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치르치르 미치르
죽은 세계에서 살아가기(6)
-소로마을 주민-
"-가 사라졌어!!!!!”
응...? 네...?
안락한 오늘의 내 보금자리에서 새근새근 자던 나는 대뜸 문을 쾅 열고 외치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눈앞에 보이는 건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인간...........?
“네, 네! 일단 들어오시구요!!”
나 말고 또 다른 생존자다!
기쁜 마음에 일단 손을 잡아끌었다. 묘하게 차가운 느낌이 있었지만, 이 분위기는 인간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을 흉내 낸, 혹은 인간과 닮은 무언가들과는 다르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성을 대뜸 집 안으로 들이고는 문을 쾅 닫았다.
심장이 뛴다.
말이 통하는, 지성체의, 인간을 본 기억이 이젠 너무 희미하다.
여성은 내가 잡아끈 상태 그대로 서서 한참을 눈물만 흘리다 이내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마음 안다. 무언가 다 사라진 기분. 무너진 기분. 나도 모르게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려는 찰나,
“당산나무가 사라졌어!!”
...뭐가 사라져요?
“마을이, 마을이 죽어버렸어. 당산나무가 사라져 버렸다고.”
엉엉 울며 하는 그 말들이 공감이 하나도 안 돼서, 그냥 등만 토닥였다.
당산나무가 뭐요.
이쪽은 세계가 죽었거든요.....!!
해서, 들어본 말은 나도 어디선가 들었던 것들이었다. 떠도는 이야기를 들어봤던 것 같기도 한데... 휴대폰만 보며 걸어가는 애들한테 야 너 그러다 끌려감ㅋ 하면서 농담을 했던 것도 같다. 근데 지금 내 눈앞에는 그 마을 주민이라고 주장하는 인간(추정)이 있네.
한참을 울던 그녀는 오른손을 내밀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어쨌든 반가워. 난 김여시야.”
“네... 안녕하세요.”
김여시라 자신을 지칭한 이는 머쓱한 얼굴로 왼쪽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보니 팔이 한쪽밖에 없으시네. 실례될 수 있으니 묻지 말자.
“마을을 새 단장 하던 중이었는데, 왜, 요즘 레트로? 그런 거 유행이라잖아. 그래서 다 초가집으로 바꿀까 했거든. 점점 오는 관광객들 숫자도 줄고, 가끔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해서, 분위기 전환상? 근데 갑자기 당산나무가 시들시들하더니... 말라버렸어... 그러니까 갑자기 마을도 무너지기 시작해서.... 놀라서 까망이네로 달려갔는데 까망이가.....까망이가....”
“......그.........울지는 마시구요.”
“이거 봐. 까망이가 이렇게 됐다고.”
김여시는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못난이 인형....? 애착인형인가.
“우리 까망이 불쌍해서 어떡해에에에....”
울지 말라는 말은 하나도 소용없었다. 김여시가 다시 눈물을 퐁퐁 쏟고 있는데, 손이 올려진 인형의 팔이 쑥 길어지더니 김여시의 목을 그러쥐었다.
뭐야, 씨발. 인형이 왜 길어져.
아니, 아닌가? 이 세상은 인형이 길어지기도 하나? 내 상식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니아니, 아니지. 인형이 길어진 거에 놀랄 게 아니라, 지금, 저 인형이, 목을 조르잖아!
“괜찮아요?!!”
나도 모르게 인형을 잡아채서 던지며 물었다. 또 이렇게 허무하게 사람이 죽는 건-
“뭐해?”
“네?”
“너 지금 뭐하냐고. 까망이를 왜 던져!!!!!!!”
김여시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툭, 투둑 하고 무언가 떨어져서 굴러왔다.
눈만 굴려 바라보니, 굴러온 건 한쪽 눈알이었다.
엄마야. 인간...아니셨나요.
“목을 조르려는 줄 알고....”
눈물을 찔끔 흘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죽으실까봐...”
내 손을 잡아채던 김여시는 내 말을 듣고는 서서히 표정을 풀었다. ...사실 얼굴을 풀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긴 한데.
“사과해.”
“죄송해요...”
“나 말고, 까망이한테. 까망이 놀랐잖아. 괜찮아?”
어느새 그 검정 덩어리는 꿈틀꿈틀 기어와 김여시의 어깨에 올라가 있었다. 하하하하. 하나도 모르겠다.
“,,,미안합니다.”
그러자 그 검정 덩어리의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이 까딱, 움직였다. 네...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제대로 소개 안하기도 했으니까 봐줄게. 서로 인사해.”
그렇게 어영부영 서로 인사하고 한참을 어색하게 있다가, 머리 속에 떠오른 궁금한 것들을 하나 둘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말이 이렇게 통하는 사람(인지 어쩐진 모르겠지만 어쨌든!)을 만난 건 너무 오랜만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마을에서 오셨다구요? 어떤 마을인가요?
A. 응. 소로마을. 들어본 적 없어? 되게 예쁜 마을인데. 관광지로 선정될 뻔도 했다구! 마을 입구에는 있지,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는데, 그 앞으로 작은 개울이 흘러. 되게 맑아서 바닥이 보인다? 근데 생각보다 깊어서 함부로 들어가면 안돼. 주민은 많지 않았어. .....지금은 그 애들도 다 죽어버렸지만. 나랑 까망이만 남았지 뭐야. ...이렇게 다들 죽어버릴 줄은 몰랐어...
