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theqoo.net/1307761859
9. 귀내림
신내림.
신기를 느끼는 사람은 신내림을 꼭 받아야 하는가? 아니다. 신내림은 시기가 있다고 해. 그렇다고 신내림을 모두 받을 필요도 없는데, 대신 그에 상응하는 무접신 해칠살(신은 신대로 대접을 해 주고 몸에 들이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의 대접을 해드려야 한다고...
예부터 지금까지 신내림을 거부한 사람들도 많다고 해. 그만큼 신내림을 받는 다는 것은, 接신(이을접)을 하여 신을 몸에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식을 나누어 어렵고 고난스러운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지. 또 신내림을 제대로 받는다 한들, 길게는 2년까지 몸안에 터를 잡은 신이 괴롭히는 기간이기 때문에, 늦게 해칠살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
또 신의 종류도 엄청 다양하지만, 어떤 신이든 간에 신내림을 받을 땐 다른 무속인에게 의뢰하여 내림굿(강신무굿의 일종)을 해야해. 정확한 내림굿이 아니면 허주(가짜주인)가 降신(내릴 강) 하여 몸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
신내림 받을 때 발작 하는 사람들, 접신하는 사람들 듣거나 본적 있을거야. 그 사람들은 의식을 잃고 정신이 미쳐버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굿을 하는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다스리고 반의식적인 상태가 되어서 발작을하거나 학질걸린사람처럼 벌벌떨기도 하는거야. 이런 신병(입무과정)을 필수적으로 지나야 지만 신을 받아들이고, 사람과 영신의 세계를 이을 수 있다고 믿는대.
문경시 마성에 처녀보살이 내림굿을 한 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증조할머니께서 임신을 했을 때 즈음 1931년도에 일. 당시 임신한지 좀 지나서 몸은 무거웠지만, 거동이 불편한 편은 아니었다고 해. 때문에 모처럼 나들이겸 신내림받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는데.
가 보니 문경에서 내노라 하는 무속인들, 역술인(역술인은 신을 받지않음)들도 많이 와 있었어. 증조할머니께서 보시기에 역술인은 영기가 없고 사주가 같은 느낌을 받았어. (실제로 무속인과 역술인은 사이가 좋지 못 해. 역술인은 음양오행을 필두로 한 역학으로 사주를 많이 봄)
무속인들중에는 신기라는 동네에서 유명한 여장을한 박수무당도 와있었는데, 문득 증조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니 목안이 청아하게 맑고, 멀리서도 청포향이 그윽한 것이 범상치 않았다고 해.
아직 내림굿은 준비중이었기에 증조할머니께서 상차림을 돕고, 커다란 느티나무에 금줄을 걸기 위해서 당방울과 무속인들이 가져온 노란 괴황지 부적을 같이 동아줄에 달고 있었는데, 내림굿 할 공터 뒤에 삼간 집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해. 같이 상차리던 무당을 모시는시동에게 물어보니, "아주 용한 보살님이 오셨네, 오늘 내림굿을 받는 처자가 저기있는데, 동자신을 모실 모양입니다."해서 증조할머니께서 "그렇습니까? 울음소리가 우렁찬게 범상치 않습니다."하니 그 시동이 "저희는 안 들려서 모르지요."하고는 껄껄 웃더래.
신내림을 받기 전에는 아무도 보지 않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는게 중요한 법이라고 해. 그렇기에 삼간 집에 있는 사람도 혼자 있는데, 아까 눈여겨본 박수무당과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긴 무녀(무당보다 용한 신을 모시는 영센 무속인)한 분이 그 삼간집으로 걸어가더래. 그래서 증조할머니께서 모시천으로 닦던 무령을 내려놓고 헐레벌떡 뛰어가 "아직 상도 안 차렸는데 지금 데려오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했더니 박수무당이 "강신무를 하기 전에 이 옷으로 갈아입혀야 한다."하고는 들고있던 비단 소복을 보여주더래. 아차 싶으셨는지 "제가 눈이 넓었나 봅니다."하고는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드리고는 자리로 돌아오는데, 뒤에서 우렁차던 애기울음소리가 뚝그치고는 웬 음침하게 웃는 여자소리가 들리더래. 깜짝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박수무당과 무녀는 물론 다른 무속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반응이 없었다고...
후에 사람들도 굿판주위로 빙 둘러 모이고, 준비가 끝나자 내림굿을 받기위해 삼간집 안에 있던 사람이 나왔는데, 젊은 처자였어. 눈을 지긋이 감고 박수무당과 무녀의 인도하에 잘깔린 싸리석(멍석 비슷한 싸리나무로 만든 방석)에 양반자세를 하여 앉고는 읍을 올리듯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지.
당시 신내림은 매우 조심스럽고 엄숙하게 진행됐는데. 이유인 즉슨 한 예를 들자면, 과거에 조상신을 내림 받는다고 신굿을 하던 사람이 정신을 잃고는 잠시 후, 벌떡 일어나서는 앞에 차려진 상을 허겁지겁 집어먹었다고 해. 후에 해칠살을 해도 차도가 없어서 빙의퇴마를 하니 비로소 의식을 차렸는데, 잡귀중에 늙은 아귀가 "내가 니 몇대 조상이다."라고 거짓말을 치고 접귀를 하여 빙의를 당했다고 해. 자기 증조부 고조부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았겠어. 이처럼 신제자가 한 순간에 빙의환자가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어왔기 때문에, 신내림은 진중하고 엄숙했다고.
무녀가 읍을하고 바닥 주위에 팥을뿌려가며 동자신을 점점 내림받을 처자에게 가게 하여 접신하는 방식으로 시작됐어. 부경(부적에 적히는 글들을 책자처럼 만든 것)을 읽어가면서 무령중 칠성방울(방울이 여러개 달린 무당방울)을 흔들어 대니, 신내림을 받던 처자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애기소리를 뱉어냈어. 갓난 아기가 우는 것처럼 울어댔다고... 어른의 성대로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느낌이었다고 해. 주변에 보고있던 사람들이 오-오- 하고는 고개를 숙여 손을 모으고 받드는 시늉을 해댔어. 증조할머니께서도 읍을 가볍게 하고 보니, 금줄에 부적들옆에 걸어놓은 당방울이 세차게 흔들리면서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고 해. 후에도 계속 애기소리를 내기만 할 뿐, 별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진 않았고 비단소복이 다 젖을정도로 땀을 흘리고 쓰러졌다고...
내림굿은 성공적으로 끝난 듯 보였고 굿판이 지나가고 무속인들이 강신마당을 벌였어. 향을피우고 사당패를 들여서 너나할것없이 춤을 췄어. 증조할머니께서는 임신한 몸을 이끌고 춤을 출순 없는 노릇이라 뒤에 앉아서 잔치음식을 먹고 계셨는데, 삼간집안으로 박수무당하고 무녀가 사람을 대동해서 신내림받은 처자를 급히 옮기더래. '내림굿이 끝나고 안정을 도우려고 그러는 구나'하고 수발을 도울겸 따라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래.
"무슨 일입니까?" 하니 박수무당이 "들어오면 안 되니, 나가있어라." 하고는 문을 닫으려는데 신내림받은 처자가 애기울음소리를 처연하게 내다가, 갑자기 부싯돌 긁어대는 소리처럼 여인 목소리로 그륵그륵- 대더래. 증조할머니께서 "저는 흥덕에서 온 보살이온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하니 무녀가 눈짓을 하고는 끄덕였어. 박수무당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들어와."하고는 손짓을 하더래.
증조할머니께서 다시 한 번"어찌 된 일입니까?"하니 박수무당이 하는 말이 "동자신이 아니야. 태주(새타니, 혹은 아기귀신 명도라고도 불림)가 들어왔어."라고 하고 무녀랑 같이 닭 피를 몸 군데군데 바르더래 무속적인 역학을 떠올려보니 '자고로 닭피란 접신을 막아주는데 효험이 있는 것인데, 도리어 안에 들은 귀신이 나오지 못 하고 처자의 깊은 의식속에 더욱 꽁꽁 몸을 숨겨버리진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녀에게 귀뜸을 해주려는데,
무녀가 증조할머니뜻을 미리 알아차렸는지, "태주가 무서운게 아니라, 따라다니는 어미귀신이 위험하여 그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어. 태주란 성불하지 못 하고 죽은 임산부가 귀신이 되어 애기를 낳으면 그 애기가 새타니라고 불리는 태주귀신이었다고 해.
박수무당이 닭피를 몸 군데군데 뿌려두니 처자가 잠잠해졌는데, 그 사이 무녀가 버선발로 나서서는 찾아온 무속인들중에 승려를 한 분 데려오니 증조할머니께서 '퇴마를 하려고 하는구나.'하고 무녀의 심중을 알겠다 싶으셨대. 불자는 무속인 보다 유능한 퇴마를 할 수 있으니까.
승려가 하는 말이 "소승은 육도를 공부하는 승려이온데 어찌하여 부르셨는지요."하니 박수무당이 자초지종을 설명했어. 증조할머니께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잠자코 보고있는데, 승려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숨 죽은 정적을 깼어. "구병시식(불가계통의 퇴마행위중 하나)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증조할머니께서 알고 있는 것이라는 듯이 "제가 상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하고는 나가서 시식단을 준비했어. 사람들이 무슨일인가 하고 처다보아서 "처자가 빨리 회복하라고 강건제를 해드리려고 합니다."하고는 웃어 넘겼다고 해.
