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pann.nate.com/talk/324075703
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부산에서 다님.
부산 사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부산이 남해 연안에 접근해 있다고 다 바닷가가 아님
오히려 장딴지에 +10강화정도는 해야
다닐만할 정도로 언덕이 많음
본인이 다니던 중학교도 그랬슴.
여하튼 중학교 2학년때 학교에서 수련회를 갔슴.
수련회라고 해봤자 학교 바로 뒤가 수목원이라
바로 거기로 도시락만 싸들고 말이 체험학습이지
그냥 등산을 했음.
그래도 2학년 전체가 움직이는 거니
선생님들이 딴엔 신경을 많이 쓴 듯
애들을 다섯 여섯 정도 묶어서 조별로 움직이게 했슴.
사실 난 반에서 좀 아웃사이더였슴.
그게 왕따 같은 것은 아니고 놀기도 잘 놀고
대화도 곧잘 나누는데
이런 식으로 조별로 움직이게 되면
꼭 무리에 합류를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늙은 하이에나 꼴이 됨.
이유는 나보다 내 친구 녀석 때문이었슴.
검마는 여자사람이었는데
애가 피부도 하얗고 키도 작고 말라서 예쁘장했슴.
그런데 말이 별로 없슴.
가끔 허공을 노려본다던지
방언이 터진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구석에 대고
호통을 친다던지 좀 유니크한 특성을 가진 녀석이었슴.
더군다나 할머니가 무당이라
학교에서도 새끼무당 취급 받으면서
좀 애들하고 어울리지 못했슴.
아니, 어울리지 못한다기 보다는 가시나 혼자서
학교를 왕따시키는 그런 아우라가 있는 녀석이었슴.
여하튼 책을 좋아하는 그 녀석과
도서관 주번인 나는 어쩌다보니 친구가 되었는데
평소에는 혼자 있기 좋아하는 가시나는 혼자 놀고
나는 나대로 놀면서
등하교나 같이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조별로 움직이게 되면
꼭 반에서 우리 두명만 무리에서 떨어진
오리마냥 둥실둥실 떠다니는 거임
따로 떨어진 우리를 그냥 놔둘 선생님도 아니어서
자릿수 적은 조에 우리가 끼어들어가게 됐슴.
애들이야 물론 좋아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건 여럿 저지른 가시나(그냥 가명으로 나리라고 부르겠슴)
앞에서 대놓고 싫어하는 눈치를 줄 정도로
간 큰 녀석은 없었슴.
여하튼 그렇게 얼기설기 조가 짜여지고
우리는 단체로 현장학습을 빙자한
단체 등산을 시작했슴.
떡같은 산이었슴.
딱 이맘 때쯤인 초가을 낮은 뒷산이었는데
을씨년스럽기가 제모안한 겨털만큼
음습하고 후덥지근한 곳이었슴.
여하튼 정상에 오르고
도시락을 꺼내 먹기 시작했슴.
산에 오르면서 한 경험담도 서술하라면 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 이 글은 공포글이 아니게됨. 등반일지가 됨
나무가 무성한 곳이었슴.
비가 온지 한참 된것 같은데
나무기둥이 다 시커멓게 썩은 것처럼 보였슴.
작년에 떨어져 내린 낙엽이 아직 삭지도 않은
이상한 곳이었는데
발밑마다 지천에 벌레가 드글드글 했슴.
그런 곳에서 밥이 잘 넘어갈 수 있을까 싶지만
험난한 산행은
엄마가 단무지에 햄만 넣고 말아준 김밥도
두번씹고 삼키게 만들어줌.
내려오는 길은 선생님들도 지쳤는지
애들 통솔도 느슨한 분위기였슴.
대충 밥 먹고 내려가면
오후는 집에 가든 오락실에 들르든 그건 애들 재량이었슴.
지금처럼 학교가 빡빡한 곳은 아니었다는 기억이 있슴.
여하튼 산 중반을 내려올 즈음 뱃속에서 신호가 옴.
사실 신호는 아까 덜 잘린 김밥을
이로 끊을 때부터 오고 있었슴.
그땐 그렇게 심각한게 아니라고 생각 했었지.
