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 블랙스버그에 위치한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에서 발생한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 중 하나이다.
교내의 웨스트앰블러존스턴 기숙사와 노리스 홀에서 순차적으로 총기난사가 발생해 32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 당했다.
범인은 한국인 조승희로 밝혀졌고 사건 직후 자살했다.
2. 전개
2.1. 무기 입수
2007년 2월 2일, 조승희는 인터넷으로 발터 P22 권총을 구매했으며, 해당 권총은 1주일 후인 2월 9일 배송되었다.
물론 버지니아 주 법으로는 합법적인 경로이다.
버지니아의 법 자체가 총기 소지에 대한 규제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버지니아에서도 총기 구매자에 대한 각종 검사를 하지만, 버지니아 법원이 조승희의 정신 병력에 대하여 공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기 구매에 제약이 없었다.
이후 3월 13일에는 글록 19 권총과 9×19mm 파라벨룸의 표준 탄약인 9mm FMJ탄 50발을 구입했다.
두 권총 구입에 1달 정도의 텀이 있는데, 당시 버지니아 법으로 권총은 1달에 하나밖에 구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법 조항은 2013년에 폐지되었다가 2020년에 다시 부활한다.)
3월 22일에는 글록 19의 15발들이 탄창 4개를 오프라인으로 구입하고 발터 P22의 10발들이 탄창 2개도 eBay에서 구입했다.
3월 23일에는 또 이베이에서 10발들이 탄창 3개를 구입했다.
이후 3~4차례에 걸쳐 범행에 쓸 탄환도 구입했는데 나중에 밝혀진 것으로는 총 500여발에 달했다.
이때 구입한 총알은 대부분 할로 포인트였다.
조승희가 NBC에 보낸 사진 중에는 이 할로 포인트 탄을 찍은 사진도 있었고, NBC에 보낸 선언문에는 "나에게 준 온갖 더러운 것들을 할로 포인트 탄으로 돌려준다 (All the shit you've given me, right back at you with hollow points)." 는 문구도 있었다.
2.2. 범행 과정
1번째 총격은 현지 시간으로 오전 7시 15분에 있었다.
조승희는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기숙사에 있던 에밀리 제인 힐셔의 방에 들어가 글록 19로 그녀를 저격하여 치명상을 입힌다.
그 뒤, 총소리를 듣고 나온 기숙사 사감 대학원생인 라이언 C 클라크에게도 총을 쏴 즉사 시키고 현장을 떠난다.
에밀리 힐셔는 총격을 받고도 살아 있었으나, 병원으로 옮겨진 뒤 3시간 만에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일부 언론에는 에밀리가 조승희의 여자 친구라거나 조승희의 구애를 거부하여 사건이 발생한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경찰 측의 수사결과 에밀리 제인 힐셔는 조승희가 누군지도 몰랐다는 사실이 밝혀 졌다.
에밀리의 룸메이트인 헤더 하우가 7시 30분에 기숙사에 왔을땐 이미 경찰 특공대가 출동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중이었다.
헤더 하우는 경찰관에게 에밀리의 남자 친구인 칼 던힐이 2주 전에 총을 가지고 사격 연습을 하는 걸 봤다고 증언하며 의도치 않게 수사에 혼선을 빚었고, 경찰관은 흔한 치정에 의한 살인 사건으로 파악하고 에밀리의 남자 친구인 칼 던힐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차를 타고 집에 가던 칼 던힐의 신병을 확보한 뒤 심문을 한다.
이렇게 경찰관이 엉뚱한 사람을 잡는 동안 조승희는 2차 범행을 준비한다.
2번째 총격이 벌어질 때까지 약 2시간의 시간 간격이 있었는데 조승희는 자신의 노트북에 있는 자료를 일부 삭제하고 하드디스크를 탈거하고, 피 투성이가 된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편지와 사진을 넣은 소포를 USPS 익스프레스 배송으로 NBC 방송국으로 부치느라 우체국에 다녀온다.
