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홍콩할매의 속삭임

[소설][Reddit] 왜 못 잊는지 궁금해? 나에겐 기념품이 있거든

작성자요르고스란티모스|작성시간24.09.11|조회수3,255 목록 댓글 8

 

출처 : https://blog.naver.com/iamsuekim/220867044975

 
They wonder why I can't forget. It's because I kept a souvenir.
 
 
그날 하늘은 맑았고 사파이어마냥 푸르렀다. 여름 잔디는 향긋한 바람 내음을 만들어 보냈다.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막다른 골목들에 위치한 대량 생산된 듯한 2층짜리 집들을 지나갔다. 막 방금 우리 동네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언덕에서 타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동네는 중상 정도 수준의 교외로 동네 북쪽에서부터 크게 팽창해 새로이 뻗어져 나온 곳이었다. 동네는 포장도로가 새로 깔려 있었고 막다른 골목은 엘리샤 거리와 이어져 있었는데, 이 거리는 잘못 들게 만들었다가 곧바로 나오게 만드는 그런 길이었다. 위에서 보면, 이 모든 모습이 마치 거대한 애벌레 한 마리가 태양 아래 죽어 넘어져 있는 모습과 흡사했다.
 
햇빛에 색이 다 빠져버린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내 작은 보라색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으면서 동네 이쪽에서 저쪽으로 쌩쌩 달렸다. 손잡이에 달려있는 색테이프가 바람에 날리며 내 손목을 간질였다. 다섯 가족이 살고 있는 일렬로 놓여진 집을 지났다. 여기는 지역 사업으로 이름 날리는 부유한 사람도 있었고, 지역 사람들이 적절한 경악과 분노로 씹어대는 정치인들도 살고 있었다. 우리 집은 3번 째 집이었다.
 
내 아이팟이 핸들 앞에 달린 바구니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이어폰을 통해 비틀즈 음악이 흘러 나왔다. 당신은 나에게 돈을 주지 않네요… 그저 우스운 종이 쪼가리나 주지…
 
그 날 무슨 노래가 흘러나왔는지 기억하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
 
I. 납치
 
저기 꼬마야, 내가 지금 도움이 필요한데 말이야.”
나는 브레이크를 잡아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섰다.
새로운 집을 위한 공사 현장 앞에 찌그러진 검은 세단 한 대가 비상등을 깜빡이며 서있었다. 남자 하나가 운전석에서 나를 향해 미소를 보이고 있었는데, 그가 끼고 있는 선글라스에 반사된 태양이 내 눈에 직통으로 들어왔다. 그를 본 기억은 없지만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 오고 있었고, 그의 젊은 피부와 잘 커트된 머리는 돈이 별로 없는 이 동네에 잘 들어맞는 것 같았다. 물론 그의 차는 우리 집 가정부 레티샤나 타고 다닐법한 차였지만.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그에게 걸어갔다. 그의 미소가 크게 번졌다. “아저씨가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인데 바보같이 기름 넣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다 떨어졌지 뭐니? 믿을 수나 있니? 집까지 반블럭만 더 가면 되는데 말이야. 혹시 집까지 아저씨가 차 미는걸 도와주면 정말 고맙겠는데.”
 
어느 집인데요?” 내가 물었다.
 
저기 바로 보이는 빨간 집이야.” 그는 저기 보이는 잘빠진 빨간 벽돌집을 가리켰다. 앞마당에는 내놓았다는 부동산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이번 주에 막 계약서 사인했거든.” 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긴장된 상태로 흔들리는 앞니에 혀를 댔다. 계속해서 불안함이 내 안에 흐르며 낯선 사람이 제안하는 이상한 부탁에 대해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불안해 할만한 대상이 아닌 것 같았다. 아빠가 나를 데리고 도시를 돌아다닐 때면, 언제나 검은 피부에 허름한 옷을 입은 남자들이 나타날 때나 내 손을 꽉 붙들었다. 이 아저씨라면 아빠도 신나서 집에 초대해 같이 술 먹으면서 돈 이야기나 할 법한 사람 같았다.
 
네,” 내가 대답했다.
 