그게 내 오산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슴.
분명 정상에서만 하더라도
허허허 아버님
이제 제가 장성하여
그만 세상에 나가 큰 뜻을 펼쳐볼까 하옵니다.
하던 놈이 갑자기 반항을 시작했슴.
힘든 산행으로 지치고 늘어진
내 대장을 쥐어 짜는
굵고 기다란 놈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슴.
아랫배가 차가워지며 식은땀이 흘러 나오기 시작함.
급하게 주변을 두리번 거렸슴.
때마침 약수터가 얼마 남지 않은 지점이었고,
어르신들 새벽운동하시게 마련된 운동기구장
근처에 화장실을 봤던 기억을 떠올림.
내 발걸음은 더할나위없이 경쾌해짐.
그땐 이미 조별모임은 흔적없이 사라져 있었을 때였슴.
조별로 나뉘어 봤자 애들은
점심먹을 때 이미 끼리끼로 모여서 밥먹을 때였슴.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이제 완연하게 장성한 그 녀석은 이 문을 열어라!!
라고 호통치며 연약한 내 괄약근을 거칠게 후려쳤슴.
갑자기 걸음이 빨라지니
내 뒤를 따라오던 나리 녀석이 전에 없이 나를 불렀슴.
사실 학교에 모여서 산을 오르고
점심을 먹고 내려가던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던 녀석이
나를 불렀으니,
괄약근의 마지막 힘이 풀리더라도 뒤돌아봐야 했슴
'어디가'
동갑내기 예쁜 여자애에게
똥마려서 화장실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리가 없었슴.
그러나 그녀는 이미 내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이해한 눈치였슴.
'참고 내려가서 화장실 가면 안돼?'
그건 내가 어렵다.
일단 네가 불러서 걸음을 멈춘 것만 하더라도
난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한거다.
라고 나는 표정으로 말했슴.
구겨진 내 얼굴을 보고 나리는 안쓰러운 듯
이제 보이기 시작한 약수터 옆 화장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럼 들어가서'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내가 뒤돌아 달려갔다.
이제 다른 사람 눈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내 가방에는 엄마가 밥먹고 쓰라고 준 사각 티슈도 있었겠다,
이 이상 지체 했다가는
제손으로 괄약근을 비집고 굵고 긴 그놈이 머리를 내밀 찰라였다.
달리는 와중에서 쉭쉭 흘러 나오는 가스는 왜이리 독한지.
다행히 화장실에는 사람이 없었고
나는 근처 아무칸이나 들어가 지퍼를 풀고
지금껏 기다리느라
나만큼이나 지치고 힘겨웠을 그 놈을 놓아줬다.
온세상이 천국같던 그 일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남은 자투리 해방감도 맛볼 수 있었음.
물을 내리고 일어나는데 상당히 냄새가 심한 화장실이었슴.
청소는 언제 하고 버려둔건지
바닥은 진흙과 침 투성이에 담배 꽁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침침한 회색 시멘트 벽은
싸구려 타일로 뒤뎦어 저질스러운 낙서가 즐비했슴.
낮이라 그런지 불도 켜지지 않은 화장실에
유일한 광원은 내 머리 조금 위에 난 작은 창문 뿐이었슴.
누가 들여다보도 좋을 정도로
훤하게 뚫린 창문에는 나무와 잎사귀만 보였슴.
볼일도 다 봤겠다,
나가려고 하는데 재미있는 낙서들이 보였슴.
누구랑 누가 좋아한다던지
욕설도 써있고 여자만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도 적혀 있었슴.
남자 화장실에 왜 여자만 연락하라고
전화번호가 적혀있는진 아직까지도 의문임.
그런데 화장실 문 아래 쪽에 이런 낙서가 있는 거임.
여기서 볼일 보다가 너가너가 하는 목소리 들은 사람?
너가너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웃긴건 그 낙서 아래 무슨 답장처럼
나도 들었는데. 어 나도
이런 식의 낙서가 이어지는 거임.
그 낙서를 따라 한참 내려가다가 나는 섬찟한 글을 읽음
난 지금 들려
휘갈긴 낙서에 소름이 쫙 돋음.