발송 시간은 오전 9시 1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NBC 방송에서 보도한 조승희의 사진이 바로 여기 들어 있었던 것들이다.
이때 학교 측은 총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기숙사가 대학과는 떨어져 있었기에 학교 전체에 대한 비상 사태를 발령하지는 않았다.
이때 당시 경찰관은 조승희가 학교 바깥으로 도주한 걸로 판단하고 주변에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에 경찰관들을 파견했다.
이러한 학교 측의 조치는 결과적으로 2번째 총격을 불러 일으켰다.
우체국에 다녀온 조승희는 배낭에 물건을 챙겨서 노리스 홀로 갔다.
그가 챙긴 물건은 체인, 자물쇠, 망치, 전투 나이프, 발터 P22, 글록 19, 10~15발씩 들어있는 탄창 9개와 여분의 탄환 400발이다.
9시 40분에 노리스 홀에 도착한 그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 3개를 사슬로 칭칭 감아 자물쇠로 잠가놓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빈 강의실에 들어가서 배낭에 넣어 둔 낚시 조끼를 입고 주머니 마다 탄창을 가득 채운 뒤, 다시 배낭을 메고 2층 복도를 지나 다니며 각 강의실을 엿 보며 범행 대상을 물색한다.
207호에 있던 에린 시한 (Erin Sheehan)은 강의실을 엿 보면서 돌아다니는 조승희를 보고 수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범행 대상을 물색한 조승희는 복도 끝의 남자화장실 앞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준비한 권총 두 정을 꺼내 무장했다.
조승희가 처음으로 들어간 강의실은 206호였다.
그곳에는 G V 로가나탄과 학생 13명이 있었다.
206호에 입장 후 조승희는 문간에 자리를 잡고 발포하여 학생 7명을 죽이고 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리고 자신을 막아서는 G V로가나탄 교수에게도 총을 쏴 죽인다.
강의실을 나가기 전에 아수라장이 된 강의실 안을 향해 몇 발을 더 쐈지만 모두 빗나갔다.
복도로 나간 조승희는 도망 가는 학생들에게 발포했고, 그 중 한 발이 자말 카버의 팔에 맞았다.
다행히 이들은 무사히 계단으로 도망 쳐서 살아 남았다.
그 다음 조승희는 205호에서 내다 보고 있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발포하지만 모두 빗나갔다.
사태를 직감한 205호의 교수와 학생들은 의자와 책상을 동원하여 바리케이트를 쌓아 문을 막았다.
조승희는 207호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강의하고 있던 제임스 비숍 강사를 살해하고, 그곳에 있던 학생 4명도 살해한다.
이 때 3층에 있던 케빈 그라나타는 약 20명의 학생들을 자신의 연구실로 안내해서 문을 잠그라고 하고 다른 교수인 윌리 그랜트와 함께 아래 층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207호에서 나오던 조승희와 마주치고, 조승희는 케빈 그라나타 교수의 머리에 총을 쏴서 살해한다.
이윽고 윌리 그랜트 교수에게도 총을 쏘고 등에 맞았지만 그랜트 교수는 근처에 있던 남자 화장실로 피신하여 살아 남았다.
이곳은 조승희가 범행 직전 무장할 때 배낭을 놔뒀던 곳이었다.
그라나타 교수의 연구실에 숨은 학생들은 모두 살아 남았다.
이때 211호 입구에서 조셀린 쿠튀르누아크가 자신을 바라 보는 것을 발견한 조승희는 바로 그곳으로 다가간다.
조셀린 쿠튀르누아크 교수는 학생들에게 모두 바닥에 엎드리라고 이야기했고, 교수와 학생 중 1명인 헨리 리는 문 앞에 책상을 쌓아 문을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바리케이트를 쌓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이내 조승희가 밀고 들어오면서 교수와 헨리 리는 책상에 밀려 바닥에 쓰러진다.
조승희는 쓰러진 교수와 헨리 리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한다.