착한 꼬마숙녀네,”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어 입고 있는 라벤더 색상의 폴로 셔츠 가슴팍에 달린 주머니에 넣고 차 밖으로 나왔다.
 
나는 연석 근처에 자전거를 세웠다. 남자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자전거에 달린 색테이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참 예쁜 자전거네,” 그가 말했다. “아빠가 사주신 거니?”
 
네, 생일 선물로 받았어요.”
 
좋구나. 내가 보니깐 아빠가 좋은 거 많이 사주실 것 같은데, 그치?”
 
그런 것 같아요.”
 
물론 그러시겠지. 봐봐, 그런 부모를 가졌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야. 음식도 주고 옷도 사주고 다른 많은 것을 사주는 부모님 말이야. 많은 아이들이 그런 사치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니? 많은 아이들이 커가는데 사투를 벌인단다.”
 
네.”
 
그는 혼자 낄낄대며 웃었다. 마치 혼자 비밀스레 농담이라도 생각하나 싶었다. “어쩜 이다지도 운이 좋은 소녀가 있을까. 자, 여기.” 그는 자동차 뾱뾱이를 누르며 말했다. “트렁크 열게. 그게 밀게 더 쉬울거야.”
 
트렁크 문이 열렸고 내가 알아차릴 새도 없이 강한 손이 내 목을 쥐어 그 안으로 밀었다. 거친 카펫에 얼굴이 쓸리면서 광대뼈 부분의 피부가 타는 듯 아팠다. 다리가 들려 안으로 던져지면서 어깨가 금속에 강하게 부딪쳤다. 나는 뒤집어져 나를 붙잡고 있는 손을 때리고 차면서 비명 지를 수 있을 만큼의 숨을 모으려 버둥거렸다. 말벌의 침만큼이나 따끔한 주사 바늘이 내 허벅지를 뚫었다. 갑자기 무거운 졸음이 쏟아졌다. 세상이 파랗게 변하더니 점점 희미해졌고, 내 팔과 다리는 축 늘어진 채 감각을 상실했다. 내 머리는 옆으로 나른하게 뉘였고, 트렁크 문이 닫히기 전 내 자전거에 달린 색테이프가 어지러이 날리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나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
 
II. 고문
 
난 아주 위험한 놈이지. 당신이 얼마나 똑똑한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당신 딸래미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을 믿어도 좋아.”
 
군데군데 들어있는 멍이 몸 전체로 보내는 아픔을 느끼며 나는 어둠 속에서 깨어났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내 발목을 감싸고 있는 따끔한 철사가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철제 의자에 단단히 묶인 상태였고, 손목은 몸 뒤로 수갑이 채워진 상태였다. 의자에는 구멍이 잘려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끝은 자꾸 내 살을 찌르고 파고들었다. 의자 앞으로 몸을 기울여 움직여보려 했지만, 자꾸만 뒤로 다시 돌아갔다. 체인으로 벽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아주 작은 구멍만큼의 빛이 보였다. 눈이 가려져 있구나, 깨달았다. 천에 아주 살짝 찢어진 부분으로 주변적인 부분이 살짝 보였다. 방은 아주 작고 황량한 콘크리트였으며, 어딜 봐도 창문은 없었다. 빛이라곤 머리 위에 달려있는 헐벗은 전구 하나가 전부였다. 몇 cm 앞에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먼지 투성이의 검은 공구상자가 놓여 있었다.
 
테이블 저편으로는 나무로 된 문이 보였다. 다른 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있는 방에서 왔다 갔다 하는 듯이 자꾸 소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반대로 들려왔다. 그가 문 가까이 지나가자, 그가 하는 말의 일부분이 들려왔다. “— 씨발, 맞아 난 미쳤어, 그리고 니가 단 하나만큼은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방아쇠에 걸린 미친놈의 손가락이지. 준비 제대로 하고 재빨리 행동하—“ 떨림에 척추가 꽉 묶인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나는 완전히 벗겨져 있었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남자가 들어왔다. 몸이 바짝 얼더니 무너질 것 같았지만, 너무 꽉 묶인 상태여서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그는 내 옆에 서더니 귀에다 전화를 갖다 댔다. 수화기로 내 스스로의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가?” 목소리가 말했다. “정말 너 맞니?”
 