그게 왜 무섭게 느껴진 건진 뒤이어 깨달을 수 있었슴.
나도 들리니까.
화장실 쪽 창 너머에서 희미하게 말이 들려옴.
무슨 박자라도 맞추듯
너가
너가
너가
너가
일정한 박자에 맞춰 들리기 시작한 말에
나는 황급하게 쪽창에서 시선을 떼고 화장실 문 손잡이를 잡았슴.
이제 문만 열면 되는데 그럴 수가 없었슴.
문 바로 앞에서도 들리기 시작했거든.
앞 뒤에서 너가 너가 하는 여린 여자 목소린지
속삭이는 가성같은 건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슴.
분명 비울건 다 비웠는데
다시 싸하게 아랫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슴.
일단 화장실에 있어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될것은 확실했슴.
소리고 뭐고 나가야 겠다고 생각 했슴.
그런데 뭔가가 움직이는 거야.
처음에는 뭔지 몰랐슴.
뭔가가 알짱거리길래 뭐지 하고 고개를 들었슴.
아까 말 했듯이 이 화장실에
빛이 들어오는 곳은 쪽창 하나 뿐이었슴.
비스듬하게 화장실 벽에 드리워진 창문 빛에 뭔가
둥그런 것이 불쑥 불쑥 위로 올라오는 것이었슴.
너가 너가 너가 너가 하는 이상한 소리는
이미 충분히 가까워져 있었는데
나는 멍청하게 아무 생각없이
고개를 들어 쪽창을 바라봤음.
분명 처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불쑥
'너-가!!!!!'
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대가리가 쪽창 위로 불쑥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슴.
헝클어져서 축축 늘어진 검은 거미줄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분명 똑바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슴.
나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았슴.
진흙이고 화장실 바닥이고 생각할 여력이 없었슴.
문제는
내가 봤다는 것을 깨달은
창밖의 그 '너가'가 몇번이고 뛰어 오르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임.
튀어 오를 때마다 더 가까이 다가온 놈은
급기야 쪽창의 가장자리를
검고 썩은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움켜쥐고
쥐어 뜯듯이 기어 오르려고 했슴.
너가너가너가너가너가너가너가너가!!!!!!!!!!!!!
앞 뒤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에 나는 미칠 것 같았슴.
화장실 문 너머에도 저런 귀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차라리 기절을 하던지 심장마비에 걸리던지 하고 싶었슴.
웅크려서 아무것도 못하고
미칠듯이 뛰는 내 심장소리가 거슬려 죽을 것같은데
나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목청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슴.
화장실 문틈 사이로
희고 통통한 손가락들이
구물거리며 기어 들어오려고 하고 있었슴.
'으아아아아아악!!!!!!'
내 비명소리에 맞춰 그 미역머리 귀신은 정말이지
머리를 쑤시고 들어올 것처럼
쪽창에 얼굴을 들이밀었슴.
앙상한 해골에 머리카락만 뒤덮은 것처럼
무서운 모습이었슴.
화장실을 먼저 본게 다행이었음,
아니었다면 이미 나는 바지를 지렸을게 분명했슴.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에 내 정신은 혼미해졌슴.
이대로 기절하는가 하던 와중에
문득 다시금 화장실 아래로 기어 들어오려하는 손가락을 봤음.
뭔가 이상했슴.
내가 본 저 미역머리 귀신은 손가락이 나뭇가지처럼 앙상했슴.
그런데 화장실 문에 있는 놈은
통통하고 작고 가는게 꼭 아기 손가락 같았슴.
물론 지금 생각하면 말도 되지 않는 생각이지만
그 당시 나는 화장실 문 너머에 있는 놈은 작은 놈이다,
작은 놈이라면 내가 도망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것 같음.
확실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그때 제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줄 수 있음.
살고자 하는 힘으로 나는 벌떡 일어나
이제 손만 뻗으면 내 얼굴을 잡아 뜯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귀신에게서 떨어져 왈칵 화장실 문을 열여 젖혔슴.
그리고 발치에서 굴러다니는
희고 긴 물체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화장실 밖으로 괴성을 지르며 뛰쳐 내려갔슴.