강의실에 있던 매슈 러포트는 조승희를 넘어 트리려고 달려들지만 조승희는 그를 향해 여러 차례 총격을 가해서 쓰러 뜨린다.
이후 책상 사이 사이에 숨어 있는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해 9명을 살해하고 4명에게 부상을 입힌다.
이후 조승희는 206호로 다시 돌아 와서 살아 있던 학생들에게 발포했다.
이 총격으로 2명이 더 사망한다.
이후 207호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만 살아 남은 학생들이 문을 단단히 막고 있었다.
조승희는 문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총알이 문을 뚫고 들어가 6명의 학생들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후 205호로 이동하지만 이미 이 강의실은 문 앞에 단단한 바리케이트가 있어서 들어 가지 못했다.
조승희는 문을 향해 발포했지만 총알이 바리케이트를 뚫지 못했고, 205호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다.
조승희는 204호로 이동했는데, 이때 이 강의실에서 가르치던 리비우 리브레스쿠는 학생들에게 창문으로 뛰어 내리라고 이야기했고, 학생 대다수가 창문을 통해 탈출한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2층에서 뛰어 내리느라 부상 당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목숨은 건졌다.
조승희는 문을 막아선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에게 4발의 총격을 가해 쓰러 뜨리고, 쓰러진 교수의 머리에 총격을 가해 살해한다.
그리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3명의 학생에게도 총격을 가해 1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는 부상을 입혔다.
204호를 나온 조승희는 또 다시 206호로 다시 돌아 가서 아직 숨어 있던 학생들에게 총을 쐈다.
이 과정에서 2명이 추가로 부상을 입었다.
이 때가 9시 50분 경이었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착하여 노리스 홀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사슬로 잠긴 문을 열 수 없어서 1층 실험실 쪽문의 자물쇠를 총으로 부수고 진입했다고 한다.
206호에서 나온 조승희는 211호로 다시 돌아가서 아직 살아 있는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한다.
이 총격으로 2명이 더 사망하고, 4명이 추가로 부상을 입었다.
이때 경찰이 진입하는 소리가 들리자 조승희는 206호 강의실의 문을 닫은 뒤 자신을 덮치려고 하다가 죽은 매슈 러포트의 머리에 총을 발사한다.
그러고 나서 창 밖을 바라보며 왼쪽 관자 놀이에 총을 대고 발사하여 자살했다.
그는 총기를 174발을 난사해서 이곳에서만 30명을 죽이고 29명을 다치게 했다.
사망한 30명 중 28명이 머리에 총탄을 맞아 사망하였고, 사망한 이들 모두 3발 이상의 총격을 받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노리스 홀 수색 결과 재장전하고 버린 빈 탄창을 17개 발견했고, 남자 화장실 앞에 놓아둔 배낭에서 203발의 총알이 더 발견되었다.
3. 범인과 범행 동기
1984년 1월 18일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現 아산시 온양4동)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아산에서 살다가 이주하여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서 거주하던 조승희의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간 전형적인 대한민국 서민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동네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고 세탁소를 경영하며 열심히 사는 조용하고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그의 누나는 아이비 리그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여, 미국 국방부에서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가족들로만 놓고 본다면 나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모범적인 이민자 가정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조승희는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과묵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삼촌은 그가 '열린 사회' 인 미국에 가서 자신감을 되찾기를 기대했다.
9살 나이의 그는 낯선 미국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 힘든 시기를 보냈다.
(미국 역시 사람들이 사는 사회이기 때문에 텃세나 부조리가 전혀 없는 사회는 결코 아니다.
특히나 이민자, 백인이 아닌 타인종들 (흑인,히스패닉,아시아인,아랍인,이슬람인,힌두인,유대인,원주민 등),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외향적인 사람, 남자다운 남자가 선호되는 현상은 미국이 대한민국보다 훨씬 더 심하다.