아빠?” 나는 울부짖었다.
 
주먹이 내 턱을 강타함과 동시에 고통의 폭탄이 떨어진 것 같았다. 뜨거운 피가 내 입과 터진 입술에서 흘러나와 내 턱을 타고 매끄럽게 떨어졌다. 손이 내 얼굴을 잡더니 입을 당겼다. “웃어, 귀염둥이,” 남자가 말했다. “아빠를 위해 웃어야지. 우리가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말씀 드려. 늬들 부잣집 애새끼들이 다니는 여름 캠프보다 더 좋다고 말이야.” 그는 내 입에 손가락을 집어 넣더니 흔들리는 앞니를 비틀어 뽑아냈다.
입에서부터 뒷골까지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고, 나는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친듯이, 하지만 작은 소리로, 그 작은 스피커를 통해서. 핸드폰은 그 남자 귀에 대져 있었다. 내일 정오까지 계좌로 백오십만 달러 보내. 그 시간이 지나면 가격은 더 올라간다. 그리고 그만큼 니 딸 몸뚱아리도 덜 돌려받게 될 거야.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빠른 투자의 가치를 잘 알거라 생각한다.”전화기 반대편에서 악쓰는 아빠의 소리를 무시한 채 그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는 내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고, 내가 숨을 들이 쉬자 그가 사용하는 향수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찔렀다. 방광을 붙들지 못해 결국 실례를 해버렸고, 소변은 그렇게 구멍 난 의자 아래로 떨어져 내 발목에 튀었다. 그가 낄낄댔다. “울 귀염둥이가 아저씨한테 돈을 엄청 가져다 주겠네?” 그가 말했다. “우리가 서로 인생이 이렇게 관여하게 돼서 난 정말 행복하단다.”
그리고 그는 방을 나가 문을 닫아버렸다.
 
-
 
III. 출혈
 
나는 몸부림쳤다. 수갑에서 손을 빼내려 노력했지만 모세혈관이 터져 손가락 끝으로 고통이 밀려왔다. 다리를 움직이자 발목에 둘러진 철사가 점점 살을 파고 들어와 매번 1mm씩 내 다리를 자르는 것 같았다. 다시, 또 다시 나는 의자를 앞으로 힘껏 당겨 벽으로 이어진 체인을 끊으려 했지만 결국 뒤로 당겨져 의자의 금속 등받이에 등을 들이받고는 다리에 따끔한 충격을 느꼈다. 결국 스스로 무너져 도움을 외치며 흐느끼고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 공포는 그렇게 나를 잠식시켰다. 마침내 아래층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 밖에 멈춰 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입을 다물고 아주 작은 흐느낌 외에는 꾹꾹 눌러 참으며 발소리가 다시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아마 지쳐 쓰러질 때까지 사투를 벌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후로 기억하는 것은 문 밖에서 들리는 열 받은 고함소리에 깨어나는 것이었으니까.
 
시간을 더 달라고? 더 달라니? 돈 많은 아부지, 백만 달러짜리 질문을 던졌는데 넌 틀린 답을 주는군.”
 
문이 폭발하듯 열려 반대편 벽을 세게 쳤다. 나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도움을 향해, 보호를 구하며, 아빠를 찾으며, 경찰을 향해, 신, 아니, 아무라도.
 
남자는 내 얼굴에 다시 핸드폰을 가져다 댔고 내가 비명을 지르자 그 위로 빨간 핏물이 점같이 떨어졌다. 그는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가져가더니 말했다. "니 딸년 소리 들어봐. 엄청 겁먹었어. 우리 귀염둥이, 겁 많이 먹었지? 귀염둥이는 아빠가 와서 구해줬으면 하는데. 귀염둥이는 아빠가 자꾸 시간 핑계 대지 말고 그 망할 돈을 빨리 냈으면 하는데. 어이 겁나 부자씨,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겠어? 이 꼬맹이는 아는데 말이야. 지금 자기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거든. 이제 자기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엄청 잘 알고 있어."
 
