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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할매의 속삭임

[사람]미국 최고의 장애 아동복지 학교 이야기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4.08.06|조회수5,696 목록 댓글 14

 

출처 : https://arca.live/b/spooky/113021542?mode=best&p=1

 

 

 

이 이야기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비밀을 간직했던

 

아이들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한 '학교'에 대한 이야기이다.

 

1938년 미국 스탠튼 아일랜드에 건립된 윌로브룩 스테이트 스쿨은

 

지체아동 및 청소년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미국 공중보건국의 주도하에 건립되었지만  

 

2차세계대전 발발 이후 부상당한 군인들을 위한 병원으로 그 용도가 바뀌었다.

 

그후 건립된지 9년 뒤인 1947년이 되어서야 다시 본래의 목적인 장애 복지 시설로 변경되었다.

 

 

 

 

윌로브룩 스쿨은 4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당시 미국 최대의 지체장애 전문 복지시설이였고

 

아동 재활 치료등을 겸비한 '병원'이기도 했으며.

 

또한 성년이 되어가는 아이들에게는 간단한 반복 작업을 가르쳐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직업학교의 역할도 겸했다.

 

 

 

위생국의 주도하에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전문 의료진들이 참가하여 아이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본

 

많은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식들이 세상의 편견없이 또래의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더 이상 일반인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자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학교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선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1958년 학교에 아이들을 입학시켜려던 학부모들은 한 의사에게 한장의 동의서를 받게 되었다.

 

싸인을 작성해야지만 입학이 가능하다는 소리에 학부모들은 의아해했지만

 

내용을 보자 이내 말없이 수락했다.  동의서에 적힌 이야기는 아이들의 예방접종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의사의 이름은 사울 크루그먼

 

당시 소아학계에서 알아주던 의사로 손꼽히던 그는 예전부터 이 학교에 관심이 많았다.

 

지체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모인 학교의 이야기를 들은 크루그먼 박사는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팀을 꾸려 학교로 찾아왔고 자신이 지금까지 근무했던 좋은 대우의 병원을 마다하고

 

이곳에서 근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무료 예방접종'을 입학조건으로 제시해달라

 

학교측에 부탁했으며, 이는 곧 받아들여졌다.

 

아이들을 위해서 무료로 예방접종을 시켜주려한다는 크루그먼 박사의 설명을 들은 학부모들은 

 

연신 그에게 감사를 표하며 흔쾌히 동의서에 싸인을 하였고 박사는 이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헌신적인 의사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미담으로 남았으며, 윌로브룩 스테이트 스쿨은

 

지체장애 아동들의 천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학교는 아무도 모르는 추악한 비밀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1965년 각종 정부기관을 시찰중이던 로버트.F.케네디 상원의원은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시찰 도중 정해지지 않은 코스로 발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복지시설인 윌로브룩 스쿨의 운영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학교측은 갑자기 찾아온 고위 인사의 등장에 너무나도 당황해했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케네디 의원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단지 학교의 모습을 보고 가려던 그는 자신의 등장에 극도로 긴장한 학교측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고

 

학교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학교 내부로 들어갔다.

 

 

교실안으로 들어간 순간 케네디의원은 자신의 코를 황급히 막을 수 밖에 없었다.

 

더러운 악취가 그의 코를 찌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좁디 좁은 공간에서 마치 가축처럼 헐벗겨진 아이들이

 

널부러져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덕지덕지 떼가 묻어있어 한번도 제대로 씻긴 적이 없는 듯 해보였고

 

제대로 먹지못해 피골이 상접해있는 아이들의 몸에는  생생한 구타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자신이 듣던 이상적인 복지시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학교의 실태를 직접 목격한 케네디 의원은

 

충격에 빠졌고 그 즉시 이를 시의회의 안건으로 직접 상정하여 학교의 진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학교는 정해진 4000명의 정원을 초과하여 6000여명의 아이들을 수용하고 있었고 전문 인력과

 

자원봉사자들의 부재로 인해 철저히 방임 되어져 있었습니다. 시설의 폐쇄 및 개선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케네디의원은 이곳은' 뱀굴(snake pit)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며 강도높게 비난하였고

 

정부기관에서 담당하는 복지시설이 더 이상 이렇게 운영되어서는 안된다며 시설의 폐쇄를 

 

강력하게 촉구하였지만 돌아온 의회의 반응은 미지근 했다.

