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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달라졌단 사실을 알아차린 건 오래전 일이다.
기시감과 이질감이 뇌리를 어지럽힌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신경들은 이미 풀어 헤칠 수조차 없이 머리를 헤집었다.
나의 눈앞에 있는 ‘저것’은 남편이 아니다.
왼쪽 눈꺼풀 바로 옆에 점.
어릴 적에 생겼다던 이마 가장자리의 작은 흉터.
웃을 때마다 눈매가 내려가며, 만들어지는 눈웃음.
사소한 것들은 모두 그를 모방하고 있지만, 나라면 알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소처럼 그것에게 안기며 묻는다.
“오늘 저녁은 뭐 먹고 싶어 여보?”
“음, 오랜만에 자기가 끓인 된장찌개 먹고 싶네.”
“그래? 그럼 차돌 사서 같이 넣고 끓여야겠다. ‘팽이버섯’도 잔뜩 넣고 시원하게 어때?”
“좋지. 난 자기가 만든 음식이면 다 좋아.”
속으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남편은 연애 때부터 버섯이라면 학을 떼던 이였다.
* * *
의구심은 확신이 되며, 확신은 불신이 되어버린다.
잉태된 불신은 결국 증오라는 괴물을 나의 속에 탄생시켰다.
‘저것’은 대체 무엇일까. 어째서 나의 남편 흉내를 내며 이 집에 들어와 있는 것일까.
애초에 진짜 나의 남편은 어디로 가버린 거지?
“자기야 밥 안 먹고 뭐해? 다 식겠다.”
걱정 어린 말을 내뱉는 저것에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
남편은 살아있긴 한 걸까.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그렇기에 비극으로 단정 짓기엔 이르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방법을 강구해 내야만 한다.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눈앞에 저 가증스러운 것을 없애고 남편을 되찾을 것이다.
* * *
그이와 만난 것은 대학생 시절이었다.
날은 흐렸고, 장마를 앞두고 모든 이들의 기분이 우중충해지던 습기 가득한 7월의 어느 밤. 에어컨도 없던 그 열대야에 잠 못 이뤄 나와 앉아있던 공원 벤치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고막을 때리는 매미소리와 함께 마주한 그는 무척 평범한 남자였다.
“날이 참 덥죠? 모르고 두 개를 샀는데 하나 드시겠어요?”
그는 포장지에 물방울이 맺힌 하드 하나를 내게 건넸다.
대학교 진학으로 홀로 상경한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모든 것이 막막하고 두렵기만 하던 그런 인생의 과도기 같은 때에 그는 작은 호의를 내게 베풀어주었다.
하지만 그 조그마한 친절이 그에게 반하는 계기가 되진 않았다.
당시 내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청춘을 만끽하기에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 시간도, 성적을 맞추기 위해 공부에 매진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하물며, 그런 상황에 연애에 할애할 시간은 없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단순히 흘러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 * *
계속해서 느껴지던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은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
너무 놀라 비명이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입을 막은 손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빠르게 뛰었고, 호흡은 점점 가빠 왔다. ‘공포심.’ 억누르던 그 감정이 순식간에 나의 전신을 집어삼켜버렸다.
잠든 그것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내가 알아챈 것은 ‘주름’이었다.
다른이가 듣는다면 있을 수도 있지 않냐며 반박할 것이다.
일부분은 맞는 말이었다. 이미 결혼한 지도 10년. 남편과 동갑내기인 나의 나이도 삼십 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노화의 상징인 주름따위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인간이라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세월의 상흔이 남기 마련이었으니, 되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작 ‘하룻밤’만에 저리도 선명한 ‘주름’이 생성될 수 있는 것인가.
전날 저녁까지 매끈하던 그것의 얼굴에, 오늘 아침에 선명한 팔자주름이 새겨져 있다. 마치, 저것이 하룻밤 새에 10년은 나이를 먹은 것만 같다.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남편을 되찾고 벗어나야 한다.
저런 정체 모를 존재와 계속 같이 살다간, 나 역시 어떤 꼴이 될지 모른다.
* * *
이상한 꿈을 꾸었다.
흰 연기로 가려져 얼굴을 볼 수 없으나, 무척이나 친숙한 누군가가 나를 끌어안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는 그 사람을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무슨 일인지 몰라도, 다 잘될 거야.
나의 위로에도 그 사람은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연기는 끝끝내 걷히지 않았다.
그 사람의 모습을 본다면, 지금 내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의 실마리가 보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국 그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 * *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갔다.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하루가 지날 때마다 새하얗게 머리가 바래갔으며 피부는 조금씩 탄력을 잃고 주름과 검버섯이 늘었다.
마치 이것이 섭리라는 것처럼.
그것은 빠르게 늙어갔지만, 여전히 내색하나 없었다.
이쯤 되면 솔직히 누구라도 알아차릴 텐데.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어째서 아직까지 저렇게 연기를 하는 거지. 의중을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이 해올 해코지 때문인가?
아니었다. 남편을 되찾기 위해서 나는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주저하는가. 나는 이제 내 속까지 알 수 없게 된 느낌이었다.
이것은 역시 ‘그것’과 계속 생활해 왔기 때문이리라.
터무니없이 불쾌한 기분이다.
* * *
“다녀올게 여보.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
“내가 갈 데가 어딨다고. 걱정 말고 출근이나 잘 하고 와요.”
“응.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 한마디만큼은 할 수 없었다.
일상을 연기하고 있지만, 남편을 모방하는 아니. 어쩌면 없앴을 지도 모르는 저것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부쩍 그것이 나를 옥죄여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날이 덥다,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럽다.