콩, 밥, 국, 청수(물), 배, 시루떡, 나물, 일곱가지를 작은 상에 정갈히 담아서 오니, 승려가 "보살님 고생하셨습니다."하고는 내림굿 받은 처자의 이름을 위패에 적어 상에 올리고, 향로에 향이 가장 센 백단향(불가에서 많이 쓰임. 좋은 향기가 짙게나고, 누르스름하다. 현대에선 가슴이나 배가아플때 약재로도 쓰임.)을 피우니 승려가 박수무당하고 무녀, 그리고 증조할머니에게 "밖에 잠시 나가있어 주십시요."하고 사람들이 나가니, 목탁을 들어 천부경의 서절을 읊었다고 해.
잠시 후에 7시가 지나 날이 꽤나 어둑어둑 해졌는데, 갑자기 창호문으로 비치던 호롱불이 꺼지더니 집 밖에 있는 증조할머니께서도 느낄만큼 거대하고 묵직한 기운이 집 전체에 느껴졌다고 해. 점차 기운이 강해지더니 종래에는 사람 두배는 됨지막한 거녀(巨클 거 女)의 영이 눈을 부라리고 삼간집 창호지 창앞에서 들어가려고 기를 썼어. 그륵그륵-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근거리에 있었는데 그 거녀는 증조할머니를 포함한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는 문틈이 좁으니까 자신의 손가락을 두어개 잡고는 세로로찢어서 가늘어진 팔로 재차 들어가려고 기를 쓰더래.
목탁소리는 점차 강해졌어. 가라다니(퇴마 의식에 사용되는 도경의 방법중 하나)를 할때는 호롱불이 붙었다 꺼졌다 했는데 보고있던 증조할머니께서 머리가 무척어지러우셨다고, 옆에있던 박수무당이 "정신 바짝 잡아! 배속에 애기 죽여내고, 태주를 낳을 수도 있는게야!"라고 해서 증조할머니께서 황급히 소매를 찢어 귀防(막을 방)을 적고 배에 복대처럼 둘른 뒤에 구병시식에 쓰이고 있는 백단향 여분을 꺼내어 태워 들고있었다고 해. 무녀가 그 모습을 되게 호기심 어리게 쳐다봤어.
삼간집 안에 구병시식은 거의 마지막에 들어섰어. 승려가 옴-아-암악(가라다니의 구절)을 108번을 조용하게 말하는데 어떤 의식보다 힘이있고 머리속까지 확실하게 들렸다고 해. 승려가 일어서니 다시 호롱불이 붙었는데, 팔하나를 찢어 넣은 거녀의 모습이 불빛에 비치는데, 머리보다 큰 손아귀가 스님을 향했다고... 몸은 집밖에 있고 팔만 문틈 안으로 들어간 모습이었다고 해. 어찌나 기를쓰는지 거녀의 영이 고함을 지르며 귀구(귀신입)를 벌리니 이빨은 다빠져있고 혀는 새카매서 뱀처럼 길었다고 해.
승려가 붉은 팥을 사방에 뿌리자. 거녀의 팔 곳곳이 맞아서 숭숭 구멍이나서 도망가버려, 증조할머니 혼자서 도망가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다른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 처럼 삼간집 안에만 계속 주시했다고 하네. 증조할머님께서 "간 것 같습니다."하고는 깊은 안도의 한 숨과 배에 둘렀던 소매를 풀고는 삼간집안으로 들어가보니, 박수무당과 무녀도 따라들어갔어.
안에는 승려가 승복이 흠뻑할정도로 땀에 젖어서 앉아있었는데, "장엄염불을 하는데, 머리가 아파서 죽을뻔 했습니다." 하고는 시식단을 치우자, 무녀가 곱게 적신 천으로 내림굿 받은 처자의 몸에서 닭피를 말끔하게 닦아내었어. 그러자 처자가 또 애기소리를 내면서 우는데, 박수무당이 "거녀귀신이 또 올지 모르니 얼른 떼어야 한다." 하자 증조할머니께서 "그 것이 거녀귀신입니까?"하니 다시 박수무당이 "영험한 보살이었구나. 거녀귀신은 원한이 깊어 그 것으로 신병이 들려버리면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것이야."하였어.
무녀가 "지금 처자가 동자신인줄 알고 잘 못받은 새타니(태주)가 자라면 또 새우니(거녀귀신)가 됩니다. 그러니 몸 안에 태주도 빨리 떼어야 해요." 하고는 처자에게 닭피와 팥을 빻아 섞어 먹이고, 무령(무당방울)을 들고 간이 굿을 했다고 해. 곧이어 처자가 좀 전에 먹은 닭피와 또 검붉은 핏덩이까지 토해냈는데 보고있던 박수무당이 흰비단에 곱게 싸서 부적붙은 동아줄로 묶고는 사람들 안 보는 곳에서 태워버렸다고 해. 그 후에 증조할머니께서 설탕물을 타와 처자에게 먹이고 수면향을 피워재우니 한층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고 해.
이렇게 난리를 치루고 밖에 나오니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잔치상에서 거나하게 탁주를 마시고 사당패랑 어우러져 놀고있었다고...
증조할머니께 무녀가 영험한 보살이라고 칭찬을 하고는 배를 한 번 스윽 만지고 가는데, 배가 온천에 담근 듯 따뜻해졌어. 증조할머니께서 잔치판을 보면서 저 안에 무속인들 중에 가짜도 있고, 멀어지고 있는 무녀를 보면서 오늘 본 것 처럼 진짜배기도 있구나 새삼 느끼셨다고 해.
후에 그 처자는 다시 신내림을 받았는데 다행이도 조상신을 잘 받아 업장(신내림 전에 겪는 영적인 고통)을 잘 견뎌서 무당이 되었다고 해. 때문에 증조할머니께서는 한 해에 굿떡을 두 번 먹었다고 웃으며 이야기 하시더래. 지금 현대에서도 신과 귀의 구분이 애매모호하여 많은 무당들이 신병이 심하고 신내림을 받다가 죽는경우도 있거니와, 신내림때 접신이 잘 못 되어 빙의치료를 받는사람도 많다고 하네.
10. 가마굽는 노인
문경 도자기축제라는 지역에선 꽤 유명한 축제가 있어. 찻사발 축제라고도 하는데, 이런 축제들이 벌어질 만큼, 천년역사를 자랑하는 양질의 도자기들이 많아. 출요(구워진 도자기를 꺼내 선별하여 기준미달은 망치로 깨버림)가 특히 까다로운 만큼 품질이 뛰어나고 특히 선을 많이 감은 자기들이라 유려함이 일품이야. 지금도 인간문화재를 포함하여 8대가 넘게 걸쳐 내려오면서 그 유구한 혼을 굽는 도예 명장들이 아직도 맥을 끊지 않고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어.
오늘 쓸 지역인 문경읍 당포리는 일전에 경천호에 관해 쓴 글에 나오는 김용사와 매우 가까운 동네야. 지금 당포리엔 문경窯(기와 가마 구울 요)하나만 남고 요家(가마 굽는집)들이 다 사라졌지만, 당시엔 근처에 있는 운달산의 토질이 좋아서 도자기 굽는 요家들이 많았더래.
1937년도 당시 문경에 유치원같은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이전에 교육시설이 전무했어. 물론 학교를 안 가는 경우가 더 흔했지만. 헌데 증조할머니께서는 딸(지금 할머니)의 나이 5세때 김용사에 맡기게 되었어. 보통학교에 들어가기전 8세까지는 김용사 1년 운암사 2년 계셨다고 해. 그당시 사람들은 1920~30년대부터 어느정도 돈이나 쌀같은 것을 공양드리고 큰 절에 어린 아이들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운 좋고 선한 곳에서 스님들에게 한자 공부도 배우고 또래아이들이나 거기에 사는 동자승(어린 승려)들과 어울려 개구지게 놀기도 하고, 보통학교 입학전 까지는 그렇게 교육하는 방식이 있었다고 해. 그 날은 증조할머니께서 불공도 드리고, 쌀도 공양하고 할머니도 만날겸 김용사로 가셨어. 증조할아버지따라 소금팔던 시동도 데리고, 그렇게 두 분이서 젊고 힘 좋은 당나귀 두 마리를 타고 쌀 반가마니(40kg)와 큼지막한 보따리를 싣고 가셨어.
도착하니 할머니(당시6세)께서 탁트인 암자에서 동자승들과 과수도영(불가의 오도송중 하나로 고승들의 깨달음을 한자로 풀어 노래한 것)을 읊고 계셨는데 낭창하니 듣기 좋았대. "절기종타멱~(절대 그이를 쫒아가 찾지 말아야지.) 초초여아소~(나와는 소원하여 멀어만 가네.) -중략- 거금정시아~(도랑물이 이제 바로 나인데도,) 아금불시거~(나는 이제 도랑물이 아니라네)"하고 까랑까랑 노래를 불르셨다고.
어찌나 고와보였는지 오랜만에 보는 딸이 너무 이뻐서, 당나귀에서 내려 단걸음에 다가갔다고 하셨대. 할머니께서 증조할머니를 보고는 "어머니~!"하고 와락 내려와서 안기니, 암자에 있던 또래 꼬마들이 "좋겠다" 하며 부러워 했어. 앞에 오도송을 가르치던 비구니 한 분이 죽비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하는 법구)를 자신의 손바닥에 탁탁- 치고는 꼬마들을 향 해 "초파일(석가탄신일)이 얼마 안 남았으니 부러워 말아라." 하고는 암자에서 내려와서(불가에서는 인사를 할때 더 높은 곳에서 인사하면 안 된다.) 합장하며 증조할머니께 인사를 올렸어.