온몸이 진흙에 침에 오물투성이었지만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 귀신놈이 나를 쫓아오지는 않을까 겁에 질려서
나는 그 산길을 굴러 떨어지듯 내려갔슴.
다행히 중턱쯤에 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나리를 만날 수 있었음.
나리를 보자마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
그냥 그자리에서 펑펑 울었슴.
눈물에 콧물에 나중에는 코랑 귀가 막혀서 죽을 것 같은데
나리가 물끄러미 서서 나를 내려다봤슴.
'그러니까'
느릿느릿한 나리 말에 고개를 들자, 나리가 뒤이어 말했슴
'뒤돌아보지 말라니까'
내가 엉엉 울면서 귀신이 귀신이...
하고 말을 잇지 못하자
나리가 갑자기 내 등 뒤쪽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니 년 새끼는 어디다 버려두고 애먼 놈을 괴롭혀!
이 기름에 튀겨 죽일 년!!'
기묘하게 높은 애기 같은 목소리에 나는 울음이 쏙 들어갔슴.
한참 한 곳만 노려보는 나리가
이상할 정도로 믿음직하달까 든든하달까.
이제 귀신은 다 갔구나, 안도한 나를 보며
나리가 말했슴
'우리집 가자'
'어? 왜?'
한번 나리집에 가서 된통 데였던 기억이 있는
나를 향해 나리가 말했다.
'너 또 귀신 씌였어'
내려가는 길에 약수터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바지며 다리에 묻은 오물을 씻어냈는데
그래도 퀴퀴한 지린내며 담배냄새가 안빠졌다.
사람 있는 장소로 나오니까 눈물은 그쳤는데
대신 겁이 나기 시작하더라.
화장실 안에서 앞뒤로 귀신들에게 협공 당한 것도 무서운데
또 뭐가 씌인건지
막 화장실 창문에서 기어 나오던 그 검은 머리 귀신이랑
화장실 문틈으로 구물구물 움직였던 손가락이 떠오는데...
다시 또 나리네 집에 가서 그 이상하고 무서운 장소에서
귀신을 봐야한다고 생각하니까 죽을맛이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일은 그 후부터 일어났다.
뒷산을 내려온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나리가 내게 말했다.
"너 우리집 어딘지 알지"
"거야 알지..."
"그러면 지금부터 우리집 까지 천천히 걸어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엉거주춤 서있는데 나리 시선이 이상했다.
나랑 대화를 하고 있는데 시선이 꼭 내 어깨 너머를 보는 것처럼
초첨이 흐리멍텅 했다.
귀신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소름이 쫙 돋았다.
한참을 내 어깨 너머를 바라보던 나리가
내 오른 손에 뭔가를 쥐어줬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오른손 쪽이 묘하게 무거워졌다.
"뛰지말고 걸어서 와라. 그거 꼭 가지고 오고
대신 올 때까지 말 한마디 하면 안된다?"
말을 왜 하면 안되냐고 묻기도 전에
나리가 지는 가서 밥차려야 한다고
어정어정 뛰어갔다.
나보고 귀신 씌였다고 처리해주겠다고 하던 가시내가
혼자 가버리니까
어안이 벙벙하고 억울하고 무섭고 죽을 맛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소풍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애들이
주변에 몇 명 있던 터라
정줄 놓을 만큼 무섭지는 않았다는 거다.
나리 집이야 몇 번 가본적이 있어서 가는 길은 알았다.
뒷산에서 걸어서 이십여분 걸리지 않는 길이었다.
일단 나리 말대로 나리네 할머니 집까지 가야
이 사단이 끝날래도 끝날 듯 싶었다.
젖어서 척척한 신발로 한걸음 내딛는데
뒤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꼭 장마철 통풍 안시킨 신발장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와 함께
그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너가'
철퍽 하는 물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목부터 발가락 끝까지
온 몸이 차갑게 식으며 머리가 뜨거워졌다.
온 몸의 열이 다 정수리에 몰린 것처럼
눈시울이 뜨끈뜨끈해졌다.
나는 울음이 날 것 같이 울렁 거리는 목구멍으로
몇 번이나 침을 삼키고 고개를 돌렸다.