요새 세상이 너무 흉흉하다는 핑계로부터 시작된 외출 제한이 이젠 무척 노골적이고 단호하게 바뀌었다. 그것은 내가 이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끔 하고 있었다.
이젠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감정들이 마음의 틈을 비집고 나오려 하고 있다.
무섭다.
남편인척하는 저것과 생활하는 것이 두렵다.
도망치고 싶다. 모든 걸 내팽개치고 어딘가로 숨고만 싶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칠 수는 없다. 나는 그이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고작해야 가짜에 겁내고 있을 수만은 없다.
* * *
“자기야. 밥 다 먹었으면 약 먹어야지.”
그것이 매일 하는 일과 중 하나.
내게 뭔지 모를 알약을 먹이는 것이다. 정체 모를 약을 먹는 것은 정말 끔찍했지만, 내색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순순히 알약을 삼킨다.
삼키는 척하고 뱉을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하나, 그것은 나의 입안까지 꼼꼼히 확인해 약을 먹었는지 철저하게 살핀다. 내가 뱉어내더라도, 아마 그것은 억지로라도 약을 먹이겠지.
알약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선명하다.
이 약은 대체 무엇일까. 몇 달째 참고 먹고 있지만, 어떤 효과를 지닌 약인지조차 알 수 없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적어도 독약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몇 달을 꾸준히 먹고 있지만 몸에 이상은 없다.
다만, 꺼림칙할 뿐.
이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무엇이라도 알아보아야 한다. 나의 눈앞에 서있는 ‘저것’의 정체, 진짜 남편의 위치, 내가 처한 상황을 알기 위하여 모든 것을 조사할 생각이다.
* * *
여느 때처럼 그것이 출근한다며 집을 나섰다.
내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옷장과 탁자, 서재와 화장실 선반까지 모든 것을 뒤집어엎으며 단서를 찾았다.
악독한 그것이 꽁꽁 감춰두기라도 한 것인지 도통 발견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포기한다면, 남편과는 다시 재회할 수 없겠지.
평생 남편을 흉내 내는 ‘그것’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치가 떨린다.
그렇게 한참을 뒤지다 마침내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포기하지 말 것.]
나의 글씨체로 쓰인 종이 하나가 붙어있었다.
상자 안에는 남편과 연애 시절 찍어둔 빛바랜 사진 여러 장이 들어있었다.
관광지에서 어쩔 줄 모르는 그이의 얼굴.
해수욕장에서 나를 업고 포즈를 잡은 다정한 나와 남편의 모습. 그리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은 누군지 알 수 없을 노부부의 사진 한 장.
순간 눈물이 흘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숨 막힐 듯 강렬한 슬픔이 나의 심장을 눌러왔다.
* * *
회상은 금기시된 마약과 같았다.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고양감과 희락이 샘솟고, 힘겨운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회상이 끝나면, 지옥 같은 현실로 되돌아간다는 끔찍한 부작용이 나를 덮친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과거를 떠올렸다.
“XX는 씨는 왜 저를 만나려고 하세요?”
계속 거절의 뜻을 에둘러 표현했으나, 알아듣지 못한 건지 혹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 건지. 계속 내게 다가오는 그에게 의문이 생겨 물은 적이 있다.
그이의 답은 간결하지만 인상 깊었다.
“당신이니까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저도 이렇게 구차하게 계속 매달릴 생각이 없습니다.”
가진 것 없고, 특출나게 예쁜 것도 아닌 나를.
그는 진심으로 원하고 있었다. 마음속에 여유가 없던 나였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과연 이 남자가 얼마나 진심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교제했고, 수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자기야. 나는 자기하고 가볍게 만날 생각은 없어.”
그렇게 말하며 그이는 나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자기라면 평생 사랑해도 지치지 않을 거니까.”
세상의 비관적인 면만 바라보던 나의 시야는 흑백이었다.
그러나, 그때 바라본 그의 눈만큼은 이세상 그 어떤 물질보다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 역시 그이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작은 친절을 받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어쩌면 평생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도 정말로 사랑해….”
남편이 없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커다란 버팀목이자, 동반자였기에.
나는 어떻게든 남편을 다시 되찾을 것이다.
* * *
“선생님, 호전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겁니까?”
“예. 아시다시피, 완치가 불가능한 병입니다. 조금 나아질 수는 있겠으나, 약물치료는 어디까지나 완화될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새하얗게 늙은 그것이 의사와 긴밀히 대화한다.
“미안해. 여보….”
‘그것’은 나를 끌어안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 광경 분명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데. 아, 어쩐지 희끄무레한 것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처음으로 ‘그것’에게 측은한 마음이 든다.
“괜찮아.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증오하는 ‘그것’이지만, 나는 그것을 위로했다.
나는 일상을 연기해야만 한다. 남편을 찾기 위해서 나는 어떤 거짓이라도 연기할 수 있다. 새삼스럽게 남편이 너무나도 그리워지고 있었다.
아, 언제쯤 나는 진짜 남편을 볼 수 있을까.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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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바바재극기부대 작성시간 25.01.17 에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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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스타듀 밸리 작성시간 25.01.18 ㅠㅠㅠㅠㅠㅠ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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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제시카 알바 작성시간 25.01.21 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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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무뚝뚝한바보닉값합니다 작성시간 25.01.21 ㅠㅠ계속 과거에 머물러있구나.. 슬퍼 나쁜짓만 하지않길..
상자를 열어보고 회상을 할 땐 그것이 남편이라는 것을 안걸까.. 그치만 이내 또 잊어버리고 병원에 온거 ㅠ -
작성자이 세 진 작성시간 25.02.02 처음부터 착각쪽인가 했는데 치매네 ... ㅠㅠㅠ