그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철만큼이나 단단한 손으로 내 머리 가닥을 헤집었다. 내 속이 뒤집힘과 동시에 목구멍으로 쓴물이 올라왔다. "정말 예쁜 아이야." 그가 전화에 대고 말했다. "니놈이 결혼한 그 스무살짜리 기집애랑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어, 아주 장해. 우성 유전자를 뽑아냈단 말이지. 니가 처음으로 영세업자 망하게 만들었을 때 네 마누라가 지금 니 딸년 나이였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나? 아니, 너는 그런 생각따윈 안 하지. '소비해, 하지만 절대 반사해보진 마' 가 자본주의의 모토지."
 
그는 테이블로 다가가 공구함을 열었다. 그가 공구함을 뒤적거리자 금속이 다른 금속과 맞부딪쳐 쨍하는 소리를 만들어 냈고, 눈가리개의 작은 틈새로 날카로운 검은 금속이 달린 철망 절단기를 집어드는 모습이 보였고, 그 끝으로는 오래된 피마냥 녹이 슬어 굳어져 있었다. 그는 내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작은 틈새로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발가락을 꽉 오므렸지만 그는 내 엄지 발가락을 살펴보더니 절단기에 올려 놓았다. 그의 무거운 손이 내 허벅지에 닿았다. “용기를 내렴, 귀염둥이야,” 그가 말했다. “단지 잠시 동안만 아플 뿐이야. 의사가 주사 놔주는거 알지? 이러면 아마 아빠가 널 더 사랑할 수도 있어.” 금속이 더 세게 꼬집더니 짐승마냥 소리를 만들어냈다. 내 얼굴에선 뜨겁고 미끄러운 콧물 섞인 눈물이 흘러나와 내 다리 위로 웅덩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종아리로 축축한 무언가가 튀는게 느껴지더니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끈적한 피로 뒤덮인 그의 손가락 사이로 분홍색 살덩어리가 마치 도살자의 테이블에서 떨어져 나온 쓰레기 조각마냥 들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입에 가져다 대더니 뽀뽀를 했다. 내 자줏빛 매니큐어가 발린 부분이 빛 아래에 환히 빛났다. 그는 전화에 대고 말했다. “작은 도야지 한 마리가 시장에 나왔네,” 그는 다시 무릎을 꿇고 앉으며 말했다. “이제 아홉 마리가 남았군.”
 
-
 
IV. 죽음
 
충격의 도가니에서 몇 시간이 지났다. 저체온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몸은 점점 사지의 기능을 차단하고 있었다. 내 뇌는 이제 감각을 상실시켜 제정신인 상태를 유지시키려 했다. 머리가 뒤로 젖혀져 목구멍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차가운 풍선마냥 내 배가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이 기억난다. 다른 방에서 고함치는 소리도 기억난다. “갑부”, “2백만”, “사격광”, “엉망진창으로 잘게 썬다.”
 
내 기억 중 대부분은 그가 불빛 아래 들어올렸던, 한때는 내 몸의 일부였던 작은 덩어리들, 피 몇 방울 튄 피부와 조직이었고, 이제 그것들은 모두 어딘가에 놓인 쓰레기통에 처박혀 구더기를 생성해내고 있을 것이었다. 한 번은 아빠가 나를 데리고 물새 사냥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총맞아 찢겨 움찔거리는 오리를 보며 울었다. 아빠는 그 새를 가지고 한 손으로는 내 어깨를 부여 잡으며 말했다, 이건 그냥 고기일 뿐이란다, 애야. 모든 것이 다 고기로 만들어졌지.” 그 순간 나는 내 몸을 이루고 있는 고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진동하는 덩어리진 젖은 근육이 얇은 힘줄에 의해 묶여 있었고 내 피부의 부드러운 세포막도. 그저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엄청난 분노의 괴성이 나를 다시 현실로 깨워냈다. 문이 쾅 하고 젖혀 열리더니 남자가 다시 내 머리 위의 벽에다 대고 공구함을 집어 던졌다. 상자가 열리며 안에 들어있던 무거운 철제 도구들이 바닥으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는데, 마치 영화에서 나올법한 총알이 티용 하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틈새로 보니 그의 얼굴이 보였다. 울그락불그락 하며 얼굴이 불거져 나왔고 그의 목에 있는 핏줄은 팽팽히 솟아올라 언제라도 터질 것 같았다.
 