 

 

 

 

케네디 의원의 주장을 들은 시의회는 즉각 감사를 학교측으로 보냈지만 감사 결과

 

학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결과만이 나왔다.

 

 

 

결국 케네디 의원의 학교 폐쇄 주장은 증거 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단지 학교의 개선을 학교측에 맡긴다는 판결만이 내려졌다.

 

학교에 자식을 보낸 학부모들이 이에 격분하여 학교의 폐쇄와 피해보상을 주장하며 소송을 걸었지만 

 

정부운영 기관에 대한 개인들의 소송은 너무나 쉽게 패소 당하거나 기각 당했다.

 

이후 꾸준히 학교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야기 하던 케네디 의원은 3년 뒤 대통령 선거 후보 연설중 

 

한 팔레스타인 지지자에게 8발의 총을 맞고 암살 당했고 그가 사망한 뒤 학교의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잊혀져 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일을 주의깊게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

 

1972년 미국의 WABC TV의 방송 기자이자 앵커였던 제랄도 리베라는 학교의 지난 기록들을 보며 의구심에 차있었다.

 

 

' 어째서 상원의원의 계속적인 고발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아무런 처벌도 없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는것일까. '

 

월남전에 참전했던 베테랑 종군기자의 촉은 학교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리베라는  윌로브룩 스쿨의 아동학대에 대한 조사를 위해 학교에 취재허가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어서 불가'하다는 답변이었다.

 

극도로 언론의 노출을 꺼려하는 학교가 더더욱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 리베라는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학교의 의료진과 담당 복지사, 자원 봉사자들에게 연락을 취하며

 

한가닥의 정보라도 얻고자 노력했고 이내 곧 결실을 얻게 되었다.

 

 

 

 

 

그의 끈질긴 설득 끝에 자신이 학교의 의료진이라 주장하는 한 익명의 제보자가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이젠 지쳤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뗀 제보자에게 리베라는 조심히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 혹시 지금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학대하고 있나요? '

 

'.....그것 만이라면 제보조차 하지않았을겁니다.'

 

제보자는 리베라의 물음에 실소를 지으며 답했고, 곧 그에게서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곳은 학교가 아니라... 실험실입니다.'

 

그렇게 말을 꺼낸 제보자의 입에서는 믿기 힘든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크루그먼 박사의 의료진은 학교의 '아이'들을 보살필 목적으로 그곳으로 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바로 그들이 개발하던 간염 백신이었다.

 

세계2차대전 당시 크루그먼이 재직중이던 미육군 병리학 연구소에선 정부의 주관하에 거대한 실험을 계획중이었다.

 

 

 

 

 

그것은 바로 '화생방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각종 화학물질과 세균, 방사능 등의 치명적인 물질이 치료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들을 진행했고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은 조금씩 결실을 맺는 듯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바로 가장 중요한 인체에 대한 임상실험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체에 대한 실험은 엄연한 불법이었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일이었다.

 

미국 공중보건국과 육군 병리학연구소는 이 문제에  고민하였고 그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사회에서 도태된 자들에게 실험을 실시하겠다.'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범죄자나 하층민 그리고 장애인들은 어차피 이런 물질들에 노출이 된다고 하더라도

 

외부에 제대로 알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실시된 실험들은 

 

 

 

 

 

터스키기의 흑인 하층민들을 대상으로 한 매독실험 ( 매독균을 방치하여 장기간 치료받지 않을시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관찰) 

 

오하이오 주 교도소의 죄수들을 대상으로 실행한 암세포 실험 (암세포를 직접 주입하여 암 유발시기를 조절시도)

 

센프란시스코 도시의 하층민들을 대상으로 한 생물학전 대비 실험 ( 박테리아를 살포하여 실험체의 감염 과정 관찰 )

 

 

등의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실험들이었다.

 

 

윌로브룩 스테이트 스쿨 또한 공중보건국이 지정한 실험 구역 중의 하나였고  학교가 지정된 이유는

 

수용된 인원 전체가 지체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과 일부의 인원이 간염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이었다.

 

 

간염 백신의 연구를 진행중이던 크루그먼 박사는 이 점을 주목하여 정부의 승인을 받아 자신의 팀과 함께 학교로 떠났다.

 

그 후 시작된 크루그먼의 실험은 정상적인 윤리의 범주를 벗어나게 됐다.

 

 

 

간염 바이러스의 확산 여부와 전파경로 등을 알아내고자 그는 간염에 걸리지 않은 멀쩡한 아이들을 골라

 

아이들이 먹는 쉐이크에 간염에 걸린 다른 아이들의 배설물을 섞어 마시게 했다.