증조할머니께서 "자주 찾아뵙지 못 하여 죄송합니다." 하고 합장을 올렸어 ."보살님 오셨습니까."하고 비구니가 말하고는 증조할머니 치맛자락에 꼭- 매달려 얼굴을 부비고 있는 할머니를, 한 번 쳐다보시더니, 활짝 웃으며 "괜찮습니다. 오랫만에 따님을 만나셨을 진데, 해인(該仁 :갖출 해, 어질 인 할머니 법명)이와 함께 가시기 전까지 있으시지요." 하고 다시 한 번 합장을 했어.
증조할머니께서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는 보고있던 시동을 시켜 암자에 있는 꼬마들에게 보따리안에 담아온 강정하고 가락엿을 다발로 꺼내어 주니,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집어가서는 너도나도 하나씩 입에 물고 줄줄- 빨아먹었다고 해.
이윽고 딸을 데리고 들어간 곳은 주지스님(사찰을 대표하는 스님, 큰스님과는 다름.)계신 불전 이었는데, 열려있는 문 사이로 웬 곰보의 노인이 먼저 주지스님과 얘기중이었어. 증조할머니를 발견한 주지스님이 "떡보살님 오셨습니까."하고는 활짝- 웃으시면서 일어나 합장을 하니, 옆에있던 보곰의 노인도 구부정하게 따라 일어나서 "유명한 떡보살님이 셨구만, 이렇게 반가울데가! 요 앞 물방아골 운달窯(기와 가마구울 요)에서 가마굽는 노인입니다."하고 인사를 했어. 해서 증조할머니께서 웃으시며 "아, 네. 반갑습니다..."하는데 옆에서 "우리 어머니는 만병도 고치고 귀신도 잡는 큰 보살님이에요!"하고 할머니께서 말을 끊으셨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어른들 말하는데 방해하면 안 돼~"라고 하니, 노인이 "애들이 다 그렇지 않우? 따님이 아주 당돌하네~"하고 껄껄 웃으시더래. 증조할머니께서 툇마루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며 "그나저나 방해가 된건 아닌지 모르겠어요."라고 자리를 비워줄 심산으로 말하자, 주지스님이 손사래를 내저으며 "아닙니다. 들어오셔서 차 한잔 같이 드시지요." 하고 노인도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더래. 감사의 표시로 살짝 목례하고 다시 올라가서 널찍이 떨어져 앉으셨다고 해. 할머니께서도 따라올라가서 냉큼 다과로 놓여진 약과를 집어가지고 증조할머니 치마폭에 앉아서 먹고있었어.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주지스님이 증조할머니께 차를 한 잔 건네니 "감사합니다. 솔 향이 깊은 것이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요." 하며 맛을 보니 향 만큼 맛 또한 청량감 있고 훌륭했다고 해."이 찻잔이, 여기 계신 옹(어르신)께서 직접 빚은 것이온데, 아주 훌륭하여 차 맛까지 더 깊습니다."라고 주지스님이 말을 덧대니 곰보의 노인이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껄껄 웃었어.
노인은 김용사에서 10리정도 떨어진 운달산 물방아골에서 도예를 하는 옹이었는데, 오랫동안 불경공부를 한 불자이기도 했대. 김용사에 잘 만들어진 다과그릇과 찻잔을 공양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어. 이런 저런 담화를 나누다가 날이 깊어지자 합장을 한 뒤, 증조할머니께서 다 마신 찻잔을 고이 내려놓고는 시동을 시켜 쌀과 가져온 떡을 공양하셨어.
그 후에시동의 방을 얻어주고 자신도 사랑방 안채를 빌려 짐을 풀으셨더래. 해가 저물고 품으로 파고드는 할머니를 팔베게 해주고는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하길 '참으로 예쁜 잔이던데, 내일 일어나면 길을 조금 돌아 가더라도 물방아골에 들러 자기그릇을 몇개 구비해야 겠다.'생각 하셨대.
날이 뜨고 증조할머니께서 짐을 다시 꾸리니 어렸던 할머니는 퉁퉁 눈이 부어서 "어머니 가지마세요... 또 열 밤을 자야 볼 수 있잖아요."하고 엉엉 울더래. 마음이 아렸지만, 후 일을 기약하면서 품에 안아 쓰다듬어주는 보따리 안에서 예쁜 옥노리개를 꺼내어 쥐어주고는 절을 나섰다고 해. 할머니께서 멀어지는 증조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있는데, 오도송을 가르치던 비구니가 "해인아~ 이제 그만 와야지."하고 불러서 금새 걸음을 뗐다고 해.
증조할머니와 시동이 가는 길은 물방아골 이름처럼 습기가 많고 음습했어. 운달산을 바로옆에 끼고 왼쪽으로 돌아가는 오솔길이어서 그런지 바위의 냉기가 그대로 전해져 서늘한 기분이 일었는데, 장마철엔 산사태도 가끔 일어나는 곳이라서 시동과 증조할머니께선 더욱 조심히 당나귀를 몰게됐지.
그렇게 한참을 가고있는데 갑자기 시동이 당나귀를 멈춰세우고 "아가씨 따라오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하니 증조할머니께서 뒤도 안 돌아 보시고는 "저도 알고 있어요. 신경쓰지말고 가요."하셨어. 시동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유를 물으려다가, 문득 뒤에 멀찍이 쫒아오는 사람을 쳐다보게 됐는데 머리가 어깨죽지까지 눌려박혀있어서 인지 양 쪽 눈이 어딜보는지 다른곳을 처다보는 사팔이였다고 해.
결코 멀쩡한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지. 시동은 순간 척주가 간질간질- 거리셨는지 부르르떨면서 황급히 다시 당나귀에 올라타 길을 재촉했어. 이따금 힐끔힐끔 뒤를 쳐다보니, 다리를 절뚝절뚝- 절면서 따라오는데도 당나귀를 타고 가고있는 자신들과 거리가 멀어지지 않더래. 그렇게 쫒기듯 아닌듯 긴장속에 십여 분즘 가다가 오솔길을지나 볕드는 들녘으로 왔는데, 뒤에 쫒아오던 남자가 갑자기 더럭- 땅을 들먹거리며 달려오더니 볕이 닿는 곳 앞에서 뒤틀린 양눈을 똑바로 모아서 억울한 듯 쳐다보다가 사라졌다고...
10-2
증조할머니께서 차분하게 나귀를세워 풀을 뜯게하고 잠시 쉬는데 시동이 나무에 당나귀를 묶고 다가와서 "그게 대체 뭐였습니까?"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그 것은 객귀였다고 해. 객사한 귀신이 저렇듯 죽은 곳 근처를 떠돈다고, 운달산 산자락 절벽에서 자살을 했거나 산사태같은 변고를 당해 죽은 것일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자칫 붙으면 병도나고 심하면 몸에 붙은 객귀가 쉴새없이 귓가에 떠들어대니 홧병이나서 죽을 수도 있다고... 시동이 자신의 몸 이리저리를 살피면서 "그럼 행여나 객귀가 씌이면 어찌해야 합니까?"하니, 무당들이 객귀물림이나 푸닥거리를해서 떼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안심시켜줬어.
옛 민담에 밖에서 변고를 당하면 시신을 집에 들이지 않고 밖에서 장을 바로 치뤘다고 해. 탈난 영이 객귀가 되어 해코지를 한다고 믿었던 거지. 반대로 아픈사람이 죽을 때가되면 집으로 옮겨 오는 사람도 많았는데, 집에서 호상을 치르면 영이 악해지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시동이 "그 것 참, 끔찍하게 생겼읍디다."하고는 "아가씨는 무섭지 않으십니까? 어찌 그리태평하십니까?" 하며 말을 이으니 웃어보이시면서 "저도 무섭지요. 오금이 다 저렸어요. 다음부터는 혼자 도망 가야겠어요."하고는 싱긋 웃곤 챙겨온 감자를 조신하게 까서 시동에게 하나 건네어 주었다고해 시동이 어버버하게 받아서는 감자가 코로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고...
운달요에 다다르니 장성한 청년 한 명과 어제 보았던 곰보의 노인이 나와 맞이 해주었어. "보살님 아니시우? 여긴 어쩐일로?" 노인이 물으니 증조할머니께서 "어제 보았던 자기가 예뻐서 몇개 구비해가려고 들렀습니다." 했어. 알겠다는 듯이 "그렇구만, 따라오시요."하고는 뫼셔가는데 시동이 허겁지겁 당나귀를 싸리울타리앞 나무에 묶어놓고는 따라들어왔어.
노인이 안내해서 따라간 황토방은, 시유(초벌구이가 끝난 도자기에 광택을 내기위해 잿물을 바르는 과정)가 끝나고 재벌구이(가마에 초벌한 도자기를 두번째로 굽는 단계)를 기다리는 상감(자개, 금, 은, 호박, 옥 등 따위를 박아꾸미는 것)이 잘 된 훌륭한 자기들이 서른점이 넘게 진열된 곳이었어. 그 중에 특히 한 점(갯수단위)은 정말 고왔는데, 오색자개가 영롱한 봉황모양을 그렸고, 봉황눈에 흑옥이 박힌 멋들어진 작은 백자기 항아 였어. 한참을 쳐다보니 노인이 다가와 "아름답지 않우?"하여 증조할머니께서 고개를 끄덕이니 노인이 재차 말하길 "같은 불제자인데 보살님에게 내가 싸게 드리리다." 하여 15원(당시 쌀한가마니가 13원 정도, 지금돈으로 15원은 20만원 조금 넘음)과 쌀 한되를 더 주어 구비하기로 하셨어.