시커먼 거미줄 같은 머리카락이
어깨 너머에서 흔들흔들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등 뒤에 붙은 건지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등줄기를 차갑게 얼렸다.
목덜미에 쭈볏 소름이 돋았다.
아까 화장실에서 봤던 그 귀신목소리였다.
너가
너가
너가
너가
너가
너가
아까처럼 반복적으로 처녀애 속삭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목쉰 울음 소리 같기도 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계속 등 뒤에서 들렸다.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고 싶은데 아까 나리가 가기 전에
제 집까지 천천히 걸어서 오라고,
말 한마디 하지 말고 오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게다가 아까부터 쥐고 있던 아무것도 없는 오른손이
묘하게 무겁고
굼실굼실 손바닥안에서 뭐가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났다.
나는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소리도 못내고 울면서 걷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등 뒤에서 철퍽 철퍽
생고기 도마에 떨어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나를 따라왔다.
하교 하는 다른 학생놈들 눈에는 귀신이 보이지 않는지
질질 짜고 있는 나를 보는 놈 하나 없었다.
차라리 귀신이 나타났다고
소동이라도 벌어지면
나도 목청 찢어져라 비명 지르면서 도망 치겠는데
생고문도 이만저만한게 아니었다.
내가 한 걸음 내딛으면 귀신도 한 걸음 따라왔다.
화장실처럼 뒤를 돌아볼 용기는 절대 생기지 않았다.
소리만 듣는 것도 무서워 죽을 지경이지만,
아까처럼 펄쩍펄쩍 뛰면서
따라오는게 아니라 다행이긴 했다.
다만 걸을 때마다 규칙적으로 등 뒤에서 들리는
너가너가너가너가 소리와 더불어
점점 더 가까워지는 숨소리와
점차 닿을 듯 다가오는 한기며 어깨에 닿는 머리카락.
머리카락이 닿는 순간후두둑 소리를 내며
뭔가가 내 어깨와 얼굴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고개를 드는 데,
비틀려 꺾인 목 위로 시커멓게 죽은 귀신의 얼굴이
순식간에 코 앞까지 다가왔다.
시뻘건 홍체가 눈구멍 안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퍼뜩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 발치로 놈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수십마리 벌레들이 와스스 흩어졌다.
아직도 어깨 위로 후둑후둑 벌레가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다리에 힘에 풀려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내가 주저앉자 놈이 풀썩 개구리마냥 사지를 뒤틀며 자세를 낮췄다.
앙상하게 마른 팔다리에
넝마조각같은 천이 들러 붙어 있는 형상이 흉악했다.
소리를 내면 안돼
분명히 귀신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해꼬지를 못하는데는
아까 나리가 말했던 것들 때문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울며불며 도망치고
싶어하는 내 다리를 붙잡았다.
여기서 정말 소리를 지르면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갑고 시커먼 손가락이 내 양쪽 어깨를 잡았다.
얼음 덩어리가 내리 누르는
기분이었지만 무겁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너가...
...니?
...너...
너가
말도 되지 않는 단어를 몇번이나 중얼거리던 귀신이
입이 찢어져라 벌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으으흐흐흐으으으으으흐으으으으흐흐흐으흐
울음 소리와 함께 으흐으
으흐흐흐흐 시커먼 손가락이 내 얼굴을 더듬었다.
썩은 사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토기가 밀려와서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이대로 주저 앉아있어봤자
귀신 놀음에나 시달릴 것을 알면서도
한참 후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왼 손은 식은 땀으로 흥건한데 오른 손은 차갑고 묵직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이 천리는 되는 것처럼
걷고 또 걸어서야 나리집에 도착했다.
좁고 가파른 골목을 내려가자 철 대문 앞에서
나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속한 마음보다 그 때는
무슨 구세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나리 앞에 이상한 상이 하나 차려져 있었다.
작은 밥상에
2인분은 족히 될 고봉밥이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나리는 성큼성큼 내게 다가와서
내 오른 손에 숟가락을 쥐어줬다.
"너 아무말 말고 이 밥 다 먹어라"
영문을 모를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밥을 보자마자 배가 몹시 고파왔다.
