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익명
공포를 가장한 여혐 소설들이 너무너무 싫어서 내가 직접 씀
불펌 환영
비정기적 연재
[전국의 남성들을 공포 몰아넣었던 '연쇄 살남마'가 드디어 덜미를 붙잡혔습니다. 범인인 곽씨는 20대 중반의 남성으로써, 평소 남성들이 자신을 무시했던 것에 대한 열등감으로 범행을 계획했다고 말했습니다.]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는 지연의 얼굴이 차갑다. 아직 겨울도 오지 않았건만 지연 홀로 12월을 걷고 있는 듯하다. 진성이 그런 지연에게 갓 뽑아온 커피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이번에 경감 다신다면서요?
"어, 송 경위. 땡큐, 잘 마실게."
"그나저나 입원하고 좀 푹 쉬시지. 위에서 그래도 된다고 했다던데."
"쉬면 뭐 해. 일해야지, 사람이."
진성이 웃으며 동조했다. 그것두 그렇네요, 이 경감님. 아직은 그렇게 부르지 말래도 저랬다. 그남은 이내 속상한 눈길로 지연의 팔뚝을 바라봤다. 두터운 붕대 때문인지 소매 부분이 울퉁불퉁했다. 죄송해요, 도움 못 드려서. 진성의 말에 지연이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그리고 씁쓸히 웃었다.
"그게 어디 3팀 탓인가. 윗대가리들 문제지."
핸드폰 안의 뉴스에서는 살남마에 대한 분석은 조금 뒤 이어진다는 예고와 함께 다른 기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경찰총장이 책임지고 옷을 벗었다는 내용이었다. 초동 수사를 완전히 잘못해 버린 점, 죄가 없는 사람들을 용의 선상에 올린 점, 대부분이 사람으로 구성된 1팀의 수사 보고를 믿지 않은 점에 대해 그남은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고개 숙였다.
"이번 청장 새로 위촉될 사람으로 이미 내부자 있겠죠? 위미현 많이 언급되던데."
"니 친구야? 이름 부르게."
"아, 죄송해요."
지연의 따끔한 일침에 진성이 시무룩해져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사람이 새로운 경찰총장으로 오를 것이다.
다음으로는 용의자로 지목된 모 사이트의 운영자가 모자이크를 한 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냥 집에 있는데 뜬금없이 들이닥쳐서 저를 체포해 가더라고요. 사이트 회원이 '이거 범인 xx(운영자) 성님 아니냐. 그렇지 않고서야 전국 곳곳 신출귀몰이 어떻게 가능하냐. 이건 사람들만 할 수 있다. 왜냐면 oo(사이트) 회원들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으니까.' 정말 장난이었어요. 댓글 보면 다 웃었고, 누가 봐도 장난인데 그걸 꼬투리 잡아서…….
"그나저나 살남마 말예요, 정신병이 좀 많았더라고요. 심신미약 같은 걸로 참작될 가능성 커 보여요."
"다행이네."
"네?"
진성은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지연을 쳐다보았다. 앵두 같은 입술에서 달콤한 커피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지연은 제가 하면 안 될 말을 했냔 듯 고개를 갸웃이며 뉴스를 껐다. 접속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데이빗 복근 노출"이었다. 살남마는 고작 11위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다.
"뭐 하는 거예요, 은태 형사님!"
동식의 목소리에 은태가 뒤를 돌아 쉬잇,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조용히 해요, 동식 씨! 이러다 살남마 듣는다구요! 은태의 오바스런 행동에 지연이 터진 입술을 닦으며 피식피식 웃었다. 은태야, 남자 좀 그만 놀려라. 지연의 말에 은태가 화끈거리는 손바닥을 털며 울상을 지었다.
"이 형사님, 괜찮아요?"
"때려 놓고 괜찮냐고 물음 내가 뭐라 하냐?"
조금 전, 세 사람은 한강 둔치에 도착했다. 은태의 말처럼 사람이 많거나 밝지 않은 곳이었다. 동식은 두 형사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가 의문이면서도 군말 없이 대열에 동참했다. 도란도란 사소한 연예 찌라시를 나누다 도달한 곳에서, 은태가 갑자기 지연의 뺨을 내려친 것이었다! 동식은 화들짝 놀라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오히려 지연은 태연했다. 은태가 입을 열었다.
"동식 씨, 이런 말 알아요? 못생긴 남자는 아는 척 좋아하고, 예쁜 남자는 머리가 비었다고. 백치미요, 백치미."
"그게 무슨."
"네가 딱 그래, 김동식."
한강 물결이 찰랑이는 소리를 냈다. 어두운 밤, 단 한 줄기의 빛이라도 빨아들이려는 듯 강의 표면은 일렁이며 반짝였다. 은태가 점퍼를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번뜩이는 칼 한 자루였다. 동식의 심장은 터질 듯 박동이 빨라졌다.
도망가야 하지만 오금이 저려 움직일 수 없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머리는 돌아가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동식이 엉덩이와 손을 이용해 뒤를 무를 때마다 트레이닝복 바지가 조금씩 내려가며 엉덩이를 드러냈다. 동식은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모양새였다.
"내가 범인이에요, 동식 씨. 곽은태, 세기의 살남마. 오늘로 당신은 여덟 번째 희생자구요."
"혀, 형사님! 저, 정신 차려요!"
"정신 차릴 건 당신이지. 내가 언제 동식 씨에게 형사라는 증거를 보여 주기나 했어요?"