아직 재벌구이를 해야한다고 하여, 사랑방을 얻어 하루 쉬고 가기로 하였는데 날이 저물고 증조할머니께선 온 김에 남자 둘이 사는 집이라 먹는 것이 변변찮아 보이니, 저녁밥이나 채려줄 요량으로 부엌으로 갔다고 해. 쌀을 씻어 밥을 올리고 말린고기를 불려 국을 끓일 채비를 하는데 갑자기 밖에서 "하이고, 아버지!"하는 소리가 들리고 시꺼멓게 옷을태운 시동이 허겁지겁 부엌으로 와서 증조할머니께 "아가씨 퍼뜩 나오셔야 겠습니다!"했어.
상황이 급박 해보여서 무슨일인지 묻지않고 잰걸음으로 성급히 나와보니 노인이 옷을 다 태우고 얼굴이 살짝 발갛게 익어서 쓰러져있고, 노인 아들로 보였던 그 청년이 주저앉아 무릎에 노인의 머리를 받쳐서 찬물에 적신 천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어. 증조할머니께서 서둘러 달려와 노인의 안위를 살펴보니 다행이 큰 화상은 아니었다고 해. 시동을 시켜 무를 갈아오라 하고, 청년이 노인을 닦아주던 천 안에 넣게해야 살살 닦았어.
증조할머니께서 "어쩌다 이렇게 되셨습니까?"하고 물으니 청년이 말하길 "아버지께서 치매가 살짝 있는데, 돌아가신 형님이 부른다고 가끔 가마로 기어 들어가실 때가 있습니다." 하고는 시커멓게 옷을 태운 시동을 한 번 보고는 "평소에는 저와 같이 불을 떼우시는데 오늘은 제가 잠시 토련(도자기 만들 진흙을 발로밟아 공기를 뺌)하러 간 사이에... 이 분이 발견하고 급히 빼내셨기에 망정이지..." 하여, 증조할머니께서 시동에게 물어보니 "들어는가는 걸 보고 황급히 다리를 잡고 빼내었습니다. 헌데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노인이 어찌나 힘이 센지, 결국 어쩔 수 없이 뒷 머리밑을 쳐 기절시켰습니다." 하고는 청년의 눈치를 살피더니 청년이 괜찮다는 듯이 목례로 답하곤 가마에 흙을 끼얹어 불을 껐어.
노인을 방으로 옮기고난 뒤, 증조할머니께서 치료물품을 챙겨오지 않은 까닭에 찬 황토진흙을 얼굴이 고이 펴 발르고 식으면 재차 발르고 하면서 하던 간병을 시동에게 부탁하셨어. 청년과 시동이 간병을 하는 사이, 밖으로 나와보니 달볕이 밝아 제법 시야가 보였다고 해.
그 집에 있던 목향(평범한 나무향)을 피워 들고 다니면서 가마 근처를 살펴보니, 뭐 별다른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서 가마 뒤로 가 보니 향냄새를 피하는 듯 뭔가 후다닥- 도망가다 들썩- 거리고 사라지더래. 불은 껐지만 아직 가마는 열을 내뿜고 있었는데도 유독 가마 뒤쪽은 전혀 열이 나지 않고 냉기가 돌아서 겁이 덜컥나더래. 침착하게 일단 발길을 방으로 돌려서 가려고 했는데,
순간 한 걸음을 채 떼기도 전에 다시 뒤에서 들썩- 거리더니 후다닥-거리는 발 소리가 바로 뒤 쪽에서 멈추었어. 한 겨울 고수동굴 속처럼 냉랭한 한기가 목덜미로 불어오는데 귀를 한바퀴 돌더니 귓 구멍 안으로 서서히 들어오더래. "덕평(시동 이름)총각!!" 하고 증조할머니께서 황급히 소리를 빽- 질렀어. 놀란 시동이 문지방에 걸려 발을 찧을정도로 뛰쳐나왔다고 해. 그랬더니 또 발소리가 멀어지더니 들썩-하고 한기가 사라졌다고...
식은땀이 다한증 심한 사람처럼 손끝에 맺혀 떨어질 정도로 오싹한 경험이었다고 해. 평소에 영을 보는 것과 달리, 무언가 가만히 있으면 굉장히 위험해질 듯한 느낌이었다고... 시동이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입니까?"하니 증조할머니께서 "괜찮아요. 우선 청년과 확인할 것이 있어요." 하고는 노인이 누워있는 방에 들어가 청년에게 물어 그 집에있는 곡주(곡식으로 담근 술)를 노인의 입에 붓고는 급한대로 목향을 피워 둔 채, 청년과 시동을 대동하여 밖으로 나왔어.
가마에 홰(횃불 대)를 넣어 불을 붙인 뒤에, 좀 전에 소리가 들리던 곳으로 가 보니 재벌구이가 끝난 도자기들을 식히며 출요(기준미달은 그자리에서 깨어버리고 양질만 고르는 마지막 작업)를 앞두고 있었는데, 유독 큼지막한 자기항아리 하나가 색이 거무튀튀하여 청년에게 "이렇게 거무튀튀한 것은 어찌하면 나옵니까?"하니 청년이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이상합니다. 그을음과는 분명 다른 것인데 黑토(검을 흑)로 빚은 것 처럼 이런 도예는 한 적이 없습니다." 하여 시동이 뒤에서 지레 겁을 먹고는 불안하게 지켜보는데 증조할머니께서 불을 비춰 자기속을 들여다보니, 아까 느꼈던 한기가 안에서 서서히 사그러들고 있더래.
무언가 아차 싶었는지 증조할머니께서 "서둘러 옹(어르신)에게 가봐야 겠습니다." 하고는 먼저 발걸음을 돌리니 시동과 청년이 머리속이 정리가 안 되서 서로 처다보며 흐음- 하며 따라갔는데, 이내 호롱불에 비친 방문으로 그림자 기어다니는 형상을 보고는 눈이 틔어나올정도로 놀랐다고... 겁도 없이 증조할머니께서 문을 덜컥-열자 시동이 본 방안 상황은 이랬어.
곰보의 노인은 깨어 있었어. 그리고는 바닥에 엎드려 기어다니다가 문이 열리니까 앞에 있던 증조할머니를 밀어 젖히고, 다시 가마로 돌진을 하더래. 시동이 막아서는데도 구부정한 노인이 힘이 어찌나 좋은지 성난 황소마냥 바짓가랑이 붙잡은 시동을 질질 끌고갔다고 해. 이윽고 가마 안으로 들어가버려.
다행인 것은 청년이 아까 가마에 불을 끄고 흙을 끼얹었기에 화상을 입을정도의 열은 아니었어. 하지만 무척 뜨거웠다고 해. 그 안에 쪼그리고 앉은 노인은 기이하게도 무척 추은지 벌벌- 떨고있었는데, 시동이 일어나 툭툭- 흙을 털고는 "할아버지! 나오세요. 거기있다가 열병나요." 하는데도 들은 채도 않고 있더래.
증조할머니께서 청년을 보고 "옹 께서 치매가 아닌 듯 해요." 하고는 설명을 덧대는데, 낮에 시동과 오면서 본 객귀가 있었는데 그 것처럼, 지금 노인의 등에 찰싹 달라 붙어있는 령도 객귀같다고 했어. 객귀들린 사람에게서 보는 것 같이, 양 팔과 다리로 노인의 몸을 휘감고 귀에는 무언갈 계속 속삭이고 있는데, 눈은 계속 증조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해. 그 객귀의 입에서 모공이 송연할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계속 노인의 귀로 들어가고 있다고.
그러자 청년이 불같이 화를 내며 "지금 아버지께서 귀신에 씌였다는 겁니까?하니 시동이 청년에게 진정하라고 다독이며 말하길 "저도 낮에 객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팔뜨기 절름발이여서 아주 흉측했습니다." 하니 청년이 증조할머니를 쳐다보며"정말 입니까?" 하고 물었어. 증조할머니는 그에 대한 대답대신 다른 말을 했는데 "지금 이 령은 키가 훤칠하고 덩치가 있습니다. 힘이 무척세서 옹께서 옴짝달싹 못 하시는 것 같습니다."하고 설명을 덧대는데 매부리코에 높게솟은 눈꼬리까지 설명하자 청년이 화들짝 놀라며 말하길.
"제가 도예를 배우기전에 형님이 한 명 있었는데, 온달산 높은 곳에서 좋은 흙을 캐러 가신다고 하시곤 돌아오지 않아, 가 보니 낙사(떨어져 죽음)를 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집에 모셔오진 않고 그 곳에서 장을 치뤘는데, 그 형님하고 똑같습니다!" 했어. 그러자 증조할머니께서 잠깐 생각을 하시더니 객귀는 음습한 곳을 좋아하고 낮엔 땅속에 숨어있기도 하는데, 질 좋은 흙에 숨어있다가 청년이 자기 구울 흙을 캐올때 숨어서 딸려온 것 같다고 했어.
청년이 깊은 한 숨을 쉬더니 "얼마 전에 형님이 죽은 곳 근처에서 흙을 해 온적이 있는데, 그것이...."하면서 말을 멈추더니 어떡해야 할지를 모르고 초조해 하고 있었다가, 재차 노인을 빼내려고 가마 안에 팔을 넣고 힘을 쓰는데, 어찌나 굳건한지 옴짝달싹도 안 하더래. 행여나 남아있는 열기에 살이 익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멀뚱히 서있는 시동에게 도움을 청하여 항아리에 담아놓은 물이 바닥날정도로 가마위에 끼얹었다고 해. 할머니께서 그 집 방안에 이불을 가져와 가마위에 얹고 "여기다가 부으세요" 하니 이불이 물을 머금고 좀 더 오래 가마를 식혔어.
