 중심축인 데드와 유로니무스는 블랙 메탈과 밴드 운영에 대한 견해 차이 및 성격 차이로 대립했으며 네크로버처는 동거중인 여자친구가 임신해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빠서 연습에 잘 나오지 않았고 자신도 밴드의 지지부진한 활동에 실망감을 느껴서 노르웨이 전역을 돌아다니며 세션 활동을 병행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밴드는 유로니무스가 속해있던 공산주의 단체의 의뢰를 받아들여서 1990년 11월 동독에서 공연을 하게되었다.

데드는 라이브에서 굶주림의 고통을 느끼며 노래를 부르기를,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더욱더 창백하게 보여지기를 원했기에 동독으로 떠나기 전부터 일부러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으며 동독 투어에서 데드는 땅 속에 묻어놨다 동독으로 떠나기 직전 꺼내서 챙긴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콥스페인팅을 한 채 공연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후 메이헴은 노르웨이로 귀국하기 전인 1990년 12월, 터키 이즈미르에 들려서 한 차례 공연을 진행했으며 이것이 밴드의 마지막 공연이 되고 말았다.

메이헴이 터키 라이브를 위해 열차를 타고 이스탄불로 이동하던 중에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데드는 계속 코피를 흘렸다고 한다.

종합해보면 메이헴의 활동 당시 밴드의 라이브 공연은 총 6번 이루어졌다.

투어 이후 네크로버처는 밴드를 탈퇴하고 멤버들과의 연락도 완전히 끊었고 핼헤머도 자신의 할아버지 집에 머물면서 세션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멤버들의 이탈로 정상적인 밴드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유로니무스는 자신과 사이가 나빠진 데드를 배제한 채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블랙 메탈 전용 레코드 점의 개장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데드는 메이헴의 연습실에 홀로 남아 숙식을 해결하다가 1991년 4월 8일, 칼로 자신의 손목과 목을 긋고 산탄총으로 머리를 쏴서 목숨을 끊었다.

1969년 생이었으니 그의 나이 22세 때였다.

Red Harvest의 드러머이자 Enslaved 드러머였던 Cato에 의하면 데드는 자살 당시 오슬로 외곽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었고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때때로 오슬로 거리로 나와 여러 메탈 팬진들을 담은 비닐봉투를 든 채 계속 서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데드에게 연민을 느껴 이따금 잡지를 구매하거나 술을 사주었는데 얼마 못가서 데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다음은 데드의 유서 전문이다.

유서의 내용을 보면 "나는 인간이 아니다", "이것(인생)은 한낱 꿈일 뿐이고 나는 곧 깨어날 것이다" 등의 내용이 있는데, 데드는 자살 이전부터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온 생명체이며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유년 시절의 사건 이후 자신은 불멸의 존재이며 이곳에서의 인생은 잠시일 뿐이고 죽은 뒤 다른 세계(혹은 사후세계)로 갈 것이라고 믿었다.

유서에 언급된, 데드가 쓴 "Life Eternal" 의 가사도 자신은 인간이 아닌 불멸의 존재라는 내용이다.

몇몇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데드의 증상은 코타르 증후군의 증상과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이 병은 자신이 사실 죽었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내부 장기나 혈액을 잃어버렸다거나 매우 희귀한 경우 자신이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병이다.

유서 마지막 줄에는 "나는 이것(자살)을 지금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17년 전부터 이미 생각해왔다" 라는 말이 쓰여져 있다.

이는 데드가 약 5살 때부터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 다르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의 남동생 앤더스가 데드 사후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종종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다, 집에 손님들이 방문할 때면 어머니는 그가 사람들을 당황케 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신경써야 했다" 고 말했다.

참고로 자살할 당시 데드가 입고 있는 옷에는 I ❤ transylvania 라고 적혀 있었는데 데드는 생전에 트란실바니아의 건축물, 특히 성을 좋아했다고 한다.