귀신을 처리한다며 왜 나리네 할머니는 안보이시는지
밥으로 귀신을 어떻게 처리한다는 건지는 몰라도
갑자기 뱃속이 뒤틀릴 듯 아프고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처럼 따가워서
나는 허겁지겁 밥을 퍼서 입에 쑤셔 넣고
걸신들린 듯 몇번 씹지도 않고 밥알을 삼켰다.
그 많은 밥을 꿀떡꿀떡 삼키고 나서야
배랑 목 아픈게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앞에는 나리가 뒤에선 귀신이 버티고 있는
똥같은 상황에서도 밥은 참 잘도 넘어갔다.
며칠이나 굶은 것처럼
옳지 내새끼 잘먹는다.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남은 밥알을 마저 삼키는데
배가 뒤틀리듯 아프기 시작했다.
어떻게 참아볼 생각도 못하기 토기가 치밀더니
그 자리에서 구토를 쏟아냈다.
방금 먹은 밥에 시큼한 위액부터
김밥까지 다 토하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한참 웩웩거리고 고개를 드니 나리만 보였다.
물냄새도 빨간 눈깔도 벌레도 보이지 않았다.
다 해결 된건지 몰라서 나리에게 물었다.
"귀신은 없어진거야?"
"저 집에 갔지 뭐"
"퇴치 안하고"
"할머니 굿하러 가셔서 안돼"
밥 한그릇 먹은 것 만으로도 돌아가는 귀신이 있냐고 묻자
집에 돌려보내는 것도 힘들었다고 말하며
나리는 다시는 그 화장실에 일보러 갈생각 말라는
엄포를 놓았다.
이 고생을 해놓고 내가 다시 갈리가 없잖냐고 나는 투덜거렸다.
"그 귀신 뭔데?"
"엄마하고 애기야"
그게 뭐냐고 묻는 내 말에 나리는 얼렁 뚱땅 넘기며
제 집앞에 토해놓은 거나 치우고 가라고 말을 돌렸다.
그리고 그날 밤에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선 구한 말 보릿고개였는데
어린 엄마가 혼자가 아기를 돌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편은 징병당하고 아내는 바닷가에서 조개며
생선을 잡아다 팔며 생계를 이었는데
보릿고개가 심해지자
애기 먹을 풀죽도 쑬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애기 엄마는 배가 고파서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가는
어린 애기에게 자신이 잡은 생선을 구워다가
생선 살을 발라 먹였다.
허기 속에 구운 생선이 들어오니 애기가 허겁지겁
엄마 손에서 생선을 받아 먹었다.
받아먹다다 생선 가시 하나가 애기 목구멍에 걸렸다.
애기는 기침을 하고 울고 토해봤지만
생선 가시는 나오지 않았다.
놀라 자지러진 엄마는 애기를 등에 업고 옆집에 갔다.
옆집 사는 할머니는 엄마에게 생선 가시 걸린데는
밥 한덩이를 꿀떡 삼키는게 제일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할머니 집에는 밥이 없었다.
엄마는 아기를 등에 업고 밥을 구하려고 다른 집에 갔다.
어디서도 밥을 얻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소나무 속살이라도 긁어 먹이려고 산에 올라갔다.
그러나 소나무 속살도 다른 사람들이 다 긁어가서
산에도 먹을 것이 없었다.
아가 참아라. 엄마가 밥 먹여줄게.
엄마가 밥 꿀떡 삼켜서 안아프게 해줄게.
우리 아가 착하다.
엄마는 울면서 산을 넘고 또 넘었다.
민가마다 문을 두드렸다.
몇날 며칠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밥 한덩어리를 구해서
죽은 아기 입에 밀어 넣었다.
죽은 아기는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아가 이 밥 아니니? 너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줘야 안아플까.
엄마는 다시 아기 먹일 밥을 찾아서 산을 헤메고 다녔다.
죽은 아기도 엄마 쫓아서 산을 넘었다.
아가아가 너가 먹을 밥을 찾자.
엄마가 맛난 밥 찾아줄게.
옳지 내새끼 밥 잘먹는다.
나는 꿈에서 깨서 한참을 울었다.
#실화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