그렇게 한참을 반복하자 날이 약간 밝아 첫 닭이 울고 동이 약간 텄는데. 황급히 나귀를 타고 당포1리 마을에 무당을 데려와서 객귀물림굿을 했다고 해. 다행이 무당이 용했는지 할아버지는 가마에서 나올 수 있었고, 다음날 집에서 채비를 다시 해온 증조할머니께서 죽은 청년의 형님 묘자리로 가서 위령제를 올려주고, 객귀가 숨어있었던 거무튀튀한 자기를 가지고 묘 앞에 묻어주었다고 해. 시동이 이유를 묻자 "그 귀신이 흙에 미련이 있어 좋은 자기를 보고 숨어 들은 것 같아요."하고는 행여나 다시 노인을 찾지 않을까 하여 숨어있던 자기를 묘 앞에 묻어 준 것이라고 해.
몇일 뒤에 노인의 안부를 물으러 증조할머니께서 가셨었는데, 노인은 많이 나아져서 청년에게 성을 내며 열정적으로 도예를 가르칠 정도로 괜찮아졌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인이 곰보인 이유가 증조할머니께서 그 집에 가기전에 자주 가마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때 마다 얼굴에 화상을 입다보니 곰보가 되었다고 하더래. 고마움의 표시로 봉황자기를 공짜로 주셨다는데, 공짜라고 싱글벙글 하던 증조할머니를 시동이 이해못하겠다는 듯 멍 하게 당나귀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해.
11. 항상 잔치 지내는 마을
1931년 금추(가을) 증조할머니께서 젊었을 적 낭랑 열어덟의 나이때에 일. 당시 문경 흥덕에 시집와서 살던 증조할머니께서, 하루는 마루에서 엎드려 글 공부를 하시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더랬다. "누구세요~" 하고 나가보니 웬 청년이었는데 주욱- 훑어보니 우편가방을 울러메고 헤진 고무신에 노란 편지봉투를 들고 있는 집배원.
그 청년이 "편지왔어요."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감사합니다. 아, 잠시만요!" 하고 편지를 받아 펼쳐둔 책사이에 대충 끼워놓고, 냉수를 가져다 집 안 마당 에서 따온 향 진한 모과를 얇게 포떠 물에 띄워 줬다고 해. 집배원이 살갑게 웃으며 단번에 마셔버리곤 모과수의 청량감에 놀란표정을 지으며 "하! 맛이 정말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는 마저 일을 보러 나갔어.
증조할머니께서 마루에 털석- 앉아 편지를 열어보니, 상주 양진당쪽 승곡리에 살고있는 친家에서 온 것이었는데, 내용인 즉슨 상주 승곡리와 은평리는 바로 옆 동네로 매우 가까워, 옆마을 은평리에서 매일같이 잔치를 한 지가 어느덧 보름(15일)이 넘었으니 기회가 되면 할애비도 보러오고 잔치도 놀다 가라는 것이었지. 증조할머니께서 '얼마나 기쁜 경사가 났길래 보름내내 잔치를 하지?' 하곤 오랜만에 외출에 신이나서 방방- 뛰었는데, 마당쓸던 시동이 뭔일인고 처다보았더래.
증조할머니께서 내일 가도 될 것을, 당장 마루에 종이를 펴 날아가지 않게 증조할아버지가 피우시는 곰방대를 올려두고는 저녁에 집에 들어오실 증조할아버지 보란 듯이 <친家 놀러 다녀 올게요. 시동 데리고 갑니다.> 적어놓고는 받은 편지까지 나란히 두었대. 그리곤 통가방에 짐을 챙기더니 시동을 시켜, 나귀를 준비하고 상주로 출발하셨다고.
나귀를 타고 가는길에 시동과 추수하는 농부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세시간을 넘게 가니, 이윽고 친家에 도착했더래.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은평리와 승곡리 쪽은 풍양 조家 집성촌이어서, 그만큼 조家 분들이 많았겠지? 증조할머니의 친家도 마찬가지로 호군(풍양 조家집안 문중 공파중 하나)조씨 집안이었는데, 기왓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밝은 분위기의 편지와는 다르게, 집안 사람들은 평소와 다를바 없었더래.
오랜만에 보는 어머님과 살갑게 인사를 하는데, 대청(건넌방과 안방 사이 큰 마루)에서 콜록- 콜록- "명兒(아이 아)왔구나" 하고는 집안 제일 어르신께서 증조할머니애칭을 부르셨대. "네 할아버지. 손녀 왔어요." 하고는 대청으로 올라가 큰 절을 하니 어르신이 말하길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게 됐구나."라고 서두를 시작하셨대.
증조할머니께서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일 있으세요?"하니 어르신이 껄껄- 웃으시면서 "그런거 없다. 실은 옆 마을에 해괴한 일이 좀 있는데, "콜록-"니가 영험하다고 화천(풍양 조家집안 문중 공파중 하나)늙은이 한테 자랑좀 했더니 글쎄, 사례는 크게 할테니 불러 달래는거야." 하셨더래.
조家네 며느리가 따뜻한 유자차를 한 잔 올리자 어르신께서 천천히 마시고 기침을 가라앉혔어. 증조할머니께서 다소곳이 앉아 "그럼 잔치는..."하고 놀고싶은 마음에 성급히 입을 열었다가 어르신의 눈치를 보니 허허- 웃으시면서 "아, 물론 잔치는 하고있지. 매일해서 문제야." 하면서 이야기를 해주셨더래.
은평리 화천공파 집성촌에서 매일같이 하는 잔치는 우육(소고기)이 남아돌아서 하는 잔치였더래. 당시 상주에는 소 농장이 많았는데, 하루에 한 마리씩 소가 이유모르게 죽어버려. 기이한 것은 죽은 소를 발견해서 보면 배가 목 밑부터 꼬리까지 一자로 갈라져, 안에 장기들이 감쪽같이 없어져 있다고, 하셨다고.
일이 벌어진지 벌써 일주일. 처음에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산짐승이 내려와서 그랬거니 하고, 죽은 소로 마을사람들을 모아다 잔치를 하고 남은 고기들은 옹기에 잘 담아서 서늘한 냉골에다 넣어두었더래. 그런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매일같이 소가 죽어나가는 거지. 밤새 마을청년들이 지켜도 산짐승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아침이면 어김없이 소가 한 마리씩 죽어버려.
키우던 소가 죽은 집들은 우둔(부위중 하나)은 말리고, 늦게 상하는 고기들을 재우고,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대. 도축하는 사람들은 장사도 망치고, 고기를 가득실어 행상이 장사를 떠나도 고기가 많이 남고 매일같이 소가 죽어가니, 마을은 잔치 아닌 잔치를 계속 벌이게 된거라고 하셨대.
증조할머니께서 이야기를 듣고는 불현듯 생각이 들었는지, 집안 며느리에게 부탁을 드려서 용담(7~9월에 꽃 피우는 약초 뿌리 말린 것, 간 두통 해열 편도 고혈압 관절 소화 메스꺼움 설사등등 효험이 좋다.)을 두둑히 챙겨넣고는, "잘 해결하고, 할아버지 먹을 고기까지 함지박 만하게 받아 올게요." 하니 어르신께서 껄껄 웃고는 "이가 없어서 잘 씹지도 못 해. 가져다준 고기가 많아서 한참 먹어도 남으니 걱정말고 니 서방거나 받아오니라."하여 증조할머니께서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시동을 부르는데 왠 아저씨도 같이 오더래.
그 아저씨는 짧은 수염을 멋지게 길르고, 양복에 중절모를 썼는데, "반갑습니다. 태화(안동 태화동)에서 온 황 성현이라고 합니다."하고 살짝 고개를 숙이니 증조할머니께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르신을 향해 "이 분은..." 하니 어르신께서 "은평리에 근래에 병든사람이 많아졌다고 해서, 내가 불렀다. 그 화천늙은이 나한테 빚 많이 진게야."했어. 안동에 사는 유명한 한의(한의사)였지. 증조할머니께서도 뒤늦게 인사를 드리고 같이 은평리로 출발하게 돼.
친家쪽은 부유하게 잘 사는 집 안이어서 당나귀를 맡기고 이두 마차를 얻어서 마부, 시동, 성현한의, 증조할머니 이렇게 네분이서 은평리로 향했지. 은평리로 다다를 수록 산은 낮고 민둥에다가 흔한 추화(가을에 피는 대부분의 꽃)조차 보이지 않고, 공기가 매우 건조했다고 해. 30분도 채 안 걸려서 도착했는데, 마을 어귀부터 우육 삶는 냄새가 자욱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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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흙길을 중앙에 두고 양 쪽으로 집들이 모여 군집생활을 하는 촌이었어. 화천어르신을 뵈러 마을로 들어서는데, 집집마다 상을 가져나와 큰 버드나무터 밑에 자리를 펴고 다른 음식은 일절 없고, 탁주를 겸하여 고기를 먹고 있었더래. 그 사람들 표정이 하나같이 매우 어둡고, 멋 모르는 아이들만 신나게 뛰어놀고 있드라니, 좀 더 들어가 보니 언덕에 소 농장이 하나있고 고풍스러운 한옥이 한 채 있었는데, 마부가 "도착했습니다. 아가씨."하여 다들 내려서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청년 한분이 나오더래.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하고 인사를 하더래. 마부와 시동에게 건넌방 사랑채에 짐을 풀게 돕고, 성현한의와 증조할머니를 대청옆 안방으로 뫼셨어. 곰방대를 뻐끔- 태우시던 화천어르신이 계셨는데 미간이 골이 깊은 것이, 기가 매우 드세보였다고...
