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amu.wiki/w/O.%20J.%20%EC%8B%AC%EC%8A%A8%20%EC%82%AC%EA%B1%B4
1. 개요
1994년 6월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당시 용의자로 유명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이 체포되었으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고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다.
영미법 체계에서는 1심에서 용의자가 무죄 선고를 받으면 검찰이 항소할 수 없기 때문에 심슨은 1심에서 무죄로 확정되었다.
(반면 대륙법에서는 검찰의 항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2-3심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판 OJ 심슨 사건' 으로 불리기도 했던(물론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역시 사건 발생 이후 대법원에서 피고인이 최종 무죄를 선고받기까지 8년의 시간이 걸렸다.)
가정폭력과 젠더 갈등, 미국 사회 특유의 계급 및 인종 갈등, 확률과 통계의 함정 등 여러 분야에서 상징적인 부분이 많아 법학과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이 인용하는 사건으로, 미국 형법 체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건이다.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현재까지 거론될 만큼 유명한 사건.
1994년 6월 12일 O. J. 심슨의 이혼한 전처 니콜 브라운 심슨과 식당의 종업원이었던 론 골드만이 피살체로 발견되었다.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여러 증거물들로 미루어 보건대 O. J. 심슨이 범인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검찰은 심슨에게 17일까지 출두할 것을 요청했고 심슨은 전처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출석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O.J.는 6월 17일, 자신의 친구에게 '니콜의 죽음과 나는 관련이 없다' 는 한 통의 편지를 남긴 뒤 잠적, 연락이 두절됐다.
O.J.가 출석 명령을 따르지 않자 LA경찰국은 긴급수배령을 내려 이틀 뒤인 19일 O.J.를 체포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도주극이 CNN과 공중파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되었는데, 도주극은 NBA 파이널 중계를 중간에 중단시켰고 9500만명이 시청하면서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심슨은 자신의 포드 브롱코를 타고 도주하다가 이따금씩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O.J. 심슨은 이미 NCAA(미국 대학 스포츠)와 FBS(미국 대학 미식축구) 시절부터 여러 시즌마다 최고 기량을 선보이며 MVP에 수차례 선정되었고 70년대 전체의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로 칭송받던 유명 운동선수였으며 1973년 풋볼 선수로서 세운 기록은 역대 러닝백 최고의 시즌이라고 칭송받을 정도였던 데다 미국에서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유명 대기업의 광고들을 찍고 다양한 분야에서 엔터테이너로서도 상당한 위치에 오름으로써 흑인들도 충분히 건강한 매너로 미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던 인물이었다.
(80년대 마이클 조던이 등장하기 전까지 흑인 스포츠 스타로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미국에서 흑인의 사회적 지위를 어느 정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기까지 했다.
NFL에서 MVP를 최초로 선정한 것이 1961년인데 이후 러닝백이 MVP를 수상한 횟수가 딱 16번일 뿐일 정도로 러닝백이 MVP를 수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심슨의 선수 시절에는 지금처럼 패스 위주의 공격보다는 러닝백의 닥공 스타일이 주류였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더 러닝백이 주목받긴 했지만 러닝백의 MVP 수상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NFL은 MLB처럼 리그별로 MVP를 한 명씩 주는 게 아니라 양 리그 통틀어 한 명만 선정된다.
이런 인물이 자신의 백인 전처를 포함하여 사람을 두 명이나 살해했다고 알려졌으니 심지어 외국에서 온 유명 인사들이나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물들조차도 이 사건에 관심을 보였다.
이 사건의 재판은 국제적인 명성 때문에 세기의 재판(Trial of the century)으로 불렸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대중화된" 형사 재판으로 설명된다.
이 사건이 영어권 문화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2개 있다.
1995년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은 미국 방문 중 자유 시간이 생기자마자 클린턴 대통령에게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합니까?" 라고 물었다.
당시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의 총리가 된 베냐민 네타냐후가 변호인단 중 한 명이자 유대인 혈통인 알렌 디쇼워츠에게 카메라나 녹음 장치가 없는 방으로 가자고 한 다음 이 사건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었다고 하는데 디쇼워츠는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에 답하시면 저도 대답하죠' 라고 되물었다.
이에 총리가 답할 수 없는 것을 알지 않느냐고 되묻자 '그게 제 답입니다.' 라고 답하였다.
3. 재판의 진행
재판은 실시간으로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됐는데 수익이 나지 않아 골머리를 앓던 Court TV는 이 덕분에 한동안 CNN보다도 시청률이 더 높았다.
미국인들의 관심과 거기에 편승한 언론들의 행태는 다음 수준에 이르렀다.
기네스북은 일평균 550만명이 시청한 심슨 재판을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재판' 으로 수록했다.
재판의 하이라이트인 선고 장면은 1억 5천만명이 시청했다.
Times Mirror Center for People and Press 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25%가 재판의 '전부 혹은 대부분' 을 시청했다.
잡지 <TV 가이드> 는 한 주의 저녁 뉴스 중 84분이 재판을 다뤘다고 추산했다.
CNN은 혼자서 재판에 70명의 기자와 300만달러를 동원해서 900시간을 보도했다.
1994년 6월부터 1995년 5월까지, ABC의 속보 중 38%가 재판 내용이였다.
오클라호마 시티의 테러는 속보 중 24%만 차지했다.
피고인은 당시 금액으로 300만~600만 달러로 변호인들을 고용하였는데 옛날이나 요즘이나 상당히 비싼 금액이다.
처음부터 이 변호인단은 하도 명성이 후덜덜한 변호인단으로 구성되었고 법정에서 그 뛰어난 활약 등으로 인해 '드림팀' 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당시 제시된 수많은 증거와 증언들은 그를 범인으로 가리켰다.
당시 제시된 증거로는
O. J. 심슨의 집에서 발견된 양말에 묻은 혈액에서 피해자인 N. 심슨의 DNA가 검출됨.
R. 골드만의 셔츠에서 아프로계의 머리카락이 발견됨. O. J. 심슨은 아프로계였다.
사건 현장 근처에 떨어진 피가 묻은 왼쪽 장갑에서, O. J. 심슨, N. 심슨, R. 골드만 세 명 모두의 DNA가 검출됨. O. J. 심슨은 왼손잡이였음.
또한 해당 장갑과 짝이 맞는 오른쪽 장갑이 O. J. 심슨의 집에서 발견됨.
O. J. 심슨이 전처이자 피해자인 N. 심슨에 대한 상습적 폭행으로 고발된 적이 있었음.
사건 현장 주변에서 발견된 발자국의 사이즈가 O. J. 심슨의 발 사이즈와 일치하였음.
R. 골드만의 혈액이 당시 O. J. 심슨이 입고 있던 셔츠에서 대량으로 발견되었음.
N. 심슨의 혈액이 O. J. 심슨의 차량에서 발견됨.
그 외에도 수많은 증언, 증거가 심슨이 범인임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O. J. 심슨은 꼼짝없이 살인범으로 전락해 그대로 구속되면서 사건이 끝날 것으로 보였지만 변호 측은 이를 하나하나 완벽히 반박해 나갔는데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당시 DNA 검출 기술은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완벽한 환경에서도 증거로 이용하기 어려운 수준의 오류가 발생하였으며 당시 과학 수사 과정에서 DNA가 훼손되었을 가능성도 컸다.