실제로 서양에 살아보면 내성적인 사람은 어려서부터 그쪽 분야의 동아리(특히 피아노, 체스, 문예, 마술, 카드게임 등)나 교회 등에 꾸준히 몸을 담으면서 나름대로 활동을 해온 경우가 아닌 이상 사회적인 반경이 제한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조승희 본인이 사회성을 향상시킬 자세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거나 아니면 마음에 문을 열 기회를 거의 가질 수 없었다면 미국 사회 적응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현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사회는 열린 사회에 속하지만 조승희의 삼촌이 생각하는 열린 사회가 아니다.
만약에 그의 삼촌이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와 조승희 성격, 문화 변화와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했고 판단력이 좋은 사람이였다면 사전 조치를 취해 놨을 수도 있었다.)
당시 영어를 못하던 그는 매우 조용했고 그런 그를 학교에선 문제아로 여겨 특수교육을 받게 했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다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학교의 상담 프로그램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서럽던 시기를 잘 극복했다.
5학년이 된 조승희는 수학과 영어에 특히 뛰어난 학생이었다.
교사는 그를 다른 학생들의 모범으로 삼기도 했다.
급우인 김경원에 의하면, 교내에는 3명의 한국인 학생들이 있었으며, 아무도 조승희를 미워하지 않았다.
김경원은 당시 조승희에 대하여 좋았던 기억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어릴 적부터 정신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말들도 있어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
당장 아래 김윤수 씨 인터뷰나 Regan Wilder의 인터뷰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중학교에서 조승희는 심각한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하나의 테러리스트가 양성된 시발점.
감수성 많은 중•고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하지 않고 적절히 괜찮은 친구를 한두 명이라도 만나 그럭저럭만 생활했어도 지금쯤 그냥 하나의 조용한 미국 시민으로 일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낯을 많이 가리고 말이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조승희의 성격에서 시작된 학교폭력은 조승희를 극심하게 괴롭혔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선택적 무언증, 우울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를 향한 학교폭력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급우들은 반에 그가 나타나면 물건을 던져댔고 그를 넘어뜨리면서 소리치며 비웃었다.
그는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계속 불러도 대답을 아예 거부하자 참다 못해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낙제 점수를 주겠다는 교사의 경고에 마지못해 책을 읽는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며, 마치 무언가 입에 물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범행 선언문 낭독 영상에서 조승희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냥 저음보다는 목이 쉰 듯한 저음에 가까우며, 영상 내내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모노톤으로 음량만 바꿔가며 말한다.
이는 전형적인 억양장애(dysprosody)의 증세다.)
자신감 없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그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했고 "중국으로 돌아가" 라며 그를 조롱했다.
학교에서 그가 심한 따돌림을 당하는 걸 걱정하던 그의 가족들, 특히 어머니와 누나는 그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무슨 질문을 해도 그냥 "Okay" 가 다였다고 한다.
그를 답답해하던 아버지는 그를 꾸짖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커질 뿐이었다.
조승희의 부모는 망가진 그를 치료하고자 교회에 보냈지만 교회의 기독교 소년 단체마저도 그를 조롱하였다고 한다.
(교회도 일종의 단체인 만큼 교회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보수성향이 좀 심하거나, 다소 배타적인 분위기의 교회라면 개성이 특이하고 모르는 청년이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교적으로 봤을 땐 당연히 옳지 못한 행동.)
(그가 작성한 각본과 선언문에서 공통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증오가 드러나는 것이 특이한데, 막상 선언문을 읽어보면 '너희 기독교도들은 모순된 가짜고, 내가 진짜다' 라는 표현이 제법 많이 나온다.
이로 짐작하건대 조승희가 간 곳은 기독교 근본주의 계열의 교회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조승희는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에 진학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조승희가 버지니아 같은 곳이 아니라 프린스턴 같은 곳에 갔으면 좋겠다고 이웃들에게 말하곤 했다.