소로마을은 어디 있는 마을인데요?
A. 응? 그야 한국에 있지?
...한국이요?
A. 응. 정확한 위치는------ 설명을 잘 못하겠네. 하지만 얼마든지 놀러 올 수 있는 곳이니 위치는 크게 상관 없지 않겠어? 관광객들도 꽤 오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솜뭉치도, 투명이도, 왕눈이도, 다 ...... 응? 아니 걔는 뭐 죽든 말든 내 알바- 아, 아파. 깨물지 마. 그치만 난 걔가 여전히 싫은 걸 어떡하냐고.
사이가 안좋은 분이 있었나봐요?
A. 응. 걔는 하여간 성격에 하자가 있다니까. ...사실 걔도 지내다보니 그냥 말정도는 트고 지내긴 했는데. 나 원시시대 때...? 단세포 때...? 뭐라고 지칭해야 할 지 모르겠네. 아무튼 내가 미성숙했을 때 기억이 살짝 있어서. 그 때 첫인상이 안잊혀서 걘 여전히 싫어. 까망이는 그러지 말라고는 하는데, 본능적인 거부감 알아? 쟤가 나한테 해를 끼치지 않을 걸 알지만 그냥 싫은 거. 그런 거지.
여기는 어떻게 오셨는지...
A. 응? 밖에서 보니까 여기만 살짝 환하길래. 그러고보니까 내가 집에 있는 동안 무슨 일 있었나? 밖에 이상한 애들이 돌아다니던데. 막 침 질질 흘리고, 말이 통하다 안통하다 하는.
세계가, 죽어가지구요. 원래 생명체들은 다 죽거나 죽어가는 거래요, 여시씨가 만난 애들은 새로운 생명체들이고.
A. 그렇구나. 음~~~ 리모델링 같은 거구나! 어휴, 그런거면 어쩔 수 없지. 존중해야지. 그래서 우리 마을이 못버텼구나.
근데 제가 듣기론... 그 마을은 '들어가면 죽는' 곳인데요....
A.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마을은 친절해! 화폐가 없으면 신체부위를 지불하는 건 당연한 건데, 요즘 애들은 그걸 잘 모르니까 친절히 알려주기도 하는걸! 신체부위를 되살리지 못하는 개체들이 있긴 하니까, 다른 대체품도 받는단 말이야. 이용료를 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멸종 동물을 바치라고 하는 건.
A. 응? 멸종? 뭐가?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앞으로 혹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A. 그러게..... 고민 중이야.
한창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중, 벌컥 하고 또다시 문이 열렸다. 아, 사생활 보호좀요.
들어온 이는 산양의 머리를 하고는 뿔 사이에 흰 천을 얼기설기 묶어 올려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김새보다는 질질 끌고오는 무언가가 더 신경쓰였다. 그것이 끌고 오고 있는 건 내가 어제 오전 울면서 피했던 육족류였던 무언가의 시체였다. 나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난 뒤졌다, 싶었지.
"아, 주방장!!!!"
김여시가 그것에게 손을 들어 붕붕 흔들자, 그것도 말 발굽을 들어 붕붕 흔들었다.
뭔데 친밀해...?
"와. 이건 또 새로운 재료네? 실험작 많이 만들 수 있겠다!"
그것은 음메- 혹은 ㅇㅇㅇㅁ- 와 비슷한 울음 소리를 냈다.
"그래? 음... 저기, 우리 주방장이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는데 올래?"
"...식사요...?"
"응! 진짜 갈고 닦은 실력이거든!"
"...실례지만, 조리 재료가 뭘까요?"
"그야, 방금 사냥한 동물이지.......???"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여시를 보며 느꼈다.
아. 말이라는 건 그저 이해된다고 다는 아닌 거구나. 나는 애써 미소지으며 그 초대를 거절했다.
"그래? 아쉽네......... 그래도 나랑 까망이랑 주방장이랑, 마을 재건할 거거든. 마을이 예쁘게 꾸며지면 꼭 초대할게. 놀러 와야해?"
"아하하하. 네에."
내 양 손을 한 손으로 붙잡고 붕붕 흔든 김여시는 몇번이고 나를 돌아보며 아쉬운 눈빛을 보냈지만 이내 그 산양과 어깨에 얹은 까만 것과 떠났다.
도대체 어느 시대 사람인지. 한국이라는 명칭은 바뀐 지 nnn년이 지났는데.
'소로마을'은 전래동화에서 나오는, 어린애들 겁주는 무서운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소로마을'에서 요구하는 소는, 멸종된 지 오래된 동물인데.
일단 나는 초대받아도 갈 일은 없겠다는 다짐을 하며 주섬주섬 짐을 쌌다.
여기서 두 번 다시는 안 자야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현생입니다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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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닭튀김의 비밀 작성시간 24.11.05 new 너무너무 재ㅐ밋다고... 김여시 ㅜㅜ 건강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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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순살 고등어 맛있다 작성시간 24.11.05 new 원숭이같은 유인원이 새롭게 등장하고 기존의 인간은 멸종된 세계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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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받은편지 작성시간 24.11.05 new 여시야 그래 어케든 살아만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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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우녜녕 작성시간 24.11.05 new 헐뭐야 이거 헐 같은세계관인데 전래동화수준으로 먼과거가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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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그게먼데십덕아 작성시간 24.11.05 new 여시 잘 지내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