일행이 큰절을하고 서있는데 화천어르신이 "뭘 다들 멀뚱히 서있어! 어서들 앉어." 하여 성현한의가 중절모를 벗어 옆에 내려두고 앉으니 증조할머니께서도 따라 앉았어. 으흠- 하고 한 번 주욱둘러보시다가 입을 열었는데, "너는 호군늙은이 가 보내서 온 손녀보살이고, 너는 태화에서온 한의가 맞을테고." 하고는 곰방대를 화로에 올려놓고 마저 말을 이었는데 "대충 이야기는 들었을 것이야. 쇠(소)들이 잘 먹이고, 잘 치는데도 희떡희떡 죽어가고 있으니, 살핌이 옳다! 저 밖에 임七(화천공파 24대 칠자돌림)이가 안내를 해 줄것이야." 하고는 나가보라고 손짓을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열심히 살피겠습니다."하고는 살짝 목례를 하고 나왔어.
조 임칠이라는 청년의 안내로 시동을 대동하여 다시 버드나무터로 걸어 나와보니 사람들이 흘금흘금 쳐다보는데, 그중 고기삶던 아낙 하나가 "한 분은 용한 보살님이라는데 한 분은 못 보던 분이구만."하니 성현한의가 모자를 벗어 인사하고는 "안동에서온 한의입니다."하니 그제서야 밝은표정으로 사람들이 다가왔지.
"매일 고기를 먹으면 안되는 것입니까?"하고 한 사람이 입을 여는데, 사연인 즉슨 소가 죽는 일이 있고나서 일주일정도 지나니 대부분은 계속 먹어도 괜찮은데 그중 소수가 탈이나는 사람도 있어서, 그런 사람들은 우육(소고기)을 먹지 못 하고 지금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거였지. 하여 한의가 "제가 가서 살피겠습니다." 하니 서로 자기 집으로 모시려고 실랑이까지 벌어졌어.
그 사이 증조할머니께서는 사람들에게 물어 제일 소가 많이 죽었다는 집으로 갔는데, 임칠청년이 "조금 있다 뫼시로 오겠습니다."하곤 가버려. 시동은 어느틈에 얻어왔는지 큼지막한 고기를 으적으적- 소리내어 씹고 있다가, 증조할머니께서 버럭- 쳐다보자 눈치를 보다가 딸꾹질을 하더랬대. 잠시 기다리는데, 손에 묻은 피를 황급히 헝겊에 닦으며 나오는 아저씨가 있었지 "오시느라 고생많았습니다. 조 현구라고 합니다." 인사를 하고 부엌 뒷문을 지나 큰 외양간으로 뫼시는데 부엌에 손질하다 만 고기들이 있었다고...
"저희집이 마을에서 소를 제일 많이 치는데 글쎄, 간밤까지 도합 여덟 마리가 죽어서 큰일입니다." 하고는 외양간을 보여주는데, 시내(시체냄새)가 나고 머리가 어지러워 증조할머니께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있더래. "냄새가 많이 역한가 봅니다."하고 아저씨가 말하자, 시동이 뒤따라 들어와 보니 쇠똥냄새도 나는데 시체썩는 냄새도 같이 어우러져, 손사래를 쳤다고.
"군웅(외양간에서 모시는 신, 우마신, 쇠군웅 쇠구영신이라고도 함)은 어디서 뫼십니까?"하고 증조할머니께서 천천히 발을 떼어 안으로 들어가는데, "저깁니다."하고 아저씨가 안내 한 곳으로 가니, 외양간 중앙 목기둥(나무기둥)에 괴황지에 적은 산멕이글(군웅을 산, 산멕이라고 하여, 삼신과 비슷한 급으로 대우함)을 못을 박아 걸어놓았는데, 색이바라고 그 밑에 공양대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 괴황지를 한 번 스윽 만져보니 아무 기운이 없고 종이가 비쩍말랐다고 해. 만진 손 끝에 향을 맡아보니 무취(아무냄새가 없음)에다가 자세히보니 끝은 조금 찢어져 있었다고...
시동이 아무래도 냄새때문에 안 되겠는지 나가 있으려는데, 증조할머니께서 "나가지 마세요." 하고는 가방에서 부용향(혼인에 쓰던 향의 종류로, 터를 정화하고 잡귀를 쫒을 때 쓰기도 한다.)을 너댓개를 성냥불로 태우니 스산하게 퍼지면서 악취를 없애나갔더래. 그렇게 향을 들고 외양간 끝까지 한 번 주욱 도는데, 끝에있던 소 한마리가 느닷없이 거칠게 울어대길래 증조할머니께서 향을 들고 가까이가니, 투레질을 하면서 뒤로 막 물러나더래. 시동이 증조할머니께서 행여 다칠까 다가와 증조할머니를 뫼시고 뒤로 돌아왔지.
"무슨 일인 것 같습니까?"하고 아저씨가 묻자, 증조할머니께서 말하길 "여기에 군웅신이 계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하고는 설명을 덧대는데. 군웅신을 모시지 않으면 집안에 환란이 생기기 때문에 성주신보다 더 위해야 한다고... 이렇게 소에게 변고가 있을땐 외양간에서 제를 지내야 한다고 하셨지. 증조할머니께서 "시집간 따님이 계십니까?" 하니 "작년에 고명딸 하나가 시집을 갔습니다."했대.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군웅은 딸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때문에 군웅을 모시는 집에서 딸이 시집을가면 굿을 다시 하여 새로 군웅을 잘 모셔야 한다고... 잘 모시지 않으면 외양간에 귀가들어 심하게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하셨어.
"어찌해야 합니까?" 아저씨가 물으니 "일단 확실한지 봐야 겠습니다."하고는 군웅을 모시는 공양대에 가져온 용담을 올려놓고 향을 피워둔채로 나왔더래.
증조할머니께서 상주 읍내에 용한 무당을 불러오도록 시동을 시켜 보내고, 성현한의와 다시 만났는데 한의가 말하길 "탈이난 사람들에게 침술을 놓고 약을 처방해도 차도가 없어서 통증만 가라 앉히고 왓습니다."면서 고민을 하더래. 그 때 낮에 들렀던 집에 아저씨가 헐레벌떡- 증조할머니를 찾아오더니 "소가 쓰러져서 움직이도 않고 숨만 몰아쉬고 있습니다!"해서 성현한의와 증조할머니께서 아저씨를 따라 그 집 외양간으로 다시 가보게 됐지.
날이 어두워져 외양간 안도 잘 보이지 않아서 호롱불을 들고 비춰보니 말대로 소가 쓰러져있는데, 낮에 투레질하며 증조할머니를 피하던 그 소였어. "식초? 냄새 나지 않습니까?"하곤 성현한의가 말하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어. 증조할머니께서도 아주 강한식초냄새를 맡으셨더래.
그 때, 갑자기 소 배가 一자로 주욱 찢어지고 장기가 쏟아졌는데, 보고있던 아저씨와 성현한의가 깜짝 놀라서 뒤로 멀찍이 도망가 문 뒤에 숨고 증조할머니께서 헝겊으로 코와 입을 막고 보니 뭔가 꾸물꾸물 배 속에서 나오더라는 거야.
강한 식초냄새를 풍기며 나온 그 것은 새카만 뼈가 다 보일정도로 투명한 몸에 어린아이처럼 작고 가느다란 형상에 머리가 크게 붙어 있었더래. 눈 코도 없이 입만 덩그러니 있는데, 입이 신기할 정도로 동그랗게 크고, 안에 이빨은 동글동글 콩을 박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 사이한 기운을 풍기면서 나온 그 것은 자리를 잡고 앉더니 죽은 소의 내장을 입에 대고 쪽-쪽- 하고 입으로 쏙- 빨아삼켜버렸대. 그렇게 다 먹어치우고는, 옆칸 소의 쇠구(소입)를 벌려서 미끄러지듯 그 소 안으로 들어갔다고...
증조할머니께서 '병귀가 들었구나' 하고는 널찍이 떨어져서 지켜 보시다가, 숨어있던 아저씨와 성현한의에게 "사라졌으니 오세요."하고 손짓을 했대. 그들이 가 보니, 아침마다 죽어있던 소 처럼 장기가 사라져있었지. "어찌된 일입니까?"하니 증조할머니께서 대답 대신에, 가방에서 괴황지를 꺼내어 牛獄(우옥 : 소 우, 옥 옥)이라고 적어 귀가들어간 소 배에 착- 하고 붙이니 소가 낮게 울었어. "군웅이 없는 틈을 타 병귀가 든 것 같습니다." 하고 덧댄 내용인 즉슨
병귀는 질병귀라고도 불리는데,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나쁜 귀라고 하더래. "아마도 근래에 아프고 병이든 사람들 집은, 군웅을 제대로 모시지 않고 있을 거에요."해서 아닌밤중에 호롱불을 들고 성현한의가 진료한 집들을 방문해보니. 과연, 외양간 기둥에 천으로 신체를 만들어서 군웅을 뫼시는 집도, 그 천이 다 헤지고 상하였고. 어떤집은 아예 모시지도 않고 있었더래.
다음날 아침에 시동이 무당을 데리고 마을에 오자, 무당이 "이런일은 태어나 처음 봅니다."하고는 증조할머니와 성현한의와 같이 화천어르신께 갔어. 지난밤에 일들을 고하고 증조할머니께서 설명을 덧대자, 화천어르신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군웅을 잘 뫼시라고 일렀지.
