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치르치르 미치르
죽은 세계에서 살아가기(4)
-세계가 죽던 날-
시발. 시발, 시발! 나는 아주 좆됐다. 내 인생이 언젠가는 좆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방식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좆되고 있는 이 상황이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맞았다. 시기만 달랐을 뿐, 세상은 멸망한다!
이건 세계가 죽기 시작하던 날의 내 감상이다.
아니, 나도 내가 살아있을 줄 몰랐다. 그러니까 저 정도의 욕설은 용인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세계가 죽던 날은 아주 갑작스러웠다. 무슨 전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갑자기 세계의 강물이 메말랐고 땅이 갈라졌다.
종교에서는 드디어 종말의 날이 왔다고 했고 티비에서는 정부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며 사람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출근을 했다.
강이 말랐으니 식수가 동나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뿐이었다. 약탈은 손쉽게 일어났고 그만큼 서로를 챙겨주는 사람도 많았다. 사람들은 드디어 출근을 포기했다. 사실 드디어, 라기보다는 이제야, 라는 말이 어울리지만.
모든 식물이 말라 죽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떨어져 죽고, 불타 죽고, 빠져 죽고, 서로가 서로를 죽였다.
정부는 아무 일도 해결하지 못하고 무너졌고 종교에서 말하는 신성한 무언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가끔 비 대신에 불이 내리기도 했다.
곤충들의 사체가 온갖 곳에 쌓였다. 그것조차 먹을 것이었다. 동물이라고 멀쩡할 리 없었다.
동물들이 죽은 곳에서는 구더기가 알을 까다가도, 급격하게 다시 죽어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정말 말 그대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녹아내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갑작스레 증발해버리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방금까지 대화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 걸 본 내 기분을 이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나둘, 열, 몇십명이 사라지고.
혼자만남았다는절망이커질때쯤
나타난 것이 청소부들이었다.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한 것처럼 그들도 갑자기 나타났다.
건물 주차장 구석에서 자고 있는데 몸이 흔들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건 막대기처럼 생긴 무언가였다. 몸통은 노란색이었는데, 옆에 전체적으로 가느다란 실과 같은 무언가가 바글바글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실이 내 몸을 온통 감싸고 있었다. 뭐예요, 이것....?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지만, 당시의 나는 있는대로 비명을 질러가며 눈물을 죽죽 뽑았다. 살려주세요, 그래도 아직 죽고 싶진 않아요, 하면서 무릎 꿇고 빌었던 것 같기도 하다.
―――‥――…
기계음 같은 게 그 노란 것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뭐라시는지 모르겠고요. 저 죽어야 한다면 편안하게 사라지는 방법같은걸로 안될까요. 저도 지금 제가 살아있고 싶어서 살고있는 거 아니긴 한데요. 그래도 뭔지도 모르는 거한테 이상한 방식으로 죽으면 너무 아프고 억울할 것 같은데요...”
질질 울면서 말하자 그 노란 것은 몸통을 돌려 버저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비슷한 것들이 와글와글와글와글와글와글와글 몰려와 내 주위를 둘러쌌다. 살려주세요.....!
앉은 채로 뒷걸음을 치자 그것들 몸에 붙은 실들이 더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를 칭칭 감싸고...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는데.
-생명체 확인. 원시 세포.
“ㄴ, 느에?”
지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생존 이유 : 모름
-자연 소멸 가능성? 확인 불가
-청소 여부 : 불필요
-소각 필요성 : 모름
저기요, 무슨 대화인지 저도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소각 절차?
-확인 필요
-소멸 대기
-승낙 필요
그렇게 나를 붙잡았지만 나를 무시하고 기계음들을 뱉어내던 그것들 사이로 조금 더 화려한, 몸이 좀 더 반짝반짝한, 그러니까 황금풍뎅이같은 직선을 가진 것이 걸어왔다.
-철수 안 하고 뭣…어. 원시 세포네.
“저기요...! 죄송한데 저좀 살려주시면 안될까요....!”
말이 통할 것 같다! 자기들끼리만 말을 죽죽 뱉어내는 것들보단 좀 더 자연스럽게 말을 하고있었다!
-어...왜 남아있지.
“살려주세요... 저 진짜 갑자기 사람들도 다 사라지고오.....”
말이 통하는 무언가를 만났다는 안도 때문일까. 나는 처음 보는 정체도 모를 반짝이는 막대기를 향해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하소연을 쏟아냈다. 갑자기 세상이 망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어떻게 힘내서 살아보려고 했는데, 같이 힘내자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서 나랑 멀쩡하게 말하고 있다가 증발하는데, 나 혼자만 여기 남아있고, 몇 날 며칠을 걸어도 사람은 보이지도 않고, 요즘 하늘에서는 비도 안 오고 불만 내리는데, 그래서 지하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고, 그나마 불이 그칠 때쯤 나가서 생존에 필요한 것들만 구해오는 나날인데, 그러다 오늘 겨우 잠들었더니 지금 이 상태인데, 당신들은 도대체 뭐냐고.
“크흥,”
하고 코를 풀어내자
-으...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붙잡고 있는 실 몇 가닥이 화륵 불탔다. 그렇게 기겁하면 마음에 큰 상처인데요...!
-음. 원시 세포씨.
“제가 원시 세포인가요....?”
-그치?
“제가 왜 원시 세포죠..........?”
-원시 세포니까....? 들어봐. 살아있는 건 다 죽지?
“...그렇죠?”
-세계도 똑같아. 언젠간 죽는데, 그럼 그 안에 있던 것들은 어떻게 될까?
“...죽나요?”
-그렇지, 아무래도. 몸의 기능이 멈추면 안에 있는 것들도 다 멈추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그....그걸 뭐라고 하더라. 그 갈색이고 뾰족하고 동그랗고 녹색이고 노란색이고 빨간색이고 떨어졌다가 다시 생기는 거.
“그게 뭔데요.................”
-이쪽 말로 뭐지. 아...............아아. 아. 나무. 낙엽. 응, 그거랑 똑같은 거지. 세계는 그렇게 돌아가. 죽었다가 새로운 세포들로 다시 재정비해서 기다렸다가 다시 태어나는 거지. 지금은 죽어가는 중이고 지금쯤이면 원래 세포들도 다 죽었을 거라 우리가 청소하러 온 건데.
어떻게 아직 남아있지.
마지막으로 중얼거리는 말에 온몸의 피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나도, 죽어야만 하나?
“...저, 절 죽일 건가요...?”
-응? 그런 귀찮은 일을 왜?
...아닌가 보다. 민망하네.
-우린 우리 할 일 다 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언제 여기 있었냐는 듯 노란색 막대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세계가 죽는 중이라고. 그리고 언젠간 새로운 세포, 그러니까 생명체들이 다시 나타날 거라고.
새로운 생명체라는 말에 다시 힘내보기로 결심했다.
그 생명체가 인간이랑은 한참 다른 것들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조금 나중의 일이었다.
죽은 세계 세계관 설명겸 써본 회차입니다!
사실 나폴리탄 괴담류를 짤막짤막하게 써보고 싶은데 그냥 단편으로만 쓰면 (내가) 질릴 것 같아서
그냥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자! 하고 냅다 썼더니 이건 그래서 뭔 세계인데... 싶을 것 같아서 적어봤어요
아직 사람들이 더 남아있는지 어쩐지는 저도 모름 .....
+) 다음 회차? 에피?는 일주일 뒤에 올라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