더군다나 DNA 대조를 위해 채취한 O. J. 심슨의 혈액 중 9/10인 150mg이 사라지면서 사건 조작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증거로 제시된 O. J. 심슨의 혈액 흔적 중에는 경찰에서 사용하는 혈액보존제가 섞인 것들도 있었다.
경찰들은 이 혈액이 어디로 갔는지 답변하지 못했으며, 채취된 혈액을 사건 현장으로 가져간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존하는 최고의 범죄 DNA 법의학자인 헨리 리 박사는 검사 측과 경찰 측이 범죄 현장에서 DNA와 증거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보인다는 소견을 말했다.
단적으로 피살자 니콜의 등에는 범인의 것인 듯한 피가 묻었었다.
그런데 니콜의 시체를 깨끗하게 씻어서 보관하였다.
감식반이 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채 증거물을 맨손으로 다루고 니콜과 골드만의 시체에 니콜의 집에서 가져온 이불을 덮어 두었으며 없던 혈흔이 3주 후에 발견되고 이전에 채취한 혈액을 범죄 현장에 다시 들고 오는 등 수사 중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조작의 가능성이 있음을 제기했다.
시체를 덮어 두었던 이불은 니콜 심슨 브라운 집의 거실에서, 즉 범죄가 생겼든 생기지 않았든 O.J. 심슨의 DNA가 범죄 현장 물건들에서 충분히 스며들었고 그로 인해서 설사 심슨이 범죄 현장에 없었어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음을 입증했다.
즉 O. J. 심슨의 DNA가 이 이불이나 집 안 물건에서도 나올 수 있었음이 법정에서 증명됐다.
심슨과 론 골드먼, 니콜 심슨의 피가 묻은 양말이 나중에 범행 현장에서 발견됐는데 혈흔이 스며들어 양말의 양쪽 면이 모두 물들었다.
심슨이 검찰이 주장한 대로의 범죄 방식을 따라한다면 그 양말에서 발견된 피가 스며든 패턴이 절대로 나타날 수 없다고 증명했다.
왼손잡이는 미국 인구의 약 10%다.
1994년 당시 미국의 인구는 약 2억 6천만 명이었고 이 중 10%면 2,600만 명이나 된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냥 왼손잡이라는 것만으로 범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도로 끝내면 별로 반박할 거리가 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문제는 이 인간들은 저 숫자들을 구체적으로 물고 늘어지면서 심슨이 범인일 확률이 1/2,600만이라는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변호 측은 인종차별 의혹을 받았던 해당 사건의 형사인 마크 퍼먼(Mark Fuhrman)이 장갑을 현장에 고의로 배치했다는 주장을 했는데 처음 보고 시 장갑들을 발견했다고 했으나 범행 현장에서는 장갑이 한쪽밖에 없었고 나머지 한쪽이 심슨의 집에서 발견되었으며 로라 맥키니(Laura McKinny)와의 인터뷰가 담긴 테이프에서 니거라는 단어를 수없이 사용한 게 밝혀짐으로서 법정에서 위증했음이 드러났다.
(심슨의 변호인들은 마크 퍼먼에게 평상시 니거라는 말을 사용했냐고 물었고 마크 퍼먼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이 부분은 변호인단이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이미 테이프 녹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재판의 결정적인 임펙트를 주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맥키니와의 인터뷰 테이프에서 흑인 관련 사건에서는 증거를 억지로 꾸며내서 흑인을 범인으로 몰아간다는 건 정의 성취라고 말한 점도 형사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믿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녹음이 공개된 후 퍼먼은 관련 질문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답했고 장갑을 범죄 현장에 심었냐는 질문에도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대답했다.
(이 부분은 미국 법정 영화에서 가끔씩 나오는 부분인데 한 번 <수정헌법 5조> 에 따른 묵비권을 주장하면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서는 안 된다.
한 질문에라도 대답하면 다른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상실되기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기 위해서는 증거를 조작했냐는 질문에도 절대 대답 자체를 해서는 안 됐다.
문제는 증거를 조작했느냐는 질문에 "아니오" 가 아닌 대답을 하면 "했을 수도 있다" 의 의미가 강해지기 때문에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는 퍼먼의 대답은 마치 '증거조작을 했을 수도 있다.' 로 들리게 만들었다.)
또 장갑을 발견한 형사를 인터뷰했던 작가한테 이 형사가 인종차별주의자인 것 같냐고 물어보자 맥키니는 법정에서 자기가 인터뷰할 때 이 형사가 말하는 투가 평소에도 자주 쓰는 인종차별적인 언어를 쓰는 거 같이 보인다고 대답하였다.
퍼먼의 묵비권 행사 장면과 맥키니의 인터뷰에 대한 증언 장면들도 나중에 배심원들이 쓴 소고록이나 법정 기록에 나온 기록에 의하면 역시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로 취급된다.
가정폭력이 있는 가정이었다고 아내를 살해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가정폭력이 있는 가정 중에서 실제로 살인사건이 발생한 가정은 1,000명 중에 1명도 안 될 정도로 극히 일부다.
때문에 살인 사건 이전에 O. J. 심슨이 부인을 폭행한 것은 그가 부인을 살해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다만 이 경우에도 확률상 반박할 여지가 있다.)
용의자가 사건 당시 우연히 그 신발을 신고 있었고 우연히 그 사이즈가 일치할 확률은 매우 낮다.
문제의 가죽 장갑은 첫 현장 수사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첫 수사 기록과 현장 자료 수집 내역에 그 장갑은 없었다.
이 장갑이 도대체 어떻게 나타났는지 경찰은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발견된 가죽 장갑은 O. J. 심슨의 손에 맞지 않았다.
장갑이 너무 작아서 손목 부분이 걸려 엄지와 검지가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증거 훼손을 막기 위해 라텍스 장갑을 낀 상태였고, 액체가 달라붙은 채로 오랫동안 보관된 상태였기에 오그라들었을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O. J. 심슨이 재판정에서 장갑을 껴 보이는 장면은 이 재판의 최고 하이라이트이자 무죄 평결의 가장 중요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배심원들이 나중에 쓴 책들에 의하면 무죄를 주장하는 배심원들은 유죄를 맨 처음 주장하는 배심원들에게 범인이 썼던 장갑이 맞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심슨이 범인일 수 있냐고 말했고 결국 유죄 측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후 최후 변론에서 심슨 변호인단의 조니 코크란은 미국 법정 역사에 길이 남고 지금도 회자되는 그 유명한
라는 발언을 했다.
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배심원단이 여러 차례 교체되었다.
(배심원단 교체가 마치 억지로 시간을 끌고 사건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꼼수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미국 법정에서 배심원단 교체 요구 자체는 변호인은 물론이고 검사 측도 가지고 있는 고유 권한이다.
심지어 일정 숫자만큼은 별 이유를 대지 않고도 교체하는 것이 가능하다.)
