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홍콩할매의 속삭임

[사람]그레이엄 영 살인사건

작성자파두|작성시간24.10.06|조회수2,634 목록 댓글 2

 

출처 : https://namu.wiki/w/%EA%B7%B8%EB%A0%88%EC%9D%B4%EC%97%84%20%EC%98%81

1972년 체포 당시

1. 그레이엄 영

체포 후 본인의 살인 행적에 대해서 후회, 반성하는 마음을 느끼는지에 대한 답이었다.

영국의 독(정확히는 탈륨과 안티모니)을 이용해 사람을 죽인 최연소 연쇄살인자.

탈륨 화합물을 찻잔에 묻혀서 동료들에게 건네주는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별명이 'Teacup Poisoner(찻잔 독살자)' 또는 'St. Albans Poisoner(세인트 올번스 독살자)' 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2. 생애

2.1. 어린 시절(1차 범행기)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어머니를 잃고 이모 손에서 자랐다.

그러다 2살(1950년 4월 1일)부터 재혼한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훗날 정신과 의사들은 "정서 발달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온정이나 동정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1955년 그가 길가에서 차에 살짝 부딪쳐서 사고를 당했고 영국 저술가인 앤서니 홀든(Anthonly Holden)의 저서 St. Albans Poisoner 에 의하면 그레이엄이 3살 때 새엄마가 모형 비행기를 부숴 버리고 용돈을 조금 주고 친구를 집에 초대하지 못하게 하고 간식도 집에서 못 먹게 하는 과보호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태도는 자신의 관점 외에는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했었고 그레이엄 영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았다.

독약에 대한 집착은 어릴 때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 길로 빠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그레이엄에게 아버지가 과학 실험도구들을 사 준 것이었다고 한다.)

학교 친구들이 운동선수나 가수를 우상으로 삼았다면 그레이엄은 영국의 악명 높은 독살자 할리 크리픈을 우상으로 삼았다.
(미국 출신의 의사로 1910년에 아내 코라를 살해하고 토막 내어 집 지하실 석탄 창고에 묻어두고 애인과 함께 캐나다로 도망쳤지만, 대서양을 통한 무선 통신으로 신고가 접수되어 체포된 이후, 10월 23일 사형을 선고받아 한 달 후 교수형에 처해졌다.
통신 역사를 다룬 책에서도 한 번쯤 언급될 만큼 유명하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아내와 장모를 독살하여 1865년 글래스고에서 교수형을 당한 살인범 에드워드 프리처드를 가장 좋아했다.

게다가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하였고 히틀러의 절대적인 권력을 부러워했다.

영어 위키백과에는 에드워드 프리처드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동시대인 윌리엄 팔머에 대한 이야기만 적혀 있다.

체포되기 전 학창 시절

14살에는 약국에서 학교 과학 숙제를 핑계로 나이를 속여 안티모니 타르타르산염을 구한 뒤 늘 품에 지니고 다니며 그 약병을 자신의 작은 친구라고 불렀다.

학교 과학 실험실의 청소 당번을 자진하여 학교 과학 실험실을 드나들게 된 후에는 화학 실험에서 사용하는 독극물을 자유롭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독학만으로 대학원 수준의 화학 지식을 습득한 것도 14세의 일이다.

그리고 며칠 뒤 약병에 든 독약을 학교 친구와 가족들을 상대로 실험을 시작했다.

그레이엄은 아이들이 먹는 샌드위치에 안티모니 타르타르산염을 섞고 그 양에 따라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지켜봤다.

약을 먹은 친구들은 구토하고 복통을 앓았으며 심하면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다.

1962년에 15세였던 그레이엄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의붓어머니를 독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이엄이 화학 시간에 이상한 실험을 제안하는 것을 보고 학교의 화학 교사가 의구심을 가졌다.

방과 후에 그레이엄의 책상을 조사한 화학 교사는 안티모니 타르타르산염이 든 독약병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 유명한 죄수들과 독약에 대한 수필, 독약의 효능 및 치사량을 적은 종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1962년 체포 당시

경찰조사를 받게 된 그레이엄은 가족과 친구들을 상대로 독약을 실험했다는 사실을 털어놨고 의붓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혔을 때 넥타이로 자살을 시도했는데 자살을 시도한 이유가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독약 없이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62년 15살이었던 그레이엄은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정신이상 판정을 받아 브로드무어 정신병원에 위탁되었다.

그러나 그레이엄의 미치광이 행각은 거기서도 멈추지 않았다.

독극물에 대해 워낙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 정원에 있는 관상용 월계수와 나뭇잎에서 청산가리를 추출할 수 있을 정도였고 병원 직원과 동료 수감자에게 독극물을 먹여서 그중 1명은 사망하게 만들었다.

9년 뒤에는 석방되었는데 이후의 정신과 의사 보고서를 보면 당시 완전히 치유된 것으로 나왔지만 그것은 오진이었다.

그레이엄 영이 직장동료에게 쓴 편지

2.2. 청년 시절 ~ 사망(2차 범행기)

그레이엄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보빙턴 마을로 이사 가서 사진기 회사의 창고 일을 맡았는데 회사에 들어갈 때 사장에게는 사랑하던 의붓어머니가 죽은 뒤 신경쇠약에 걸려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진기를 생산하는 회사에 취직한 이유부터가 독극물 살인에 필요한 탈륨을 훔치기 위해서였고 취직한 다음 날에는 시내에 나가서 수백 명을 죽게 할 수 있는 양의 독약을 구해왔다.

