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arca.live/b/spooky/102792984
"아빠, 아빠아! 좀비를 봤어요!"
부엌에서 차를 끓이고 있는데 내 딸이 뛰어들어왔어. 뒷문으로 들어왔는데 너무 빨리 달려서 문지방을 넘을 때 거의 넘어질 뻔했어. 나는 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머그잔에 따르면서, 겨우 고개를 들었어.
"그래?"
"네, 봤어요! 얼굴이 온통 새하얗고 지저분했어요! 엄청 징그러웠어요, 아빠!"
나는 주전자를 내려놓고 우유를 집었어. 몰래 한숨을 쉬면서. 저녁에 봤던 TV 내용에 정말 신경을 써야 했는데. 로지는 밤중에 몰래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습관이 있어. 그래서 지난 주에는 내가 워킹 데드를 보는 걸 들켰어. 그 밖에 다른 것도. 그 후로 딸의 머릿속에선 좀비가 떠나지 않았어. 딸에게 그것들은 진짜가 아니라고 계속 말했지만 아무래도 효과는 없는 것 같아.
"우리 예쁜이, 우리가 좀비에 대해 뭐라고 했었지?" 나는 머그잔에서 티백을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어. "계속 좀비 얘기 하면 또 엄마가 아빠를 괴롭힌다고 그랬지?"
"네, 하지만 봤다구요."
"안단다, 아가. 하지만 어제 두 번이나 뒷마당을 확인했어. 여기에 좀비는 없어."
"아니요, 뒷마당이 아니에요."
"응?"
"뒷마당에서 본 게 아니라구요."
나는 머그잔을 입가 근처로 반쯤 갖다 대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내려놨어. 나는 로지를 돌아봤어. 머리카락은 바람에 헝클어진데다 한참 뛰어다니다 온 것처럼 뺨이 붉어져 있었어.
"아가야." 나는 최대한 엄숙하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어. "뭐 하나 물어볼게. 솔직하게 말해줘야 해. 또 뒷길에서 놀았니?"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 이 질문을 할 필요는 그다지 없었어. 로지는 정원에서만 놀 수 있었어. 그리고 가끔가다 딸이 먼저 부탁한다면, 우리는 딸을 자전거에 태워서 집 뒤편의 길로 나가곤 했어. 우리 모든 이웃집들의 뒷마당을 지나는 길이야. 하지만 딸에게 허락한 건 거기까지야. 이 동네는 제법 안전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몇 달 전에는 불법 침입 및 절도 사건이 두어 번 벌어졌고, 작년에는 고속도로에서 강도 사건이 발생햇어. 그리고 몇 년 전에는 근처에서 어린 남자아이 한 명이 실종되었고. 물론 여기서는 꽤 먼 곳이었지만 지역 뉴스는 며칠 간 그 사건을 보도했었어. 곧 조사가 흐지부지되었지만. 그 일로 많은 부모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됐어. 로지는 점점 나이를 먹고 있고, 모험심이 많은 아이야. 그래도 선을 정해줄 필요가 있어. 하지만 최근에 로지는 몇 번이나 선을 넘었어.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갔거든. 우리가 딸을 불렀을 때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어. 정원에서 놀려고 했을 뿐이라면서 몰래 뒷문으로 나갔지.
로지를 보고 있자, 딸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어. 딸은 내 눈을 피해 부엌 바닥을 보며 발을 질질 끌었어.
"아빠, 조금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딸이 말했어. "진짜에요. 헨더슨 아저씨랑 얘기하고 있었어요. 뒷마당에 아저씨가 보였거든요. 인사했더니 아저씨가 깜짝 놀랐어요!"
나는 한숨을 쉬었어. 답이 나왔네. 헨더슨 씨가 로지의 좀비였어. 어제는 우체부가 좀비라고 하더니, 이전에는 또다른 이웃이 좀비였지. 나는 차를 홀짝이고 고개를 저었어.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헨더슨 씨는 꽤 볼만한 좀비였지. 그 남자는 혼자 살고 겉보기에는 100살 정도 되어 보이니까. 얼굴 전체에 사마귀가 있고, 피부는 바람 빠진 풍선 같아. 하지만, 지난번에 정원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얘기하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정말 다정한 사람이었어. 조금 외로울 뿐이지. 로지가 그를 좀비라고 부르게 놔둘 수는 없어.
