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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할매의 속삭임

[소설]죽은 자를 위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작성자핫크ㄹ1스피버거|작성시간23.12.03|조회수17,320 목록 댓글 45

 

1차 출처 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e6p539/i_used_to_do_special_effects_makeup_now_im_a/

2차 출처 https://blog.naver.com/nosleep___/221851822458

 

 

 

I used to do Special Effects Makeup, now I’m a makeup artist for the dead

original work by u/TheRedForest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동안, 다른 세계로 떠나보낸 사람들을 추억하는 외침과 노래로 창문이 덜컹댔다. 나의 낡고 작은 샵은 매년 El Dia de Muertos 때면 이렇게 흔들리곤 했다. 가게는 1층에 위치해 있어서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오래된 나무 바닥을 타고 마치 천둥소리같이 울렸다. 나는 창문을 스쳐 지나가는 작은 촛불과 촛불에 한순간 드러나는 음영을 그려 넣은 얼굴, 잉크처럼 까만 어둠 속을 둥둥 떠가는 슈거 스컬과 머리 장식을 지켜보곤 했다.

 


나는 도구를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며, 심심풀이 삼아 두루마리 종이에 목탄을 끄적이고 있었다.


팔의 둥근 곡선을 그리던 중 종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느릿느릿하고 비뚜름한 움직임이었다. 고개를 들자 얼굴의 일부가 부패하기 시작해 축 늘어진 시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얼굴 위로 드리워진 머리카락과 몸의 형체로 손님이 여자임을 짐작했다. 



“안녕하세요, 세뇨라. 앉으세요.” 나는 조용히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쿠션을 덧댄 의자를 권했다. 여자는 나를 바라봤다. 입술은 창백하고 눈은 백내장으로 인해 희부연한 막이 덮여 있었다. 눈이 멀기 직전이지만 아직 온전히 멀지는 않은 상태. 여자는 한때는 내가 질겁했을 법한, 뼈가 절그럭거리고 맨발이 나무 바닥에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의자에 몸을 질질 끌어 앉았다. 나는 움찔거리지조차 않았다, 이런 손님은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나는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한참 동안을 나를 바라보던 끝에 여자는 쉰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당신이...” 목구멍에서 끓는 듯한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로 여자가 말을 시작했다. 목과 기도를 깊이 베인 상처가 침침한 조명의 빛에 비쳤다. 선혈이 흐르거나 핏덩이가 엉겨 있지는 않았다. 죽은 지 좀 됐군,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다시 한번 보자니 아주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들어줄 수 있다고요.” 여자는 말을 내뱉고는 필요도 없는 공기를 마시려는 모양새로 숨을 들이켰다. 나는 여자를 진중한 얼굴로 응시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대할 때 미소를 필요로 하는 건 살아 있는 손님들뿐이었다.

 
“할 수 있어요.” 그 정도의 말로 충분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도구를 집어 들어 작업하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B급 호러 무비 현장에서 얼굴을 기괴하게 망가뜨리고, 가면을 만들고, 색과 조명과 그림자를 다뤄 소름 끼치는 장면을 연출했던 터라... 이 일련의 과정을 거꾸로 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일그러진 얼굴을 다시 원래대로 쌓아올리는 일 같은 것은.

 
몇 시간 후, 새 얼굴을 갖게 된 여자가 어기적거리며 샵을 나갔다. 죽은 사람은 돈을 내지 않는다. 괜찮았다. 돈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니까. 나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여자의 몸은 밤의 어둠 속으로, 여자의 얼굴은 시끌벅적한 사람들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에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죽은 사람을 위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3년째 일하고 있다.

 
아직도 내 첫 손님과 그를 보았을 때 내 입에서 튀어나왔던 소름 돋는 비명소리를 기억한다. 샵에 들어온 남자는 상반신이 피에 흠뻑 젖어, 입술은 푸르고 얼굴은 부은 채였다. 갓 죽은 시체였다. 당시의 나는 변변한 일도 없이 가게에서 먹고 자던 끝에 피곤에 절어 있던 터라 그 모습을 보고는 기절하고 말았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게 끝이구나. 죽음이 나를 직접 찾아온 거구나. 

 

충격으로 멍한 채, 나는 시야에서 까만 점이 춤추며 어질어질한 와중에도 공포로 몸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허덕였다. 시체는 서툴게 무릎으로 툭 꿇어앉더니 눈을 커다랗게 뜨고 푸른 입술로 무언가를 말하며 다가왔다. 남자의 절박한 간청에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제발. 아무 짓도 하지 않을게요. 그냥 그녀가 보고 싶을 뿐이에요. 그녀는 분명 퍼레이드에 참여할 거예요. 그냥 그녀가 보고 싶어서 그래요.” 남자는 꺽꺽대며 울부짖었다. 이미 죽어버린 육신이라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얼굴에 어린 극심한 괴로움을 보자니 가슴이 아팠다.

 
“왜, 왜 절 찾아오신 거예요?” 나는 당장이라도 눈앞의 끔찍한 얼굴을 견디지 못하고 이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칠까 두려워 마룻바닥에 손톱을 박아 넣으며 물었다.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 같은 모습이 나를 똑같이 응시했다.

 
“살아 있을 때 당신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게 기억나요. 얼굴을 바꿀 수 있잖아요.” 그렇게 말하던 남자의 얼굴을 다시는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부어오른 얼굴마저 살아 있는 인간처럼 생생해 보이게 만들던, 그곳에 어리던 희망을. 