LA는 흑인들이 경찰들한테 인종차별을 강하게 받는 도시로 알려졌었고 덧붙여 1992년 LA 폭동으로 촉발된 흑백 갈등으로 인해 변호인들은 인종차별하는 형사가 이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걸 강조하면서 이 사건 전체가 인종차별적인 수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심지어 마지막 변론에서 마크 퍼먼을 히틀러에 비유했을 정도. 거기에다 증거를 수집할 때 하필이면 이런 비흑인들, 즉 대부분 백인들로 이뤄진 LA의 경찰(LAPD)들이 중요한 증거를 하나 이상으로 조작했다는 게 명백하게 나타났는데도 심슨을 구속하고 감옥에서 형량으로 살게 됐다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흑인 스타조차도 인종차별 집단들로 인해 추락한다면 보통 흑인들의 위상이 미국에서 얼마나 더 추락하겠냐는 식으로 변호사들의 모든 주장들은 이런 식의 뉘앙스가 강하게 묻어났고 많은 언론들은 이런 주장들이 유색인종이 대다수인 배심원단에게 설득력 있게 들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도 나중에 배심원들이나 검찰 측에서 낸 책이나 소고록 등에서 이런 변호사 측의 이런 주장들이 배심원들한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됐다.)
법정뿐만 아니라 언론을 영리하게 잘 사용해서 이 법정 사건으로 인한 해프닝들이 LA 사회 운동으로 번지게까지 했다.
결정적으로 12명의 배심원 가운데 흑인이 무려 9명, 백인이 2명, 히스패닉이 1명이었던 만큼 검사측은 유색인종 배심원을 인정하지만 여성의 수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흑인 여성들 사이에서는 성공한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고 성공한 흑인들이 백인들하고만 어울리려고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실제로 O. J. 심슨도 유사한 행동을 했는데 평상시 '나는 흑인이 아니고 O. J. 심슨이다.' 라고 말하고 다녔다.
1995년 10월 3일 1심 판결에서 배심원단은 변호인 측의 주장을 지지하여 피고인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올 경우 항소할 수 없다는 영미법 체계 때문에 O.J.의 무죄는 그대로 확정됐다.
4. 사건의 종결과 확률 문제
영미법에서는 배심원단이 유무죄를 판결하기 때문에 사건의 판결은 무죄로 종결되었지만 재판의 진행에 대한 의문이 남았는데 이는 통계의 함정에서 기인한다.
각각의 조건이 용의자의 조건과 일치할 확률이 매우 낮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경우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즉,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러 조건들이 사건에 부합되었을 확률을 봐야 했다.
쉽게 말하면 변호사는 심슨 말고 다른 사람도 범인이 될 수 있는 확률을 말한 것이고 실제로 고려했어야 할 점은 심슨이 그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아닐 확률이다.
모든 조건이 용의자와 일치하지만 그가 범인이 아닐 확률은 모든 조건에 대해 (1 - 일치하지 않을 확률)값을 곱해 줘야 하며 이 경우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왼손잡이 중 한 명일 확률', '왼손 장갑에 혈액이 발견된 사건에 대해, 그 사건의 범인이 왼손잡이일 확률',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정폭력이 연관될 확률'... 등등 엄청나게 많은 조건에 대해 가장 먼저 고려되었어야 할 이 조건에 모두 해당됨에도 범인이 아닐 확률이 재판에서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변호 측은 가정폭력이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살인으로 발전될 확률을 주장하였지만 실제로는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정폭력이 연관되었던 경우를 고려해야 했으며 다른 조건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변호인들이 한 주장을 이해하기 쉽게 단순하게 풀어 보면
1번 증거에만 해당하고 다른 증거에 맞지 않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기 힘들다.
2번 증거에만 해당하고 다른 증거에 맞지 않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기 힘들다.
...
10번 증거에만 해당하고 다른 증거에 맞지 않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기 힘들다.
그러므로 1번, 2번, 3번...10번 등 10가지 증거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도 범인이기 힘들 것이다.
라는 황당한 소리를 한 것이다.
(증거 개수가 많을수록 1, 2개가 반박되더라도 나머지 근거가 반박되지 않고 여전히 유효하면 여전히 그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
유죄/무죄를 따지기 이전에 수학적인 오류를 내포한 웃기는 소리를 했고 그게 재판에서 걸러지기는커녕 무죄 근거로 통하기까지 하는 심각한 상황이 나오면서 이 재판이 유명해졌다.
통계적으로 다시 설명을 보충하자면 피해자의 변호인 측이 '평소 심슨은 죽은 전처를 자주 때리고 욕했다.' 는 주장을 했는데 심슨의 변호인은 '실제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내 중에서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경우는 천 명 가운데 한 명, 즉 0.1%도 안 된다' 고 반박했고 따라서 심슨이 아내를 때렸다는 사실은 아무 단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던 아내가 남편에 의해 죽을 확률은 0.1%밖에 안 되지만 심슨의 경우처럼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던 아내가 살해당했을 때 그녀의 남편이 범인일 확률은 80%가 넘는다고 밝혀졌다.
변호인들이 작정하고 헛소리를 하기로 맘먹은 것을 보여준 대목이 왼손잡이 운운하는 대목었이다.
'미국의 왼손잡이가 2,600만 명이므로 O. J. 심슨이 범인이 확률은 2600만분의 1이다' 라는 소리를 했는데 이 말은 사건 당시 현장이었던 브렌트우드뿐만 아니라 LA 전체, 거기다 시애틀, 뉴욕, 마이애미, 호놀룰루, 앵커리지에 있었던 왼손잡이까지 전부 포함된다는 소리다.
(당연히 1/(사건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왼손잡이 숫자)가 정답이다.
문제는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을 특정할 시기를 이미 놓쳐 버렸다는 점이다.)
변호인들은 DNA 결과도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건 현장에서 채취된 DNA는 심슨의 것으로 분석되었다.
보통 DNA 분석에서 두 사람의 DNA가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1만분의 1이다.
따라서 검찰 측은 이 증거 하나만으로도 심슨이 99.99%의 확률로 살인자라고 주장하였지만 변호인 측은 이에 대하여 로스앤젤레스 인구가 300만 명이므로 이 중 약 300명이 DNA가 일치할 수 있고 따라서 심슨이 살인자일 확률은 0.3%(1/300)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다른 예시로 연속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웨인 윌리엄스는 범죄 현장의 섬유들을 조사해서 웨인 윌리엄스가 범인이 아닐 확률이 약 2,900만분의 1이라는 결론이 나와 유죄 근거로 사용된 적이 있다.
다만 통계 문제가 없었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이 제시한 핵심 증거들이 다 논파당하거나 신뢰성을 의심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죄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긴 했다.
통계에서 들먹였던 사건 현장에 접근 가능한 왼손잡이 숫자 + 남편에게 폭행당하던 아내가 살해당했을 경우 그 범인은 남편일 가능성이 워낙 임팩트가 큰지라 눈에 잘 띄긴 해도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자 정황 증거에 지나지 않았던지라 핵심 증거가 아니었다.
이 사건에서 O. J. 심슨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하술하는 그 핵심적인 증거들까지 모조리 논파당했다는 것에 있다.