당시 마을에는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꽤 있어서, 다들 반신반의 하면서 제를 올리게 돼. 무당이 버드나무터에서 굿을 하고, 와중에 증조할머니께서 포목점에서 고운 비단을 구비해서 한지와 잘 꿰메어 천자대국님(天子) 이라고 적었어. 그 것을 집집마다 외양간 구유 위쪽에 잘 걸어두고, 시루떡과 북어를 공양대에 간소하게 차린 뒤에 부용향을 피웠어.
그리고는 어제 牛獄(우옥)이라고 적어서 배에 붙였던 소에게 가져가신 용담뿌리를 곱게 갈아 살짝태워 거뭇해진 여물과 섞어 먹이고, 마을 소들에게도 똑같이 먹이라고 하셨더래. 당시에 용담뿌리는 많은 방면에서 효능이있고 진통효과도 뛰어난 데다가 위장병에도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더래. 그렇게 일은 일단락 되고, 후에 소들이 급사하는 일은 사라졌다고...
실제로 지방에선 쇠구신(군웅)을 모시는 집의 딸을 며느리 삼으면 쇠구신이 따라는데 그 집에서 모시지 않으면 해코지를 한다고, 쇠구신을 모시는 집 딸은 며느리 삼기를 꺼리는 곳도 있었다고 해. 아직까지 소를 키우는 곳에서는 군웅을 모시는 신체(위령패 비슷한 것)도 많이 발견 할 수 있어.
12. 전쟁이 몰고 온 망혼
1950년 주하(여름) 할머니(증조할머니의 딸)께서 창창한 여 학생때의 일. 지독한 가뭄으로 문경전역은 기근과 열병에 시달리던차에 6.25가 발발했지. 그 것도 매일같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더래.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끼고있는 천고의 요충지였던 만큼 전투가 잦았고, 한국의 정 중앙에 위치해서 어디 지역으로든 진군하기가 수월했기 때문에 북한에게 문경은 상당히 점령선상의 우위에 있었어. 덕분에 문경에 사는 무고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할머니께서는 당시에 자신이 아둔했다고 자주 말씀 하셨어. 전쟁의 발발은 그 당시 할머니에겐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을 준거라고 생각하는 철없던 시절이었다고 말이지. 실상은 전혀 달랐어.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문경의 많은 남학생들이 학도병(학도 의용군)이 되어 충주, 영덕, 포항등 전역으로 징집당했어. 한국을 수호하기위해 뜨거운 가슴으로 인민군에게 맞섰지.
예외로 여학생들도 학도병을 자처해서 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할머니를 잘 붙잡아 두어서 망정이지. 아니면 난 빛도 못 볼뻔 했어.
특히나 지독했던 것은 한국군의 비행기 공습이었다고 했어. 7월말부터 시작된 공습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에 두 시간씩 매일 폭격이었다고 했어. 무서운 사실 하나는 그 비행기는 인민군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았더래. 사람이 나타나면 무조건 사격을 했다고... 당시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어. 한국군의 작전 개념으로 보자면 적 치하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무조건 적이었으니까.
당시 문경은 인민군 치하에서 멀쩡한 집은 다 인민군에게 자리를 내어준 채, 콩만한 오두막에 완두콩이 맺힌것 처럼 다닥다닥- 붙어 숨어지내는 집이 많았지. 증조할머니께서도 인민군에게 집을 내주고,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데리고 함창에서 과수원을 하던 이모댁에 피신을 가 있었다고 해. 하지만 8월 중순즈음에. 인민군 한 소대가 이모댁까지 휘저어버려. 하여, 그들은 큰 안채를 차지하고 결국 작은 쪽방에서 이모댁 식구와 증조할머니댁 식구가 모여서 지냈다고해. 하루하루 불길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고...
하루는 멀찍이 인민군의 감시아래, 아낙들이 마을 개천에서 빨래를하다가 한 아낙이 조용히 얘기하길 "하이고 클났네. 백종절(억울하게 죽은 조상이나 망자의 혼을 위해 제를 올리는 날)이 당장 내일 인데..."하고 운을 떼었더래. 탁-탁 거리며 나던 다듬이방망이 소리가 멈추고 다른아낙이 "나라가 흉흉하이 아버지 제사도 못 지내가이고 큰일이라. 망혼일이라도 챙겨야 되는데."하니 증조할머니께서 듣다말고 "그러지말고 음식 하나씩이라도 구해서 제를 지내는게 어떻습니까?"해서 모의가 시작됐더래.
방법인 즉슨, 가뭄이 심한데다가 인민군까지 눈에 불을키고 있는마당에 힘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백중은 어차피 달밤에 지내야 하니, 인민군들이 잠든 새벽에 채소, 과일, 술, 밥을 각자 하나씩 가지고 한 곳으로 모여서 제를 올리자는 것이었지. 한 상에서 여러 조상을 지방(조상 모시는 패를 종이에 쓴 것)써서 모시긴 상이 부족하니 망혼제(조상신 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혼까지 위로하고 후손에게 홍복을 비는 제)의 방식으로 지내기로 한거야. 大지방은 증조할머니께서 준비해서 오기로 했더래.
그렇게 대화를 조용히 나누고 있는데 눈치보던 한 아낙과 감시하던 인민군이 눈이 마주쳐 버렸어. 그러자 갑자기 "녀자들 뭐하는 거이네? 반동꾸밀 생각 말라! 납철알(총알 북한말) 배때지에 박히고 싶디!?" 하고 인민군이 총구를 들이밀고 으름장을 놓아서 더 이상 모의는 하지 못 하고, 이내 빨래가 끝나 흩어졌다고 해.
8월 28일(음력 7월15일 백중또는 망혼일)저녁. 자정이 되기전에 긴박하게 모인 식솔들은 증조할머니네를 포함해서 네 식구. 치맛저고리 품 안에 몰래 가져온 음식들은 다소 조촐하기 그지 없었어. 고사리와 배추닢을 채썰어 간장에 무친 것과, 이모댁 과수원에서 딴 배와 사과, 오래된 곡주 한병과, 몰래 짓느라 설익은 꽁보리밥이 다였지. 다리가 없는 나무로 된 사각 쟁반을 무릎즈음 오는 바위 두개에 걸터 올려놓고는 조촐하게 상을 차렸어. 할머님이 한지에 곱게 적은 지방을 올리고, 목향(절에서 흔히쓰는 나무향)과 초를 피워 제를 올렸어.
증조할아버지께서 두 번 절하고 곡주를 돌린 뒤,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께서 두 번 절 하고 읍을하면, 다른 식구들도 가장이 나와 절을 두번 올리고 곡주를 전과 같이 돌렸대. 이어 식솔들이 나와서 두 번 절하고 읍을 올리는 식으로 근래에 제사와 매우 비슷하게 진행 됐다고 해. 망혼제라 그런지 대상이 불 분명하고 많은 가족이 모여 지내다 보니 "조상들이 너무 모일까봐 걱정이라. 근래에 전쟁때문에 억울하이 죽으신 분들도 많은데 그 혼까지 다 오는거 아이라?"하며 한 아저씨가 말을 하자 그 집 아낙이 "음식이 작아 화를 부를까도 걱정이에요." 하던차에,
불 붙여둔 초가 꺼질락 말락 하니 바람이 살살 불자, 증조할머니께서 "많이들도 오셨네." 하고 망혼들의 천도(성불의 개념중 하나)를 위해 지방을 한 글자, 한 글자 읊으며 혼을 기리더래. 할머니께서 증조할아버지 바짓가랑이를 살며시 당기면서 "아버지 저건 뭐하는 거에요?"하고 묻자 증조할아버지께서 할머니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극락왕생 하라고 넋을 달래 주는기라. 내 죽으면 니도 제사 지내 줘야하는기라" 하곤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서 있더래. 망혼제가 잘 지내던 찰나에 갑자기 소리가 난 것은 뒤 쪽이었어.
"이...이...! 쌍간나 새끼들 특무상사동무!(일등상사와 준위 사이계급, 지금의 원사와 비슷함.)이리좀 와보시라요!" 하여 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쳐다보니, 증조할머니 이모댁에 있던 인민군들이 다른 식구집에 있던 자기 소대원들까지 대동하여 나왔어. 그 중에 특무상사동무라고 불린 인민군 하나가 성난 콧김을 내뿜으며 다가오는데 "길티! 내 이럴줄 알았디. 촛불피워논게 뭐이네 하고 와 봤더니, 아새끼들 오마니 아바이 다 데리고와서리 귀것(귀신 북한말)들 부르고 있구만 기래" 하고는 인민군들을 시켜 총을 겨누게 하곤 망혼제를 올리던 쟁반을 가져가 버렸어.
증조할머니께서 '혼이 떠나질 못 하고, 제 중에 혼들이 먹던 음식을 가져가 버렸으니 큰일났구나.'생각하셨다고 해. 해서 제는 다 지내게 해주고 음식을 가져가 달라고 말할 심산으로 "저기..."라고 입을 떼자마자 "저 종간나들 아가리 물리라우." 하고 옆에 있던 상급병사(병장 북한말)가 명령했더래. 말단 전사(이등병 북한말)들이 증조할머니의 따귀를 짝- 하고 강하게 내려치고는 끌고 갔다고.. "에미내. 락자없이(영락없이) 애옥살이(가난한 삶)척 굴더니만, 이거이 일났구만 기래."하고는 제를 지내던 사람들도 거칠게 끌고 갔다고....