동식의 머리를 스치는 길고도 짧은 새벽의 시간들. 없다. 그런 적이 없다. 동식은 지연의 이름을 외쳤다. 도와주세요! 하지만 지연은 팔짱을 낀 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당신들, 둘 다 범인이었던 거야?! 서에 기자 깔렸단 것도 떡밥이었어?"
동식이 울며 내려간 바지를 추켜입었다.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냥 흔하디 흔한 알람이었는데, 내 연기력이 좋았지? 아직 임기진 시체는 발견되지도 않았을걸, 김동식 씨.
그때 지연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은태가 동식에게 달려들며 명치에 칼을 꽂았다. 어라, 조준 실패. 난감한 말투였다. 동식은 자신의 폐부로 핏물이 차오르는 착각이 느껴졌다. 너무나 큰 고통이다. 모든 혈관들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듯했다. 컥컥대며 간신히 은태의 팔을 붙잡았다.
"이런 댓글을 봤어요. 여자들은 참 이상해. 왜 저항하지 않는 거야? 힘이 약하기 때문에 표적이 되는 거야."
은태가 칼을 뽑으며 이번엔 동식의 복부에 푹 찍어냈다.
"난 남자들이 더 이상해. 왜 그렇게 의심 없고, 저항 없고, 무능한지."
동식은 꺼억, 꺽 숨을 뱉었다. 살고 싶었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아직 해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해야 될 것도 많았다. 부모님도 친구도 봐야 할 얼굴들이 많았다. 나중에는 꿈도 이루고 싶었다. 그냥 무엇이든 다 하고팠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남자라는 이유로 죽어야만 한다니. 흐려지는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당신…… 남자……."
"나도 남자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아니야, 틀렸어요. 동식 씨, 나는 남자가 아니야. 남자의 적도 남자지만, 남자는 온전한 피해자가 될 수 없어. 전 여자예요. 내적 여자로 태어났어요. 줄곧 여자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남자놈들이 날 여자로 생각하지 않더라고. 치마를 입고 가슴을 달아야지만 여자라며, 여자들이 당하는 '성희롱'을 해 주더라. 내가 여자가 되려면 엉덩이를 흔들어야 되더라. 내가 그때 깨달은 것 같아요. 여자의 적은 남자라는 것을.
"그래, 진짜 여자는 그런 거지."
지연이 다가왔다. 은태는 주머니에서 작은 나이프 하나를 꺼내더니 지연의 팔을 붙잡았다. 미안해요, 이 형사님. 많이 도와주셨는데, 아프게 해야 되네요. 지연이 활짝 웃었다. 얌마, 괜찮아. 어떻게든 금방 나오게 해 줄게.
반짝이는 금속 칼로 은태가 지연의 팔뚝을 그었다. 붉은 피가 셔츠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연은 이를 악 문 채로 주머니를 뒤적여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경찰신분증이었다.
"살남마 사건의 범인인 너를 체포한다, 곽은태."
은태는 순순히 뒤를 돌며 자신의 손목을 내어주었다. 동식은 숨이 끊기는 것을 느꼈다. 육덕진 허벅지와 잘 빠진 복근에서 온기가 사라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서, 서서히.
수갑 채워지는 소리가 날카롭다. 찰칵 소리와 함께 동식은 눈을 감았다.
"아니……, 체포한다, 곽태은."
지연의 말을 끝으로 누군가 무너지며 우는 소리가 귓전을 채웠다. 형사님, 제가 사회로 재기할 수 있을까요? 한강의 물결만큼이나 고독하고 시린 말이었다.
지연에게 온갖 축하가 쏟아졌다. 그리고 살남마의 재판이 진행되며 관심도 점점 식기 시작했다. 함께 근무하며 알게 된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행복해하였다. 지연 덕분에 사람들이 설 자리가 느는 것 같다며 다들 좋아했다. 그래서 지연도 뿌듯했다. 어차피 세상은 다 희생으로 돌아가지 않나? 그게 이제껏 이 세상의 주류를 차지해 온 이들의 논리라면, 자신도 그 논리에 적용해 살아 주는 수밖에.
내일은 표창을 받고 승직하는 날이다. 오늘 들린 병원에서 의사는 결국 흉터가 남을 것이라 말했다. 지연은 그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사람이라면 이 정도 상처야 훈장이죠. 의사 역시 동감했다.
[공포의 살남마, 알고 보니 경찰준비생… 그의 꿈은 이대로 끝인가]
["어렸을 때부터 남성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살남마의 주장]
[살남마가 불쌍해요! 누리꾼들의 갑론을박!]
이때다 싶은 기사들이 많았다. 스크롤을 내리다 하나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일틱훈남:
<제대로 처벌해야죠.. 쿵쾅이들이 모방 범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범인 남잔 거 압니다) 남자로 살기 팍팍합니다..>
지연이 입술을 씹으며 비추천 버튼에 커서를 올렸다. 그때, 경찰서 문이 열리며 귀여운 얼굴의 남순경이 뛰어들어왔다.
"사, 살인, 살인 사건이랍니다!"
서 안의 모든 이들이 그남을 주목했다.
"그, 그런데, 수법이, 수법이 살남마랑 너무, 똑같아서! 피해자도 남, 남자인데! 그니까, 현장에는 야동 CD가 놓여져 있는데, 그러니까!"
헉헉대며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는 그남에게 진성이 다가가 머리통을 후갈겼다. 이 새꺄, 말 똑바로 안 해? 제 앞에선 누구보다 순둥했던 진성이었지만, 같은 남자 앞에서는 역시나 저런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거의 종특이었다.
지연은 둘의 행동을 바라보다 마우스 커서를 옮겼다.
[이 댓글을 추천하시겠습니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