결정적 증거의 논파 - 범행 시 착용한 것으로 보이는 장갑
상술했듯 이 장갑을 심슨이 법정에서 착용하는 그 순간 재판의 결과는 99% 결정되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심슨이 일부러 안 끼려고 연기한 것도 아니고 누가 보아도 명백히 장갑은 심슨의 손에 비해 작았으며, 그 장갑을 억지로 낀 채 자유로이 손을 쓰기는 어려웠다.
반론 측에서는 장갑의 소재인 가죽의 특성상 젖게 되면 쪼그라들기 때문에 범행 당시 피가 잔뜩 묻은 장갑이 시간이 지나면서, 또 증거 보존을 위해 여러번 냉동과 해동을 거쳐 쪼그라들었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저 시점에서 검찰은 당황해서 해당 주장을 펼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슨에게 장갑을 착용시키자고 먼저 법정에서 주장한 것이 바로 검찰이었다.
배심원들에게 심슨이 범인임을 확신시키자고 한 것이다.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 O. J. 심슨 사건 파일> 에서 해당 부분을 잘 묘사했다.
장갑 착용을 강력히 주장한 것은 흑인 검사 크리스 달든이고 수석검사 마샤 클라크는 이에 반대하던 상황이었으며 휴정 시간 중 해당 장갑을 체크해 본 변호인 로버트 샤피로는 자신의 손(=심슨의 손과 크기가 비슷)에 장갑이 안 맞는다는 걸 확인하고 장갑 착용시키자고 강력히 주장했고 여기에 수석 변호인 조니 코크란이 변호인단 측에서 먼저 착용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며 크리스 달든에게 겁쟁이라고 도발했으며 달든은 수석검사 마샤와 상의도 없이 독단으로 장갑 착용을 요청하였고...
이후 심슨이 연기했다거나 (증거 훼손 방지용) 비닐장갑을 낀 상태에서 착용하려 해서 그렇다는 등 제대로 멘붕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피가 묻어서 쪼그라들었다고 한다면 간단한 실험으로도 실제로 심슨의 손에 맞는 장갑이 그렇게 줄어들 수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재판 이후에 'O. J. 심슨이 관절염 증상이 있었는데 그날 관절염 약을 먹지 않아 손이 부어서 장갑이 들어가지 않았다.' 는 주장도 나오기도 했다.
경찰의 증거 처리 능력 의심
심슨이 범인인지 아닌지는 본인만이 알겠지만 설령 범인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처럼 증거를 처리하면 무죄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DNA 분석을 위해 유력 용의자의 혈액을 채취해 놓고 그 90%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상술했듯 경찰은 사건 현장 보호를 위한 덧신을 신지 않고 사건 현장을 활보했으며 감식반이 맨손으로 범행 현장을 체크하고 증거물을 수집했다.
일부 증거는 사건 현장에 처음 도착한 형사들이 확보한 다음 집에 가지고 갔다가 경찰서에 제출했다.
결정적 증거라는 피 묻은 가죽장갑은 사건 현장 첫 수색 때 안 나오고 나중에야 찾았는데, 검찰 측, 그리고 사건 현장을 조사한 경찰 측은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O. J. 심슨의 유죄를 확실히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던 피 묻은 양말도 경찰의 최초 수색 때는 없었다가 이후에 떡하니 침실 카펫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차량에서 혈흔이 발견되었지만 정작 사건 당일 차량의 엔진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변호인단이 마크 퍼먼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걸 입증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 것이다.
마크 펄먼이 인종차별주의자든 말든 그건 사건과 전혀 무관해야 한다.
그러나 경찰의 증거 처리가 너무 개판이었던 나머지 이게 정상적으로 수집한 증거들이고 1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형사들이 할 만한 행동이냐는 의심이 드는 게 당연했고 경찰의 형편없는 증거 처리 능력 + 인종차별주의자 마크 퍼먼이라는 두 개의 별개의 사실을 연결시켜 인종차별주의에 찌든 형사가 증거들을 조작했다는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배심원 입장에서는 그 스토리를 전적으로 믿지 않더라도 그럴 만한 정황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판결 직후 차석검사 크리스 달든은 경찰과 검찰의 실수가 너무 많았다고 증거 인정 부분에서 문제가 많았음을 인정했다.
5. 재판과 관련된 이야기들
당시 수석검사이었던 마샤 레이첼 클라크(Marcia Rachel Clark, 1953 ~ )는 재판 이후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검찰에서 퇴직하긴 했지만 이 재판 이전까지만 해도 절대 무능력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LA 검찰이 자랑하는 에이스로 1991년 레베카 셰퍼(Rebecca Schaeffer)가 스토커에 의해 총격 피살되자 이 사건을 맡아 완벽한 승리를 구사하기도 했다.
이 사건 패소 전까지 그녀의 별명은 '살인 사건 백과사전' 으로 살인 사건 승소율 100%였다.
LA 검찰이 쉽게 생각하고 아무나 내놓은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마샤 클라크가 O. J. 심슨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 남편 고든 톨스 클라크(Gordon Tolls Clark, 1951 ~ )와 이혼하고 자녀 양육권 문제 등으로 소송을 시작한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싱글맘이자 워킹맘으로서 두 자녀를 양육하고 남편과의 자녀 양육권 소송을 벌이면서 동시에 이른바 드림팀을 상대로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3중고에 시달렸다.
사실 마샤에게는 고든 T. 클라크와의 결혼/이혼이 두 번째였다.
이런 개인적인 문제가 O. J. 심슨 법정과 연결돼선 안 되겠지만 문제는 그녀가 이 재판으로 전국구 유명인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전 남편들과 결코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결국 이것은 재판 기간 내내 마샤를 괴롭혀서 안 그래도 드림팀을 상대해야 했던 마샤를 고통에 빠트렸다.
첫 남편 Gabriel Horowitz는 O. J. 심슨 사건으로 마샤가 유명인이 되자 보관하고 있던 마샤의 나체 사진을 언론사에 돈을 받고 파는 범죄를 저질렀다.
두 번째 남편 고든 클라크는 상술했듯 O. J. 심슨 사건과 자녀 양육권 소송의 기간이 겹치면서 마샤를 고통에 빠트렸다.
마샤는 두 개의 소송에 참여하고 임시로 인정받고 있던 자녀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자녀 양육에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심슨 사건에 전념한다고 자녀 양육을 소홀히 하면 자녀 양육권 소송에서 패할 거 아닌가?
그 과정에서 마샤는 부득이하게 몇 차례의 변론에 지각하여 랜스 이토 판사의 지적 및 경고를 받는 등 수시로 모욕을 받으면서 곤경에 처했다.
증거와 법정 다툼도 중요했지만 워낙 전국적인 관심사를 가진 소송이다 보니 검찰 측이나 변호인 측이나 이런 발언 하나하나, 가십거리 하나하나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녀는 결국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면서 질 수 없는 싸움을 진 패장(敗將)으로서 웃음거리가 되며 불명예 퇴진했다.
그나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이 위안거리였다.