한편, 오랜만에 데드를 만나러 메이헴의 연습실에 갔다가 데드의 시체를 발견한 유로니무스는 그의 죽음을 경찰에 신고하기 전 근처 상점으로 달려가서 일회용 카메라를 산 후 데드의 시신을 훼손시키고 그 주위에 일부 사물을 늘어놓은 뒤 사진을 찍었고 자살현장에서 데드의 뼈조각들 일부를 빼돌려서 팬던트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다녔다.

심지어 이 목걸이들을 귀중한 것이라며 동료 뮤지션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데드의 뼈조각을 선물받은 이들은 자신들이 유로니무스에게서 데드의 뼈조각을 받은 사실을 계속 부인하다가 2005년 선물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유로니무스와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담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데드의 시체가 발견되어 구급차에 실려간 직후 한밤 중에 데드의 방을 찾아가 데드의 시체에서 비롯된 악취를 맡으며 밤을 지샌 후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The Freezing Moon (Occultus 보컬 버전)

이후 유로니무스는 기자들에게 인터뷰 약속들을 잡아서 "나는 메이헴이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 유로니무스라고 한다. 밴드의 보컬인 데드가 블랙 메탈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데드는 좋은 가수에다 중요한 사람이었고 블랙 메탈러인 우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데드의 자살을 통해 블랙 메탈은 세상에 널리 알리질 것이며 나는 우리들을 비웃는 사람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라는 발언을 통해 데드의 자살을 언론에 대서특필되게 하여 자신과 블랙 메탈을 홍보하였다.

이때 유로니무스는 핼헤머에게 다시 연락하고 당시 자신의 룸메이트였던 Occultus라는 인물을 메이헴의 보컬리스트 겸 베이시스트로 받아들여서 메이헴의 활동을 재개하려 했으나 얼마 못가서 유로니무스와의 불화로 Occultus가 탈퇴하여 무산되었다.

Occultus는 유로니무스와 함께 블랙 메탈 전용 레코드점 Helvete의 기본 컨셉을 고안한 사람이기도 했다.

참고로 데드의 시체 사진들은 유로니무스가 자신의 레코드점 Helvete에 전시해 두었다가 도난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로니무스 사후인 1995년에 유로니무스가 콜롬비아에 위치한 레코드 회사에 보냈던 데드의 시체 사진이 앨범 자캣으로 쓰인 부틀랙 앨범 <Dawn of the Black Hearts>이 발매되었다.

해당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자 남동생 앤더스를 포함한 데드의 유족들은 웹사이트 운영자들에게 연락해 사진을 지워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의 지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유로니무스의 행동에 대해 앤더스는 "어떤 마음이였는진 이해한다, 하지만 그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

메이헴의 베이시스트인 네크로버처는 밴드에서 자신과 데드는 좋은 친구였으며 데드를 라이브에서는 마치 환생한 짐 모리슨을 보는 것 같이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면이 있었지만 사석에서는 굉장히 공손했고 나름의 독특한 유머를 가진, 그리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오랫동안 대화가 가능했던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네크로버처는 2019년 LOUDWIRE 인터뷰에서 유로니무스가 데드의 자살을 그저 가볍게 취급하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아서 그와 절교했었다고 밝혔다.

네크로버처에 의하면 자신과 연락이 끊긴 상태였던 유로니무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하여 "데드 녀석이 정말 멋진(Cool한) 짓을 했어! 그가 진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데드가 죽었다고?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그나저나 이 녀석 진짜 미친거 아냐? 사람이 죽었는데 멋지다는 것이 무슨 뜻이야?'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충격에 빠져서 대답을 못하고있자 유로니무스는 "진정하고 들어봐 내가 그 광경을 모두 사진으로 담았어" 라고 흥분한 채로 말했다고 한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자신은 유로니무스에게 "알았으니까 그 사진을 처분하기 전까지 내게 연락하지 마 씨발새끼야!" 라고 외친 뒤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데드의 시체 사진들을 마켓팅으로 쓰지 말라고 말했음에도 사진들을 퍼트린 유로니무스에게 화가 났으며 유로니무스가 카운트에게 살해당했을 때도 전혀 슬프지 않았고 오히려 카운트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유로니무스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었다고 한다.