"잘 들어, 귀염둥아. 네가 멀리 가지 않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네가-"
"그 다음 바로 돌아왔어요, 아빠!" 로지가 말을 끊었어. 로지는 애원하는 듯한 파란색 눈으로 지금은 나를 보고 있어. "진짜에요! 헨더슨 씨가 아이스크림 주겠다고 했는데도 안 된다고 했어요. 아빠가 낯선 사람으로부터 뭐 받으면 안 된다고 해서요!"
나는 대답을 위해 입을 열었다가 멈췄어. "아이스크림을 주겠다고 했어?"
"네, 하지만 안 된다고 했어요! 헨더슨 아저씨가 계속 안으로 들어와서 아이스크림 먹으라고 했어요. 근데 난 집에 가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바로 돌아와서 아빠한테 좀비를 봤다고 한 거에요, 그리고..."
로지는 이제 모터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횡설수설하고 있었어. 하지만 난 듣지 않았어. 내 정신은 온통 딸이 방금 했던 말을 주목하고 있었거든.
헨더슨 아저씨가 계속 안으로 들어와서 아이스크림 먹으라고 했어요.
나는 차를 조금 더 마시고 얼굴을 찌푸렸어. 이건 좋지 않아. 이웃들이 내 딸이랑 얘기하는 건 신경쓰지 않지만 안으로 초대한다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데. 그것도 우리가 없을 때 말이야. 그냥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라 그랬다고 해도. 나중에 헨더슨 씨를 찾아가서 직접 말하는 게 낫겠다. 물론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하지만, 결국 그럴 기회는 오지 않았어. 왜냐하면 내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로지가 다른 얘기를 했거든. 무언가가 내 정신에서 다른 것들을 밀어내고 헨더슨 씨의 집에 가자는 생각을 지워버렸어. 그녀의 말을 듣자 공기가 차가워지는 것 같았어.
"아빠. 정원에서 놀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다시는 몰래 안 나갈 거라고 약속할게요. 좀비한테 붙잡히기 싫어요."
"로지, 정원에서 놀지 말라고는 안 할거야. 하지만 약속을 몇 가지 더 해야 해. 먼저, 함부로 밖에 돌아다니지 않고 사람들을 좀비라 부르지 말 것. 헨더슨 씨는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살아 있는 시체는 아니야."
로지가 얼굴을 찌푸렸어. "안 그랬어요."
"안 그랬다는 게 무슨 뜻이니? 방금 여기 들어와서 그 아저씨를 좀비라고 했잖아."
"아니에요, 안 그랬어요. 헨더슨 아저씨는 좀비가 아니에요. 아저씨네 집에서 좀비를 보긴 했지만 아저씨는 아니에요."
나는 얼굴을 찌푸렸어. 나는 차를 조금 더 마시려고 머그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어. "무슨 뜻이니, 귀염둥아? 그 아저씨 집에 다른 누가 있었다고?"
"네, 좀비에요, 아빠! 헨더슨 아저씨랑 얘기하는데 좀비가 아저씨네 지하실 창문에 얼굴을 바짝 대고 있었어요."
차가운 손가락이 내 등을 훑는 것 같았어. "뭐라고?"
"네, 엄청 무서웠어요. 얼굴에 온통 멍자국이랑 피가 있었고, 입을 벌리고 있었어요. 저를 보고 소리지르는 것처럼요. 하지만 제일 이상했던 게 뭔지 알아요, 아빠?"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목소리를 내려고 했어. "뭔데?"
"어, 저는 아이들도 좀비가 될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어른들만 되는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헨더슨 아저씨네 지하실에 있던 좀비는 어린 남자애처럼 보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