당시의 차석검사 크리스토퍼 앨런 다든(Christopher Allen Darden, 1956 ~ )은 흑인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드림팀 전략을 읽어낸 검찰 측이 선정한 인물이다.
인종차별 전략에 맞서 흑인을 검사로 내세워 인종차별 이야기를 희석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상층부의 의도야 어찌 되었든 달든은 차석검사로서 마샤와 함께 치열하게 법정을 이끌었다.
마크 퍼먼 형사에 대한 평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를 증인으로 신청하려는 마샤에게 인종차별 문제가 들어가게 된다며 반대했지만 사건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형사를 배제하는 게 말이 되냐는 마샤의 정론을 이기지 못했다.
물론 결과는...
다만 달든도 재판의 결정적 순간이었던 문제의 가죽장갑 착용을 주장한 당사자로 패배에 기여했다.
본인이야 당연히 장갑이 심슨의 손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심슨의 변호인단은 워낙 화려해서 드림팀으로 일컬어졌는데 여기도 승리해서 망정이지 그렇게 잘 돌아간 집단은 또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로버트 레슬리 샤피로(Robert Leslie Shapiro, 1942 ~ )와 조니 리 코크란 주니어(Johnnie Lee Cochran Jr, 1937 ~ 2005)의 갈등이었다.
(짐 브라운, 스눕독, 마이클 잭슨 등 여러 연예인들의 변호를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둘은 서로 수석 변호사를 하려고 경쟁이 치열했는데 이는 개인 공명을 넘어서서 양측의 전략 차이가 매우 컸다.
샤피로는 LA에서 오랜 기간 일했고 때문에 LA 검찰에 인맥이 매우 넓었다.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아내기 매우 어렵다고 판단했고 이 사건을 인종차별 문제로 최대한 키워낸 뒤 검찰과 양형 협상을 벌여 실질적으로 양형을 줄이자는 현실주의 전략을 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심슨에게 인종차별 문제에 정통한 흑인 변호사 조니 코크란 영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렇게 영입된 코크란은 상술했듯 인종차별 문제에 관련된 사건을 수없이 수임해 왔고 해당 시민 단체활동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샤피로의 기대를 저버리고 오직 100%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샤피로 입장에선 자신이 주도하여 영입한 코크란과 정면 충돌하게 되었고 이후 드림팀 내부의 격론 속에 최종적으로 코크란이 수석 변호사가 되어 무죄를 목표로 싸우게 되었다.
무죄가 불가능하다고 본 샤피로나 무죄를 목표로 한 코크란이나 인종차별 문제를 메인 이슈로 꺼내려고 한 이유는 당시 LA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문제의 LA 폭동이 1992년에 일어났는데 사건 발생일 기준으로 2년이 막 지난 시점이었다.
모두들 인종 문제를 껄끄러워해서 입에 담지 못했고 빈부와 인종, 성별을 떠나서 인종차별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도시를 짓누르고 있었다.
재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마크 퍼먼의 음성 녹취 테이프의 확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당 테이프의 소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있었기 때문에 LA 법원과 랜스 이토 판사의 권한 밖에 있었으므로 드림팀의 수석 변호사 조니 코크란이 사우스캐롤라이나 법원에 가서 녹취 테이프 소지자에게 제출 명령을 내려 줄 것을 요청했으나 각하당했다.
이에 내부적으로 이유를 분석한 드림팀은 프랜시스 리 베일리를 보낸 끝에 제출 명령을 받는 데 성공했다.
(누구도 분명하게 이유를 말하지 않으나 다들 인종 문제로 봤다.
즉, 남부 딕시 주 중 하나인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백인 판사님들이 인종 차별 문제 운운하는 흑인 변호사를 고깝게 보았다는 것이다.
심슨 사건을 다룬 드라마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 O. J. 심슨 사건 파일> 의 묘사를 보면 법원 안에 남부 연맹 깃발이 있지 않나, 법원 건물 앞에는 남부 연맹군 동상이 세워져 있지 않나. 코크란의 요청이 기각당한 뒤 대신 나선 베일리는 이 상황을 잘 캐치하고 독립 13주의 일원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와서 영광을 시작으로 온갖 미사여구와 아부성 발언을 덧붙여서 테이프 제출 명령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수석 변호사 조니 코크란과 그와 경쟁했던 로버트 샤피로에 묻히지만 프랜시스 리 베일리도 진짜 역대급 변호사다.
1954년 만삭 아내 살인으로 유죄 판결난 외과의사 샘 셰퍼드 사건의 항소심 변호를 맡아 배심원이 외부 환경에 오염되었다는 지목 등으로 재판 분위기를 뒤집고 무죄 판결을 받아내 전미에 명성을 떨쳤으며 이후 미라이 학살로 기소된 장교 어니스트 메디나의 변호를 맡아 무죄를 받아냈고 공생해방군에 납치되었다가 그들에 동조하여 은행강도를 저지른 언론재벌 3세 퍼트리샤 허스트의 변호를 맡아 무죄를 받아내진 못했지만 형량을 줄이고 최종적으로는 가석방과 특별사면을 받아내는데 기여한 사람이다.
거의 반세기 동안 이런저런 유명사건들을 맡으며 커리어를 쌓은 노련한 인물이라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음성 녹취테이프를 비교적 쉽게 받아낼 수 있었다.
마크 펄먼의 녹취 테이프는 재판의 향방을 떠나서 재판의 유효성 여부까지 건드릴 수 있는 문제였는데 바로 해당 녹취 테이프에 랜스 이토(사건 담당 판사)의 아내인 마가렛 요크(Margaret York)를 근거 없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형사가 판사 아내를 비난하는 언급을 했는지가 의아할 수 있는데 마가렛 요크는 랜스 이토의 아내인 동시에 LA 경찰의 높으신 분으로, 그의 상사에 해당했다. 즉 상사 뒷담 깐 것이 하필이면 그 상사 남편한테 걸린 것이다.)
중요 증거물이기 때문에 판사가 이 녹취록을 전부 들을 수밖에 없는데 검찰 측 증인인 형사가 자신의 아내를 비난하는 내용을 듣게 되면 과연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재판 진행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사실 이 사건 이전에는 오히려 이토 판사가 경찰 고위직인 아내 때문에 검찰 측에 유리한 진행을 하는 거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 녹취록으로 급반전된 것이다.
가장 원칙적인 방법은 재판을 모두 리셋한 다음 다른 판사를 선임하여 재판을 새로 시작하는 것이지만 이미 재판이 1년여를 끈 상황이었기 때문에 원칙만을 내세우기 곤란했고 검찰이나 변호인단이나 모두 자기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해당 녹취록에서 마크 퍼먼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걸 입증할 수 있는 니그로 표현 사용 부분만 절취하여 증거물로 사용하는 것으로 타협하였다.
배심원단은 선정 과정에서 검사 측과 변호인 측이 모두 동의하는 인물이어야만 배심원으로 선정될 수 있음에도 흑인이 9명이나 들어갔는데 이는 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였다.