다만 그가 일을 저지르기 전에 카운트가 먼저 유로니무스를 죽였다고.

메이헴의 드러머였던 멘하임은 유로니무스가 살해된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전의 유로니무스를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멋진(Cool한) 놈' 이라고 불려지기만 한다면 하바네로를 가득 넣은 샌드위치도 먹을 사람" 이라고 묘사했으며 데드에 대해서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마빈처럼 우울증을 앓고있었다." 고 회고했다.

또한, 회상하기를 데드가 라이브 공연에서의 자해 행위로 치료룰 받고 있을 때 유로니무스는 데드에게 "다음에는 아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러면 더 멋질거야" 라고 말했다 한다.

멘하임은 이러한 유로니무스의 행동에 대해 유로니무스가 단지 주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데드를 꼽주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주변인들이 자신을 '악마' 라고 여기게 하기 위해 정말로 데드를 자살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한 언행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메이헴의 드러머인 헬해머에 의하면 데드와 유로니무스는 동거 생활을 시작할 무렵부터 다투기 시작했다가 마침내는 더 이상 친구사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밤에는 유로니무스가 셋이 동거하던 연습실에서 데드가 끔찍이 싫어하던 신스팝을 크게 틀기 시작했고 음악 소리에 잠에서 깬 데드는 연습실 주변 숲속에서 다시 자려고 베게를 들고 나왔는데 이를 본 유로니무스가 따라 나와서 산탄총을 허공에 대고 쏘아대며 데드를 도발했다고 한다.

또한, 헬해머는 데드가 갑작스럽게 괴상한 행동을 시작하거나 자해를 할때면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그를 말리려고 노력했지만 유로니무스는 오히려 데드가 그런 행동들을 더 하도록 부추겼다고 증언했다.

그는 "유로니무스가 연습실에 데드를 혼자 놔두고 산탄총을 치우지 않은 것도 데드가 그 총으로 자살하기를 원해서였을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터키 이즈미르의 공연 프로모터 Arcan은 데드에 대해 회상하길 데드는 자신의 말에 연신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이 없었으며, 과다출혈(코피+자해)로 인해 창백하게 질려있는 얼굴에다가 몸에는 상처가 없는 부위가 없을 정도로 전신에 걸쳐 많은 상처들이 있었다고 한다.

펍에서도 데드는 혼자 가만히 앉아 맥주를 홀짝였다고 한다.

버줌의 카운트 그리쉬니크는 "데드는 주로 메이헴의 연습실 한켠에 마련한 자신의 방에 틀여박혀 있었다. 나 역시 유로니무스의 소개로 데드를 딱 한번 만나서 간단한 대화를 나눈것이 그를 유일하게 본 순간이었다. 그는 자살하기 전부터 이미 나와 같이 활동했던 노르웨이의 메탈 뮤지션들 사이에서 일종의 전설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고 회고했다.

https://en.m.wikipedia.org/wiki/Dawn_of_the_Black_Hearts
(데드의 시체사진을 표지로 사용한 문제의 앨범 자켓 사진 링크 모자이크 없으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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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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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무인양쿰 | 작성시간 23.01.22 헐 이번에 내한하는 그 메이헴? 이런스토리가 있었구나
  • 작성자로또당첨기원S2 | 작성시간 23.01.23 사진 진짜 적나라하네 안타깝다ㅜ
  • 작성자밤잼 | 작성시간 23.01.23 유로니무스 미친놈이냐
  • 작성자울고잇는고앵이는위로가필요해 | 작성시간 23.01.23 맘이 안좋다
  • 작성자썰렁한 괴담꾼 | 작성시간 23.01.26 참..너무 안타깝다..아버지 권유에 그대로 예술대학으로 전향 했었으면 결과가 좀 나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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