이미 시간은 충분히 줬어,” 그는 전화에 대고 소리쳤다. 대체 뭘 기다리는거야? 당장 내 돈 내놓으라고. 난 그걸 받아야겠어. 날 방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경찰이 날 추적할 수 있을거 같아? 내가 진짜 못 할 것 같나?”
 
그는 뒤로 손을 뻗어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꺼냈다. 총신을 내 이마에 가져다 대자 차가운 금속의 떨림이 곧 내 살에 의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당장 해야겠군,” 그가 말했다. “지금 당장 총으로 쏴서 딸년 뇌를 퍼낸 다음에 쿠바 시가 박스에 넣어서 매 크리스마스마다 조금씩 조금씩 나눠 보내줘야겠구만 이 망할 기생충 새끼야.” 나는 그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총알을 느낄 수 있었다. 곧이라도 폭발할 준비가 되어 내 고깃덩어리를 머리 뒤편으로 쏟아지게 만들려고. 총알이 내 마음을 깨끗하게 치우고 날 자유롭게 해줄 그 신호만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로 총을 내려놓았다. “1시간 더 주겠다,” 그는 전화에 대고 그렇게 말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방을 나가더니 계단으로 향했다. 엔진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나더니, 타이어가 바닥을 세게 긁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침묵 속에서 한숨 돌렸다. 한 시간, 나는 생각했다. 이제 단 한 시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나는 틈새 사이로 방을 천천히 훑어 보았다. 먹구름 같은 콘크리트 색상에 한껏 심취해 내가 마지막으로 볼 이 방을 마음껏 만끽했다. 공구함의 내용물이 마치 지루한 금속 장난감 마냥 바닥에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하나 하나를 찬찬히 훑어 보았다. 망치, 드라이버, 줄자, -
 
열쇠 고리.
 
나는 눈을 깜빡였다. 겨우 한 발짝 너머에 열쇠 뭉치가 금색 은색을 뽐내며 놓여 있었다. 달려있는 열쇠 중 대부분이 오랜 시간 사용된 듯한 집 열쇠였지만,하나만큼은 작고 크롬으로 만들어져 몽당연필같이 작게 반짝이고 있었다. 수갑에 딱 맞을 듯한 크기였다. 본능적으로 내 온 몸이 그 열쇠를 향해 펄쩍 뛰어오르고 싶어했지만, 내 손목과 발목에 가해지는 엄청난 고통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는 온 몸을 비틀어 당기며 나를 묶고 있는 부분 중 약한 곳을 찾아내려 애썼다. 나의 크롬 구세주가 나를 부르고 내 온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목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발목도 마찬가지였다.나는 앞으로 움직였고 곧 체인에 의해 저지 당했고, 또 그랬고, 또 그랬고, 또 한 번 더, 또 또-
 
나는 얼어 붙었다. 아주 작아서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미세했지만, 나는 1cm 더 앞으로 나아갔다. 내 뒤로 희미하게 콘크리트 가루가 타닥거리며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다시 앞으로 몸을 기울여 내 작은 몸뚱아리가 가장 큰 탄력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내질렀다. 벽에서 체인을 붙들고 있는게 뭔지는 몰라도 점점 느슨해지고 콘크리트가 계속 약해지고 있었다. 매 순간 자유의 조각들이 나에게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나는 미친듯이 몸을 던졌다. 땀에 젖어가고 근육은 팽팽해지고 이는 앙 다물어 주변으로 붉은 거품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진짜 가까워, 이제 정말 코 앞이야, 어쩌면 한 번만 더 밀어붙이면-
 