 

후에 경과가 미미하자 아예 직접 간염균을 아이들에게 주사하기 시작했고

 

얼마 안가 크루그먼의 진료를 받은 아이들은 피부와 눈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 증세에 시달리게 됬다.

 

아이들의 상태는 시시각각으로 나빠지기 시작했고 이를 관찰하던 크루그먼 박사는

 

여러가지 식으로 만든 다양한 종류의 백신을 실험실의 기니피그를 다루듯 아이들에게 투여했다.

 

물론 아이들의 동의는 전혀 받지 않은 채로...

 

처음 10%에 불과한 학교의 간염율은 14년간에 걸친 실험끝에 90%에 육박하게 됬고

 

그 결과 크루그먼의 팀은 그들이 원하던 간염 백신을 얻을 수 있었다. 

 

케네디 의원의 방문 후 미국 정부는 이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였던 것이었다.

 

 

 

보자의 이야기를 듣던 리베라는 구역질이 밀려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엇다.

 

하지만 리베라를 구역질나게 하는 사실은 바로 이 끔찍한 일들이 14년간 아무도 모른채

 

학교의 아이들에게 자행 되었다는 사실이였다.

 

더 이상 학교에서 벌어지는 미친 일들을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고

 

반드시 이 비밀에 쌓인 학교의 정체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면 그 역시 앞서 케네디 의원이 그랬 듯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었다.

 

 

제보자를 거듭 설득한 리베라는 제보자와 몇명의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학교에 잠입할 수 있었다.

 

학교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꺼내 들었다.

 

바로 카메라와 마이크였다. 

 

리베라가 촬영한 학교의 빈약한 시설과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은 곧 WABC TV 특집으로 보도되었고

 

영상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세계의 인권문제에서 가장 먼저 큰 소리를 내며 정의를 부르짖던 미국의 한 복판인 뉴욕에서 

 

이런 극악무도한 인권유린의 현장이 벌어지리라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철저한 아동학대의 현장은 전미로 퍼져 많은 사람들이 학교의 폐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 학부모들의 인체실험 및 아동학대에 대한 집단소송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학교는 1987년까지 명맥만 유지하다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인체실험의 장본인인 크루그먼 박사는 1972년에 

 

어떠한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오히려 간염 연구에 대한 공로로 인해 

 

미국 소아과 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크루그먼이 처벌받지 않은 이유는 그가 학교의 입학 조건으로 내놓은 예방 접종 동의서 때문이었다.

 

학부모의 동의를 받은 상태에서 예방접종 주사를 놓았기 때문에 이것은 정당한 의료활동이었다는

 

그의 주장에 법원은 크루그먼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남겨진 아이들의 고통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른 학교에 재입학하려 해도 이미 온 매스컴을 통해 아이들의 간염에 걸린 사실이 알려져있었기 때문에

 

일반 학교측의 관계자들은 재학생의 건강을 우려해 윌로브룩 스쿨의 아이들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이들은 어른들의 무관심과 이기심 때문에 고통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제가 다니는 학교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학교입니다.

 

발걸음이 절로 신이 날 정도로 학교 친구들 모두가 좋아합니다.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와~! 어찌나 간식도 맛있는지! 살면서 처음 먹어본 맛있는 간식들!!

 

주님께서 갈 곳 없이 사람들에게 놀림 당하던 저희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주신 것 같아요! 

 

세상 어디에도 이런 곳은 없을 거에요~!!

 

요즘 같은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 학교가 저는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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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더글라스 맥아더 | 작성시간 24.08.16 미ㅣ친 난 터스키기만 알았는데 가지가지했구만
  • 작성자비취 라잌 | 작성시간 24.08.20 제발와주세요 ㅜ..진짜 대박이네
  • 작성자명심.건강이최고 | 작성시간 24.09.01 미친.. 부모들도 몰랐던건가?ㅠㅠ
  • 작성자Jimmy Garoppolo | 작성시간 24.09.15 이런거보면 왜 그렇게 백신 못 믿고 그러는지 알 것 같기도 해
  • 작성자펩시제로라임존맛 | 작성시간 24.10.06 아니 뭔 동의서 때문에 처벌을 피해 저거 사기행위 아냐?? 예방접종을 빙자한 실험이었는데 뭔..진짜 미친놈들이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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