“제발요.” 남자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치했던 재능을 어떻게든 되살려 남자의 얼굴을 바꾸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내 손은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처럼 덜덜 떨렸고, 실수를 했고, 실수한 것을 고치다가 더욱 실수를 하곤 했다. 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메이크업이 끝났다. 남자는 거울을 쳐다보고는 충격을 받고, 감탄하고, 고마워하고는 절뚝거리며 문을 나섰다.

 
나는 남자에게 돈을 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남자가 그녀를 만났는지도, 혹은 “그녀”가 누구인지도, 내 노동의 결실이 그가 위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다음 해에는 손님이 더 많았다. 그제서야 나는 지난해의 분장이 제값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 3년간, 매년 Dias de Muertos 때면 죽은 자들이 하룻밤만이라도 살아 있기를 소망하며 내 가게로 꾸물꾸물 들어왔다. 어떤 자들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키지 않고 퍼레이드를 즐기고 싶어 하고, 내 첫 손님 같은 자들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으로 분장이 가능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목소리를 들으러 가기도 한다. 어떤 자들은 다시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 준다는 마술이 궁금해서 오기도 한다.

 
나는 창백한 회색빛 낯 위에 수많은 겹을 덮어 죽은 것에게 삶을 불어넣는 예술가다. 나는 늘어진 창자를 텅 빈 배에 넣고 꿰매는 법과 의안을 만들어 텅 빈 차가운 눈구멍에 집어넣는 법을 독학한 의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미 고칠 수 없이 너무 부패해버린 수많은 시체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워 눈앞이 흐려지고 심장이 튀어나올 듯 뛰었다.

 
나는 다시 스케치를 한다. 손가락이 목탄으로 얼룩덜룩 해진다. 한 시간쯤 후 종이 다시 짤랑거린다. 들어온 손님을 보고 나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놀라 숨을 삼킨다.

 
늙은 시체가 숍을 들어오는 순간 나는 벌떡 일어서며 얼어붙는다. 그럴 리 없어. 아니, 그럴 리가. 남자가 들어와 가까이 다가올수록 어째서 남자는 알지 못하는지… 의아해하다가… 그제야 본다.


빈 눈구멍을 둘러싸고 깊게 팬 상처를.


눈이 멀었다.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선 채로 덜덜 떨기만 한다.

 
“계십니까?” 남자가 말한다. 성대가 얼마나 해졌는지 거의 없다시피 한, 들리지 않는 속삭임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갑자기, 실어증을 앓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2년 동안의 언어 치료도, 2년간의 심리 상담도 아무 소용 없었던 것처럼.

 
남자는 발을 질질 끌며 가까이 다가온다.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있음을 느끼는 듯했다. 남자는 살짝 고개를 돌려 귀를 나를 향해 댄다. 남자가 내 전율하는 숨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귀는 얼마나 부패했을까, 아직도 잘 들리는지, 거의 들리지 않을지에 대해 생각한다.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떠나려는 차에 나는 황급히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어깨를 붙든다. 어깨뼈가 느껴진다. 남자는 감동받은 듯한 얼굴이다. “고맙습니다.” 남자를 이끌어 의자에 앉히는 동안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말을 꺼내려고 입을 열지만 목이 막힌다.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서 말을 할 수가 없다. 미간이 깨질 듯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다. 괜찮나요, 남자가 묻는다. 


“이미 영업이 끝났습니까?” 남자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한다. 그 목소리는 이미 납작해진 폐를 거치고 이미 너덜너덜해진 성대를 살짝 스치는 숨결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말할 수 없다. 그 대신 남자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 그런가 보네요. 하지만, 제발...” 남자가 애걸한다. 아주 슬픈 표정이다. 나는 텅 비어 섬뜩한 눈구멍을 바라보며 남자의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는 척해 본다.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게 전붑니다… 고쳐줄 수 있겠어요? 그 집 창가에 가만히 서 있고 싶어요.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 말을 끝으로, 정적이 내려앉는다. 눈물이 내 뺨을 타고 굴러떨어진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시작한다.

 
가슴속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눈앞이 아득해져 눈에 보이는 것은 남자의 얼굴뿐이다. 로봇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 기억과 추억들이 묵직하고 날카롭게 머릿속을 미친 듯이 두들기고 물밀어 들어온다.

 
몇 년 만이다. 이 사람을 보는 것이 몇 년 만이다. 내 인생은 송두리째 나락으로 굴러떨어졌고, 직장도, 이 사람이 곁에 가만히 서 있고자 하는 그 창문과 집도, 잃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되었다. 나는 그를 찾지 못했지만 그는 나를 찾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알 수 없다. 시계의 초침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여전히 말은 할 수 없다. 내 손이 떨어지자 남자는 끝났음을 눈치챈다.


“산 사람 같아 보이나요?” 남자가 묻는다. 산 사람 같다. 그는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과 완전히 똑같다. 행방불명되어 주인 없는 텅 빈 무덤만 남기고, 나를 떠나가기 전 모습 그대로.

 
“아, 아빠.” 나는 드디어 목멘 소리로 겨우 말한다. 아버지가 충격받은 표정의 얼굴을 나를 향해 번쩍 든다.


“아주 근사해 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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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옥수수꿀호떡개마시써 | 작성시간 24.01.06 눈물나.... ㅠㅠㅠㅠㅠㅠ 홍콩방 놀러왔다가 오늘 눈물만 나네 ㅠㅠ
  • 작성자데키스 | 작성시간 24.01.29 아증말 ㅠㅠ 눈물 주책이야!
  • 작성자이기영 | 작성시간 24.03.02 이럴수가 ㅠㅍㅍㅍㅍ
  • 작성자남북한남 낮전등 | 작성시간 24.10.24 진짜 너무해.. 너무 슬프잖아...
  • 작성자리를스타 | 작성시간 24.10.27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눈물 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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