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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th & The Underworld
동서양을 막론하고 저승사자는 죽음의 신, 즉 사신이라고 불리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잘못된 표현입니다.
죽음의 신은 '하데스' 혹은 '염라대왕'처럼 죽음 그 자체를 관장하는 초월적인 존재를 뜻하며
저승사자는 말 그대로 사신이 있는 저승으로 망자를 인도하는 일종의 심부름꾼에 가깝습니다.
이들도 한때는 사람이었던 것인지 성격과 모습이 저마다 천차만별이며
말투 역시 아주 강압적인 사자가 있는가 하면 깍듯이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사자도 있습니다.
또한, 저승사자들은 인간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능력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록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얼마든지 잔꾀를 통해 이들을 속여서 저승행을 늦출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저승사자와 '거래'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저승사자와 거래를 하여 죽음을 늦춘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뤄야 하는데,
그 대가가 차라리 일찍 죽는 게 더 나을 정도로 무서운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저승사자가 인간과 거래를 하는 진짜 목적은 삶에 미련이 남은 자에게
이승에 남고 싶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게끔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먼 옛날, 큰 농장과 작은 과수원을 가진 어느 부자에게 저승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죽고 싶지 않았던 그는 사자에게 금화 한 상자를 뇌물로 주며 제발 저승행을 미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승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거래'를 하겠다는 뜻인가?"
부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돈이 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더 주겠다고 빌자
놀랍게도 저승사자는 그를 데려가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죽음에서 살아난지 며칠 후,
갑작스러운 산사태로 그는 자신의 과수원을 잃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관리하던 과수원을 잃어서 상심이 컸던 그에게 저승사자가 다시 찾아왔고,
이번에는 금괴를 잔뜩 주며 다시 한 번 '거래'를 시도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태풍 때문에 그의 분신과도 같은 농장이 모조리 파괴되었습니다.
평생을 바쳐 일구어 왔던 농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이젠 처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조차 남지 않게 되었고
마침내 '거래'의 정체를 깨달은 그는 눈물을 흘리며 저승사자와 함께 저승길로 향했습니다.
두 번째는 어느 구두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평생 돈을 아끼며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모르게 많은 돈을 모았던 한 남자는
그 돈을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어느 날부터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결국 사망에 이르러 저승사자와 함께 저승길을 가게 되었는데
저승으로 향하던 중 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모았던 돈이 너무나도 아까웠습니다.
그는 사자가 두려웠지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사연을 설명하고
부디 한 번만 돌려보내 달라고 통곡하며 빌었습니다.
그러자 저승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대가로 '촛불 세 자루'를 내게 바칠 수 있겠나?"
구두쇠는 절대 잊지 않고 꼭 촛불 3개를 바치겠다며 약속했습니다.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관 속에서 깨어난 그는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동안 모은 돈을 펑펑 쓰며 여유롭게 생활하던 그는 저승사자와의 약속 떠올라
매일 밤마다 촛불 세 자루를 켜놓으며 약속을 지켰다고 안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충격적이게도 그의 세 아들이 모두 비명횡사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사실 저승사자가 말했던 촛불 세 자루는 세 아들의 목숨이었던 것입니다.
죽은 자의 목숨 하나를 살리기 위한 대가는 산 자의 목숨 셋 이상이었던 걸까요?
비탄에 빠진 구두쇠는 망연자실한 채로 저승사자와 다시 마주했습니다.
"자, 내게 더 바치고 싶은 무언가가 또 있는가?"
지난번과 달리 이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저승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