이후 거의 70명이나 되는 회사 근로자들이 설사, 경련, 요통, 멀미 등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몇몇은 입원했고 그 중 2명은 고통을 겪다가 절명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병을 사람들은 ‘보빙턴 병’ 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레이엄이 가져다준 커피와 차를 마시고 나면 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공장의 누군가가 동료들에게 독약을 먹인다는 의혹이 불거져서 수사가 이루어졌다.

그레이엄은 경찰 조사를 받는 동안 자신의 뛰어난 화학 지식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을 냈다.

그레이엄은 수수께끼의 질병이 탈륨에 의해 나타나는 증상으로 보인다며 경찰에 그대로 말했는데 이는 경찰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경찰이 그레이엄의 과거를 조사해 보자 소름 끼치는 진실이 밝혀졌고 그레이엄은 살인 혐의로 즉시 체포됐다.

그레이엄의 아파트에서는 탈륨, 안티모니, 아코니탄 같은 독약이 발견되었고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의 액자 사진도 나왔다.

그레이엄의 일기장도 나왔는데 거기에는 여러 독약이 사람들에게 끼친 결과가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적혀 있었다.

그레이엄은 일기장에 기재한 내용이 단지 소설을 쓰기 위한 기록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범행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레이엄에 따르면 사람들의 목숨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서 저지른 범행이라고 한다.

그레이엄은 형사에게 “마음만 먹었으면 전부 다 죽일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살려준 거죠.” 라고 자랑했다.

1972년 6월 바로 재판이 시작되었고 모든 혐의를 인정했기에 재판은 10일 정도로 짧게 진행됐다.

배심원은 그레이엄에게 법정 최고형인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고 그레이엄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되었다.

그레이엄 영이 다녔던 보빙턴에 위치한 회사 'John Hadland'

그레이엄은 18년 가량 교도소에서 무어 살인마(Moor Murders)중 한 명인 이언 브래디(Ian Brady)와 함께 매우 친하게 지내면서 조용히 복역하다가 1990년 8월 자신의 감방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향년 42세였으며 사인은 심장마비이다.

이안 브래디의 말에 의하면 그레이엄 영은 특이하게도 성적인 쪽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 쪽 분야를 추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미권에서는 그레이엄 영을 무성애자로 표기하는 정보 사이트가 꽤 있다.

정말 머릿속에 독극물만 들어 있는 건지...

하지만 그레이엄 영을 주제로 한 전기인 Carol Ann Lee 의 저서인 A passion for poison 에 의하면 성인이 된 그의 대부분의 지인들은 여자나 남자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질 않아서 무성애자로 여겼지만 실제로 그는 초등학생 시절에 만난 연상의 여자 아이가 첫사랑이었으며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묘사했다.
(The strange story of graham young : Obsessive poisoner 라는 그레이엄 영의 친누나가 쓴 책에 따르면 그 여자 아이는 도서관 사서였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혹은 그가 자폐 증세를 갖고 있으며 그 영향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안 브래디의 증언에 따르면 체스를 할 때도 매번 흑을 고집하는 등 고집이 세서 자신에게 지곤 했다고 하고 기이할 정도로 독살에 집착하여 자폐 증세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존재한다.

아예 자폐임을 염두에 둔 연구도 있을 정도.
(자폐성 장애인도 충분히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비롯해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고기능 자폐증 등을 지닌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다만 자폐성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범죄자는 아니고 이러한 사례들은 자폐와 별개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같은 다른 인격장애가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 주변 수감자들의 평가


4. 여담

2005년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그레이엄 영에 심취한 고등학생이 어머니를 대상으로 탈륨을 실험하는 사건을 저질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피해자인 어머니는 입원 도중 상태가 악화되어 혼수 상태에 빠지는 등 여러 우여곡절 끝에 구사일생했다.
소녀는 이후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고 나중에 정신검사를 해 본 결과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밝혀졌다.
여담으로 일본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라 "탈륨 소녀의 독살일기" 라는 제목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2013년 9월 8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언빌리버블 스토리에서 방송되었다.
서프라이즈에서는 학생의 이름은 요코이며 비참한 현실에서 관심을 받을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소개했다.

또 그레이엄 영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고야 대학생 살인사건의 범인 오오우치 마리아가 고등학교 시절 이 '탈륨 소녀 사건' 의 영향을 받아 인터넷으로 탈륨을 구매해서 중학교 동창생과 고등학교 동급생을 독살하려고 시도한 일이 있었다.
(정확히는 독살까지는 아니고 음료수에 탈륨을 타서 이것을 마신 동급생과 동창생의 증상을 '관찰' 하면서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피해자들 중 동급생인 남학생은 같은 피해를 두 번이나 당해 탈모와 시력 저하 등의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결국 특수학급으로 이동해야 했다고 한다.)

눈 색깔과 머리 색깔은 모두 짙은 갈색이며 창백한 피부결이다.
(그의 누나가 쓴 그레이엄 영의 전기에서도 밝혔고 바비 커민스와 이언 브래디도 자신들의 저서에서도 밝혔으며 그레이엄 영에 대한 전기에도 나온다.)

5. 어록

영어로 (일반적인) 약물과 마약 모두를 drug(s)로 지칭할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한 문장. 다만 언어유희를 유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정신병원에서 나가기 전에 간호사에게 했던 말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금순 | 작성시간 24.10.07 재능이 아깝다.. 참
  • 작성자lom1996 | 작성시간 24.10.07 프리즌브레이크 절망편인가..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