(겉으로 잘 드러내지만 않을 뿐 동양인들 역시 흑인, 히스패닉 못지 않게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미국의 많은 동양계들은 최대한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곳에 취업을 해야 인종차별 문제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을 보이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조승희가 입학한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통칭 "버지니아텍" 역시 미국에서 상당한 명문으로 카네기 멜런 대학교 등과 함께 월드 클래스 이공대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학이 'MIT' 와 '칼텍' 급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프린스턴이 워낙 명문대이어서 굳이 그 누나와 비교가 된 것으로 보인다.
조승희는 대학 1학년 때 경영정보학을 선택했지만, 2학년이 되면서 영문학으로 전공을 변경했다.
대학교에서 그는 지극히 내향적이며 겉도는 사람이 되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접한 니키 지오바니 교수는 곧바로 범인이 누구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수업을 가르치던 지오바니 교수에 의하면, 그의 작문은 증오로 가득차 있었고 그의 극본은 위험한 것이었다.
한 학생은 그의 극본을 읽을 때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고 한다.
조승희는 출석 시트에 본인 이름이 아닌 그냥 물음표만 적어 내기도 했다.
(조승희는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자아정체성 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듯하다.
성명문에 등장하는 Ismail Ax 를 죽기 직전 그가 선택한 이름이자 폭력적인 자아정체성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가 문학 클래스에 제출했던 극본인 <Richard McBeef> 가 널리 알려졌는데, 심지어 유튜브에 <Richard McBeef> 를 실제로 연기한 영화와 연극이 나오고, <Richard McBeef> 가 문학적으로 분석되고 평론된 기사와 풍자된 예도 있다.
조승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매우 매료되어 있었는데, 해외에서는 그가 악역처럼 묘사한 리처드 맥비프의 이름이 리처드 3세와 맥베스를 비틀어서 지은 이름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기에 부정하는 의견도 많다.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조승희를 담당교수 지오바니는 학과장을 통해 자신의 문학 수업에서 제명시켜버린다.
그리고 학교의 관리부서 곳곳에 연락하여 조승희를 경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크리스티나 릴릭이란 학생은 조승희가 자신을 스토킹했다고 하였다.
이 학생이 머무는 방 문의 보드판에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는데, 과거 조승희가 문학 수업의 출석 체크란에 물음표를 그린 적이 있던 걸 이유 삼아 조승희가 자신을 스토킹한 게 아닌가 의심하였다.
조승희가 8학년 때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났는데 한 학생의 말에 따르면 그가 그것을 소재로 살인과 자살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한다.
조승희의 룸메이트였던 앤디 코크(Andy Koch)라는 학생에 따르면, 대학교 때 여학생을 스토킹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코크도 조승희를 그냥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조승희가 자신에게 젤리(Jelly)라는 '상상 속의 여자 친구' 가 있고, 그녀는 슈퍼모델 출신이며 어떤 때는 "젤리하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 며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냥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나 가족들하고 같이 웃어넘겼다.
하지만 조승희가 여학생을 스토킹한다고 경찰의 신고가 들어왔을 때 조승희에 대한 코크의 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조승희는 그냥 그 여학생을 보기 위해 갔다고 하고 그냥 애 괜찮은지 보려고 했는데 꽤나 가벼워 보이는 여자애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더구나 본인 소개를 "안녕 난 물음표야" 라고 해서 여학생을 더 놀래켰던 것 같다.
조승희가 말은 별로 안 하는 학생이었지만 페이스북 프로필 페이지를 통해 학생들하고 교류했고 그냥 얼굴에 물음표가 있는 조로 피규어가 조승희의 프로필 사진이었고 남들과는 뭔가 다른 게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코크와 친한 어느 여학생 문 보드판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대사(로미오가 자기 가문이 줄리엣에 대한 사랑을 방해하는 것에 괴로워하며, 가문의 이름을 찢어발기고 싶다고 말하는 대사)를 써붙였다.
여학생은 처음에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고 코크와의 대화 이후 확실히 신고하자고 마음 먹었던 것 같다.
여학생의 말에 따르면 여학생은 딱히 온라인 어느 포럼에도 자기가 사는 곳을 공개한 적이 없다.