체인이 벽에서 찢어지듯 떨어졌고 나는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말았다. 망치 부분에 이를 부딪치면서 꺠졌고, 차가운 바닥에 코를 그대로 박으면서 축축한 진동음이 뇌로 느껴졌다. 나는 의자를 한쪽으로 기울여 부러진 코의 뼛조각이 생살을 뚫고 이리저리 튀어나오는 것을 느꼈다.나는 방금까지 내 얼굴이 쳐박혀있던 땅에 남겨진 빨간 흔적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췄다. 차소리가 들렸다. 동차 엔진이 진입로로 부릉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멈춘다. 시동이 꺼졌다. 차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전자 뾱뾱이 뾱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다시 의자를 움직여 내 등으로 누웠다. 이리저리 몸을 비벼대며 눈은 보이지 않는 상태로 반쯤 부러진 손가락으로 열심히 땅을 짚었다. 제발 내가 정확히 그 지점으로 넘어졌길 바라면서. 열쇠를 찾자 마자 내 심장이 펄쩍 뛰었다. 내 손은 어지러이 널려있는 금속 사이에서 더듬거리며 내가 원했던 것을 정확히 찾아냈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발걸음이 위층에서 들려왔다.
 
자 그래 그거, 크롬 열쇠 말이야. 덜덜 떨리는 손이 열쇠구멍을 찾아 헤맸다. 제대로 꽂아 넣길 바라며 떨지 않으려 애썼다. 제발, 어서, 나는 생각했다.
 
마룻장이 삐걱대며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키가 꽂혔다. 돌렸다. 손이 풀렸다. 내 마음이 소리를 빽빽 질러대고 있었다. 하나님, 제발. 나는 옆으로 몸을 밀어 다시 꼿꼿하게 앉았다.
 
발소리가 문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눈가리개를 벗어내자 불타는 듯한 빛이 내 흐릿한 시야를 덮쳤다.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테이블 근처로 의자를 열심히 움직였고 내 시선은 총에 고정되어 있었다. 손바닥이 테이블 위로, 총이 내 손 끝 바로 앞에 있다.
 
문이 끼익 하면서 열렸다.
 
나는 잽싸게 총을 잡아들고 그를 향해 겨누었다.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는 한 손에 파란 플라스틱으로 된 방수포 뭉치가 들려 있었고, 그가 숨을 쉬는 순간마다 그것은 자꾸만 쪼글쪼글해졌다. 우리는 서로를 응시했다. 플라스틱이 자꾸 쭈그러드는 소리만이 우리의 침묵 사이에 남았다. 그리고 덜덜 떨며 초조해하는 총의 금속도 함께.
 
그는 미소를 지었다. 너에게 부잣집 따님의 나약함 외에 뭔가가 더 있을거라 생각하긴 했어. 그냥 신탁 자금 기다리는 약하디 약한 꼬마 나부렁이가 아니었군. 아주 투견에 생존자야. 나랑 닮았어.”
 
그는 방수포를 바닥에 내려놓고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너네 아빠가 돈을 낼거야. 확신할 수 있어. 어느 누구도 너가 다치길 바라지 않는단다. 돈이 넘어오기 위한 단순한 연출일 뿐이야. 보일러실에 앉아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려 하는거. 사적인 감정은 없는거 알지?”
 
그러더니 그는 나를 향해 걸어오며 내 얼굴과 총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일단 그 총은 아저씨한테 넘겨. 너 그러다 다칠지도 몰라. 그리고 취침 시간 전까지 집에 가게 해줄게.”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숨을 꽉 참아서인지 손은 덜덜 떨리고 시야는 흐릿해져 갔다. 내 마음의 눈으로 나는 늪에 빠져 털이 다 젖어 움찔거리는 어지러이 널려있는 한 무리가 보였다.
 
고기,” 내가 말했다.
 
뭐라구, 귀염둥이?”
 
넌 그저 고깃덩어리일 뿐이야.”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대단한 폭발음이 내 심장을 타격했고, 반동으로 인해 총이 뒤로 튕기며 내 이마에 깊은 상처를 만들어 냈다. 나는 멍하게 울리는 상황 속에 앉아 머리를 흔들며 이중으로 보이는 시야를 바로 잡으려 애썼다. 고개를 숙였다. 그 남자는 출입구에 자빠져 있었고, 그의 가슴 깊숙이에서부터 물기어린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의자를 뒤집어 손과 무릎으로 기어가 그의 몸 위로 갔다. 그는 옆으로 누워 있었고 모래 같은 분홍 덩어리들과 뼛조각들이 그의 몸을 뚫고 들어간 척추 부분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꽉 붙들어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혼란과 고통으로 범벅이 된 표정이었다. 그의 뇌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사지가 제대로 수행하지 않음에 대한 혼란이었다.
 