검사측은 백인 중심으로 배심원단을 넣으면 변호인단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고 설사 백인 중심으로 배심원단을 구성하더라도 인종 문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은 재판에서 백인 중심의 배심원단이 내리는 유죄 평결을 시민들, 특히 흑인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때문에 검사 측의 전략은 흑인 중심으로 배심원단을 뽑되 여성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았다.
이는 성공한 흑인 남성들 상당수가 인종 차별 트라우마로 백인 여성과 결혼하고 O. J. 심슨도 마찬가지였음을 이용한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타이거 우즈. 전 부인 엘린 노르데그렌은 부모가 스웨덴의 유명 정치인이고 본인도 성공한 모델이며 이혼 후 사귀었던 린지 본은 미국의 스키 스타다. 하다못해 그의 섹스 스캔들 당시 파트너는 하나같이 다 백인이었다.)
흑인 여성들에게 있어 성공한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일종의 배신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심지어 O. J. 심슨은 흑인이었던 전처 마거릿 휘틀리와 결혼 생활을 하던 중에 그것도 휘틀리가 심슨의 요절한 막내딸 아렌을 임신하고 있던 시기에 백인 여성 니콜 브라운과 바람이 나서 이혼하고 재혼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흑인 여성들이 심슨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변호인단도 검사 측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자체적으로 돌려 본 여론조사 결과 의외로 흑인 여성층에서도 심슨을 동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검사 측의 전략에 모르는 척하며 배심원단 동의를 해 주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당시 흑인 여성들이 심슨을 동정적으로 본 데는 LA 폭동 직후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렇게 선정된 배심원단이지만 양측 모두 약간의 우려 사항이라도 있으면 바로 이의 제기를 해서 교체를 시도했다.
6. 재판 이후
1997년 피해자 니콜과 론 골드만의 유가족들이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는 패소 판결을 받고 배상금으로 총 3,350만 달러(한화 약 370억 원)를 유가족에게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만 이미 과거의 형사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된 사건으로 그를 감옥에 넣을 수는 없었다.
민사와 형사 재판 결과가 달라진 것은 민사에서는 대립하는 당사자 중 더 우세한 쪽이 승소하지만 형사에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을 정도의 증거가 있어야 유죄가 되기 때문이다.
두 재판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으로 심슨이 아내를 죽였다는 게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죽이지 않았을 가능성보다는 높다는 걸로 정리된다.
하지만 회사를 설립하고 온갖 재산을 빼돌리는 등 법의 함정들을 이용하여서 O. J. 심슨으로부터 2017년 8월까지 유가족들은 100만 달러조차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O. J. 심슨은 진짜로 돈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백 달러 규모의 세금도 못 내서 탈세 혐의로 수감되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사건 주요 당사자들은 막대한 수임료를 지불하느라 거지가 된 심슨을 제외하면 대부분 떼부자가 되었다.
변호인단은 승소에 기반하여 높아진 명성으로 몸값이 치솟았고 특히 커크란은 자신의 법률 사무소를 미국 내 총 15개 주로 확대시킬 정도로 명성을 널리 떨쳤다.
검사 측=도 마샤 클라크나 크리스 달든 모두 패배 책임으로 퇴직했지만 클라크 검사는 검사 퇴직 후 1997년 테레사 카펜터라는 유명한 작가와 함께 해당 사건을 배경으로 한 《Without a Doubt》 라는 책을 썼고 당시 420만 불에 판권 계약을 했다.
당연히 베스트셀러 1위로 등극해 돈방석에 앉았다.
덕분에 재판 패배의 발목을 잡았던 자녀 양육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이후 작가로 생활한다.
크리스 달든은 이후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해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배심원단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회고록 내지 인터뷰 등으로 돈을 두둑이 챙겼다.
심지어 악질 인종차별주의자로 인증된 마크 퍼먼조차 위증 혐의 등으로 퇴직 처리되었지만 동부로 이주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라디오 쇼를 진행하고 폭스 채널의 범죄 관련 패널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유일한 예외는 랜스 이토 판사인데 이후에도 판사로 재직했기 때문에 관련 인터뷰나 회고록 집필을 하지 않은 대신 재판 과정에서 명성이 높아지긴 했다.
유명세 때문에 LA 법원의 이름판을 자꾸 도난당했다고 하며 2015년에 은퇴했다.
O. J. 심슨은 2007년 《만약 내가 했다면》(If I Did It) 이라는 책을 고스트라이터를 통해 출판했다.
이 책은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작업으로 출판되었으나 이 책이 출판된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극도의 반발로 출판이 중단된 적이 있다.
이때 이미 찍혔던 40만 부의 책이 파기되었고 사업 계획들도 무산되었다.
이 책은 나중에는 《만약 내가 했다면: 살인자의 고백》(If I Did It: Confessions of the Killer) 으로 제목을 바꾸어 발행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출판 과정에서 O. J. 심슨의 가장 큰 채권자인 론 골드만의 유가족은 사전에 책을 검토한 후 'If' 를 아주 작게 만들도록 해서 언뜻 보면 책의 제목이 《I Did It》 처럼 보인다고 했다.
한국어로 비유하면 '내가 했다면' 이라고 한 셈이다.
2016년 3월 4일(현지시간) O. J. 심슨이 살았던 옛집에서 피 묻은 흉기가 발견됐다고 폭스 뉴스가 보도했다.
이 흉기가 발견된 곳은 로스앤젤레스(LA) 브렌트우드 지역에 위치한 심슨의 옛집 터다.
심슨의 옛집은 1998년 철거됐다.
한 건설업자가 2015년 심슨의 옛집 터에서 흉기를 발견해 경찰관 친구에게 건네줬으나 이 경찰관은 흉기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보관해 오다가 2016년 1월 지인의 신고로 경찰국에 제출했다고 폭스 뉴스는 전했다.
만약 당시 발견된 피 묻은 흉기가 심슨이 범인임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로 판명되더라도 O. J. 심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할 수는 없다.
헌법에 규정된 '이중 위험 금지의 원칙' 때문이다.
('동일한 범죄에 대해 재차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위협받지 않는다' 는 영미법의 원칙으로 대륙법의 일사부재리의 원칙과 유사하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확정 판결에 대해서 다시 기소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이중 위험 금지의 원칙에서는 검찰 측은 항소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영미법에서는 1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재판이 끝난다.)
감식 결과 사건과는 관계 없다고 밝혀졌다.
7.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심슨의 변호인 측의 증인이었던 헨리 리 박사의 법과학 수사팀에 의해 심슨의 양말의 피 및 수사 첫날에는 피가 없었던 정문에 3주 뒤 갑자기 생겨난 핏자국에서 항응고제가 발견되었으며 DNA 대조를 위해 뽑은 심슨의 피가 9/10나 사라지기도 했다.
O. J. 심슨은 경찰에 출두하지 않고 도주했고 경찰이 심슨을 뒤쫓는 추격전 장면이 전 세계로 생방송됐다.
방송국은 NBA 결승전 중계를 끊고 심슨의 도주 장면을 중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시청하느라 TV 앞을 떠나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다.
헨리 리 박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범인은 다름 아닌 O. J. 심슨의 아들인 제이슨 심슨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사건 초기 경찰이 찍은 현장 사진을 보면 시신 옆에 서로 다른 두 개의 운동화 자국이 있다.