때문에 조승희가 뭔가 마음 먹고 여학생이 어디 사는지 뒤지지 않은 이상 여학생이 사는 곳을 찾기는 힘들었을 테고, 그게 여학생을 더 걱정시켰던 것 같다. "he turned out all psycho" 라고 하는 걸 보면, 코크가 이미 여학생한테 조승희에 대해 말하기 전에 조승희의 행동이 여학생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승희는 학교 경찰에게 경고를 받았고 그 후 여학생에게 더 접근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조승희는 룸메이트인 코크에게 자신이 자살할지도 모르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코크는 이를 학교 당국에 신고를 한다.
학교 당국은 조승희를 정신 감정을 담당하는 지역위원회로 데려간다.
그 곳에서 조승희는 '심한 우울장애' 와 '무감각증(flat affect)' 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는다.
조승희는 이런 진단을 부인하였지만 결국 버지니아 주의 정신건강센터에 수용된다.
버지니아 주 판사는 조승희가 외래환자로서 성실하게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임한다는 조건 하에 퇴원 판결을 내린다.
이로 인해 조승희는 정신건강센터에 구금된 지 하루만에 풀려난다.
조승희는 사건을 일으키기 직전 NBC에 보낸 영상에서 자신의 모습이 담긴 일련의 스냅사진들과 '선언문' 을 낭독하여 자신의 뜻을 설파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선언문의 내용은 NBC가 일부 검열한 것으로, 보도된 내용은 원래 선언문의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당시 NBC 사장은 "검열된 선언문에는 극도로 폭력적인 이미지와 저속한 욕설이 들어있으며 이것이 세상에 나오길 원치 않는다" 고 했다.
사실 이것만이 이유는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 조승희의 전체 선언문에서는 스스로가 앞으로 미국 전역에서 일어날 총기난사의 선행 사례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 혁명을 일으키자' 라며 대놓고 선동하고 있다.
사건 직후 모방범죄 발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검열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는 "너희는 오늘을 피하기 위한 기회를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었다" 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나는 내뺄 수 있었지" 만 "너희들이 등쳐먹고 앞으로도 등쳐먹을 무력한 형제자매와 자식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예수처럼 죽을 것이고, 모세처럼 그 무력한 자식들을 영원한 자유로 이끌 것이다" 라고 선언했다.
그는 "목으로 쓰레기를 쳐넣는" 것과 같은 치욕적인 괴롭힘들을 나열하면서 이 괴롭힘들이 "단지 너희들이 그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랬다" 며 "너희는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고" "너희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고 질타했다.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행동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 말한 뒤 카메라는 꺼진다.
비디오와 함께 동봉된 각 사진에는 조승희가 적은 캡션이 달려 있었는데, 자신들을 괴롭힌 불특정 다수와 그의 관념 속 '위선적인 기독교도 부유층 주류 세력' 에 대한 원망과 저주, 자기연민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 역시 대다수 언론 보도에서는 검열되었다.
대학 기숙사 엠블러 존스터홀에서 여학생 에밀리 제인 힐셔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조승희는 204, 206, 207, 211호실에서 5명의 교수와 30명의 학생을 살해하는데, 그는 언제나 강의실에 들어가서 교수를 제일 먼저 살해했고, 그 후 학생들을 살해했다.
그러나 그는 살인 그 자체에는 집착하지 않았는데, 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문을 막자,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간다든지, 이미 죽은 학생들에게도 마구 총을 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생존자들은 조승희가 증오도 분노도 아닌 멍 때리는 듯이 텅 빈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었으며, 총을 쏠 때 이렇게 말했다고 증언했다.
"안녕, 잘 지냈니?"
범행 이후 조승희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쏴서 자살했다.
조승희의 시신에서는 붉은색 잉크로 적힌 '이스마일 액스(Ismail Ax)' 라는 이름이 발견되었는데, 그가 언론사에 보낸 택배에서도 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오갔다.