나는 내 손으로 그의 머리를 훑고 차디 찬 콘크리트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펜치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나는 그것을 생선마냥 뻐끔거리며 떡 벌어진 그의 입에 가져다 놓고 어슴푸레하게 에나멜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그의 앞니를 사이에 끼고 살짝 눌렀다. 그거 알아, 귀염둥이?” 내가 말했다. 나도 우리 서로가 인생에 개입하게 되어서 정말 행복해,” 내가 펜치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자 그의 앞니가 쪼개지더니 부서졌다. 의 약한 신음소리가 미친듯이 뛰던 내 심장을 진정시켜 주었다.
 
-
 
"돈을 낼 거였어,” 아빠가 나를 확신시키려 했다. 진짜로, 정말이야. 하지만 일단 상황을 조용히 처리해야 했어. 이번 주에 중국에서 있는 큰 건 하나를 마무리 짓는단 말이야. 이씨와 같이 상하이 갔던거 기억나? 이 사건이 뉴스를 타기라도 하면 이 모든 작업이 곤란해질 뻔 했단 말이야. 돈을 몰래 보내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을 뿐이란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면. 이해하지, 안그래? 당연히 이해 하겠지. 너는 나의 작은 파이턴데 말이야. 아이스크림 큰 통 하나 사줄까?”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다. 아주 많이. 내 얼굴을 다시 꿸 수술과 온 몸에 난 상처를 완화 시킬 물리 치료사들, 그 외의 것들을 진정시킬 정신과 의사들도. 몇 년에 걸친 최면 요법을 통해 회복해갔다. 나는 여름 내내 여름 캠프에 있었던 것이라고, 그들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라 시켰다. 그러던 와중에 말에서 떨어졌다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와, 정말 재미있었다고. 나는 그것을 계속해서 되풀이 했고 가짜 기억을 가지고 명상을 계속 했다. 그것이 진짜처럼 느껴져 내가 원하는 순간마다 선명하게 그 기억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진짜에 너무도 가깝게 다가갔다.
 
하지만 때때로 아빠는 노트북 너머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그거다. 그날 그 집에서 빠져나오면서 손에 뭔갈 꽉 쥐고 나왔으니까. 내 부드러운 매트리스 아래에다 작은 비닐봉지에 넣어서 숨겨두고 있으니까. 밤에 그 봉지를 벗기고 그 안에 있는 빛나는 하얀 에나멜 조각을 내 손가락 사이로 가지고 놀면서 달빛 아래로 빛나는 크림 같은 표면으로 내 마음을 진정시킨다.
 
가끔 입에 넣어서 쪽쪽 빨아 따뜻한 구리의 맛과 그 뿌리 부분에 달려있는 쫀득한 살점을 맛보며 나를 느슨하게, 잠에 잘 들게 만드는 그 고기를 떠올리곤 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요르고스란티모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9.11 주인공이 전리품으로 챙긴 납치범의 치아!
  • 작성자만약에시간을되돌릴수있다면 | 작성시간 24.09.11 비틀즈 노래가사 의미심장하네
    눈가려져있는데 디게 자세히도 봤네.....?
    아니근데 저래 똑똑한 애가 저걸 낚임? 글고말여 애초에 나같으면 여름에 차 밀어달라는 부탁을 안들어줌 왜냐면 쇳덩어리 개뜨거울거아녀
  • 작성자늑대가되 | 작성시간 24.09.11 고문장면 왜케 역겹지 ㅡㅡ 어린여자애 대상으로 일부러 자세하게 쓴거같다
  • 작성자구파발역 | 작성시간 24.09.12 개비쓰레기새끼야
  • 작성자파파밀 | 작성시간 24.09.27 new 우와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