목격 진술과 통화 내역, 두 집 간의 거리, 비행기 시간 등을 종합하면 O. J. 심슨에게는 딱 30분간의 시간이 있었는데 격렬하게 저항하는 두 사람의 성인을 살해하고 도주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장갑도 O. J. 심슨의 손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작았으며 현장에서 발견된 모자도 O. J. 심슨의 것이 아니다.
심슨에게 맞지 않았던 장갑은 니콜이 심슨의 아들(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선물하려고 산 크리스마스 선물이었고 심슨의 아들은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전에도 수 차례 폭력 사건을 일으켰고 그녀의 여자친구를 폭행해 죽일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심슨은 자신의 아들을 말리려고 했다가 피가 난 것이고 O. J. 심슨의 아들이니 당연히 장갑 한쪽이 O. J. 심슨의 집에 있는 것이며 O. J. 심슨도 같은 장소에 있어서 발자국이 난 것이고 아프로계 머리인 아버지에게 유전된 머리카락은 심슨의 아들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 장갑, 모자는 나중에 모두 제이슨 심슨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범행 동기도 있었다.
제이슨 심슨은 사건 당일 자신이 일하던 레스토랑에 유명인인 아버지가 와 주기로 했는데 니콜이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시키는 바람에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다.
이전에도 전처의 아들인 제이슨 심슨과 니콜 브라운 심슨은 매우 사이가 나빴다.
아마 제이슨이 격분한 채 칼을 들고 말았고 이를 안 O. J. 심슨이 달려가서 말리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손을 다쳐 피를 흘린 채 비행기 시간 때문에 서둘러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했다.
재판에서 O. J. 심슨이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심슨의 다른 가족들은 모두 기뻐했는데 유독 제이슨만 무표정한 표정으로 있는 장면도 나중에 회자되었다.
무엇보다도 O. J. 심슨이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면서도 다른 이를 지목하지 않고 입을 다문 이유가 설명된다.
범인이 다름 아닌 자기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표창원의 《한국의 CSI》 (북라이프)라는 책에서 소개되어 있다.
수사단 내부에서도 O. J. 심슨의 아들인 제이슨 심슨이 진범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었다.
위에서 말한 인종차별 형사인 마크 퍼먼이 백인 아내를 가진 흑인 유명 인사인 심슨을 표적으로 삼아서 진범을 놓치고 엉뚱한 범인을 만들려고 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마크 퍼먼은 무단 횡단을 한 흑인의 멱살을 잡는 등 폭행을 한 전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언론이었다.
언론은 O. J. 심슨이 범인이라는 가정하에서 모든 내용을 몰고 갔다.
O. J. 심슨의 자동차 추격전을 포함해서 범인으로 몰아간 것은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증언 조작.
원래 O. J. 심슨이 범인인가에 대해서는 70% 정도가 무죄로 생각했다.
이 여론을 뒤집은 것은 한 TV 쇼에서 범죄 현장 근처에서 심슨을 봤다고 주장한 클라크라는 목격자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는데 문제는 이 사람이 나중에 방송사에서 돈을 받고 해당 증언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뒤에는 O. J. 심슨이 범죄를 저지르는 칼을 팔았다는 증인이 나왔는데 이 사람은 신문사에서 12,000달러를 받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O. J. 심슨이 범인이라고 지목한 증언들의 상당수는 신빙성이 의심되었다.
이는 김형근이 쓴 《DNA 연쇄살인의 끝》이라는 책에서 소개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마크 퍼먼은 흑인들 사이에서는 악질이자 반지성주의 경찰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흑인 은어 중에 'go Mark Fuhrman' 이라는 백인이 흑인을 강제로 추궁한다는 의미의 관용어까지 생겼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팔콘이 캡틴 아메리카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토니 스타크에게 짜증을 내면서 'go Mark Fuhrman' 이라고 하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이후 마크 퍼먼은 로라 맥키니와의 인터뷰 테이프의 마지막 부분에서 해당 사건의 담당 판사인 랜스 이토의 배우자이자 당시 LAPD에서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던 마가렛 '페기' 요크에 대해 한낱 계집 따위가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려고 하기도 한다는 이유로 인격 모독적인 반지성주의적 폭언을 하는 내용이 밝혀진 탓에 결국 LAPD에서 해고되었다.
하지만 상술했듯 경찰에서만 잘렸을 뿐이고 동부에서 그 악행을 오히려 명성 삼아서 라디오 쇼를 진행하면서 폭스 채널에 자기 패널까지 만들고 승승장구하면서 부와 명성을 누렸다.
8. 뒷이야기
O. J. 심슨 본인도 이와 관련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책을 쓴 적이 있다.
제목은 《I Want to Tell You: My Responses to Your Letters, Your Messages, Your Questions》.
내용은 자신을 둘러싼 의문점을 해명하는 내용이다.
당시 심슨을 변호했던 변호인 중 한 명이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변호사인 로버트 카다시안인데 이 사람의 딸이 킴 카다시안이다.
(그래서인지 킴 카다시안은 막장 파티녀 캐릭터, 고졸 학력 때문에 무식할 거란 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자기관리도 잘하고 인종차별도 잘 안 하고 자기 주변의 추문에 대처하는 요령과 경험을 아버지를 통해 잘 배워 왔다.)
로버트 카다시안과 O. J. 심슨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친구로 지냈는데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O. J. 심슨이 로버트 카다시안의 집에 머물렀다.
만약 카다시안이 O. J. 심슨의 변호인이 안 되었으면 이 사건의 증인으로 채택되었을 것이다.
후일 킴 카다시안은 TV에 출연해 아버지가 심슨의 무죄 평결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지만 TV를 보던 심슨은 헛소리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로버트도 O. J. 심슨이 유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죽을 때까지 떨치지 못했다고 한다.
(무죄 평결 당시 영상에서 평결이 내려지는 순간 로버트의 표정을 보면 당시에도 심슨이 유죄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는 최대한 심슨의 형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아예 무죄가 나와 버려서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 사건을 재연한 <아메리카 크라임 스토리> 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고 재판장에서 나온 카다시안이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는 장면, 그리고 심슨의 자택에서 열린 무죄 판결 축하 파티 중에 심슨의 곁을 떠나는 장면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이런 의혹을 이후 언론에 나와서 말하기 시작하면서 둘의 관계는 멀어졌고, 2000년에는 O.J.는 재판 과정에서 습득한 의뢰인(=자신)의 정보를 유출해서 TV쇼를 만들려 한다는 이유로 로버트 카다시안을 고소하기까지 한다.
결국 둘의 관계는 로버트 카다시안이 사망할때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어째 한국에선 로버트 카다시안이 심슨을 변호하면서 전 부인인 크리스 제너(킴 카다시안의 어머니)와 사이가 멀어졌다고 알려졌지만 둘은 사건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991년에 이혼했다.
다만 크리스가 피해자인 니콜 브라운 심슨이랑 매우 친했던 것은 사실이며 니콜이 사망한 바로 다음해에 태어난 딸 켄달 제너의 미들네임을 니콜이라고 지을 정도로 그녀를 그리워했다.