와중에 한 식솔이 이 맹렬히 반항하며 "집도 주고 먹을 것도 다 줬는데, 머하는 짓거리야!"하고 악다구니를 쓰니 전사 한 명이 개머리판으로 허벅지를 강하게 내리쳐 쓰러뜨리곤 "종다리(종아리) 부서지기 싫으면 얌전히 따라오라." 했어. 다른 인민군들도 낄낄대고 끌고가서는 곡창에 거칠게 쑤셔넣었대. 그러고선 망혼제를 올렸던 음식을 비벼서 나눠먹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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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모금 못 먹고 새벽을 보냈는데 날이트고 첫 닭이 울 때 즈음 밖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는데. "진새벽(꼭두새벽) 부터, 뭐이 이리 오구탕(야단법석)이네!?" 하고 특무상사 목소리가 들리더니, 잠시후에 탕- 하고 소리가 들렸더래. 곡창 앞에 서있던 인민군 하나가 부랴부랴 달려가자, 이모댁 할머니께서 살짝 빼꼼-히 문 을 열어보니 마당에 인민군 소대장 특무상사가 총을 맞아 쓰러져있었어.
상급병사가,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있는 인민전사(이병) 한 명을 보고 "너이 탁없이(터무니없이) 뭐하는 짓이네!"하곤 그 인민전사가 들고있던 총을 빼았았어. "상사동무 정신차리시라요!" 하고 응급치료를 하는데 목을 꿰뚫려버려서 이내 죽어버렸다고...
"남... 남조선 놈이었습네다..." 넋 나간 인민전사는 분명 그렇게 말했더래. 퍽-하고 상급병사가 개머리판으로 인민전사 머리를 강하게 내려치더니 다른 병사보고 "이 아새끼래 얼죽여(반 죽음, 빈사)버리라우!" 하고는 특무상사의 시신을 챙겨 나가서 군인들을 동원해서 묻어버렸어. 그와중에 집안에서 "상급병사 동무! 이리좀 와보시라요!"하더니 상급병사가 인상을 쓰고 돌아와서 "또 뭔일이네!?"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곧 시끌벅적- 난리가 났다고...
잠시 후에 "그 쌍간나들 데려오라." 라는 상급병사의 목소리가 들리고, 곡창 문이 열리더니 인민군들이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을 죄다 빼내어 마당에 무릎을 꿇렸대. "이거 보라우. 네 들이 델고온 귀것(귀신)이 한 짓이 틀림 없디 않네!?"하여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보니 상급병사 옆에 한 인민전사가 죽어있는데 턱에는 흰 토사물이 거품처럼 한 가득 묻어있고 입술은 엉성하게 위 아래로 바느질이 되어있었다고 해. "키대(허우대) 멀쩡한 아새끼래 방안에 혼자 있었는데도 이렇게 됐어. 지가 스스로 입을 꿰맸다는 말이디." 했어.
간밤에 거칠게 반항하던 아저씨가 "정신병이 있었던게지! 우리랑 상관없다."하니 상급병사가 눈썹이 악귀같이 변하곤 퍽- 하고 개머리판으로 아저씨의 머리를 찍어 기절 시켜버렸어. "쥐약이라도 처먹디 않고는 개거품을 물일이 없디 않간?" 하고는 죽은 인민전사를 가리키며"저거이 데리고 나가서리 묻어버리고." 기절한 아저씨를 가리키며"저거는 쏴 죽여버리라우" 했어. 아저씨 가족들이 울면서 그러지말라고 하는데 인민군들이 거칠게 밀어버리곤 기절한 아저씨를 끌고 나가버려.
증조할머니네가 말도 없이 마당에 무릎 꿇은채 조용히 있는데 한기가 몸을 훑고 지나가더니, 대청마루 밑에 어둡게 터를 진곳이 일렁일렁 거리면서 거뭇한 뭔가가 움찔-거리고 있었다고 해. 인민소대가 모여서 쌀겨로 죽을내어 먹고있는데, 기절한 아저씨와 좀전에 죽은 인민전사를 끌고간 인민군들이 급하게 뛰어오면서 소리를 질렀어. "살려주시라요! 살려주시라요!"하면서 들어오니 "뭔일이네!?"하고 상급병사가 대답하자, 헐레벌떡- 달려온 인민전사가 말하길 간 밤에 사라졌던 병사들이 개울가에서 죽어있다면서 시신들이 오체가 분시되고 목이 없어져있다고 하더래.
"앙심품은 놈들이 그런거 아니네!?"하곤 상급병사가 벌떡일어나 총기를 들었어. "중급병사동무는 여기 남아서 이 것들 지키고 있으라우." 말하니 가족들을 감시할 중급병사(상병)하나만 남고 나머지 인민군들도 총을들고 다 나가버린거지. 남은 중급병사가 "수작부리디 말라."하면서 포승줄로 남은 사람들을 8자로 꼬아묶고는 "줄 푸는 개미소리(작은소리)라도 들리면 바로 대갈통에 납철알을 박아버리갔어." 하고는 건너 집 살던 아낙을 끌고 곡창으로 향했어.
강간을 하려는 모양이었다고 해. 남은 사람들이 침음성을 삼키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있는데, 곡창에서 짝- 하니"악!"하고 아낙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시간이 좀 지나자 퍽-퍽- 소리가 들렸대. 증조할머니께서 '인민군이 아녀자를 매질하는 모양이구나."하고 있는데 곡창문이 열리더니 아까 잡혀간 아낙이 몸에는 피칠갑을 하고선 가슴저고리 앞섬이 찢겨, 보이는 속살을 부여잡고 나왔더래. 할머니께서 놀라서 비명을 자지러지게 지르는데.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곤.
"뭐, 뭔일이라?"하고 증조할아버지께서 묻자, 아낙이 하는 말이 "저도 모르겠어요." 하고 설명을 덧 대는데, 인민군 힘이 너무 강하여 반항도 못 하고 가슴앞섬이 찢기고 뺨까지 맞아서, 이대로 큰일이 나는가 했는데, 갑자기 인민군이 얼어버린것처럼 옴짝달짝을 하지 않더래. 무얼 봤는지 엄청 놀란표정을 하고 입을 떡- 벌리고 있는데, 침이 질질 흐르는데도 손가락하나까지 움직이지 않더라고, 그래서 밀어보니 그자세 그대로 넘어가더래. 겁이 덜컥나서 구석에서 쪼그리고 벌벌- 떨고있는데, 갑자기 너무 뜬금없게 화가 막 치밀어 오르더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곡창안에 있던 장작으로 머리를 찍고 있었다고 했지.
"영접 입니다."하고 증조할머니께서 말 하자, 다들 얼이빠져 있는데, 증조할아버지께서 "일단 줄좀 풀어." 해서 아낙의 도움으로 다들 줄을 풀고 일어났어. 할머니께서 저고리를 벗어 가슴앞섬이 찢어진 아낙을 덮어주는데, 증조할아버지께서 "여기 있다간 그 놈들이 돌아올테니 얼른 도망가야해." 하고는 대충 이모댁에 짐을대충 챙겨서 가려고 했어. 그 때 아까 인민군들이 기절시켜 데리고 나갔던 아저씨가 대문으로 달려 들어왔지.
헉-헉- "다 죽었어." 느닷없는 아저씨의 말에 "또 뭔일이라?"하고 증조할아버지께서 묻자, 아저씨가 숨을 몰아쉬고 하는 말이, 정신을 차리고보니 바닥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는데, 앞에 가던 한 인민군이 휙- 넘어지더니, 갑자기 벌떡일어나서 대조못(함창에 있는 연못)으로 막 뛰어 들어갔다고... 그러더니 다른 인민군들도 히떡히떡- 넘어지더니 못으로 막 뛰어들어 가더래. "난데없이 뭔 지랄인가 하고 한참을 지켜봤는데, 안 나오드라고. 그래서 돌아왔지." 하면서 허망하게 웃었다고 해.
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보니 대조못 주변에 진을 치고있던 인민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더래. 증조할머니께서 마을사람들에게 다시 말하여서, 늦었지만 백중(망혼제)을 재차 지내자 하셨고, 불정에 있는 운암사에 지방을 모셔서 전보다는 거나하게 제를 지내 주었다고 해. 마을 어른들이 절을하고 곡주를 돌리고 읍을하면서 홍복을 비는데, 마을꼬마들이 따라서 절을 하고선 "조상님들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했다고...
하지만 문경지역 대부분은 9월 25일까지 약 두 달을 적치하에서 움추려야 했어. 그중 인민군이 많이 밀집해있던 곳은 매일아침 폭격도 맞아야 했지. 26일날 함창 영강으로 한국군이 진격해오면서 인민군을 밀어내버려. 그들은 큰 태극기를 여러사람이 들고 강둑 양쪽으로 나눠 행군했다고 해. 이후 재차 51년 1월에 백만 중공군이 문경까지 내려오게 됐지만, 결과적으론 민간인은 거의 죽지 않고, 인민군의 소대본부까지 소이탄으로 화전(火田:불밭)을 만들어 몰아냈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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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거지쿵쿵야 작성시간 23.06.19 1부터 후루룩 다 읽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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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호박59마 작성시간 23.06.25 ㅜㅠ 진짜 어렵게 어렵ㄱ게 많은일들이 있었네 증조할머니 엄청 영험하시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6.25 전쟁날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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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붱철 조교 작성시간 23.06.30 와 진짜 재밋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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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로또1등 나야나 작성시간 23.07.07 와…진짜 시간가는줄 모르고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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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RVVV 작성시간 24.02.25 와 글 솜씨가.. 진짜 일반인아니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