조승희 본인의 선언문을 보면 그는 주류 기독교 사회에서 벗어난 외부인으로서의 아이콘인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면서, 자신은 미국의 테러리즘과 싸우는 안티테러리스트(anti-terrorist)라며 이 이름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Ax를 나머지 이름으로 삼은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총이든 칼이든 날카로운 물건이면 뭐든 잡고 일어나 싸워라' 라는 성명서의 내용을 보면 흉기로써의 도끼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그는 '안티테러리스트를 상징하는 숫자' 라면서 88이라는 수를 강조하고 있는데, 의미는 명확하지 않으나 그가 이 범행을 통해 스스로를 아이콘화하려고 시도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93년에 어머니가 미국인 강도에게 살해당했고 아버지가 얼마 후 재혼을 했다는 오보가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항간에 조승희가 아메리칸 아이돌에 예선 참가를 했다는 사실이 나도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유머 사이트에서 비꼬는 의미로 조승희가 참가했다고 한 것을 한국 언론에서 오보를 하면서 생긴 오해이다.
한 EBS 다큐에서도 이를 받아들여서 "조승희가 관심을 요구했다" 고 분석했다.
4. 희생자
1. 라이언 클라크 (Ryan Clark) - 22세, 심리학/화학/영어 4학년
2. 에밀리 힐셔 (Emily Hilscher) - 19세, 축산학과 1학년
3. 미날 판찰 (Minal Panchal) - 26세, 건축학과 석사과정
4. G V 로가나탄(G V Loganathan) - 53세, 토목공학과 교수
5. 재릿 레인 (Jarrett Lane) - 22세, 토목공학 1학년
6. 브라이언 블룸 (Brian Bluhm) - 25세, 토목공학 석사과정
7. 매슈 궐트니 (Matthew Gwaltney) - 24세, 환경공학 석사과정
8. 제러미 허브스트릿 (Jeremy Herbstritt) - 27세, 토목공학 석사과정
9. 파타히 룸반토루안 (Partahi Lumbantoruan) - 34세, 토목공학 박사학위
10. 대니얼 오닐 (Daniel O'Neil) - 22세, 환경공학 석사과정
11. 후안 오르티스 (Juan Ortiz) - 26세, 토목공학 석사과정
12. 줄리아 프라이드 (Julia Pryde) - 23세, 생명공학 석사
13. 왈리드 샤알란 (Waleed Shaalan) - 32세, 토목공학 포닥
14. 제이미 비숍 (Jamie Bishop) - 35세, 독일어학과 교수
15. 로런 매클레인 (Lauren McCain) - 20세, 국제학 1학년
16. 마이클 폴 주니어 (Michael Pohle JR.) - 23세, 생명과학 4학년
17. 맥신 터너 (Maxine Turner) - 22세, 화학공학 4학년
18. 니콜 화이트 (Nicole White) - 20세, 국제학 3학년
19. 리비우 리브레스쿠 (Liviu Librescu) - 76세, 기계공학과 교수
20. 조셀린 쿠튀르누아크 (Jocelyne Couture-Nowak) - 49세, 프랑스 어학과 교수
21. 로스 앨러메딘 (Ross Alameddine) - 20세, 영어학/비즈니스학 2학년
22. 오스틴 클로이드 (Austin Cloyd) - 18세, 국제학/프랑스어학 1학년
23. 다니엘 페레스 쿠에바 (Daniel Perez Cueva) - 21세, 국제학 3학년
24. 케이틀린 해머런 (Caitlin Hammaren) - 19세, 국제학/프랑스어학 2학년
25. 레이철 힐 (Rachael Hill) - 18세, 생명과학 1학년
26. 매슈 러 포트 (Matthew La Porte) - 20세, 정치학 2학년
27. 헨리 리 (Henry Lee) - 20세, 컴퓨터공학 1학년
28. 에린 피터슨 (Erin Peterson) - 18세, 국제학 1학년
29. 메리 캐런 리드 (Mary Karen Read) - 19세, 학제학 1학년
(어머니가 한국인인 한국계 미국인이였다.)