방송에서도 니콜과 자주 갔던 레스토랑에 들렸다가 울먹이며 오래 못 있겠다고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크리스는 이후에도 O. J. 심슨이 범인이라고 믿었다.
이 사건은 일부 고등학교 《법과 정치》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정재승의 과학 교양서인 《과학콘서트》 에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정확히는 배심원단이 속아 넘어간 확률과 통계의 오류를 지적한다.
1993년~1995년 사이에 5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검거된 연쇄살인범 글렌 로저스(Glen Rogers)가 니콜과 골드만을 죽인 진짜 범인이라는 주장이 2012년에 나왔다.
로저스는 자신이 O. J. 심슨에 의해 고용되었으며 니콜 브라운의 집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라는 지령을 받고 갔다가 둘 다 살해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My Brother The Serial Killer> 라는 타이틀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방송되었다.
골드만의 가족들은 굉장히 분개해서[30] 다큐 제작자를 비난했다.
참고로 로저스는 자기가 70명을 살해했다고 허풍을 떨기도 했으나 범죄가 입증된 것은 5명뿐이다.
한마디로 관종.
로저스는 1997년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2018년 3월에는 여러 곳에서 O. J. 심슨이 범행을 시인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수감 동기의 증언 말고도 대표적인 증언은 사실 사건 현장에 간 사람이 한 명 더 있단 얘기다.
찰리라는 이름의 남성은 심슨의 친구로 그가 한밤중에 사건 현장으로 갈 것을 부추긴 사람이다.
(니콜의 집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당신이 그걸 막으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칼은 찰리가 호신용으로 챙겨준 것이라고 한다.
현관에 다다르자 론이 모습을 보였지만 심슨은 론을 몰랐기에 뒤이어 나온 니콜과 설전을 했다.
그런데 다투는 과정에서 니콜이 다쳤고 론이 심슨을 가라테로 제압하려고 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심슨은 호신용 칼을 기억해 내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고 정신을 차려 보니 둘이 피범벅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 인터뷰는 폭스사의 폐기된 O. J. 심슨 인터뷰 중에 있던 내용이라고 한다.
대중들은 사실상 심슨의 자백으로 간주했으며 이는 당시 심슨을 기소했던 검사와 유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이는 이 폭스와 O. J. 심슨의 인터뷰는 O. J. 심슨이 쓰려고 했던 책 《If I Did it》 을 비롯한 루퍼트 머독이 계획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즉 '심슨이 만일 자신이 범인이라면 이라는 설정으로 인터뷰한다' 는 식이었기 때문에 원전이 그 인터뷰라면 저 내용은 전혀 의미가 없다.
2020년 공개된 6세대 포드 브롱코의 공개일은 원래 7월 9일이었으나 이 사건에 쓰인 5세대 브롱코의 주인인 O. J. 심슨의 생일과 일치한다는 이유로 출시 일정을 7월 13일로 변경하였다.
헐크 호건이 과거 전처와 그녀의 내연남 때문에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여러 차례 입은 후 한 인터뷰에서 O. J. 심슨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심슨이 살인을 저지른 게 맞다는 가정하에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도 남을 만큼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상당히 크게 입었다는 것이다.
2021년 6월 3일(현지 시간) 이 사건의 변호사였던 프랜시스 리 베일리 주니어가 사망했다.
향년 87세.
JTBC의 예능 세계 다크투어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당시 자료 화면을 보면 인종과 성차별 문제가 뒤섞인 사건이면서도 이를 둘러싼 반응은 인종과 성별을 불문하고 둘로 나뉘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9. 대중매체
미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살인 사건이자 재판 판결이었기 때문에 여러차례 다큐멘터리,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그외 다른 매체에서도 자주 패러디되었다.
<듀크 뉴켐 3D> 에서 TV 화면에 차 두 대가 나오는 움짤이 반복되는데 O. J. 심슨 추격전을 풍자하는 것이다.
또 텍스처 중 GUILTY! 라는 글씨의 입간판은 역시 O. J. 심슨과 관련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근데 반대로 Innocent라고 적힌 입간판도 존재한다.
<슈렉 2>에서도 챠밍 왕자와 요정 대모의 음모로 연행당하는 슈렉을 O. J. 심슨으로 묘사한다.
FX Network가 2016년 2월에 방영한 미국 드라마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American Crime story) 시즌 1 미니 시리즈 <the People vs O.J. Simpson.>은 이 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다.
존 트라볼타가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작중 심슨측의 드림팀 변호사 로버트 샤피로 역으로도 직접 출연했다.
그외에도 O. J. 심슨 역의 쿠바 구딩 주니어, 심슨의 변호인단들로 조니 코크란 역의 코트니 B. 반스, 프랜시스 리 베일리 역의 네이선 레인, 검사 마샤 클라크 역의 사라 폴슨, 검사 크리스토퍼 달든 역의 스털링 K. 브라운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방영 이후 평론가들에게 굉장한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주연과 조연 할것 없이, 배우들이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이중 주연 배우들은 에미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리즈는 FX Network 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해당 드라마는 대한민국에서는 디즈니+를 통해 감상 가능하다.
역시 2016년에 ESPN에서 제작한, O.J. 심슨의 생애와 그 당시의 미국 사회의 현실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인 <O. J.: Made in America> 5부작 시리즈가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Best Documentary Feauture 상을 수상했다.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2024년 1월부터 한국에서도 디즈니+를 통해 감상 가능.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이 사건을 주제로 <Is O. J. Innocent? The Missing Evidence>라는 6부작 미니시리즈를 만들었다.
3명 중 중심인 사설 탐정의 가설에 의하면 범인은 O. J. 심슨의 아들인 제이슨 심슨.
이 가설을 전직 경찰과 협상가가 남아 있는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하나씩 확인해 간다.
데이비드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 라는 영화는 이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린치 감독 특유의 공포 요소와 더럽게 난해한 서사 구조가 가감 없이 발휘되는 작품이다.
기묘하게도 이 영화에 출연한 로버트 블레이크는 출연 4년 후 O. J. 심슨 사건과 유사한 아내 살해 사건에 연루되어 몰락했다.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던 조니 코크란(Johnnie Cochran)은 뮤지컬 <The Book of Mormon> 의 넘버인 'Spooky Mormon Hell Dream' 에 등장했다.
O. J. 심슨을 무죄 판결받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지옥에 갔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O. J. 심슨 사건 파일> 이 개봉되기도 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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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약간배고픈 작성시간 24.02.23 넷플에 드라마로 있는데 그거 보니까 이해잘되더라. 암만봐도 돈으로 무죄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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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레이몬드현식 작성시간 24.02.23 오히려 이 글을 보니까 더 혼란스러워짐... 그리고 경찰들 존나 답답하네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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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망태할아범 작성시간 24.02.25 무죄 판결 날만 했네 증거가 다 오염 됐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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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거봐 할수 있잖아 작성시간 24.02.26 그래도 민사소송은 이겨서 유가족들 한이 쪼끔 풀렸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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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폴리 아 되 작성시간 24.02.26 이거 결국 아들이 범인이라는 게 정설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