30. 리마 사마하 (Reema Samaha) - 18세, 도시계획 1학년
31. 레슬리 셔먼 (Leslie Sherman) - 20세, 역사학/국제학 3학년
32. 케빈 그라나타 (Kevin Granata) - 45세, 공학 교수
이 중에는 백인들만 있는게 아니라 유대인, 흑인, 혼혈,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들도 있다.
5. 사건의 여파
당시 재학생의 말에 따르면 추모식에 동양인은 한명도 오지 못했다고 한다.
서양인들에겐 한국인과 외모가 비슷해보이는 중국,일본 유학생들도 몸을 사렸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현지 한인들이 신변에 불안함을 느꼈고 여행객들도 미국 여행을 많이 취소했다고 전해지고, 심지어 유학생들과 교환학생들도 미국 유학이나 미국 교환학생 활동을 많이 취소했다고 전해지기도 하였다.
일부 미국 네티즌 사이에서 잠깐 "한국은 악의 축", "김치에는 독성이" 같은 반한 감정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인에 의한 중범죄가 일어나면 해당 국가에 대한 거부 감정이 일어나는 건 한국을 포함해 어느 나라에서건 흔하게 있는 일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일.)
하지만, 미국 내부에서도 미국은 워낙에 총기 난사가 넘치고 그동안 백인이 일으킨 총기난사 사건이 훨씬 많은데 그 사건들 일으킨 백인들은 놔두고, 왜 다른 인종이나 그 나라에 반감정을 갖추었느냐는 지적이 나와 오래 가진 못했다.
또 일각에서는 "총기 소지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오히려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라며 "법이 아니라 문화를 바꾸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 이라며 총기 규제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일어 나기도 했다.
총기 규제 때문에 선량한 시민이 범죄자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이 사라진다는 논리로, 총기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총기 규제론에 반대해 대두되는 주장이다.
(미국내에서 말도 많고 탈도많은 "수정헌법 2조" 를 보면 아직까지 총기 규제론과 반대론이 팽팽하다.)
이 사건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마치 대한민국이 범죄를 저지르기라도 했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한국 정부에서도 사과의 뜻을 전했는데, 이는 미국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한다.
국가와 개인을 묶는 한국인과 대한민국 정부의 행동에 미국 언론은 일제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당시 초청된 일본인 사회 학자가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의 공동체 의식' 이라는 답변을 했고, 다민족 국가와 단일 민족 국가의 국가론에 대한 차이가 사회학의 관심 분야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학술적으로는 그렇다 해도,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반한 감정을 재빨리 잠재우고 이 사건을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전반적 적개심이 아닌, 정신질환자의 일탈 행위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데 일조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미국 전역의 학교에서는 보안에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비슷한 시기인 2007년 5월에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배경으로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맵을 만든 학생이 부모의 신고로 정학당한 일도 있었다.
단순히 게임일 뿐이었는데도 테러 위협으로 간주한 경찰을 보면 이 당시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분위기가 흉흉할 때, 하필이면 총을 쏘거나 폭탄을 설치하여 터뜨리는 것이 주 컨텐츠인 게임에서 자기 학교 맵을 만들어서 배포했으니 충분히 예비 테러리스트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5년 뒤에 터진 오이코스 신학대학 총기난사 사건 역시 한국계가 저지른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이 버지니아 공과대학교보다 역사, 규모, 재정, 인지도 등등 그 모든 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작은 대학교이라 그런지 묻혔다.
물론 피해자 규모도 적었다고 해도 낮은 인지도에 미국 교육부 인가조차 받지 못하던 오이코스 신학대학교(설립자부터도 한국인 목사다.)이었기에 잊힌 지 오래.
6. 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
Fractured(2017)- 조승희를 모티브로 영화가 제작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3 - 사건 당시의 상황을 재연해 방영했다.
Ready or Not 의 와트 전문대학 미션도 본 사건과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